CoC
꽃의 뼈
울새의 노래는 둥지에 갇혀 있다.
2025-01-18
KPC. 가토 쿠레하 · PC. 노노미야 이노리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모처럼 엄마와 아빠를 만났고, 동네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저택에 갇힌 나날 동안 늘 꿈꾸던 일상이었다.
때마침 마을은 축제가 시작돼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움이 가득했다.

함께 와도 좋았을 텐데. 모처럼 그 애 생각을 했을 때……
티아나를 닮은 아이가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잘못 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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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
 
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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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
 
누군가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
 
달그락, 식기끼리 부딪치는 소리…….
 
그리운 기시감과 함께 이노리는 눈을 뜹니다.
 
오늘 아침, 울새는 울지 않습니다.
 
이곳은 람피온의 저택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노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으면,
 
감자 수프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힙니다.
 
그래요,
 
이노리는 15살의 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신나던지요.
 
흥에 겨웠던 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은 봄방학만을 기다리며
 
작은 여행용 가방에 꾸역꾸역 짐을 담은 채
 
꼭 껴안고 잠들었습니다.
 
아리아는 부모님께 보여주고자
 
밀린 5년 치의 일기를 몰아서 쓰기도 했죠.
 
방학 동안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이노리를 포함한 아이들은 저택을 나와
 
여태껏 나고 자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쿠레하는…….
 
이노리: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빡, 깜빡.
 
이노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여러 번 감았다가 뜹니다.
 
그러고 보니 찜찜한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신경이 예민해진 걸까요?
 
다시 쿠레하에 대해 떠올려보자면…….
 
쿠레하는 저택에 남았습니다.
 
이노리의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도
 
그저 묵묵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을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입니다.
 
그야, 쿠레하는 언제 어디서든 이노리와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 굴곤 했잖아요.
 
결국, 이노리는 쿠레하를 두고 홀로 저택을 떠났습니다.
 
이노리가 가족끼리의 단란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집입니다.
 
어떤 느낌인가요? 이노리.
 
이노리:...바보. 언제는 가족이 되고싶다더니. (내심 따라오지 않은 그 아이가 괜시리 신경쓰였다. 혼자라는 것의 빈자리는 이렇게 크나- 싶기도 했고.)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앞에선 마냥 웃음만 나왔다. 몇 년만에 만나는 그들은 지나치게 그리웠기도 하고, 긴 공백이 어색하게도 다가와서. 물론 싫은 느낌은 아니지만, 아직 이 빈자리가 그들로 채워지는 것에 익숙치 않다.)
 
그리움과 어색함,
 
그런 감각들에 빠져 있으면,
 
아래층에서 이노리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이노리~
 
그리웠던 어머니의 목소리입니다.
 
목소리는 식사 준비가 끝났으니 어서 내려오라고 독촉합니다.
 
이노리:응~..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아래로 내려간다.)
 
이노리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수프의 향은 더 짙어집니다.
 
어머니:어서 오렴, 수프가 다 식겠어.
아침잠이 많은 건 여전하구나?
 
좋아하는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잔뜩 차려져 있습니다.
 
초콜릿이 박힌 스콘에 곁들일 버터와 포도잼,
 
천혜향 소스와 차돌을 곁들인 더덕구이,
 
성게 알을 올린 크림 파스타,
 
향긋한 버섯볶음,
 
산초폼과 미나리로 장식한 생선구이,
 
트러플 오일과 당근 샐러드를 곁들인 안심구이,
 
색색의 모둠 채소 구이와 양 갈비 스테이크,
 
후식으로는 라즈베리 치즈 케이크와 얼린 청포도가 있습니다.
 
무알콜 포도주와 사과 샴페인까지,
 
다소 호화스러운 차림새입니다.
 
원래 이노리의 집에선 이렇게 차려 먹곤 했나요?
 
이노리:(입이 떡 벌어졌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식탁은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꼭, 많은 돈이 생긴 것처럼……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돈은 어디서 생겼을까요?
 
이노리: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어떻게?
 
어느 쪽이건 불쾌한 경우의 수군요.
 
이노리:(별로 하고싶지 않은 생각인데... 애써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외면했다.) 엄마, 오늘 파티하는거야?
 
어머니:응? 어머, (입을 가리고 웃는다.) 파티지 그럼. 우리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잖니. 어서 먹으렴.
 
어머니는 이노리의 기억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모습으로
 
다정하게 식사를 권합니다.
 
이노리:으응...... (이걸 언제 다 요리한거지...)
(일단 한입 먹는다. 냠.)
 
자, 식사합시다.
 
마음껏 먹고 마셔도 좋습니다.
 
음식을 한 입 먹으면 의심은 누그러지고
 
날 선 감각은 부드럽게 녹아듭니다.
 
아, 그래요. 오랜만에 돌아오는 집인 걸요.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건 어느 부모나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여전히 다정한 가족,
 
사랑스러운 추억,
 
따뜻한 향기.
 
마음이 충족되고
 
그동안의 외로움이 보상되는 이곳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의 집입니다.
 
비로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어머니:잘 먹는구나. 음식은 입에 맞니?
 
이노리:웅! 마이써... (우물우물...) 근데 아빠는?
 
어머니:아빠는 오늘 일 가셨지..~ 오랜만에 우리 딸이 잘 먹는 모습 보니까 좋네.
어머, 그러고보니 오늘부터 축제가 시작이잖니. 모처럼 돌아온 김에 다녀오는 건?
 
때마침 바깥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지고,
 
마을 한복판에서부터 타악기를 두드리는 듯한
 
일정한 리듬이 들려옵니다.
 
이노리:축제...?
 
어머니:그래, 마치 플라워 말이야. 저녁쯤에는 아빠도 돌아오실 테니, 늦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이노리:나가서 놀고 와도 돼요?(빤히...빤히...)
근데 빈손으로 왔는데... (빤히... 빤히......)
 
어머니:이노리도 이제 어엿한 아가씨인 걸? 용돈이라면 외출복 주머니에 넣어 놨으니 아껴 쓰고.
 
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당부하곤
 
당신의 뺨에 입을 맞춥니다.
 
이노리:엄마 최고!!! (폴짝폴짝)
 
식사를 마쳤으면 나가볼까요?
 
이노리:(엄마 한번 꼬옥 끌어안고선) 그럼 다녀올게요..!
 
어머니:다녀오렴, 이노리.
 
어머니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을 나섭니다.
 
.
 
.
 
.
 
.
 
.
 
.
 
오늘따라 날씨도 매우 화창합니다.
 
축제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겠어요.
 
거리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꽉 차 있으며,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화사한 꽃으로 얽은 화관을 얹고 있습니다.
 
그때,
 
이노리의 앞으로 검은 땋은 머리를 한 소년이 지나갑니다.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언뜻, 쿠레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구도 그렇고요.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그 사람은 빠르게 멀어져 인파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노리:엇...
(따라가볼까...)
 
따라가볼까요?
 
이노리:(따라가자!)
(검은머리...검은머리... 바짝 집중하고 쫓아간다!!)
 
이노리: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59, 95, 45
+2: 실패
+1: 실패
  0: 실패
-1: 실패
-2: 실패
 
이노리가 아무리 바짝 집중하고 뒤를 쫓아도,
 
인영은 인파 속에 섞여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이노리:(헉...헉...) 안돼...!
 
벌써 지친 기분이...
 
이노리:쿠레하! (괜히 이름이라도 불러본다...)
 
이런 인파 속에서는 목소리가 닿는 것도 쉽지 않겠죠...
 
애초에 그 아이, 정말 쿠레하일까요?
 
쿠레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노리는 이노리대로 축제를 즐겨야겠죠!
 
적당히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 좋고,
 
햇볕은 따뜻합니다.
 
곳곳이 꽃향기에 사무치니 구경하기 퍽 좋은 날씨예요.
 
축제의 노점상과 광장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노리:(듀....)
(노점상으로 가보자)
 
언제든지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게 마련된 먹거리 장터,
 
기념품을 판매 중인 간이 매대,
 
마치 플라워의 명물인 꽃술과 꽃전을 나눠주는 가게, 어린 봄의 달이 있습니다.
 
이노리:허업...... (마시게따...) (먹거리 장터부터 간다!)
 
이노리는 밥을 먹고 나왔지만 음식 냄새에 이끌립니다...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기름을 듬뿍 넣어 볶아낸 파스타,
 
파릇파릇한 샐러드에 화려한 꽃장식을 더한 샐러드,
 
이것저것 넣고 펄펄 끓인 닭고기 수프,
 
포슬포슬한 촉감의 갓 구운 빵까지.
 
이노리: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분명 먹었...는데?
 
금세 허기가 찾아옵니다.
 
간식이라도 사먹는 게 좋을까요?
 
이노리:(용돈 꺼낸다...) 빵 하나 주세요!
 
주인장:(갓 구운 빵을 꺼내며) 꼬마 아가씨, 혼자 온 거냐?
 
이노리:네에....
 
주인장:(하하) 재미있게 놀다보면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지. 저기 나무 테이블이 있으니까 앉아서 먹고 가거라. (종이 봉투에 빵을 넣어 네게 건넨다.)
 
이노리:(빵에 시선이 절로...) (우왕) 감사합니다~
(얌전히 나무테이블로 간다...)
 
한 편에 마련된 나무 테이블 위로는
 
옅은 보라색 꽃송이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등나무가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우고,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에도
 
채 바람에 날아가지 못한 꽃잎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꽃향기와 봄바람을 만끽하며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운 좋게도 딱 한 자리가 비어있네요.
 
이노리:(주변을 둘러본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 없나..)
 
둘셋씩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습니다만,
 
그렇기에 한 자리를 쓸 사람은 이노리 뿐이겠죠...
 
이노리:...
외로워... (어라..? 빵에서 짠맛이...)
 
자리에 앉아서 빵을 먹으려 하면,
 
짠 맛이...
 
가 아니라,
 
응? 음식을 제대로 뎁히지 않은 걸까요?
 
분명 꺼낼 때까지만 해도 갓 구운 빵이었는데…
 
봉투에서 꺼내 보니 차갑기만 합니다.
 
이노리:(우울해...)
 
우울합니다...
 
마음도 차가워요...
 
이노리:춥다...
 
그렇게 따뜻한 봄의 한가운데 성냥팔이 소녀처럼 빵을 뜯고 있으면,
 
테이블의 테두리에 묻은 검은 자국을 발견합니다.
 
저게 뭘까요?
 
이노리:먼지인가..? (빤히...)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음식이 묻은 것 같진 않은 걸요.
 
손으로 문질러 보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썩은 나무를 사용한 걸까요?
 
해롭진 않겠지만 조금 찜찜하네요.
 
이노리:(...)
이상하다..? 나 왜 축제인데...
...
(자리에서 일어난다...)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시선을 다시 노점상 쪽으로 돌리면, 어..?
 
아까 그 (유사) 쿠레하가..!
 
이노리:(반짝!!)
쿠레하!
 
쫓아가볼까요?
 
이노리:(진심전력으로 따라갑니다. 나 너무 외로었어....)
 
이노리: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29
판정결과: 실패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8, 37, 74
+2: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0: 보통 성공
-1: 실패
-2: 실패
 
진심전력으로 그애만을 따라갑니다.
 
이노리는 정신없이 인파를 치우고 나아가
 
익숙한 뒷모습의 사람을 붙잡습니다.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욕설을 듣거나 시비에 휘말렸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이 붙잡은 사람은 분명…….
 
쿠레하:이노리!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쿠레하입니다.
 
당신을 발견하자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반가운지 이내 웃어 보입니다.
 
쿠레하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분명히 가자고 권유했을 때도
 
오지 않겠다고 극구 거절했었는데 말이죠.
 
이노리:쿠레하다! (와락! 끌어안음)
 
쿠레하:우왓! (예기치 못한 포옹에 뒤로 살짝 밀려나서는) 으핫, 이노리다~ (꾸왑) 찾고 있었어!
 
이노리:응? 나를? 같이 가자고 할땐 싫다더니... (고개를 휙 돌리더니 가늘어진 눈으로 빤......)
 
