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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나리오의 끝에서 코비 재클린이 죽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2022-05-17
KPC. 코비 재클린 · PC. 베르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의 끝에서 코비 재클린이 죽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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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다시 눈을 뜹니다.
 
밖에서 나는 바람소리가 마치 짐승 울부짖는 소리인 냥 들립니다.
 
짐승의 소리는 크게 들려오고,
 
방 안까지 느껴지는 진동이 몰아칩니다.
 
바람이 세게 불고, 겉 껍데기만 있던 나무가 스러져 벽에 부딪힙니다.
 
전등은 점멸하다 꺼져버리고
 
연구소내에는 암흑이 찾아왔다가 잠시 후 멀쩡해집니다.
 
깜빡 깜빡
 
당신의 방에도 불이 들어옵니다.
 
아침과 다를 것 없는데..
 
몸을 움직이려면, 이상하게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강하게 잡고 있는듯이…
 
팔이 강하게 밧줄로 묶여있습니다.
 
몸이 결박되어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이곳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있어야 하는 걸까요.
 
눈을 뜨면 현실은 언제나 방 안처럼
 
차갑고, 어둡습니다.
 
새벽인 것 같은데..
 
아침이 되면 오겠거니..
 
침대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립니다.
 
문이 한껏 열리면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있는
 
둘 뿐인 이곳에서 반전이란 없겠죠.
 
코비 재클린:잘잤어?
 
그는 휴대용 나이프를 꺼내 밧줄을 풀어냅니다.
 
그러곤 당신의 팔을 잡아 꼼꼼이 살핍니다.
 
코비 재클린:몸 상태 괜찮으면 산책이나 하자.
 
이 대화가 어째선지 익숙합니다.
 
똑같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던가요?
 
베르디:..하... (맥없이 풀리는 밧줄을 따라 시선을 내리다가 어이에 찬 숨을 뱉는다.) 목줄은 풀어도 괜찮겠어?
 
코비 재클린:지금은 괜찮아. 네가 날뛰지만 않는다면.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어두곤 상태를 살피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나갈거지?
 
베르디:미치지 않고서야 갑자기 날뛸리가 없잖아. 아니면 뭐야. 나도 모르는 몽유병이라도 있는거야? (자신을 살피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고, 소매를 잡아내린다.) 바람이 불던데.
 
코비 재클린:(여전히 경계를 하는 모습을 두고 걸음을 물러섰다.) 널 믿고는 있지만, 혹시나 해서.
아.. 지금은 괜찮아. 설마 겁먹은거야?
 
베르디:말은 잘해... 못 믿을 게 있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말의 진의를 알 수 없어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다 딱딱한 매트리스에서 일어난다.) 너는... 나를 애로 보는거야?
 
코비 재클린:하려고 하면 못할 건 없지. 첫날엔 환풍구로 도망쳤으면서.
 
그는 당신이 뒤따라오는 것을 확인하며 건물 밖으로 나섭니다.
 
코비 재클린:애로 보기엔 ...힘들긴 하지. (들릴듯 말듯 작게 중얼였다.)
 
바깥은 어제 본 작은 정원과 비슷합니다.
 
대리석으로 된 복도가 길게 이어지고,
 
그 끝에 자신이 나온 것 같은 건물이 있네요.
 
그리고 말라빠진 나무가 있어요.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담을 따라 복도를 걷다보면
 
담 옆에 철문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전체적으로 말라빠진 나무는 무언가 갉아먹은 흔적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정원도 이제는 익숙하네요.
 
두 사람 외의 발자국은 존재하지 않고 밝게 내리쬐는 태양이 정원에 빛을 드리웁니다.
 
흰 건물로 이루어진 연구소는 하루만 봤음에도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겨운 풍경입니다.
 
코비 재클린:연구에 지치다 보면 이런 황폐한 정원도 좋아지더라. 미쳐가는 것처럼.
 
베르디:(그랬었지. 불과 어제의 일이 까마득한 기억처럼 흐려지는 것도 멈출 기미 없는 실험의 영향인가 싶다.) 그건... 기억이 없었으니까. 이제 안 그래, 나는 달리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알아. 너라면 몰라도... (물이 빠진 듯 삭막할 뿐인 정원을 곁눈질하다) ...싫었던 게 더 싫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코비 재클린:... 너도 갈 곳이 있을거야. (약한 바람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어쨌거나 너나 나나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이게 앞서 걸어가는 그와 몇번째 대화인가요?
 
당신이 가진 기억은 어제부터가 시작이었는 걸요.
 
알고 있지만 무엇하나 대답해주지 않는 저 연구원의 말로는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기억의 소멸은 당신의 몫인 것 같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같은 날의 반복일거란걸 당신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겠죠.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요.
 
베르디:(헛웃음을 머금곤) 나는 이름도 겨우 기억하는데? 그래... 어디든 갈 수야 있겠지. 하지만 있어야 할 곳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할 거야.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외로움. 홀로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감각에 발끝으로 버석한 흙을 괜히 긁어보다가) 정말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너는 어디로 가?
 
코비 재클린:(몇번이고 기억을 잃어도 네게 남아있는 본질적인 기억, 베르디라는 이름 만큼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잊지 않았다. 처음으로 실험자의 이름을 들었을 때의 기억은 까마득해져 버린다. 눈가를 쬐는 햇빛에 어두운 한켠의 기억을 떠올리듯이 두 눈가를 감았다.) 실험이 성공해도,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세상이 되어 있다면.
너와 같은 느낌을 받겠지.
자리가 없다면 그건 만들어가면 돼. (이곳에서 썩어가는 것보단 뭐든지 나을거야.)
 
베르디:... (이 답답한 이질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느끼는 것이라면, 자신은 네게서 동질감을 찾을 수 있을까. 하얗게 내리쬐는 볕마저도 네게 색을 덧입히지는 못한다. 한 끗도 저와 닮았다고는 할 수 없는 네 옆얼굴을, 그림자를 바라보듯 응시하며 중얼거린다.) 모두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좋을텐데.
...하긴, 넌 끈질긴 면이 있으니까. 이런 곳만 아니면 괜찮겠지. 그때쯤 너는 세계를 구한 인간일테니,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을 거잖아.
 
코비 재클린:..왜 네가 그 자리에 없는 듯이 말할까. 내가 성공한다는 뜻은 너도 네 자리가 생기고, 스며들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일텐데. (따듯한 온기가 뺨 위로 오르면 그제서야 눈을 떠 시선이 느껴지는 대로 당신을 돌아본다. 벌레로 변해버리기 전의 모습으로 고쳐낼 수 있다면 널 증오하는 마음도 이 기억처럼 흐려지진 않을까 싶었다.)
 
그가 당신을 돌아보면…
 
순간, 그의 얼굴이 스칩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전, 무언가 강렬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능 판정
 
베르디: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무언가 이상합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힙니다.
 
이상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비 재클린:이제 그만 들어가자. 멍하니 있지 말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그가 이끄는 것에 따라 걸음을 옮깁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안으로 향하기 위해 문을 열면…….
 
 
0-1
 
무언가 하얀 공간이 드러납니다.
 
…하얀 공간?
 
분명 당신은 그와 함께 연구소로 향하고 있지 않았던가요?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뜨면, 손에 닿았던 감촉도, 눈앞에 있던 코비도 사라진 채입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그저 [하얀 방]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베르디,
 
이성 판정 0/1
 
베르디: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번도 발을 내디뎌본 적 없지만 익숙한 삭막함이다. 다만 갑자기 사라진 네 존재에는 의아함을 품고 주변을 둘러본다.)
 
벽지부터 바닥까지, 이곳에 스며드는 공기마저도 순백으로 변할 것만 같은 하얀 공간입니다.
 
작은 방이며, 눈앞에 있는 [하얀 책상]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베르디:(흰 책상을 살펴본다.)
 
당신의 키에 맞춘 책상입니다.
 
책상 위에는 [하얀 종이] 하나와 하얀 펜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베르디:(하얀 종이를 집어든다.)
 
종이 맨 위에 한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베르디:(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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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결국 그 종이가 시키는 대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기록합니다.
 
코비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에 대해서.
 
기록을 마치고 펜을 놓으면,
 
종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접히듯 느릿하게 반을 가릅니다.
 
다시 반, 또다시 반이 접힌 종이는 곧 책상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생각할 새도 없이,
 
 
-2
 
퀴퀴한 먼지의 냄새가 납니다.
 
콘크리트 가루들이 발 아래 무수히 떨어져있고
 
방 안은 어둡습니다.
 
이곳은 창고인가요?
 
당신은 갑작스럽게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창고에 있는 물건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그 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기계음이 깔린 듯한,
 
아주 탁하고 낮은 가래끓는 목소리입니다.
 
”어디에 있어?”
 
 
……
 
정신이 들면…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방망이가 부서져 있습니다.
 
...가 아닙니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말이죠.
 
코비와 함께 정원을 걷던 중 알 수 없는 하얀 방에 갇혔고,
 
그곳에서 이상한 기록을 작성한 후에…
 
방에는 어떻게 돌아온 거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기억은?
 
복잡한 머릿속을 겨우 정리하려 노력하던 중,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잠시후,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똑, 똑
 
베르디:...코비 재클린?
 
곧이어 문이 열립니다.
 
노크를 한 사람은..
 
예상한대로 코비입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당신과 마주합니다.
 
코비 재클린:몸 상태는 괜찮아보이고..
(네게 가까이 다가와 거즈가 붙어있을 팔을 확 잡아 당겼다. 소매를 걷어 뜯어진 팔목을 보고는 천천히 튿어진 살갗을 손으로 쓰담었다.) 뜯지 말라고 몇번을 말했는데..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놓습니다.
 
코비와 당신, 그 기나긴 이야기 끝에서 코비가 죽습니다.
 
지능 판정
 
베르디: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그가 죽는다고요?
 
왜?
 
그러나 왠지 그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어떻게 죽게 되는지, 왜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
 
그 어떤 것도 짐작이 되지 않으나 그럴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알아차립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코비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 그러나 알 수 없게도 진실입니다.
 
기묘한 감각에
 
이성 판정 0/1
 
베르디: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함부로 부르튼 팔목을 건드리는 손길이 따끔거렸다. 그것에 신경 쓸 수도 없이, 어떤 물증도, 전조도 없는 예감 하나가 머리를 지배했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기억과, 텅 빈 속이 끝없이 제 정신에 대해 끝없이 의심을 낳는다. 그런데도,) ...괜찮아 보여?
 
코비 재클린:(네 표정을 살피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눈을 흘겨 바라봤다. 잡았던 팔목을 급히 놓고서는.) 아니면.. 불편한데라도 있어?
 
그것은 걱정 어린 얼굴 같기도, 탐탁지 않은 얼굴 같기도 합니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죠?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려는 순간,
 
정신력 판정
 
베르디: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묘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옅게 눈가가 찌풀어진 것도 같습니다.
 
베르디:...네가... (죽을 것 같다고 하면. 너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끝을 맺지 못하고 어영부영 흩어지는 말을 주워담을 수 없어 까만 눈을 한참 바라볼 뿐이다.) 내가, 미치면 어떻게 할 거야?
 
코비 재클린:..갑자기 왜? (기억을 잃고 깨어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 그것에 불안함을 느껴 묘하게 웃던 표정을 지워내곤 네 동향을 살피는 긴장감에 몸이 굳혔다.) 이번엔..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 않네.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아? ... (무언가 이상하다.)
 