쿠레하:그건, (끔뻑...) 이노리가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논다고 하니까.
그런데 왜 혼자야? 이노리, 여기 친구 없어? (푹)
 
이노리:그치만 쿠레하도 내 가족이잖아... 그럼 같이 와도 됐는데.
(...) (.......)
(다짜고짜 쿠레하 입에 차게 식은 빵을 욱여넣는다..)
 
쿠레하:이노리는 내 가족이지만, 이노리네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닌 걸.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해? (...) 읍, 웁... (입이 틀어막혔다. 그대로 우물우물 씹어서 7초만에 씹어삼킨다.) 딱딱해. 맛있다. (돼지.)
 
이노리:하지만 쿠레하, 혼자 있으면 심심했을텐데도. (사실 더 외로웠던건 나였지만)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는 친구라고 하면 다 좋아하실껄?
(빵을 처리했다.) ...돼지.
 
쿠레하:응. 혼자 있다가 이노리가 보고 싶어져서 어쩔 수 없이~ (와버렸다는 투. 대책이 없다.) 분명 이노리도 축제에 놀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 이노리도 나 보고 싶었어? (빤...) 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빠아안...)
 
이노리:바보! 그래도 길 잃지 않고 잘 찾아온건 칭찬해줄게. (머리 쓱쓱) 언제나 즐거운건 함께 했으니까.. 이제 쿠레하의 빈자리는 쿠레하만 채울 수 있다는거 알지?
그러니까 보고싶은 건... 보고싶은 건... 쪼금.
(....눈데굴) 아니, 쪼오금 많이?
(.... 침묵)
....아닌가, 쪼금 더 많이...?
 
쿠레하:그냥 많이라고 해주면 안돼? (멀뚱)
 
이노리:그런건 알아서 눈치채라구..~!!
 
쿠레하:이노리가 말해줘야 나한테는 진짜가 되는 걸~ (투정부리듯 말끝을 늘이고는) 하지만 이노리는 부끄러움이 많으니까! 응. (봐줬다는 듯)
...나 배고파, 이노리. (방금 빵 하나를 삼키지 않았나?)
 
이노리:바보 쿠레하. 너한테는 전부 진짜뿐인데. (괜히 민망해져서는 쿠레하 얼굴을 가로로 쭈욱 늘린다...)
......돼지. 뭐 먹고 싶어? (자신만만하게 용돈지갑을 꺼냈다!)
 
쿠레하:(조금 우쭐해졌다.) 그래도 내가 쪼금 더 많이 보고싶었던 건 진짜일 테니까. (짤막하게 덧붙이고는) 아까 봤는데, 저쪽에서 꽃전을 부칠 수 있더라..~ 이노리가 만들어준 꽃전 먹고 싶어. (구체적.)
 
이노리:(귀 쫑긋...) 만들어서 먹는거야? 사먹는게 아니라?
 
쿠레하:다들 엄청 열심히 만들고 있던데?
 
이노리:흐음... 그럼 나도 쿠레하가 부쳐준거 먹을래.
 
쿠레하:열심히 해야겠다~ (헤헤 웃더니 네 손을 이끌고 어린 봄의 달로 향한다.)
 
이노리:(총총총)
 
분홍색과 흰색으로 단장한 가게.
 
조화와 생화를 적절히 배치하여 유난히 화려합니다.
 
마치 플라워 기간에만 열리는 가게로 꽃술과 꽃전을 나눠줍니다.
 
요즈음 들어선 축제용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도 판매한다는군요.
 
달달한 꽃술과 꽃전의 향으로 코가 간지럽습니다.
 
분수대에서는 분홍색 꽃술이 계속 쏟아지고,
 
자그마한 화덕들이 줄지어 붙은 벽에선 꽃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값을 치를 필요는 없지만, 직접 뜨고 만들어야 하는 식입니다.
 
이노리:해보자!
 
꽃전을 만들 거라면,
 
이노리:
손놀림
기준치: 45/22/9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쿠레하:이노리, 기름이 좀 많지 않아..? (지그시)
 
이노리:기, 기다려봐...
 
쿠레하:(얌전...)
 
첫 번째 꽃전은... 기름을 잔뜩 먹었습니다.
 
심기일전한 두 번째 꽃전은..?!
 
이노리:(집중..집중!)
손놀림
기준치: 45/22/9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쿠레하:(킁..킁) 냄새 좋다.
 
이노리:그치?
 
한 번만에 요령이 생긴 걸까요?
 
쿠레하:이노리는 꽃전도 잘 만들어! (첫 번째 꽃전은 외면했다.)
 
이노리:응! 그럼그럼! (첫 번째 꽃전은 외면했다.)
쿠레하도 해줘~
 
쿠레하:사랑의 마음을 담은 꽃전..~ (콧노래 부름)
손놀림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노리가 만든 꽃전 위에 얹었다.)
 
이노리:(내꺼보다 잘나온거 같은데..?)
 
쿠레하:동글동글하지. (뿌듯)
 
이노리:역시 먹을줄 아는 사람이 요리도 잘하는걸까..? (곰곰)
 
쿠레하:난 먹을 건 다 좋은데? (그냥 돼지)
 
이노리:그럼 이거도 먹어. (자신의 첫번째 꽃전을 밀어준다.)
 
쿠레하:(기름으로 축축해진 걸 본다.) 하나 더 만들까~ (외면)
 
이노리:...........응!
 
쿠레하:
손놀림
기준치: 60/30/12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탔다
 
이노리:아.
 
쿠레하:(이노리의 첫 번째 꽃전 위에 올려줌)
사이좋다 그치 (무마해보려고..)
 
이노리:으, 응. 누가 먹을지 참 궁금하네..~
 
쿠레하:... (고민) 비둘기들?
 
이노리:(고개 번쩍) 좋다, 그거.
 
쿠레하:비둘기들도 축제네~ (꽃전을 챙기며) 저건 뭐야, 이노리? (꽃술 가리킴)
 
이노리:응. 저거 술이래. (킁킁...) 근데 냄새는 좋은 것 같아.
 
쿠레하:술이면 우리는 못 마셔?
 
이노리:혼...날지도?
 
쿠레하:(조금 시무룩..)
 
이노리:쪼오금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궁금했어..)
 
쿠레하:그럼... 쪼오금만? (쿵짝)
 
이노리:(끄덕끄덕!)
 
자자 바보 미성년자들
 
이노리:
은밀행동
기준치: 35/17/7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쿠레하:
은밀행동
기준치: 50/25/10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병 품에 숨겨옴...) 이노리!
 
이노리:쿠레하, 점점 이상한 재능이 생기는 것 같기도...
 
쿠레하:좋은 거지? (앞에 붙은 이상한?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노리:응.... 그럼 쪼금만 마셔볼까. (속닥)
 
그때, 저쪽에서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주인장:특별한 축제 특제 포춘쿠키 가져가세요~!
 
이노리:헛.. 깜짝아.
 
찔리는 바보 청소년들
 
이노리:포춘쿠기? (관심있는듯 기웃거리며)
 
포춘쿠키라…….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먹었던 적이 있었죠.
 
그날이 아마 첫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져와볼까요?
 
이노리:(가져온다!)
 
쿠레하:뭐라고 적혀있어? (기웃)
 
이노리:한번 열어볼까? (뽀각)
 
이노리:.....꽃도 뼈가 있어?
 
쿠레하:줄기 말하는 거 아닐까? (멀뚱..)
 
이노리:심오해....
이래서는 좋은건지, 나쁜건지 알 수 없잖아.
 
쿠레하: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다니까~ 좋은 거야! (단순)
 
이노리:응... 쿠레하꺼도 가져와볼까?
 
쿠레하:(술병 뒤로 숨기고 샥샥)
 
쿠레하의 포춘쿠키를 까보면...
 
이노리:(재능있어..)
 
이노리:당연한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
 
쿠레하:이제 먹으러 갈까? (한가득 음식을 품에 안는다.)
 
이노리:어디서 먹으려고?
 
아까 분명 나무 테이블이 있었죠.
 
이제 이노리도 혼자가 아닙니다...
 
이노리:(거기 껌댕이 있는데?)
 
깔끔 떠는 아가씨
 
이노리:(찝찝한데...........)
 
쿠레하:이노리?
 
이노리:으응, 아냐. 가자!
 
아까의 그 자리로 가면,
 
껌댕이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뭐, 묻어나오진 않는 것 같으니
 
더러운 건 아니겠죠!
 
쿠레하:(아무고또 모르고 테이블 위에 음식을 펼친다.)
 
이노리:(껌댕이 없는 쪽으로 음식을 쭈욱 땡긴다...)
 
쿠레하:? 이노리 욕심쟁이. (혼자 다 먹으려고 하는 줄)
 
이노리:돼지는 쿠레하고~ 요기 보여? (껌댕이 가리킴) 안닿게 하려고 그런거야.
 
쿠레하:뭐가 있는데? (고개를 쭉 내밀어 보더니 여전히 갸웃...)
 
이노리:응? 안보여, 이거?
 
쿠레하:(머리 굴리는 듯) 가시? (아니다.)
 
이노리:됐다... 먹기나 해. (꽃전 잘라서 입에 쏙! 넣어줌)
 
쿠레하:(냠) 맛있다~ (망한 꽃전들 잘라서 비둘기들한테 던져준다.) 맛있지~
 
이노리:(우물우물...)
(망한 꽃전 하나 쿠레하 접시에 놓아줌)
 
쿠레하:(비둘기에게 가차 없이 던져줌)
 
이노리:....
 
쿠레하:잘 먹는다 그치 (ㅎㅎ)
 
이노리:전엔 맛이 이상해도 다 먹어줬던거 같은데... (시무룩)
 
쿠레하:... (눈치) 먹..먹을까? (덥썩)
 
이노리:...됐어. (ㅡ3ㅡ)
 
쿠레하:(그대로 냠~) 맛있다~ (입이 번들번들해졌다.)
 
이노리:진짜? 진짜루...? (빤히.........)
 
쿠레하:응. 이노리의 사랑(기름)이 느껴져...
 
이노리:그럼. 이것도 다 사랑이지~ (너무 번들번들해졌는데? 냅킨으로 톡톡 닦아줌 ㅋㅋ)
(사랑을 닦았다.)
 
쿠레하:(헤헤 이건 좋다.. 사랑을 느껴)
 
이노리:나 이제 목 마른데... (꽃술 힐끔)
 
쿠레하:(꿀꺽) 이게 어른들만 마신다는. (종이컵에 옹졸하게 따라서 내밀었다.)
 
이노리:이걸 마시고 우리도 어른이 되는거야.... (마찬가지로 비장해졌음)
 
쿠레하:리샤이가 말했는데, 어른들은 '짠'이라는 걸 한댔어. (?)
 
이노리:짠?
 
쿠레하:짠. (종이컵끼리 툭 부딪혔다.)
 
이노리:오. 오오...
짠. (한번 더 부딪혔다.)
 
쿠레하:짠짠짠! (신나서 세 번 연속 부딪혔다.)
 
이노리:이제 마셔도 돼?
 
쿠레하:그럴 걸? (모름)
마시자~ (꿀꺽)
 
이노리:(옹졸하게 호로록 마신다...)
 
도수가 낮은 술이라 그런지,
 
알코올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희미한 꽃냄새가 납니다.
 
쿠레하:(쩝) 맛있는데?
 
이노리:웅. 꽃냄새도 나네. (맛있어서 한컵 원샷~)
 
쿠레하:(한 잔 더 따라 마셨다.)
 
이노리:음료수같다, 이거.
 
그렇게 한병은 다 비웠다면...
 
쿠레하: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노리: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 정도야 주스죠 주스
 
이노리:(으쓱으쓱)
 
쿠레하:배부르다. (팡팡) 이제 어디로 가?
 
이노리:배 불러? 그럼 아까 기념품 파는 곳있던데.. 거기 가볼까?
 
쿠레하:(신나서 간이 매대로 이노리 끌고 감)
 
이노리:(쿠레하 손 잡고 후다닥!)
 
축제의 기념품을 판매 중입니다.
 
잘 말린 꽃으로 만든 장신구,
 
정교한 조화,
 
투명한 액체 안에서 흔들리는 하바리움,
 
꽃무늬가 인쇄된 원피스와 셔츠,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 등
 
다양한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축제 내내 정중앙의 꽃나무 아래에서 악단이 곡을 연주합니다.
 