베르디:그냥. 궁금한 건 방금 그거 하나야, 코비 재클린. (가장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너는 이렇게 제 상처를 건드리고, 나는 네가 누군지를 묻고. 경계하고, 실험을 계속하고... 이번의 기억을 잃은 것은 왜 자신이 아닌가?) 아니... 너는 아무래도 상관 없으려나. 여차하면 묶어두고, 그 실험에 쓸 피를 뽑으면 될 테니까.
 
코비 재클린:....
SAN Roll
기준치: 30/15/6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나선으로 이어지던 형태가 꼬이고 끊어졌다. 네가 내 이름을 기억했다. 자칫하면 충동적으로 두려움에 네 머리를 으깨어 다시 한달을 기다릴뻔 했다, 연구의 진척을 두려워했다. 새로 넣은 약물의 영향일까. 바이러스로 좀식당한 뇌에서 오로지 베르디라는 이름 외에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놀랐어.. 이번에는 기억하네.
그런데 질문은 어렵네.. 무슨 말을 듣고 싶은거야?
 
베르디:잘 됐지. 이름부터 알려주는 것도 지겨웠을 거 아니야.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누구인지, 불완전한 기억을 가진 저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네가 정말 그대로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시간대를 두고 시간을 거스르기라도 한 걸까.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다만 생각한다. 기억을 잃은 것이 너라면, 자신은 그 기억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예감한 네 죽음이 언제일지는 가늠해볼 수조차 없다.) ...솔직한 대답?
 
코비 재클린:어디까지 기억해? (쓸 일도 없었던 오래된 차트가 오랜만에 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볼펜의 끝을 누르고 잉크를 종이 위에 그어간다. 연구의 진척이 될 수 있다면, 네게 걸 희망이 생기기라도 한걸 테니까.) 미치지 마. 아마 그땐 내가 없을지도 몰라. 여러 의미로. (움직이는 손에 집중해 덤덤한 대답을 내뱉었다.)
 
베르디:네가 늘상 알려주던 것 정도는 다 기억해. (무릎을 접어 그 위에 턱을 얹은 채 분주히 무언가를 적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기록을 한들 이 이상현상은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럼 너는 죽지 마.
 
코비 재클린:그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나, 연구소를 소개하는거나. (특이한 필체로 간단히 글을 적고선 쪼그려 앉아있는 네게 시선을 떨구었다. 옅게 놀란 표정이었다.) ...오랜만.. 아니, 처음 듣는 걱정이네. 너 답지 않게.
그나저나 배는 안고파?
 
베르디:... (역시 마땅한 대답은 없다. 하기야, 스스로 죽으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죽지 않겠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죽음은 예고하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가 우스워져서 바람이 새듯 웃음을 흘린다.) 별로... 어차피 먹을만한 것도 없던데.
 
코비 재클린:다 기억하고 있다면서.. 환풍구는 왜 타고 온거야. (고개를 돌려 창고 안쪽의 환풍구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여전히 앉아있는 널 부르듯 문에 다시금 똑,똑 노크를 두드린다.) 일어나. 그래도 식사는 해.
 
베르디:(그때는 몰랐을 테니까... 딱히 입밖으로 뱉지는 않은 채 잡다한 상념에 빠져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결국 당신은 코비와 함께 식당으로 향합니다.
 
흰 복도는 고요합니다.
 
전등에 부딪히며 전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옵니다.
 
빛에 다가가려하는 검은 나비가 보입니다.
 
잘못된 빛을 따라 죽음으로 스스로 날아드는 모습입니다.
 
나비는 힘없이 차가운 복도 위로 떨어집니다.
 
당신은 비슷한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기묘한 예감대로라면 코비는 이 상황과 비슷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코비가 죽게 될 것만 같은 ‘이 이야기의 끝’이란 언제인 거죠?
 
소름 끼칠 정도로 빈번히 찾아오는 생각을 짓밟기라도 하듯,
 
그는 당신의 옆에 멀쩡히 살아있는데도요.
 
코비 재클린:..베르디, 괜찮아? 몸이 안좋으면 말해.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그의 말을 끝으로
 
깜빡
 
당신은 눈을 감았다 뜹니다.
 
 
0-2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앞에 서 있던 코비는 온데간데없습니다.
 
당신은 홀로 ‘하얀 공간’에 서 있습니다.
 
하얀 종이와 하얀 펜이 놓인 하얀 책상, 그를 하얗게 감싼 벽지와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방은 당신이 이전에 왔던 공간입니다.
 
‘이전’이라 함은 도대체 언제일까요?
 
몇 시간 전? 어제? 며칠 전?
 
그도 아니라면...
 
하얀 책상으로 향하면, [하얀 종이 두 장]과 하얀 펜이 놓여있습니다.
 
베르디:(종이를 들여다본다.)
 
첫 번째 종이엔 한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이 또한 기묘하게도 익숙한 문장입니다.
 
두 번째 종이는 여러 번 접힌 자국이 있는 종이입니다.
 
문구 밑으로, 당신이 이전 작성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짧은 문장 끝에… 무언가 액체 방울이 두어 개 떨어진 건지, 동그랗게 묻어 젖은 자국이 있습니다.
 
베르디:(두번째 종이에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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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 종이가 시키는 대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기록합니다.
 
코비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에 대해서, 당신이 알고 있는 그의 죽음에 대한 무언가를 섞어서.
 
기록을 마치고 펜을 놓으면
 
종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접히듯 느릿하게 반을 가릅니다.
 
다시 반, 또다시 반이 접힌 종이는 곧 책상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이전 봤었던 광경이 분명합니다.
 
이전 이곳에 왔을 때, 알 수 없는 기록을 작성한 후
 
당신은 곧 창고에서 눈을 떴습니다.
 