춤을 권할 때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를 선물하는 것이 오랜 풍습이었죠.
 
이노리와 쿠레하가 간이 매대 앞을 지나가다 멈춰 서면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장사꾼이 자신이 파는 물건을 추천합니다.
 
이노리: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아... 전부 사고 싶어요.
 
용돈은 아껴 쓰라고 그럤는데... 그치만...
 
이노리:(지갑 만지작 만지작...)
 
사고 싶은데?
 
이노리:사...살까? 3달러밖에 안한대.
 
쿠레하:싼 거야? (돈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이노리:(다 사면 거지가 될 것 같긴 해.)
 
쿠레하:이노리는 뭐가 제일 갖고 싶은데? (기웃)
 
이노리:쿠레하랑 나눠가질 수 있는거.
왜, 축제니까 기념하면 좋을 것 같고...
 
쿠레하:그러고보니 이노리랑 나눠가진 물건은 없는 것 같아. (반짝반짝)
 
이노리:쿠레하는 여기서 뭐가 제일 좋아?
 
쿠레하:나는..~ (매대를 쭉 훑다가) 반지! 사랑이 이루어진대. (야심차다.) 영원한 사랑이래.
 
이노리:너...! 이거 무슨 뜻인지 알고 고르는거야? (얼굴 빨개짐...)
 
쿠레하:이노리랑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싱글생글)
 
이노리:그럼 평생 나랑만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가늘어진 눈으로 빤히...)
 
쿠레하:다른 사람이 끼는 게 더 싫은데.. (가늘어진 눈 가만히 마주하다가) 이노리는 안 괜찮아?
 
이노리:(도리도리) 아니...! 나도 낀다면 쿠레하가 제일 좋을거 같아.
 
쿠레하:(화색!) 이노리랑 반지다~!
 
장사꾼:(귀엽다...) 반지는 두 개에 4 달러에요.
 
이노리:여기요! (으쓱으쓱 돈 내민다)
 
장사꾼:(분홍 꽃이 담긴 반지를 두개 내민다.) 즐겁게 즐기다 가요~
 
이노리:(쿠레하 손잡고 꾸물꾸물... 끼워주기)
됐다.
 
쿠레하:이노리도 지금 껴. (꾸물꾸물... 네 손에도 끼워주며) 빼면 안돼! (쇠독이 오를 것이다.)
 
이노리:쿠레하도 잃어버리면 혼나!
 
쿠레하:평생 안 뺄 거야. (쇠독 예약)
 
이노리:나도! (쇠독 예약2222)
 
쿠레하:(만족한 얼굴이다.) 마을에서 이노리가 좋아하는 가게 있어? 나 궁금한데!
 
이노리:다른 가게? 으음....
그럼 우리 과자 먹으러 갈까? (어릴때 좋아했던 젤리와 초콜릿을 팔던 곳을 떠올린다.)
 
쿠레하:갈래~ (저택에서 나오던 디저트들을 떠올리며) 이노리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였어?
 
이노리:나는..~~ 딸기 초콜릿!
달고, 상큼했어.
 
쿠레하:그럼 나도 그거 먹을래.
 
이노리:그래! 가자! (쿠레하 손잡고 간다!)
 
그렇게 기대에 부풀은 마음으로,
 
이노리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에는……
 
‘폐업’이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오, 이런. 5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죠.
 
이노리가 람피온의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던 동안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난 게 분명해요.
 
이노리:....... 없어졌네.
 
쿠레하:그럼 이제 이노리는 딸기 초콜릿 못 먹어? (아쉬운 듯...)
 
이노리:(가만히 팻말을 바라보다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으응, 아냐. 다른 가게에서도 많이 파는거니까.
 
쿠레하:더 맛있는 곳이 있겠지? (닫힌 문을 흘끔 보다) 그럼~ 여기말고 다른 곳은 없어?
 
이노리:다른 곳? 다른데로 가볼까... (섭섭하기도, 아쉬운 기분을 가진채 발길을 옮긴다. 그러고 보니 자주 가진 않았지만... 비슷한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때마침 휴일이거나,
 
업종이 바뀌었거나,
 
건물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이노리:없다.....
 
쿠레하:없네.....
 
이노리:... .... 어쩔 수 없지! 다른 곳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까. 응.
 
쿠레하:아직 배도 안 고프고, 응! (씩씩하게 말했지만 딸기 초콜릿은 조금 아쉬웠다.) 여기는 이노리가 없는 사이에 많이 변했나 봐. 변하지 않은 곳은 없을까? 이노리가 좋아했던 곳이 궁금했는데...
 
이노리:원래 시간이 지나면 어디든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인걸. 그러니까 사람들이 영원한건 어렵다고 말하는거겠지. (가만히 네 손을 꼭 붙잡기만 한다.) 그래도 ... 풍경은 여전해. 냄새도, 분위기도... 이것들만은 내 추억과 달라지지 않았어.
 
쿠레하:이노리랑 나도 달라지게 될까? ...반지가 있어도? (꼭 잡은 손 사이로 처음 해보는 반지의 어색한 이물감이 뒤따른다.) 이노리는 여기서 자랐으니까, 이 마을 전체가 이노리의 추억인 거지? 저기에 있는 공원도, 이쪽에 있는 빵집도. (네 말에 크게 주변을 훑었다가) 여기는 우리가 있던 저택이랑은 완전 달라. 뭔가... 살아있네.
 
이노리:조금 달라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영원한 건 어려울 뿐, 불가능한 건 아닐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라지만, 기껏 반지를 맞추고 네 손을 잡고서 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소리가 아닐까. 그런 건 생각하는 것도, 소리로 내뱉는 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응. 아침에는 갓 구운 빵냄새가 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공원에 들려서 분수 한바퀴를 돌곤 했었어. 예전같지 않지만 여전히 평범하고, 사소했던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곳이야. 저택에서 머물렀던 시간들만큼 내게 소중한 곳이기도 하지. (살아있다는 말엔 구태여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떠날 곳이니까.) 쿠레하 눈에는 어때보여? 우리 마을, 괜찮아?
 
쿠레하:그럼 달라진 상태로도 우리는 함께일 수 있다는 거네. 달라졌어도 이노리가 여전히 이 마을을 좋아하는 것처럼..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고개를 내리면 눈에 들어오는 반지에 한층 더 확신을 얻은 듯 목소리가 명료해진다.) 나는 이노리면 괜찮아, 조금 다른 모습이어도! 사라짐이 아쉬울 수 있다는 것도 네가 알려줬으니까. (그리고 그때 이노리가 내 안에 씨앗을 심어줬잖아, 변해도 우리는 함께 변해가지 않을까~ 천진한 소리를 늘어놓고는) 음.. 이 마을은 뭔가 이노리를 닮았어.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나. 나도 잔뜩 기억해서, 이노리가 이곳에 다시 오고 싶은 날에는 같이 떠들어 줄게. 다음에 오면 얼마나 더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이노리:나도.. 나도. 쿠레하라면 괜찮아. 조금 달라지더라도, 우린 계속 함께할거잖아? 그 과정을 내 눈으로 담을 수 있다면 변화는 더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되겠지. (시선이 반지에 닿는 것을 보고서, 괜히 힘주어 손을 맞잡는다. 설령 변하게 되더라도,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이 영원하다면. 함께라는 것이 영원하다면 나는 정말 괜찮을거야. 붙잡은 온기 새로 작은 욕심이 생겨난다.)
그게 뭐야..~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언제 진지했냐는 듯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나를 닮은 마을이라니. 꼭 너가 할법한 비유지만... 있지, 쿠레하. 다음에 다시 마을에 올 수 있게 된다면, 그땐 같이 갈래? 이제 모르는 마을이 아니잖아. 적어도 오늘 우리가 함께 축제를 보낸 추억이 깃든 마을이니까.
 
쿠레하:어쩌면 우리는 이미 달라졌을지도 몰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내가 이노리보다 키도 훨씬 커졌는 걸. 머리도 이노리만큼 자랐고. (달라진 눈높이, 차이나기 시작하는 손의 크기. 그럼에도 여전히 꼭 잡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찾아온 변화를 시시각각 받아들이며, 다시 오늘의 우리가 된다.) 나 다른 마을은 가본 적 없지만, 거기는 이런 느낌이 아닐 것 같은 걸. 이러고 있으니까 이노리, 꼭 람피온이 아닌 것 같아. (웃음기 남은 개구진 얼굴로) 그럼 다음에는 가족들도 소개해줘. 이노리네 집 앞에 큰 눈사람 만들까? 저택에서처럼 티 파티도 하고, 딸기 타르트도 사먹는 거야.
 
이노리:응. 앞으로도 계속 달라지겠지? 어쩌면... 쿠레하는 이~만큼 커져버릴지도 모르고. (반대편 팔을 있는 힘껏 쭉 뻗는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어. 처음 만났던 날의 너를, 겨울날의 너를. 그러니까... (가벼워진 마음으로 웃었다. 길을 알려주고, 밥을 내어주고... 사사건건 챙겨야만 했던 사고뭉치가 조금은 어른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기대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더이상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은 것 같아. 비록 마을을 떠나면서 이곳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버렸지만, 저택에서 쿠레하를 만나 람피온이면서, 이노리인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걸.
약속할게. 다음번에는 꼭 손잡고 함께 가는거야. 나도 쿠레하가 외롭지 않도록 잘 챙겨줄테니까! ...그때도 재밌을거야, 분명 오늘처럼.
 
쿠레하:이노리보다 머리 두개는 더 커진다고 했잖아. 거짓말쟁이가 아니니까 더 자랄 거야~ 그래서 네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보고, 하지 못하는 것들을 같이 해줄 거니까. (사사건건 네 손길을 필요로 했던 아이가 자라 어느새 무언가를 다짐할 줄도 아는 얼굴을 한다.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서린 얼굴이다.) 나도 약속! 그때는 마을 구석구석까지 이노리랑 추억의 장소로 만들어버려야지~ 새로 생겨난 가게도 전부 가보고. 분명 즐거울 거야.
 
그사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낯설던 마을에서도
 
분위기만큼은 이노리의 기억 속 그대로입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은
 
조금 낯설고 낯간지러운 것들입니다.
 
그 사이에서 새로운 약속이 피어납니다.
 
이곳에 다시 올 때 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노리: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좋아!
 
커다란 목소리가 외칩니다.
 
고개를 돌리면 손에 무언가 쥔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해맑게 웃고 있고, 맞은 편엔 누군가 서 있습니다.
 
이노리:뭐지...?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이제 어디로 갈까요?
 
이노리:어디 갈까? (쿠레하 봄)
 
쿠레하:음..~ 광장? 엄청 큰 꽃나무를 봤는데.
 
이노리:가자! (쿠레하 손잡고 도도도)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람들의 가슴팍에서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가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듣자하니 어린 봄의 달에서 판매하고 있다는데요?
 
품질이 좋고 모양새가 아름답다는군요.
 
이노리:다들 저걸 달고있네...
 
쿠레하:꽃? (갸웃)
 
이노리:응. 우리도 하나씩 달고 다닐까?
 
쿠레하:같이 하는 게 더 생기니까 좋아. (끄덕끄덕)
 
이노리:(어린 봄의 달로 가자!)
 
다시 아까 나섰던 가게로 향하면,
 
직원 셋이 각각 분주하게 꽃을 다듬고,
 
리본을 묶고,
 
핀을 구부리고 있습니다.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를 찾으면
 
직원 1:어떤 꽃이 좋으신가요?
 
이노리:역시... 장미려나.
쿠레하는 어때? (힐끔)
 
쿠레하:장미 말고 다른 꽃도 있어? (람피온의 저택에는 장미 뿐이다.)
 
이노리:(아)
그럼 우린 장미하자!
쿠레하도 알고, 나도 아는 꽃으로~
 
직원들은 꽃을 고르는 이노리와 쿠레하를 빤히 쳐다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쁘게 포장된 코르사주와 부토니에르를 내밉니다.
 
람피온과 미뉴에트입니다.
 
선명한 붉은색의 이파리,
 
황금처럼 빛나는 금술,
 
봄의 한낮 같은 분홍색 꽃잎과
 
금세 사라질 듯 희미한 꽃술.
 
직원 2:돈은 필요하지 않아요.
 
직원 3:왜냐면 당신은……
 
이노리:네..?
 
이노리: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인파가 많은 탓에 무어라 말하는지 들리지 않습니다.
 
다음 손님이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에
 
작달막한 가게는 금세 붐비기 시작합니다.
 
이노리:(꽃을 받고서 조금 얼빠진 얼굴로 멍...)
 
쿠레하:(네 손에 들린 꽃을 열심히 구경한다.) 옷에 다는 거지? (빤...)
 
이노리:아... 응. 쿠레하 옷에는 내가 달아줄게.
 
쿠레하:(얌전)
 
이노리:(꼬물꼬물...)
 
쿠레하:이노리는 어디에 달 거야?
 
이노리:쿠레하랑 같은 위치!
 
꼼꼼히 꽃을 달고 광장으로 가볼까요?
 
이노리:
손놀림
기준치: 45/22/9
굴림: 97
판정결과: 대실패
 
아야
 
브로치의 침에 찔려버렸습니다...
 
이노리:...아프다.
 
HP -1
 
쿠레하:아앗~ 이노리 바보!
 
이노리:이잇~!!
어릴때는 잘만 호해주더니!
 
쿠레하:호 하는 걸로는 낫지 않는다고 이노리가 그랬잖아! (옷으로 손가락 꾹 눌러줌)
 
이노리:바보. 이러면 네 옷에 피가 묻는다고... (하지만 아프니까 얌전...)
 
쿠레하:흥, 내가 달아줄게. (꿈지럭...)
손놀림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노리:웅... (카마니잇음)
 
쿠레하:짠.
 
이노리:예전엔 나보다 서툴었던거 같은데... (기특한지 머리 쓱쓱)
 
쿠레하:그동안 배운게 많거든요~ (손 잡고 광장으로 저벅저벅.)
 
이노리:(나란히 걸어간다!)
 
거대한 꽃나무의 주변을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며 춤추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자리한 악단은
 
축제에 어울릴만한 곡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인해 정신없이 왁자지껄합니다.
 
이노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과 눈이 마주칩니다.
 
이노리:(멀뚱멀뚱..)
 
큼직한 바구니를 든 여인은 화려한 화관을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발견한 여인은 훌쩍 다가와
 
바구니에서 화관을 두 개 꺼내어 씌워줍니다.
 
여인:귀여운 꼬마 아가씨, 도련님.
축제는 재미있게 즐기고 계시나요?
 
이노리:네에... (화관 만지작...)
 
쿠레하:응! 재미있어. (습관적 반말)
 
여인:후후, 광장은 춤을 추러 오신 거겠죠? 그건 작은 선물이랍니다.
춤을 다 즐기시면, 시간 내어 곧 연극에서 시작하는 연극을 보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이노리:무슨 연극인데요? (쫑긋)
 
여인:영웅 람피온에 관한 연극이랍니다. 가면극이죠. 연극을 본 적 있으신가요?
 
이노리:(끄덕끄덕) 하지만 가면극은 처음봐요.
 
여인:그럼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저희는 유랑 극단, 전국을 돌며 이야기를 퍼뜨리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인이 허름해 보이는 천막을 가리킵니다.
 
곧 초대에 응해달라는 말과 함께 바삐 돌아서네요.
 
홍보 담당인가 봐요.
 
이노리:쿠레하는 처음인가? 연극보는거.
 
쿠레하:(글씨 뗀지도 얼마 안 됐다.) 응, 그럼 연극은 가짜인 거지?
 
이노리:가짜... 비슷하긴 해. 보통 이야기를 각색해서 사용하거나, 조금 더 부풀리니까. 움직이는 동화라고 생각하면 쉬울껄~
 
쿠레하:재미있겠다~ (기대하듯 눈을 빛내며) 화관도 잘 어울려! 이노리, 우리도 춤 추는 거야?
 
이노리:그럴까? 쿠레하는 춤에 자신있어?
 
쿠레하:흐흠~ (의미심장한 미소) 아리아한테 배웠지!
 
이노리:어느새..?! (내가 더 못하는거 아냐? 조금 긴장)
 
쿠레하:이노리가 나 버리고 선생님이랑 정원 가꾸러 갔을 때. 이노리는 잘 춰?
 
이노리:(....) 쪼금? 그래도 기본은 배웠어.
 
쿠레하:그럼 춤 추자! (네 손을 잡아끌어 꽃나무 아래로 향한다.)
 
이노리:흐음..~ (빤히.....)
선생님한테 배운대로 요청해주시겠어요, 쿠레하씨?
 
쿠레하:아하하! (그 말에 큼큼, 헛기침 하고는 고개를 약간 숙여 잡고 있던 네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누른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아가씨.
 
이노리:(오히려 너무 본격적이라 당황하고 말았다.)
어.. , 어어?
 
쿠레하:응?
 
이노리:(아니지, 이게 아니지. 황급히 고개를 흔들더니 한걸음 가까이 다가간다.) ...좋아요. 대신 리드 잘해주셔야 해요? 멋쟁이 신사님!
 
쿠레하:(아리아가 보던 책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 것 같던데.) 흠흠..~ 그럼요. (그대로 네 손을 잡아끌어 춤추는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경쾌한 곡이 시작되면,
 
이노리와 쿠레하는 서로 손을 잡고
 
멀어졌다 가까워지며 둘레를 따라 빙글빙글 돕니다.
 
한 바퀴를 돌 동안 파트너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노리, 쿠레하의 발을 밟고 싶지 않다면...
 
이노리:(후...)
민첩
기준치: 45/22/9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꾸욱...)
 
쿠레하:아야,
(이노리 빤...) 저한테 화나신 게 있나요?
 
이노리:이... 이건 실수!
 
쿠레하:(손 위로 해서 빙글 돌려준다.)
 
이노리:(빙그르르르)
 
자... 얼마나 아름다운 턴을 할 수 있을지
 
이노리:
기준치: 40/20/8
굴림: 2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빙그르르~
 
꽃잎이 퍼지듯 우아한 턴이었습니다!
 
이노리:(우쭐)
 
이번에는 쿠레하에게 시련을 줘볼까
 
쿠레하: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런 거 없다.)
 
이노리:(왤케 잘배웠냐고)
 
쿠레하:이노리 나 잘 추지? (으하하)
 
이노리:헛으로 배운건 아니네...
 
쿠레하:사실 춰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ㅎㅎ)
 
이노리:...?! 재능아냐?
 
쿠레하:(우쭐) 첫 춤이니까, 이노리랑 춰야지!
 
이노리:........ 나도 진짜로 추는건 쿠레하가 처음이니까. (그전까지는 다 가짜였다고? -- 그래. )
 
쿠레하:흐음..~ 이노리는 누구한테 배웠는데? (훅 잡아당겨서 가까워진다.)
 
이노리:어릴 때... 아빠한테! (훅 가까워진채로 너를 가만히 바라본다. 이번엔 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과연 마음대로 될지?
 
이노리:
민첩
기준치: 45/22/9
굴림: 99
판정결과: 대실패
(하)
 
쿠레하:(하 잠시만)
기준치: 85/42/17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스탭에 너무 신경을 쓴 탓일까요?
 
오히려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한 이노리를 쿠레하가 잡아줍니다.
 
이노리:헉... (깜짝 놀랐다...)
 
쿠레하:위험했다~ (그래도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꽃잎은 흩날리고,
 
옷자락은 팔락이며
 
바람은 살랑입니다.
 
봄내음이 지척에 가득합니다.
 
아, 사랑스러운 봄입니다.
 
한 바퀴를 돌면 다른 사람들은 파트너를 바꾸지만...
 
쿠레하:안 갈 거지?
 
이노리:(끄덕끄덕...) (그리고 다른사람 발을 밟으면 5배는 더 미안할 것 같다...)
 
쿠레하:(나는?)
 
이노리:(쿠레하는 이해해줄거야)
 
쿠레하:(맞긴 해!)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춤을 추다보면 어느새 나무의 기둥과 가까워집니다.
 
모란과 벚꽃 사이의 크기와 색감을 가진 나무는
 
다른 어디도 아닌 이노리의 고향에서만 피는 특별한 꽃입니다.
 
마치 플라워란 이 꽃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죠.
 
저쪽에는 꽃잎을 닮은 색깔의 종이가 넉넉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이 종이에는 소원을 적어 매달거나 불태울 수 있다는 것 같네요.
 
이노리:쿠레하, 이 꽃이 뭔지 알아? (고개를 들어 가까운 나무를 본다.)
 
쿠레하:...장미? (이 세상의 모든 꽃은 장미다.)
 
이노리:(아)
이건 마치 플라워야. 여기서만 피는 특별한 꽃이라구~
 
쿠레하:(새로운 꽃을 알아갑니다.) 그럼 장미보다 특별해?
 
이노리:응... 우리에겐 그만큼은 아닐수도. (장미가 가진 특별함을, 람피온과 미뉴에트가 가진 유일함을 이길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래도 말이야.. 저기서 종이에 적어서 소원을 빌 수 있대.
 
쿠레하:이노리는 어떤 소원을 빌고싶어? (끔뻑)
 
이노리:미리 말해버리면 재미없을텐데도?
 
쿠레하:그럼..~
 
그때, 나무 옆에 서 있던 축제 관리 직원이 설명합니다.
 
관리 직원:나무에 거는 종이에는 보통 지키는 내용의 소원을 적어요.
지금 가진 것, 지금 사랑하는 사람, 지금 자신의 자리……. 현상 유지를 원
하고 언제까지나 지금 같기를 바란다면 나무에 걸어 소원을 빈답니다.
거대한 무언가에게 보호받길 바라는 거죠.
반면 태우는 종이에는 보통 성취를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앞으로 갖고 싶은 것, 앞으로 얻길 바라는 사랑, 앞으로의 미래. 도전을 원
 
관리 직원:하고 변화를 기대한다면 종이를 태워 소원을 빕니다.
여태까지의 과거를 대가로 바칠 테니 미래를 달라는 퍼포먼스 성향이 강해요.
어느 쪽을 하시겠어요? 신사 숙녀분.
 
이노리:쿠레하는 어느 쪽이야?
 
쿠레하:난... 거는 쪽! 지금 이노리랑 있는 시간이 좋으니까.
 
이노리:나도. 지금 이 순간이 좋으니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쿠레하:그럼 둘 다 매달자! (종이와 펜을 가져온다.)
 
이노리:(슥슥 종이에 소원을 적는다.)
(쿠레하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나와 같이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주기를. 오래오래 나와 함께해주기를.)
 
이노리가 매단 소원 종이가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립니다.
 
자, 이제 연극을 보러 가볼까요?
 
곧 극이 시작하기 때문인지,
 
사람들 여럿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노리:가자, 쿠레하!
 
쿠레하:응! (어쩐지 비장해짐)
 
두 사람은 표를 구매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내부는 무척 허름하고 누추하지만,
 
무대는 그럴싸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몸을 구겨 넣어야
 
간신히 두 사람분의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이노리와 쿠레하가 자리에 앉으면,
 
연극이 시작됩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어둠을 가르며 쏟아지고,
 
가면을 쓴 주인공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웅 람피온이 불타지 않는 나뭇가지를 찾아
 
여정을 떠나며 극이 시작됩니다.
 
그는 여정 중 어떤 왕국의 괴물에 대해 듣습니다.
 
흉악하고 차가운 괴물.
 
숨결 한 번으로 성이 얼어버리며,
 
두 번의 한숨을 내쉬면 나라가 얼음 속에 갇힌다는
 
무시무시한 재앙이었습니다.
 
람피온은 기꺼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왕 앞에 나서고,
 
엄숙한 신탁이 내려옵니다.
 
그는 담대히 미로에 들어가,
 
수많은 수수께끼를 풀고 함정을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비극을 부수고 승리를 거머쥘 영웅!
 
람피온은 마침내 미로의 끝에서
 
괴물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과 마주칩니다.
 
무척 인간다웠거든요.
 
그리하여 괴물을 즉시 쳐 죽이지 못하고 고뇌합니다.
 
같은 괴물인 우리는 어째서 함께 서지 못하고
 
용사와 재앙이라는 위치로 마주하게 된 걸까요?
 
람피온은 괴물을 동정하고, 이해했습니다.
 