덕에 짐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아마도…
 
 
-5
 
익숙한 하루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전, 주변을 확인하면 이곳은…
 
당신의 방이 아닙니다.
 
익숙한 풍경 대신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고,
 
그 중심에는 코비가 서 있습니다.
 
그의 주변은 시체의 산이 쌓여있습니다.
 
서 있던 코비의 다리가 무너지고,
 
얼굴엔 깊은 상흔이 생기더니 붉은 혈흔이 떨어집니다.
 
투둑
 
코비 재클린:베르디, ...정신차려. 네가 죽인 사람들의 수를 봐.
네가 내게 낸 상처를 봐.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슬퍼보이는 암흑의 눈은 당신을 비추고 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렸던 사건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억은 휘몰아치듯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아니, 눈 앞에서 펼쳐집니다.
 
당신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이 사건의 후반부,
 
그리고 결말까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코비의 결말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전 몇 번이고 당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생각이 자리를 키우고, 목소리를 냅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코비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날카로운 메스가 그의 목을 뚫었습니다.
 
그 몸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붉은 피가 작은 구멍을 통해 쏟아져나옵니다.
 
움직임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당신은 미래에 벌어질 코비의 죽음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의 코비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언젠가의 당신은 그 죽음을 지켜봅니다.
 
시기를 알 수 없는 일이나, 한 번 든 확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신력 판정
 
베르디: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공포와 배신감, 슬픔과 좌절감이 섞여 눈물을 떨구는 그는,
 
당신이 알고 있는 연구원보다 어린 티가 나 보입니다.
 
베르디:(자신의 손을 내려다볼 수 없다. 붉게 물든 게 손이든, 손이 아니든. 더는 사람인 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당장 제 눈 앞에서 피와 눈물로 적셔진 연구원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겨우 살아있는 저 목숨은 언젠가 괴물에 의해 끊긴다. 그것은 타의가 아니라 자의이고, 자의가 아니라 타의이다.) 내가 잊어버린 건... 이런 거구나.
너는 이런 끔찍한 걸, 혼자만 기억하고 있었어. ...코비 재클린.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가 다시금 이어집니다.
 
당신은 이다음 코비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손짓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실 되었던 기억이 그대로 재생되어갑니다.
 
그야 이 일은 당신의 인생에 한 축을 차지하던 일이었으니까요.
 
죽은 동료의 가운을 붉게 적시며 제 상처를 지혈합니다.
 
얼굴에 난 상처가 꽤 깊어보입니다.
 
그의 앞엔 당신에게 가져다 주려던 도시락이 떨어져있습니다.
 
코비 재클린:(아프다. 얼굴의 앞면이 아스팔트 위로 갈린것 처럼 화끈거린다. 눈앞을 가리는 붉은 핏물이 끈적여 정신없이 휘청이는 시야를 지그시 눌렀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처럼 서로를 공격하던 사람들. 그것을 모두 잃을 기억을 가진 네게로 탓을 돌린다. 이게 모두가 편한 길이야. 벌레로 변해버린 네가 이곳에서 가장 사람다웠기에 네가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한다.) ...베르디..
 
그 상황을 관망하던 중, 코비 너머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얀 문입니다.
 
문을 인식하는 것과 함께, 문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흐려집니다.
 
눈앞에 있던 물건, 광경, 그 속에 있던 코비까지도.
 
귓가를 때리던 목소리도 점차 작아지고, 느리게 사라집니다.
 
 
0-5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다시 당신과 문, 그리고 하얀 공간만 주위에 남습니다.
 
코비?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요?
 
그가 죽을 거라는 확신에 또 다른 확신을 더하기라도 한다는 듯,
 
그저 하얗기만 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이, 문 하나가 박혀있을 뿐입니다.
 
베르디:(고통과 원망으로 엉망이 된 제 이름은 여전히 귓전을 울리는데, 그 날의 흔적은 다시금 시야에서 사라진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아래를 바라보면 그 밑에 또 누군가 쓰러져있을 것 같아 시선은 앞만을 향한 채 흰 문으로 다가간다.)
 
문에는 팻말이 하나 달려있습니다.
 
하얀색의 팻말에 무언가가 쓰여있는 거 같은데…
 
관찰 판정
 
베르디: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하얀 팻말에 하얀색으로 글씨를 써둔 거 같은데…
 
덕에 잘 보이지 않네요.
 
베르디:(문고리를 당겨본다.)
 
하얀 문 안은 또다시 하얀 공간입니다.
 
그 안은 당신이 알고 있는 하얀 책상과 하얀…
 
공간뿐만이 아닙니다.
 
본래 하얀 책상이 있던 중심에 누군가가 서 있습니다.
 
정확히는 책상 앞에 서서 종이를 살피고 있는 것 같네요.
 
흑발의 동양인처럼 보이는 여성입니다.
 
베르디:... (그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상당히 오랜 일인 것 같아, 잠시 제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그는 종이를 살피던 시선을 당신에게 옮겨갑니다.
 
??:반가워요, 베르디.
저는 메이 란. 당신과 코비 재클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 또한 알 수 없는 일을 겪고 있거든요.
 
베르디:...무슨 뜻이야? 당신이 우리를 어떻게 알아.
 
메이 란:(대답없이 그저 웃으며 책상에서 손을 떼었다.) 저도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친구와 있던 중에 하얀 문을 열고 왔더니 이곳에 있었어요.
 
베르디:그럼 이곳이 어딘지... 너도 몰라?
 
메이 란:과거로 돌아온 거 같은데.. 이곳은 글쎄요.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은 아닌 것 같죠.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베르디:...너는 인간이야?
 
메이 란:당연히 인간이죠. 당신은 인간인가요?
 
베르디:하하... 글쎄. ...어때 보여?
 
메이 란:인간처럼 보여요. 당신은 부정하고 있는 것 같지만.
 
베르디:...그럼, 만져봐. (제 팔을 내밀어본다.) 만질 수 있어?
 
메이 란:(별 감흥 없이 네 팔을 잡았다.) 무슨 장난이에요?
 
베르디:징그럽진 않나 해서. (팔에 닿는 온기에 시선을 내렸다.) 우리는 왜 이곳에 온 걸까.
 
메이 란:... 당신은 육체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있는 사람, 정신은 죽었지만 육체가 살아있는 사람. 둘 중 누가 정말로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베르디:둘 다 살아있지 않으면 의미 없잖아. 전자는 죽은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후자는 살아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테니까.
 
메이 란:..후후, 예상한 대로네요. 이 질문에 코비 재클린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베르디:...걔는 어디있어? ...정말 있기는 해?
 
메이 란:걱정돼요?
 
베르디:...그럴지도.
 
메이 란:결말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베르디:알고 있으면서 그런 걸 묻는 거야? ...성격 나쁘네.
 
메이 란:아아.. 죄송해요. 알고 싶은게 많아서요.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얀 방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책상과 그 위에 올려진 종이 세 장, 모서리의 펜.
 
여전한 공간입니다.
 
베르디:그쪽 얘기는 하나도 안 하면서 말이지. (익숙한 듯 종이들을 들여다본다.)
 
메이 란:거창한게 없는걸요. (어깨를 으쓱인다.)
 
첫 번째 종이입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문장입니다.
 
이번이 아마… 세 번째던가요?
 
두번째 종이는 여러 번 접힌 자국이 있는 종이입니다.
 
문구 밑으로, 당신이 이전 작성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짧은 문장 끝에…
 
무언가 액체 방울이 두어 개 떨어진 건지, 동그랗게 묻어 젖은 자국이 있습니다.
 
투명한 액체가 아닌 초록색의 점도가 있는 액체입니다.
 
세 번째 종이는 두 번째 종이보다 조금 더 여러 번 접힌 자국이 있는 종이입니다.
 
문구 밑으로, 당신이 이전 작성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전 보았던 투명한 물 자국이 전보다 말라 있습니다.
 
베르디:(펜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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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 종이가 시키는 대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기록합니다.
 
코비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에 대해서, 당신이 알고 있는 그의 죽음에 대한 무언가를 섞어서.
 
기록을 마치고 펜을 놓으면
 
종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접히듯 느릿하게 반을 가릅니다.
 
다시 반, 또 다시 반이 접힌 종이는 곧 책상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종이가 어떻게 접히는지 예견까지 가능한 수준입니다.
 
벌써 세 번째던가요.
 
종이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으면,
 
뒤에 서 있던 그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와 느리게 속삭입니다.
 
메이 란: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단순히 예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겪는 거라면 모를까, 왠지 완전히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에 적어도 1년을, 반대로 가는 것만 같다고 할까…
하지만 당신은 여태 함께 있던 사람이 죽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으니,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편이 좋으려나요?
그야,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간이 원래대로 흐르면 죽게 될 사람이니까요.
 
지능 판정
 
베르디: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요?
 
이 사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그의 말에 대답하려 고개를 들면, 익숙하게 시야가 흐려집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하얀 방의 끝에서 당신은…
 
 
-6
 
익숙한 하루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전, 당신이 알고 있듯이 주변은 당신이 상상하던 풍경이 아닙니다.
 
뒤바뀐 공간, 사라진 시간, 모든 것이 뒤집어진 현재 속에는 언제나와 같은 코비가 서 있습니다.
 
아니, 흉터가 없는 코비가 서 있습니다.
 
이 날은 함께 당신의 실험실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었습니다.
 
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당신이지만,
 
코비의 억지로 이루어진 일방적인 약속이었습니다.
 
아직 벌레로 변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폭력성을 이기지 못해 진정제를 맞으며 몸이 힘들어질 무렵이던가요.
 
팔 위로 깔끔하게 붙여진 거즈가 보입니다.
 
깔끔하고 모던한 색의 도시락을 열면
 
미트볼, 스파게티, 과일 몇 개로 이루어진 조촐한 도시락입니다.
 
아마 식당에 있던 재료들로 직접 만들어본 것들이겠죠.
 
그는 당신의 손에 포크를 쥐어줍니다.
 
코비 재클린:오늘 첫 임상실험약이 나왔어.
이제 너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성공적일테니까.
내가 말했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잃어버렸던 기억이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당신이 아닌 것 같은 기시감을 빼낸다면,
 
당신이 되찾은 기억 속, 그 어느 날의 일이 반복됩니다.
 
당신은 이 일의 전개부터 결말까지, 그 안에 스며들었던 감정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없던 기억이 하나 침범했지만요.
 
여전히,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죽습니다.
 
 
 
 
 
 
당신은 다시금 떠올립니다.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 그의 시체, 세상을 멸망시킨 괴물의 정체를.
 
이건 단순히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나 예측, 촉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코비의 죽음을 이미 경험했고, 이를 곱씹고 있던 게 분명합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코비는 ‘이 이야기의 끝’이라는 순간이 오기 전에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코비 재클린:베르디,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그 순간, 코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죽어있지만, 멀쩡히 살아 당신의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한 사람.
 
코비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 주제에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말을 하고, 기억하고 있는 행동을 이어갑니다.
 
베르디:...지마. (인간을 보는 눈. 인간을 대하는 행동. 자신은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무슨 자격으로? 그 쉽게 죽지 않는 사람을, 죽음까지 몰아넣은 게 난데. 이를 악물고, 칼칼해지는 목소리를 삼킨다. 눈가가 시큰해지는 건, 네가 지친 기색도 없이 너무 멀쩡하기 때문인지... 사람이 쉽게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지마.
 