가여운 동족을 태워죽여 예우를 다하곤,
 
미로에 무덤을 세웁니다.
 
그러나 미로의 끝까지 도달해서도
 
출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꽃의 뼈를 꺾으라 하였으나
 
꽃은커녕 이파리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신탁 또한 그를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신의 뜻을 이해한 그가
 
함께 죽고자 괴물의 무덤에 눈물을 떨구었을 때…….
 
무덤에서 한 송이의 장미가 피어납니다.
 
아름다운 분홍색 장미.
 
람피온이 홀린 듯이 그 장미를 꺾자,
 
줄기는 굽이치며 열쇠의 형태를 이룹니다.
 
그가 담벼락에 열쇠를 꽂으면
 
미궁의 유일한 문이 나타납니다.
 
열린 문 너머로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미로를 벗어난 람피온은 성으로 돌아가 왕에게 고합니다.
 
그에 크게 감복한 왕은
 
람피온에게 왕국의 일원이 될 것을 권하였지만,
 
람피온은 거절합니다.
 
나뭇가지를 찾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절당한 왕은 극히 노하여 영웅을 내쫓습니다.
 
사람들은 괴물의 시체를 가져오지 않은 람피온을
 
거짓말쟁이라 조롱합니다.
 
명예를 잃은 영웅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험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여행을 계속합니다…….
 
이노리: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기시감이 듭니다.
 
특히 장미가 열쇠로 변하는 부분에서 등장한 소품은
 
이노리가 쿠레하를 저택 내부로 들일 때 사용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모양입니다.
 
원인 모를 위화감에 잠시 멍해질 무렵
 
막이 내립니다.
 
안타까운 결말이었네요.
 
무대 위로 배우들이 나와 손을 잡고 인사하면,
 
그대로 연극의 끝입니다.
 
귀가 먹어버릴 것 같은 박수 소리,
 
이어서 조명이 밝아지고
 
사람들이 천막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노리와 쿠레하도 인파 속에 휩쓸려 밖으로 나오면,
 
해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지는 석양은 불꽃이 되어 지평선을 적시고,
 
땅이 불타는 것처럼 더위가 무성합니다.
 
꼭, 여름 같네요.
 
여전히 악기 소리는 꺼지지 않고,
 
짙은 꽃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그때,
 
쿠레하가 문득 이노리의 손을 잡아당깁니다.
 
쿠레하:이노리, 가고싶은 곳이 있어.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래?
 
이노리:....왜? (아까 보았던 포춘쿠키 속 문구를 떠오른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쿠레하: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거든. (그렇게 말하고는) 이노리라면 알고 있지?
 
이노리: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언덕 위 버려진 신전입니다.
 
종교란 평화로울수록 민심에서 멀어지는 법,
 
해마다 여는 축제로 풍족한 수입을 얻는 마을에서
 
신이란 더는 매달릴 대상이 아니므로,
 
사실상 버려진 장소입니다.
 
이노리는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노리:몰라, 그런거. (위태롭다. 그런 생각에 맞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나는... 사실 변화같은건 필요없어. 어디까지나 쿠레하랑 오래오래 함께할 수만 있으면 돼. 그리고 그건... 쿠레하도 나와 같지? 무서운 일은 없는거지?
 
쿠레하:(그 말에 뭐가 좋다고, 바보같은 웃음을 짓는다.) 나도 이노리와 같아! 잘은 모르지만... 이건 분명 이노리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을 거잖아, 이노리는 그래도 무서운 거야?
 
이노리:... 무서워. 쿠레하는 정말정말 좋지만... (가끔 내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일들을 마주해야만 한단 말이야.)
하지만 쿠레하는 가고 싶은거지? 난 알아, 넌 날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망설임이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약속 하나만 더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 놓지 말기야. 알았지?
 
쿠레하:(늘 그랬듯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오히려 그것이 기꺼운 일이라는 듯.) 나는 이노리랑 꼭 붙어있을수록 좋은 걸!
 
이노리:응. ...가자. (조금 큰 손을 부드럽게 잡아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신전이야. 이젠 아무도 방문하지 않아서 버려진 거나 다름없지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신전으로 향합니다.
 
.
 
.
 
.
 
.
 
.
 
.
 
평평한 마을을 벗어나면
 
축제로 한참 떠들썩하던 거리는 점차 조용해지고,
 
야트막한 언덕길이 나옵니다.
 
봄을 맞아 새순이 고개를 내밀었는지
 
좌우의 언덕길은 연한 녹색을 띠고 있습니다.
 
희고 동그란 토끼풀을 밟으며 오르고 오르다 보면
 
허물어진 신전의 담벼락이 보입니다.
 
이노리:(담벼락 빤히...)
 
허물어진 담벼락의 단면이 우둘투둘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들이 반짝입니다.
 
담벼락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형태인데,
 
총 열두 개가 세워져 있으며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담벼락 너머에는 꽃밭이 펼쳐집니다.
 
이노리:여기 굉장히 낡았지?
 
쿠레하:아무도 여기까지 안 올라오나 봐.
 
이노리:응... 이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적으니까. (조심조심 걷다가 바닥의 돌조각에 시선이 간다.)
 
황혼을 받아 반짝이는 돌조각들이
 
바닥에 산재했습니다.
 
붉음으로 시작해 황금으로 끝나는 색.
 
일몰을 담은 양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광채.
 
눈물 모양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람피온의 씨앗.
 
바닥에 떨어진 돌조각들은 모두 람피온의 씨앗입니다.
 
섬세하게 가공된 단면으로 햇빛이 떨어지면,
 
투명하게 관통하여 바닥으로 빛무리를 뿌립니다.
 
람피온의 저택이 아닌 곳에,
 
람피온이라곤 있지도 않을 이곳에,
 
어째서 이것들이 버려져 있는 걸까요?
 
이노리:이건......
(입을 꾹 다물고 벽화를 봅니다.)
 
떨어진 담벼락들은 꼭 비석처럼 보입니다.
 
흰 벽 위에 그어진 화풍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섬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벽화 아래에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아주 오랜 세월을 버텼는지 풍화되어
 
제대로 남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빛나고 있으며 그를 안은 아비는 타죽었습니다.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지
 
검은 나뭇가지 끝에서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노리:
언어(모국어)
기준치: 40/20/8
굴림: 98
판정결과: 대실패
 
이노리: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립니다.
 
해가 지고 있는데도 유 난히 날씨가 더운 것처럼 느껴져요.
 
성장한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단에는 새끼 양과 살진 소의 좋은 부위,
 
백향목과 비싼 향유,
 
잘 영근 포도와 탐스러운 무화과가
 
활활 불타고 있습니다.
 
청년은 간절하게 손을 모으고 소원합니다.
 
벽화 아래의 글씨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노리는 기도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홀로 살아갈지언정 홀로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고 있을 겁니다.
 
제물을 태우면서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흰 나뭇가지 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불길을 머금더니 더욱 향기로워집니다.
 
신은 그 나뭇가지로
 
흰 머리카락과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을 빚었습니다.
 
두 사람은 첫눈에 운명을 느끼고 끌어안습니다.
 
이노리:
언어(모국어)
기준치: 40/20/8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이노리:
교육
기준치: 40/20/8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담벼락은 완전히 무너져 벽화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지워진 걸까요?
 
아니면 덧씌워진 걸까요?
 
그림은 도통 알아볼 수 없도록 새까맣게 칠해져 있습니다.
 
바닥이 희게 칠해져 있지만 그뿐입니다.
 
어두컴컴하군요.
 
담벼락은 완전히 무너져 벽화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담벼락은 완전히 무너져 벽화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여인의 발아래에 사람들이 엎드러져 있습니다.
 
한 치 앞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밤중에
 
그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며……
 
이노리: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두려움에 떱니다.
 
벌을 받는 걸까요?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엎드린 이들은 모두 텅 빈 등롱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이토록 어두운데 왜 불을 밝히지 않았던 걸까요?
 
……들키면 안 된다거나?
 
이번에 미뉴에트의 발아래 떨어진 것은
 
피 묻은 칼입니다.
 
그리고 그는 양손에 잘린 머리와
 
박동하는 고깃덩어리를 들고 있습니다.
 
피에 젖어 더욱 붉은 머리카락과 검게 죽은 눈동자,
 
뽑혔음에도 박동하고 환히 빛나는 황금 덩어리.
 
람피온의 머리와 심장입니다.
 
미뉴에트는 손을 들어
 
머리와 심장을 각각 우편의 하늘과 좌편의 하늘에 걸어 두었습니다.
 
흐르는 피, 쏟아진 잔해를 집요하게 담아낸 그림을 보는 순간
 
직감합니다.
 
이노리: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람피온과 미뉴에트!
 
언제나 빼앗기만 하던 그는
 
기어코 남은 목숨마저 빼앗고 만 것입니다.
 
취하고 훔치고 빼앗으며 잃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운명은
 
지금도 연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노리와 쿠레하,
 
분명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건만 의심은 일말도 들지 않습니다.
 
불길한 예언을 본 이노리,
 
이노리: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우편에 달린 머리는 해가 되고
 
좌편에 달린 심장은 달이 되었습니다.
 
본디 하나여야 하는 것이니
 
갈라진 둘은 서로를 쫓고 쫓아 하늘을 회전합니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줄어들었다 늘어나기를 반복하니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입니다.
 
밤하늘의 먹구름에 숨어
 
등롱을 끌어안은 미뉴에트가 눈물을 흘립니다.
 
발치에는 가슴이 붉은 울새와 분홍색 꽃송이,
 
흰 가지를 가진 장미 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흘리는 눈물은 점점이 흩어져 별이 됩니다.
 
담벼락은 완전히 무너져 벽화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보통 이대로라면 이야기는 끝이 나야 마땅할 텐데,
 
마지막 한 칸엔 어떤 풍경이 그려져 있던 걸까요?
 
이노리:....해피엔딩이면 좋을텐데.
 
쿠레하:하지만 이미 죽어버렸는 걸. (너와 같이 벽화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죽은 사람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노리:혹시 모르잖아. 마법처럼 살아날지도...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물었다. - 너가, 그리고 내가 겪었듯이.)
 
쿠레하:그런가~ 이노리와 나는 해피엔딩이었네. (눈물을 흘리는 미뉴에트의 얼굴에 시선이 따라붙는다.) 이렇게 슬퍼할 거면서, 왜 그랬을까.
 
이노리:응! (그것만은 씩씩하게 답할 수 있었다.) 모르겠네... 역시 등롱과 관련이 있는걸까? 처음 만났을 때의 쿠레하도 등롱을 들고 있었지.
 
쿠레하:그렇다면 저 사람도 중요한 걸 찾아오라는 소리를 들은 걸 수도~ (잘 모르겠다는 듯) 가자, 이노리. (벽화로부터 등을 돌리고 네 손을 위로 잡아끌었다.)
 
신전까지 오르는 길에는
 
수수하니 자그마한 토끼풀만 가득했는데,
 
버려진 신전의 담벼락 안에는
 
분홍색 꽃들이 무수히 만개했습니다.
 
모란과 벚꽃 사이의 크기와 색감을 가진 이 품종은
 
다른 어디도 아닌 이노리의 고향에서만 피는 특별한 꽃입니다.
 
마치 플라워란 이 꽃을 가리키는……
 
잠깐.
 
이 꽃의 이름이 정말 마치 플라워인가요?
 
이노리: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그러고 보니 마을 중앙의 꽃나무……
 
몸통과 줄기가 분명히 흰색이었죠.
 
이노리는 이미 이 꽃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봄의 한낮 같은 분홍색 꽃잎과
 
금세 사라질 듯 희미한 꽃술.
 
쨍쨍한 햇살 아래 미뉴에트는 활짝 꽃잎을 열고
 
이노리와 쿠레하를 반기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 꽃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이 꽃이 이노리의 고향에 피어 있는 걸까요.
 
대체 왜,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미뉴에트가…….
 
쿠레하와 눈이 마주칩니다.
 
깜빡이지 않는 시선은 분홍색.
 
열이 오르는 것 같아요.
 
오한이 들어서 괜히 으슬으슬합니다.
 
추위는 가시지 않고 머릿속과 목 안이 뜨겁습니다.
 