코비 재클린:..? 왜 그래. 이제 아픈 주사도 안맞겠고.. (너덜해진 살갗을 새로운 거즈로 갈아주려는지 약품들을 꺼내 살폈다.) 음식 맛은 어때, 먹을만 할거야. 아마..
 
베르디:너는 아무것도 몰라. (실패할 것이다. 임상실험약은 들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벌레가 되어 연구원들을 남김없이 죽인 뒤, 또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겠지. 도시락을 내려다보면, 차고 고이던 것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을 감았다.) ...미안해.
 
코비 재클린:베르디, 나쁜 꿈을 꿨구나. (비워지지 않는 도시락의 뚜껑을 닫아냈다. 어린 네가 감당하기엔 힘든 실험들, 백신을 위해 희생된 감염자들이 이곳에 매일같이 밀려들고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너도.)
사과해야 하는 건 우리지. 네가 아니야.
 
베르디:필요 없어. (흐린 시야 사이로 앳된 얼굴이 담긴다. 저 얼굴에게 동정을 받고싶지 않아 서둘러 손등으로 물기를 눌러 닦았다. 그것은 네게도, 저들에게도 기만이 될 뿐이다. 나쁜 꿈이라면, 그곳을 꿈 취급하는 여기야말로 네가 줄곧 인사해온... 좋은 꿈이겠지.) 흉터를 내서, 궁금해 해서, 이해해보려고 해서... 모든 걸 다 망치고 쉽게 포기해서.
미안해, 코비 재클린. ...그냥 알겠다고만 해.
 
코비 재클린:... ...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겠지. 눈물을 눌러 닦아내는 동안에도 새로운 거즈를 찾아 맞춰보지 않아도 알 정도의 크기로 잘라낸다.) ..알겠어.
 
그 순간, 고비 너머에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 보입니다.
 
언제나와 같은 하얀 문입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문.
 
베르디:(대답을 들으면, 거즈를 마저 잘라내고 오래된 거즈를 대신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마지막 거즈를 꼼꼼히 붙이고 나서야 너를 뒤로 하고 하얀색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공간이 무너집니다.
 
코비와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얀색만이 남습니다.
 
문에는 익숙한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여전히 이름은 잘 보이지 않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당신의 이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베르디:(아무것도 남지 않은 흰 공간을 한번 뒤돌아보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언제나 그랬듯 문은 쉽게 열립니다.
 
 
0-12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다시 당신과 문
 
그리고 하얀 공간만 주위에 남습니다.
 
가득 찬 하얀 공간 속
 
당신이 눈을 뜨기 직전, 무언가가 들리고, 보였습니다.
 
무엇이었죠?
 
관찰 판정
 
베르디: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순식간에 지나간 덕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얀 공간만 시야를 떠다닙니다.
 
듣기 판정
 
베르디: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뭉툭한 구두 굽 소리가 두어 번, 작게 울렸습니다.
 
마치 이 방에 누군가 있었다는 듯이.
 
익숙하기 짝이 없던 그 공간이 달라져 있습니다.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책상]…
 
여러 가지가 똑같지만, 방 안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종이]가 가득 늘어져 있습니다.
 
베르디:(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위에는 ‘연구 개요’라고 쓰인 종이가 정갈히 놓여있고, 그 뒤로는 익숙한 문장이 쓰인 종이가 있습니다.
 
베르디:(차례로 읽어본다.)
 
그 아래로 당신의 눈길을 끄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연구가 무사히 종료되면…
 
연구에 참여해준 보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시간 선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뒤에는 익숙한 종이 한 장이 놓여있습니다.
 
‘베르디, 조금 전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성실히 기록하세요.’
 
문장을 읽어내리면, 하얀 펜이 당신을 향해 굴러옵니다.
 
베르디:(바닥에 있는 종이도 주워본다.)
 
자료조사/행운 판정
 
베르디:
기준치: 55/27/11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자료조사
기준치: 55/27/11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코비의 이름이 쓰인 문서입니다.
 
작은 사진이 붙은 문서입니다.
 
‘피험자 프로필’이라고 맨 위에 적힌 것을 보니, 타인에 의해 작성된 프로필로 보입니다.
 
그의 이름, 나이, 직업, 과거의 행적…
 
당신이 아는 모든 그가 이 작은 종이 한 장에 담겨있습니다.
 
그와 당신의 이야기도 가득 적혀있습니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금의 관계를 쌓게 되었는지, 여태 겪은 커다란 사건들과 몇몇 작은 사건들도 보입니다.
 
처음 당신이 실험체가 된 날,
 
당신과 첫 식사를 하고 임시 실험약이 나온 날.
 
당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연구원들이 서로를 죽이고 코비의 상처를 낸 날..
 
5년 간 방치된 연구소에서 기억을 잃는 당신과 함께 했던 그 날의 일까지 모두.
 
천천히 그에 대해 읽어내리다 보면
 
기다란 종이의 마지막을 맺은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코비는 이 이야기의 끝을 보기 전부터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당신은 그의 죽음을 함께 했고, 홀로 살아가기 전 무언가에 의해 과거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당신은 지금,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베르디:(흰 펜을 들어 익숙한 글귀 밑에 하루를 적는다.)
[##_Image|kage@vsn7e/btrClcQamlK/AAAAAAAAAAAAAAAAAAAAAO22OIulmdsgst7mmDyRq6y4RfaGB8sckVQCqEOsXC5T/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4514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4l%2BEr%2FdrfRRVq4C1cUpeXNIOGI%3D|CDM|1.3|{"originWidth":510,"originHeight":465,"style":"alignCenter"}_##]
 
당신은 익숙하게 그 종이가 시키는 대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기록합니다.
 
기록을 마치고 펜을 놓으면
 
종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접히듯 느릿하게 반을 가릅니다.
 