이노리:... 이상해. 추워. (사라지지 않는 기시감.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눈 앞의 미뉴에트를 마주한 순간, 기꺼이 흘러넘치고 만다.)
(마을이 람피온과 미뉴에트와 관련되어 있었던가. 그런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모두가 나를 알아보고, 쿠레하를 알아보았던건 왜? 어째서 신전에는 람피온과 미뉴에트에 관한 벽화가 있는거고, 이곳에는 미뉴에트가 피어있는거지? 애초에... 쿠레하는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온걸까?)
 
쿠레하:햇볕이 이렇게 강한데도...... (고개를 살짝 들어 잘게 부서지는 햇살을 맞다, 네 손을 살짝 고쳐쥐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이노리. 쉴만한 곳이 있을지도 몰라.
 
이노리:.....응.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손끝의 감각은 거짓되지 않았을거야. 그렇게 믿고 싶어서, 떨림을 누른채 이끄는대로 발길을 옮겼다.)
 
.
 
.
 
.
 
.
 
.
 
.
 
파빌리온 형태의 지붕 아래 세워진 신전은
 
청렴하고 순결한 흰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기다란 기둥 여덟 개가 사방으로 지붕을 지탱하고
 
테두리마다 아름다운 꽃과 기하학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담벼락과 마찬가지로
 
지붕 일부와 기둥 몇 개는 마모되고 풍화되어
 
겨우 흔적만 남긴 채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눈이 시릴 정도로 흰색입니다.
 
엷게 붉은 고운 색의 꽃밭과
 
밝고 선명하게 흰색의 건물이라니
 
낭만적이기 짝이 없는데,
 
분위기는 스산하기 그지없습니다.
 
회랑을 따라 걷는 내내 달콤한 향기가 납니다.
 
이노리가 지겹게 맡던 미뉴에트의 향기입니다.
 
신전 내부에는 낮은 세 칸의 계단이 있고,
 
얕은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여신의 조각상 제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노리:... (여신의 조각상을 바라본다.)
 
품에는 등롱을 안고,
 
손끝에는 울새를 올린 여신은
 
아름답고 위엄이 넘치지만,
 
온통 석고로 빚어 희디희며 창백합니다.
 
발아래에는 얼기설기 엮은 흰 나뭇가지들이 쌓여 있습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꼴이네요.
 
가시밭길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노리:
언어(모국어)
기준치: 40/20/8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조각상 아래에 적힌 문구 일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노리:향기로운 기름...
(으슬으슬한 기분을 누른채 제단도 살펴본다.)
 
제단에는 새끼 양과 살진 소의 좋은 부위,
 
백향목과 비싼 향유,
 
잘 영근 포도와 탐스러운 무화과는커녕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래도록 버려진 신전이었다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노리: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특별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쿠레하는 왜 이곳으로 데려와달라 했을까요?
 
이노리:있지... 이런 곳까지 와서 쿠레하가 해야하는 일이라는건 뭐야?
 
쿠레하:이노리, 네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 (가라앉은 시선으로 열이 올라 붉어진 네 얼굴을 응시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쿠레하:람피온은 살면서 총 세 번의 열병을 앓는 건 알고 있지? 이노리도 엄청 아팠었다고 했잖아.
10살이 되는 해의 여름, 6월 1일부터 긴 열병을 앓고 능력을 자각하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손이 조금 축축해졌나.)
15살이 되는 해의 여름, 6월 1일부터 긴 열병을 앓고 능력이 향상되며, ...20살이 되는 해의 여름, 6월 1일부터 긴 열병을 잃고 능력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입을 잠시 다물었다.)
10살의 열병을 견디고 능력을 자각한 이노리같은 사람들을 람피온이라고 부른대.
...그렇다면 열병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노리:...응. (잠시 이어진 침묵 속에서 정답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것도 그럴 것이 벽화를 보았고, 전설을 보았고, 저택에서 살아왔고... 아직 실감나지 않지만 언제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거란 사실을.)
나는 언제나 람피온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왔어. 그래서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어...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열이 납니다.
 
눈 안쪽도 뜨거운 탓에 바짝 말 라붙었는지 시야가 흐릿하게 일그러지곤 합니다.
 
쿠레하:이노리가 들어봤을 리 없어.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거든. ...죽은 사람에게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식은땀으로 젖어 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준다. 머뭇거리는 손길이다.) 70%의 아이들은 열병을 이겨내고 람피온이 되지만, 30%의 아이들은 열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린대. 여름의 열병에 죽는 아이들이 많다고 그랬어.
 
이노리:이름이라는건, 호칭이라는건... 존재의 증명이야.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네가 보인다. 목끝까지 차오르는 열기에 쉽게 점차 사고회로조차 둔감해지고 만다. 조금이라도 더 귀 기울여서 들어줘야 하는데... 그때 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손길을 느꼈다. 뭐라도 붙잡고 싶어. 가벼운 충동 하나로 그 손을 붙잡아 얼굴에 가볍게 부볐다. 이 열감이 해소되기를 바라며.) ... 그러니 그렇게 사라진 그 아이들은 어쩌면, 모두가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람피온의 그림자일지도.
 
쿠레하:(열에 겨워 끝이 흐려진 목소리에 입술만 꾹 물었다. 손끝의 떨림이 네게 전해질 때쯤,)
...이노리도 이렇게 열이 났어. 열 다섯의 여름에.
 
쿠레하의 손이 뺨을 감싸자 더운 숨이 조금은 누그러듭니다.
 
체온이 서늘한 덕에 얼음을 끌어안은 것 같습니다.
 
쿠레하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15살의 여름.
 
람피온의 저택에 또다시 열병이 닥치고 맙니다.
 
유일하게 멀쩡한 쿠레하는
 
선생님을 도와 이노리의 병간호를 맡았습니다.
 
쿠레하:곧 깨어나겠죠?
 
선생님:…….
 
쿠레하:왜 대답을 안 하세요?
 
선생님:아마,
이노리는 건강했으니까, 아마도…….
 
쿠레하는 선생님에게 람피온이 5년 주기로 긴 열병을 앓고,
 
그 열병의 치사율이 30%에 다다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성인이 될수록 이겨낼 가능성이 크다지만,
 
아무도 100%의 확률을 보장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쿠레하.
이노리를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요?
 
이노리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쿠레하를 보며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쿠레하:많이 보고 싶었어, 이노리.
있잖아, 이노리. 겨울방학 기억나?
 
이노리:응... (여전히 실감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 그때 엄청 큰 눈사람도 만들었잖아.
 
쿠레하:맞아. ...엄청 즐거웠는데~ 그럼 그 다음은? 그 다음 방학도 기억나?
우린 그 다음, 다음, 또 다시 다음의 방학도 저택에서 보냈잖아.
람피온의 저택은...... 이노리나 아이들을 돌려보내지 않아.
 
이노리:그렇다면, 여긴 어딘데..? 나 아직도 아파서 꿈을 꾸고 있는거야? 잘 모르겠어... 쿠레하.
 
쿠레하:이번만이 예외인 게 아니야. 이노리는 한 번도 집으로 돌아가거나 갈 수 있었던 적 없어. (네 대답에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짓더니) 응. 이 마을은.. 이노리가 만들어낸 꿈속 공간.
10살, 처음 능력을 각성할 때처럼 람피온은 5년 주기로 여름이 시작되면 긴 열병을 앓는대. 현실의 넌 아흐레째 열병을 앓느라 못 일어나고 있어. (잡고 있는 한쪽 손을 들어올려 네 눈앞에서 장난스레 흔들더니) 난 이노리를 데려가려고 온 거야.
 
이노리:역시 그런거구나. 응.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여긴 내가 기억하는 마을과 조금 달랐으니까. (한 여름밤의 꿈, 이라고 하던가.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분명 거짓이 될테지만 잠깐동안 정말 달콤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쿠레하랑 함께 놀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나.
(아흐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그 사이에 나를 걱정해서 이곳까지 찾아온 너는 역시 바보야. 혹시라도 다치진 않았는지, 무언가 잃은 건 없는지 흐려진 시야에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네 안색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맞잡은 손이 흔들렸고.) 하지만 역시 꿈보다 바깥이 좋아. 거긴 빵도 따뜻할테고, 무엇보다 쿠레하가 걱정하지 않을테니까.
 
쿠레하:나도 이렇게라도 이노리가 살던 마을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마을의 정경은 네가 어느 깜깜한 밤에 제게 소근거리며 들려주던 이야기와 꼭 맞았다. 그 속에서 편안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니, 조금만 더 즐겨야지. 아주 조금만 더... 부푸는 욕심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말을 삼키고선 고개를 든다.) 람피온의 저택에서 고개를 드는 건 사시사철 지지 않는 장미와 아이들 뿐이야. 난 이만큼의 사람들을 본 것도, 축제에 와본 것도 전부 처음이었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닥였다.) 그래서, 너무 즐거워서 전부 바깥에서 이노리와 하고 싶어졌어! 꽃전도, 꽃술도... 춤 추는 것도.
나 이제야 나갈 방법을 알 것 같아.
 
이노리:정말? 다행이다. 내가 가진 추억한켠까지 쿠레하가 가까워져서...나도 좋았어. 너무너무 행복했어.
그래도 약속했지. 다음에는 꼭 함께 돌아가기로. 언젠가는 꼭 쿠레하를 데리고 우리 마을로 갈거야. 그때는 꿈 속의 광경이 아닌 진짜를 보여줄게... (마지막이 아니니까 아쉽지 않은거야. 어쩌면 문을 닫은 과자 가게들도 그땐 존재할지도 모르지. 미래라는 것은 이렇게나 알 수 없고 또,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 조금 아쉬운건 반지는 다시 맞춰야한다는 점 정도일까.)
방법이 뭔데..?
 
쿠레하:소원을 이루려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고, 길을 잃으면 꽃의 뼈를 꺾어야 한다잖아.
여태 꽃의 뼈가 뭔지 알 수 없었는데, 아마도......
저걸 말하는 건가 봐.
 
쿠레하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미뉴에트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신전 가장 안쪽에,
 
어느새 여신의 조각상은 자취를 감추고
 
같은 이름의 나무가 자라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이노리,
 
이노리: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끝없이 얽히고 얽혀
 
하나의 거대한 군체를 이룬……
 
가히 신성하다 여겨질 만큼 웅장한 나무.
 
이곳은 굴이 아니지만
 
천장까지 닿을 만큼 높이 자란 것은 여전합니다.
 
이노리는 어쩌면 같은 나무가 아닌가,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전의 미뉴에트 나무에는
 
꽃이 딱 한 송이만 피었습니다.
 
이노리:..... 쿠레하, 한 송이만 피어있어.
 
흰 표면을 기어 다니는 알파벳을 발견합니다.
 
하나, 둘, 셋…….
 
익숙한 철자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어떤 이의 이름이 됩니다.
 
이노리가 지어준 쿠레하의 이름입니다.
 
나가기 위해서는 꽃의 뼈를 꺾어야 합니다.
 
영웅 람피온은 미로의 끝에서 꽃을 꺾어
 
무사히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쿠레하:그 꽃을 꺾으면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쿠레하는 이노리의 손에 그 꽃의 가지를 쥐여줍니다.
 
나뭇가지가 희고 딱딱해
 
꼭 사람의 뼈를 만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척 얄팍하기 때문에
 
조금만 손에 힘을 주어도 쉽게 분지를 수 있을 겁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이노리:(손끝에 닿는 촉감이 차갑다. 이것이 줄기라는 생각보다는, 마치 누군가의... ) ....쿠레하가 다칠까봐 무서워. 아니지? 그런거 아니지?
 
쿠레하:이 꿈속 공간은 이노리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만든 걸. (가지에 매끄럽게 새겨진 제 이름에도 정작 크게 두려움은 없는 기색이었다. 오직 목적만이 중요한 듯이 불안함으로 흔들리는 황금빛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노리의 꿈이 끝나면 나도 함께 깰 수 있을 거야.
 
이노리:...손 잡아줘.
(처음 만났던 날부터 그랬지만, 너는 나에 대한 일이라면 어떤 두려움도 없이 제 한몸조차 쉽게 던져버리고 만다. 그런 네가 좋으면서도 무서운거야, 쿠레하. 네가 나를 좋아하듯이 나 또한 너 없이 홀로 남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나아가는 길이 하나 뿐이라면, 나의 하나뿐인 미뉴에트가 원한다면 기꺼이 믿어야하겠지만.)
 
쿠레하:... (가지를 쥐고 있는 손을 감싼다. 뜨거울 정도의 열이 손에 전해져 왔다. 자신과 닿을 때면 찬 기운에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었던 모습. 그런 사소한 일에 서운해 하던 때가 무색하게, 지금만큼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열을 식혀줄 수 있을만큼 차가울 수 있어서.) 이노리가 무섭다면, 내가 해도 괜찮아.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어도 네 손 안의 가지는 꺾일 테니까.)
 
이노리:으응. 이건 쿠레하가 내게 맡긴거니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선 내뱉는다. 손을 감싸오는 찬기에 조금 머리가 맑아진다. 혼자가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정말 괜찮아. 어서 이곳을 나가자. 나가서, 쿠레하의 걱정도 덜어주고 건강해지는거야. 지금은 그렇게만 생각하자. 눈 앞의 상대를 보며 조금 웃어보였다.)
(얄팍한 힘, 어쩌면 오늘 네 손을 맞잡았던 정도의 세기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가지를 꺾으면,
 
아찔한 현기증이 일더니……
 
아, 불쾌하고도 낯익은 감각입니다.
 
.
 
.
 
.
 
.
 
.
 
.
 
눈을 뜨면 이노리는 불타버린,
 
폐허가 된 숲속에 서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잿더미만 가득합니다.
 
이노리가 소리쳐도 대답이 돌아오긴커녕,
 
메아리마저 쥐죽은 듯 잠잠합니다.
 
새 우는 소리도,
 
짐승의 형형한 눈동자도 없는……
 
완전히 죽은 숲입니다.
 
주위의 나무들은 온통 검고,
 
몸통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흰 지흔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게 그어진 자국들이
 
꼭 다닥다닥 달라붙은 눈알 같군요.
 
분명히 신전에서 쿠레하와
 
돌아가는 방법을 상의 중이었는데 말이에요.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숲은 이노리의 마을에도
 
기억에도 전혀 없다는 겁니다.
 
탄내가 자욱합니다.
 
우선은 이 숲을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이노리:(콜록콜록..) (발길이 닿는대로 걷는다.)
 
이노리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눈 대신 붉은 불티가 흩날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잿더미에 떨어지면
 
화려한 장미가 피어납니다.
 
품종은 언제나 그랬듯 람피온.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에
 
일견 섬찟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탄내는 저물고 장미 향기가 가득합니다.
 
얼마나 걸은 걸까요.
 
장미 향기를 더는 맡지 못할 지경이 되면……
 
넓은 호수에 도착합니다.
 
완전히 얼어붙은 호수는 유리 같기도 하고
 
거울 같기도 합니다.
 
단단해 보이지만 겉보기만으로는 모르니
 
올라가지 않는 게 좋겠죠.
 
이노리: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그때, 말소리가 들립니다.
 
호수 정중앙에 어떤 남자가 서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저기에 올라선 건가요?
 
풍기는 분위기가 인간이라기엔 이질적입니다.
 
이노리: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남자가 누군가를 저주하고 모욕하며
 
모독적인 말을 뱉고 있다는 걸 알아듣습니다.
 
이노리가 모르는 언어지만
 
뿌리 깊은 원한만은 피부 위를 따끔따끔 찌르곤 합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이노리: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노리: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98
판정결과: 대실패
 
한참 저주를 퍼붓던 남자가 고개를 휙 듭니다.
 
이노리:
은밀행동
기준치: 35/17/7
굴림: 2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와장창!
 
커다란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이 산산이 깨어지고,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립니다.
 
그가 호수를 바라보자 많던 물이 바짝 마르고,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며
 
이노리는 끝없는 무저갱으로 떨어집니다.
 
그 아래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하고 끔찍한 혼돈이 기어듭니다.
 
땅 아래 자리를 잡은 그것은
 
제일 먼저 흙을 덮어 지붕을 쌓고
 
람피온과 비슷하게 생긴 미뉴에트 나무를 만들며,
 
꿈틀거리는 괴물을 낳습니다.
 
이노리는 지붕 아래에 숨겨진 모든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흉측한 괴물은 꽃잎을 삼키고
 
곧 익숙한 얼굴로 일어서더니,
 
쿠레하가 걷습니다.
 
굴의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걸어
 
뒷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멀어집니다.
 
아,
 
쿠레하는 이대로 람피온의 저택을 향할 테고,
 
우리는 철창 너머로 또다시 만나게 될 테지요.
 
쿠레하를 말리고 싶나요?
 
아니면 그대로 두고 싶나요.
 
이노리:하지만... 쿠레하는 그러지 않았어.
내가, 좋아서.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고 그랬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나는 람피온.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삶을 살아야할지라도 딱 하나 욕심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야, 쿠레하. 이 앞에 펼쳐질 일들을 알고 있다. 너를 만났기에 내가 조금 더 위태로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너를 만났기에 나는 행복했던거라고.)
( 그렇다면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어. 그런 다짐과 함께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확 몸이 뒤로 쏠리고,
 
누군가 어깨를 붙잡습니다.
 
괜찮아.
 
낯선 목소리는 무척 부드럽습니다.
 
동시에 이노리는 큰바람에 휩쓸립니다.
 
요란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헤집고,
 
머리에 씌워진 화관을 저 멀리 날려버립니다.
 
그리고 이대로 바람에 꿰뚫려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발밑이 아득해집니다.
 
불길한 울음소리만이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집요하게 귀를 괴롭힙니다.
 
.
 
.
 
.
 
.
 
.
 
.
 
쿠레하:이노리! 괜찮아?!
 
눈을 뜨면 쿠레하의 얼굴이 보입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는 이노리의 이마를 짚습니다.
 
피부에 닿는 체온이 차가워서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왜 이렇게 덥죠?
 
쿠레하:정신이 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쿠레하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태양이 왜 이렇게 가깝죠?
 
황혼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
 
……왜 계속 밤이 오지 않는 걸까요?
 
태양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저기 걸려있을 셈이죠?
 
아니, 다 떠나서
 
쿠레하:세계가 멸망하고 있어!
 
이 지독한 탄내란 대체 다 뭔가요?
 
몸을 일으키면 이노리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오, 이런.
 
그사이 세계가 멸망했던가요?
 
마을과 들판에 온통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습니다.
 
검게 죽은 나뭇가지가 축 늘어진 팔처럼 바닥으로 휘어지고,
 
건물 위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아우성칩니다.
 
신전과 꽃밭만 남긴 채
 
담벼락 바깥의 모든 것이
 
차근차근 불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노리가 만들었다던 작은 세계는
 
무너지고 멸망하는 중입니다.
 
쿠레하:꽃을 꺾었는데 돌아갈 수 없었어.
 
쿠레하는 결연한 시선으로 덧붙입니다.
 
이노리:(깜빡깜빡...) 왜...
 
쿠레하:하긴, 꽃의 줄기도 가지도 뼈라곤 부를 순 없지…….
 
그리고 이노리의 손을 잡아선
 
쿠레하:오직 나만이 너를 구하고 데리고 나갈 수 있다고 그랬어.
 
자신의 목덜미에 대어주곤
 
쿠레하:뼈를 가진 꽃은 여기 있었는데.
 
손등을 겹쳐 쥡니다.
 
존재하지 않는 문을 만들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는 꽃의 뼈를 꺾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꽃은……
 
쿠레하:이노리, 이건 꿈이야.
꺾어.
 
점차 불이 그리는 원은 좁아지고, 좁아지고, 좁아집니다.
 
담벼락을 넘어 곧 불길이 쳐들어올 겁니다.
 
이미 태양이 쏟아지고 있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많은 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꿈이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자, 그러니 이노리.
 
어서……
 
이노리:아, 안돼... 이건.... (눈에 띄게 동공이 흔들린다. 꽃을 꺾는데에도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가. 고작 꿈에 불과할지라도 내가 어떻게 너를? )
 
쿠레하: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 이노리도 알고 있잖아. (겹쳐쥐고 있던 손을 살짝 눌렀다. 뜨거운 손바닥에 아래 조금 식어있는 살갗, 꿈임에도 선명하게 맥박이 뛰는 곳. 그 정확한 부근을 짚어주듯이.) ...나는 밖에 있어. 이노리의 침대 옆에서, 네 손을 잡고. 한 시도 떨어진 적 없었어. 그러니까...
 
이노리:그치만 쿠레하가 아프잖아. 꿈에서라도 이런건, 싫어. (겹쳐쥔 손에 힘이 실리자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손바닥 아래서 선명하게 느껴진다. 강한 맥동이, 네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증거가. 그걸 어찌 내 손으로 꺾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너는, 어찌 아무렇지 않게 내게 목숨을 내던지는 걸까.)
... 분명 꽃을 꺾었지. 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어.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어떡해? (머리가 핑핑 돈다. 이것이 바깥의 열기인지, 제 열기인지조차 분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더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인지, 환상인지도 모르겠어. 타인이 너를 해치는 것과, 내가 이 두 손으로 너를 해치는 것은 너무나도 달라.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나는 쿠레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서워, 두려워. .... 자신이 없어.
 
쿠레하:...아니야, 꿈이기 때문에 아프지 않아, 이노리는 날 상처입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목소리에는 서서히 불안이 깃든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네 얼굴 위로 쏟아져, 눈이 더 눈부시게 빛나는 탓이다. 이곳은 무너지고 있다. 네 의식이 멀어진다. 그리고 그 뜻은...) 이대로라면 이노리는 열병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몰라. 나한테 진짜 상처가 되는 건 그런 거야! 제발, 이노리... (목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꿈 속에서의 목숨 따위 아무래도 좋아. 현실에서도 이런 것쯤은 몇 번이고 네 손에 쥐어줄 수 있어. 그게 네게는 어떠한 무게로 다가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여전히 불완전한 꽃인 채로.) 나도 마찬가지야. 이노리가 없으면 안돼... ...
 
이노리:차라리 이대로... (꿈 속에 휩쓸려가게 된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덜 무서울까? 그럼 마지막까지 혼자가 아니게 될테니까. 적어도 외롭지는 않잖아. 스치는 생각과 함께 너를 마주한 순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 상처받은걸까. 저와 다를 바 없는 얼굴. 마치 소중한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 하고, 간절하게... ... 그래. 그렇구나.)
아.. 아. 나는, 그러려던게 아니야. 상처주려는게 아니였어. 네가 너무 소중해서... (우리는 같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두 눈을 내리자 겹쳐진 두 손이 보인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다짐으로 내게 숨을 맡긴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다짐으로 그 숨을 거둬가야하는걸까.) ... 그럼 괜찮다고 말해줘. ...혼자두지 말아줘.
 
쿠레하:이대로는... 싫어. (꿈속에 함께 휘말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에서든 너와 함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던 날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네가 정말로 그게 좋다고 한다면,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제 고집쯤은 쉽게 꺾을지도 모를만큼 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노리는 약속해 줬잖아. 이노리의 진짜 마을로 '돌아가자고'. 꿈 속 광경이 아닌 진짜를 보여주겠다고.. (비겁하게 이런 약속을 들먹이면서까지 나는 너와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게 됐어. 어느새 지금 당장 함께 있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져서, 내일도,모레도... 이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네가 변화하는 모든 모습을 옆에서 보고 싶어. 그런 이기적인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된 것도 역시 너 때문이라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탓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노리. 나, ...무서운 일을 겪게 하지 않겠다는 말,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그럼에도 네가 있기 때문에 여기는 나에게 악몽이 아닌 걸. 엷은 분홍빛의 눈동자가 곧게 너만을 눈에 담는다.)
이 꿈이 끝나거든, 난 네 옆에 있을 거야. 가장 먼저 이노리의 눈에 보일게. ...손을 잡고 있으니까, 우린 분명 괜찮을 거라고... 이노리도 믿어줘.
 