다시 반, 또다시 반이 접힌 종이는 곧 책상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곧이어 책상 위로 글자가 떠오릅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방의 끝에서 당신은 늘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코비가 보일 것입니다.
 
그가 있을 다른 세계가, 또 다른 과거가….
 
 
-27
 
익숙한 하루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일 필요조차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언젠가의 당신이 겪었던 기억 속의 공간입니다.
 
이번에도 언젠가 봤던 모습의 코비가 당신의 앞에 서 있습니다.
 
코비 재클린:안녕.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아,
 
당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연구실로 이송된 날.
 
당신을 담당하게 된 연구원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멀끔한 모습으로 첫 출근을 하는 듯한 얼굴은
 
당신에게 꽤나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코비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입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집중은 순식간에 깨집니다.
 
어디선가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형형색색을 품고 있던 어느 공간이 무너져 하얗게 변합니다.
 
그와 동시에 쿵, 하고 당신이 서 있던 바닥의 색이 녹아 사라집니다.
 
그 옆에도, 그 위에도, 순식간에 색을 잃은 공간 속,
 
당신에게는 익숙한 하얀 공간 속에 이곳이 익숙지 않을 코비와 함께 서 있게 됩니다.
 
코비 재클린:...! 이게 무슨...
 
코비가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던 사이,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림자로 비치던 사람이 곧 모습을 드러내고
 
얼굴을 확인하면…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방에서 만났던 사람
 
당신과 코비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
 
흐르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던 사람.
 
그는 웃으며 당신의 앞에 서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갑니다.
 
메이 란:고마워요, 베르디.
최고의 특이 케이스였던 당신이 무사히 이 연구, 아니, 우리가 마련한 시나리오의 끝까지 와주다니.
연구를 마쳤으니, 이제 이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의 기억을 지우고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 줄 생각이에요.
 
코비 재클린:.. 당신은 누구죠?
 
베르디:...메이 란. 결론은 냈어?
 
메이 란:아주 흡족히요. 그런데… 억지로 협조하게 한 거니, 어느 정도의 보상이 필요하겠죠?
 
코비 재클린:...(여전히 당황스러운지 무너진 주변을 살피다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었다.)
 
베르디:...예를 들면?
 
메이 란:우리는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당신을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심어둘 수 있었죠.
그러니 당신이 원한다면 원하는 시간을 살아가게 해줄 수 있어요.
코비 재클린이 죽어버린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가 미래를 홀로 살아가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그가 죽기 전의 과거를 영원히 맴돌다 태초의 형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나요?
당신이 과거에 남는다면 코비 재클린은 이곳에 허물로라도 남아있겠지만, 당신이 미래를 선택한다면 이 허물마저도 사라지겠죠.
 
메이 란: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이것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게 마지막 질문이에요.
베르디,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대신, 원하는 것에 대해 성실히 말씀하세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하기도 전, 코비는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련했다는 연구, 이 ‘시나리오’의 끝에서 그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이 그와 이 시나리오의 엔딩을 결정합니다.
 
그렇기에.
 
코비 재클린:...내가 죽었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여성 대신에 제 손 안의 차트에 적힌 자신의 실험체, 베르디를 향해 물음을 던진다.)
 
베르디:코비 재클린. (당혹스러운 듯한 음성에 담담히 네 이름을 꺼낸다.) ...너는 이 무의미한 연구를 계속하다 벌레가 된 실험체에게 모든 동료 연구원들을 잃고, (숨을 고른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바이러스를 다시 세상에 꺼내는 걸 목격한 20xx년 7월 11일, 내 눈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코비 재클린:...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 내가, .... (말문이 막혀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비참하게 들리는 마지막 순간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제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너도, 시간여행자라 자칭하는 저 여성도. 무너진 공간도 모두 비현실적인 것들이라 진실 만을 말하는 듯한 네 입을 당장이라도 막아버리고 싶었다.)
 
베르디:지금 너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없는 일이니까... 나는 다 기억해. (네가 허공을 향해 메스를 들어올리던 그날, 뒤에 펼쳐진 하늘이 얼마나 까맣고 드넓었는지. 발 밑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너를 외면하고 돌아선 유리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비어있던 기억이 차오를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네가 지난 시간 오로지 혼자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미래의 기억이 없는 너와, 기억하는 나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한 명만 온전하게 망가진다.) ...코비.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야?
 
코비 재클린:우리는 실패했구나. 연구를 위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의 윤리를 짓밟고 올라섰기 때문에. (그 꼭대기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신을 능가하기 위해 쌓은 탑이 무너진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수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 이름과 가족, 일상이 적힌 차트를 들고 바이러스를 향해 다가갔던 순간부터 연구원인 코비 재클린의 목적은 뚜렷했다. 일의 흐름을 따라 제 행동이 예측이라도 되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제 행복을 묻는 너는...) 행복, ...첫 연구복을 입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날 인정해주고 내 앞에서 웃음을 내보였을 때.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살잖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걸 느끼면, 쉽게 벗어나질 못해.
(네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면, 비참한 상황이 오기까지 제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테다.)
 
베르디:실패했지. ...처참하게. (우리가 맞은 것은 최고의 비극이다. 현상유지도 하지 못해 저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세상에 어떤 형태로도 남지 못한. 어떠한 형태도 남기지 못한...) ......그래도 여전히, 거기가 네 자리야?
(너는 일찍이 자리를 찾았구나. 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해, 너는 죽어 그 자리에 변변한 무덤조차 갖지 못했다. 여전히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것과 다름이 없을 텐데, 제 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코비 재클린:내 자리여야지. 그래야 내가 바꿀 수 있잖아. (처참한 형태의 비극,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한들 바이러스로 종식될 세상에서 더 나은 결말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여러 의문을 던지며 곧 긴장이 풀린 얼굴로 묘한 웃음을 지었다.)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어쩌겠어. 그것 또한 내 자리일텐데.
(물러서지 않는 걸음은 네게 가깝게 다가온다. 서로를 마주하는 눈이 속을 파고들기 위해 깊게 스며들었다. 호흡을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너는? 과거로 돌아가 무언갈 바꿔보고 싶어?
 