이노리:바보...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도 할 수 밖에 없잖아. (소중한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을거란 생각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었어. 하지만 잃기만 해왔던 내가 한번쯤은 욕심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미련을 가지게 된건... 전부 쿠레하, 너를 만나고 난 뒤부터야.)
(너를 만나고 내일이 궁금해졌어. 조금만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졌어. 커다란 새장같기만 한 저택이 무섭지 않았어. 설령 내가 다치고, 네가 다치고... 우리는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나는 괜찮았어. 나만을 오롯 생각하고, 나만을 오롯 좋아하는 너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언제나 내 한계에 맞부딪힐 수 있었으니까. 나는 말이지, 혼자서는 나아가지 못해. 하지만 네가 기꺼이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면, 나는... )
...미안한건 나야. 아프게 해서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돌아가면 꼭 옆에 있어야 해? 없으면... 흐으, 나 울어버리고 말테니까. (말끝이 흐려짐과 동시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윽고 작은 손에 힘을 실으면 실을수록 선명한 맥동을 느낀다. 이상하지. 너를 다치게 하는 건 나인데, 꼭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아파. 너무 아파, 쿠레하. 내 안의 네가 이렇게나 커져버렸나봐. 그러니까 어서 빨리 이 꿈 속에서 나를 꺼내줘.)
...돌아가자, 쿠레하.
 
움켜쥔 손아귀 아래에서는 맥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노리가 ‘꺾겠다’라고 마음먹은 순간,
 
뚝.
 
그 목은 서늘하고 매끄러워서 정말로 꽃의 줄기,
 
혹은 뼈를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다란 것이 두 동강이 나고
 
손안의 몸이 풀썩 쓰러집니다.
 
쿠레하가 쓰고 있던 화관과 옷자락만 바닥에 쏟아지고
 
시체랄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흰 대리석 바닥,
 
얕은 물,
 
바닥에 떨어진 꽃 한 송이…….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를 쥐면
 
흐느적거리지 않고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분홍색 장미가 매달린 흰색 열쇠.
 
언젠가 그 열쇠와 똑같이 생겼군요.
 
첫 만남 때 문을 열어준 쿠레하가
 
결국 이노리에게 목숨을 내어주었다면,
 
지금 이 일은 그날의 등가교환일지도 모릅니다.
 
이노리: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정확히는 신전 바닥의 얕은 시내에서 난 소리입니다.
 
투명한 물은 흰 대리석 바닥을 비추는데,
 
아까는 없던 문의 이음새가 생겼습니다.
 
물은 차고 넘쳐 계단 세 칸을 채우고도
 
쏟아질 듯 위태롭게 출렁거립니다.
 
문고리에는 열쇠 구멍이 있습니다.
 
이노리:기다려... 쿠레하, 곧 만나러 갈테니까. (분홍색 장미, 그리고 열쇠를 쥐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걷는다.)
(열쇠를 구멍에 끼워넣는다.)
 
열쇠를 끼우면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물에서는 무척 좋은 향기가 납니다.
 
아, 장미 향기.
 
지긋지긋하지만 이 이상 익숙할 수 없는 냄새.
 
이노리의 돌아갈 곳임을 증명하는
 
람피온의 흔적입니다.
 
문을 열고 너머의 계단을 내려가면
 
물이 점점 차오릅니다.
 
발목, 무릎, 허벅지, 허리, 배, 가슴, 어깨…….
 
물은 몸을 담그기 딱 좋은 미지근한 온도고,
 
바깥에서 일렁이던 태양과 불꽃은 잠시 멈칫합니다.
 
그리고 머리끝까지 물에 잠기는 순간.
 
제대로 발음하고 흉내 낼 수 없는
 
모독적인 노래가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신을 찬양하는 것도 같고,
 
신이 인류를 부르는 것도 같고,
 
신이 신을,
 
인간이 인간을 저주하는 것도 같습니다.
 
물이 점차 차가워집니다.
 
차고, 차고, 차가워져선
 
얼음장처럼 말단의 감각을 지워 나갑니다.
 
하지만 호흡은 편안하고
 
이제야 제 온도를 찾은 듯 안정감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무언가가 얼굴 위로 미끄러집니다.
 
몸을 일으키면 무척 무겁고 찌뿌둥합니다.
 
오래도록 누워 있었는지 제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굴에 떨어진 것은 다 식은 물수건입니다.
 
쿠레하는 머리맡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습니다.
 
이노리의 손을 꼭 찹은 채입니다.
 
……아직 깨지 못한 걸까요?
 
이노리:....아. (얕은 기침이 새어나온다.)
쿠레하, ...쿠레하?
 
쿠레하에게 손을 대는 순간
 
이노리는 지글지글 끓는 체온을 느낍니다.
 
뺨이며 이마, 귀 따위가 여름의 람피온보다 선명히 붉습니다.
 
쿠레하는 이노리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기댑니다.
 
열감이 가시는지 한결 표정이 편해 보입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면,
 
쿠레하:……아.
 
느릿느릿하게 쿠레하가 눈을 깜빡입니다.
 
아직 열이 서리고 잠에 취해 혼몽하지만
 
그래도 똑바로 이노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붙잡은 손을 깨닫고도 놓지 않은 채
 
이노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쿠레하:좋은 아침, 이노리.
 
장미 향기가 가득한 정원에서
 
때마침 울새가 울었습니다.
 
이노리, 쿠레하 생환
 
쿠레하와 이노리는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합니다.
 
.
 
.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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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리가 깨어난 것은 6월 11일.
 
열병을 앓은 날로부터 딱 열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노리를 구하기 위해 꿈속으로 파고든 쿠레하는
 
사흘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실과 꿈의 시간에는 속도 차가 있다더니…….
 
쿠레하:이노리, 나 목말라.
 
생각에 잠겨있을 때,
 
쿠레하가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침대에 목 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여름과는 퍽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날로부터 어언 일주일.
 
쿠레하는 마치 순서를 넘겨받은 것처럼
 
열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늘 서늘하던 체온은 람피온의 것을 뛰어넘고,
 
뺨이며 목덜미,
 
귓가가 열꽃으로 얼룩덜룩합니다.
 
쿠레하의 병간호는 당연히 이노리의 몫입니다.
 
쿠레하:(빤...)
 
이노리:피이... 바보. (유리컵에 물을 따라준다.)
 
쿠레하:헤헤. (물컵을 받으며 바보같이 웃는다.) 이거 봐, 땀도 엄청 났어. 너무 아프다아~.. (축축하게 젖은 옷자락을 쭉 늘여 보여준다.)
 
이노리:그으럼. 완전 아프지? 쿠레하는 진짜 바보라니까... (뺨을 쓸어내리려다 손길이 멈칫, 끊긴다. 제 열기가 혹여나 영향을 줄까봐. 망설임 끝에 손등으로 가볍게 뺨을 스쳐낸다.) ...처음으로 아쉬워졌어. 내가 쿠레하처럼 차가웠다면 좋았을텐데.
 
쿠레하:하지만 나는 이노리가 뜨거워서 좋은데. (얼굴을 스쳐 떨어지는 손을 잡아 익숙하게 뺨을 기대고는) 이노리가 옆에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 둘 다 차가워지면 서로를 그 정도로 잘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이라면,
 
쿠레하는 정신을 잃지도
 
무방비하게 잠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쿠레하:음~.. 이노리! 나 푸딩 먹고 싶어. (대뜸)
 
이노리:(뺨이 손바닥에 닿으면 작게 웃어버리고 만다. 선명할만큼 차가웠던 냉기는 온데간데 없이, 따뜻한 열감이 손바닥을 감싼다.) 으음..~ 선생님 말로는 쿠레하는 일주일정도 더 수프만 먹어야 한다던데?
 
쿠레하:...푸딩을 먹지 않으면 더 아플 것 같은데? 응? 안돼? (눈을 천천히 끔뻑이며) 푸딩도 부드럽고... 안 씹고 삼켜도 되고... 수프랑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빠아아안)
 
이노리:(눈데굴...) 그럼 딱... 따악 한개만? (...) 나 선생님한테 혼나면 쿠레하가 편들어줘야해.
 
쿠레하:나는 무조건 이노리 편이야! (꼭 푸딩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이노리:응..! 기다려바! (푸딩 가지러 간다.) (샤샤샥)
 
푸딩을 찾으러 개인실을 나서면
 
복도와 계단은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다른 람피온들은 이제 막,
 
간신히 열이 떨어지고 있거든요.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의 상태를 살피느라
 
무척 바쁜 모양입니다.
 
몇몇 아이들은 열병에서 깨어났음에도
 
통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거든요.
 
덕택에 주방도 싸늘하기 짝이 없습니다.
 
냉장고도 지키는 사람이 없고요.
 
이노리:
기준치: 40/20/8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어라... 푸딩은 없네요.
 
이노리:(안되)
 
대신 토끼 모양으로 깎아둔 사과를 발견합니다.
 
이노리:.... ..... (사과라도 챙긴다.)
 
조용한 람피온의 저택.
 
아이들이라곤 전부 잡아 먹힌 것처럼 고요한 풍경.
 
매일매일을 보낸 곳임에도 지독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소리의 부재 때문일까요?
 
이노리가 주방을 나서고 식당을 지나면……
 
선생님:사라와 게일, 올리버하고 리샤이와 신, 래리…… 총 6명이에요.
...이번 새벽까진 보내주셔야 해요.
이제 남은 건 겨우…… 모자라지 않을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전화를 받는 건지
 
대답하는 이도 없건만
 
혼자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이 저택에 전화기가 있다곤,
 
연결되리라곤 생각도 못 해봤는데 말이에요.
 
점점 작아지던 목소리는 곧 한숨처럼 끝납니다.
 
선생님:가족들에겐 꼭 편지를 보내주세요.
 
거실의 한편,
 
선생님의 방은 평소와 달리 문이 조금 열려 있습니다.
 
평소에는 단속에 퍽 신경을 쓰는 선생님이지만……
 
지금은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으니까요.
 
방심했던 모양입니다.
 
문 틈새를 엿보면 두 손에 고개를 묻은 선생님이 보입니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서 있습니다.
 
이노리:(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연다.) ...선생님, 울어요?
 
선생님:(예기치 못한 아이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서둘러 얼굴을 훔치고는 문 쪽으로 뒤돌아 서선) 아니에요, 이노리. ...들었나요?
 
이노리:.....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이 어쩌면 짐작건대... 자신이 틀렸기를 바라며.) 6명이라는 거,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이노리도 알아야 하는 일이에요.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혼수상태였던 사라와 게일 말이에요, ...이노리와 함께 아팠던 올리버, 리샤이와 신, 래리도... 아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이노리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했어요.
이노리라도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이노리의 어깨를 도닥인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니
 
쿠레하를 잘 부탁한다고 당부합니다.
 
계단을 오르는 선생님의 어깨가 무척 좁고,
 
이노리: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선생님:다른 아이들에게도 미뉴에트가 있었다면…….
 
정처 없이 흔들립니다.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마틸다의 방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은
 
꼭 유령의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개인실에 돌아오면 쿠레하는 그새 잠이 들었습니다.
 
새근새근,
 
일정한 숨소리에서는 도통 죽음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울긋불긋한 열꽃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그라들 테니……
 
이날의 기억도 언젠가는 흐릿해지고 말 테죠.

 

 
쿠레하에게 이불을 덮어줄까요?
 
이노리:(원인 모를 부채감에 답답함을 느낀다.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이 것은 죄책감일까, 혹은 친구들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일까. 만약 그날 너를 만난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도... 생각은 고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자, 정말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 울고싶어졌다.)
(하지만 나의 하나뿐인 미뉴에트. 그날 수많은 람피온 중에서도 나를 골랐던건 다름아닌 바로 너야. 그러니 더는 생각하지 않을래. 울직한 기분으로 괜히 이불 속에 파고든다. 네 체온과 맞닿으면 늘 기분이 좋았으니까. 분명 한숨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거라고.)
 
쿠레하의 품에 파고듭니다.
 
종종 그 마을의 꿈을 꿉니다.
 
마치 플라워,
 
버려진 신전,
 
흐드러진 꽃밭과
 
손 아래에서 꺾이던 꽃의 뼈.
 
……깨어난 이상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한데도,
 
어쩐지 이노리에겐 잊지 못할 만큼 선명하게만 느껴집니다.
 
6명의 람피온이 사망합니다.
 
쿠레하는 며칠간 길게 앓겠지만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겁니다.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이니까요.

핸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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