베르디:(가까이 다가온 것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이다. 처음으로 이 거리에서 네 까만 동공을 들여다본다. 동정도 공포도, 혐오와 후회도 담겨있지 않다. 네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틀림없는 인간이다.) 나는... 다가오는 미래는 모두 피하고 싶어.
...내가 아는 것들을 모르게 되고, 모르는 것을 알려다 모든 것을 망치는 것도. (네 숨을 확인하는 것은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했다. 살아있는 너는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 누가, 어떻게 변이해서, 얼만큼을 죽이고...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자신일까, 치기일까.) 바꿀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팔을 손으로 쓸었다. 같은 자리에 몇 번이고 주사를 넣는 것, 몸 속에 들어가는 알 수 없는 약물들. 차마 잡지 못해 손틈 사이로 떨어져내리던 것. 힘없이 떨구던 어깨, 목에 방울방울 맺히던 피, 그치지 못하는 웃음과 울음을 기억해낸다. 어떤 기억보다 아프게 각인된, 쓸쓸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네 죽음.
 
코비 재클린:...장담은 못해주지만.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 옳기를 바래. (이마 위에 난 상처를 손으로 훑어주었다.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위로 가지런히 떨어진다.) 바꿔줘.
(죽음은 예견되었고 죽음을 목도한 이가 앞에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 닥칠 일들을, 세상의 흐름을 누군가가 바꾸어 준다면, 좀 더 나은 결말을 볼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당신이 나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것 같으니.) 내 죽음을, 세상을.
(축 쳐진 어깨, 불안한듯 팔 위를 쓸어 내리는 손, 자신없이 뱉어지는 물음.. 네가 세상을 멸절시킨 괴물이라면 미래를 알고 있다면..) ..이번엔 나를 구해줘.
 
베르디:… (원하는 시간선으로 갈 수 있다는 말에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었다. 가장 처음은 죽음이다. 다시금 몸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다르게 말해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섬찟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어감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수없이 많은 죽음을 초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죄에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편해지고 싶었다. 제 자리 따위는 없는 차가운 세상.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몸. 이 보상은 그 모든 것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알아서, 이제는 알기 때문에. 모르기에 방치했던 수없는 상황들과 실수들이 자신을 막아선다. 거즈를 붙일 때면 어렴풋이 서늘할 거라고만 생각한 네 손끝은 쓸데없이 따뜻했다. 네 자리일 때 가장 행복한 네가 계속 걸어갈 이 길이, 내가 죽음을 포기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면… 죽지 않아도 그런 꼴을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너도 죽는 건 포기해.
살겠다고, 대답해.
(그러니 죽음을 걸고, 살기로 각오하자. 너도, 나도. 언젠가 떳떳하게 손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코비 재클린: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미래를 보고 왔다는 네 말에는 모순된 말이지만 기분 좋은 웃음이다. 녹색의 눈동자에서 힘이 생겨 보이는 이유는 너도 이젠 네 자리를 찾아 가는 것 같아서.) 코비 재클린은 20xx년 7월 11일, 자살로 사망. 이 항목은 네 기억에서 지워. 걸어가지 않을 길이 될거야. (허공에 손을 띄워 쓱 지우는 흉내를 낸다.)
나 뿐만이 아니지. 날 포기 하지마. (네 팔을 잡는다. 고개가 기울어지면 주사 바늘이 수 없이 박혔을 살갗 위에 우리에게 축복을 기원했다. 곧 떨어진 얼굴과 함께 시선을 올려 네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회피 하지마.
 
베르디:(코비 재클린은 20xx년 7월 11일, 자살로 사망. 정말 죽은 코비 재클린을 지워도 되는 걸까. 손짓한번에 잊어버리기엔 죄스럽고, 안타까운 문장을 곱씹다, 짧게 애도했다. 곁에서 들려오는 네 웃음소리가 늘 귀에 맴돌던 것과는 상이한 것이 생소한 듯 시선을 내려 마주 응시했다.)
지금처럼 붙잡고 알려주면 되겠네.
(비관, 부정, 자만, 포기, 의심… 이처럼 악으로 한데 뭉친 인간이 감히, 그저 존재가 악이 아니라는 것을 빌미 삼아 회피 대신 변화를 기대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를 때, 그래서 다시금 실수하고 회피하고 싶을 때에도.)
내가 너를… 이해하게 될 때까지.
(너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지난 한 차례 포기한 너를, 미래에 남은 코비 재클린의 유언을 지키는 제 방식이다.)
 
메이 란:결정은 했나요? 베르디.
당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보내줄게요. 그것이 정말로 원하는 거라면.
대신 이곳에서의 일은 당신의 기억에서 지워질거예요. 꿈으로 남을지는 몰라도.. 현실이라 생각하기엔 힘들겠죠.
 
베르디:...모든 것이 망가지기 전으로.
내가 아직 인간이고, 쟤가... 처음 연구복을 입었을 즈음.
그 무렵으로 보내줘.
 
메이 란:당신의 결정에 따를게요. 과거를 선택한 당신을..
되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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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하루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입니다.
 
미래에 죽게 될, 그러나 당신의 선택에 의해 죽지 않을 코비는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되돌아가는 영원 속에서요.
 
당신이 직접 선택한 엔딩,
 
이 시나리오의 끝에서, 코비는 죽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새로운 시작에서, 당신은 코비와 함께 살아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핸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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