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음악실의 유령
이 세계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2022-09-25
KPC. 츠루야 후카 · PC. 이토자키 잇세이

이 세계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나는 그 때 눈치채고 만 거야.
손가락의 미약한 열기는 악보에도 번질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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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그 날의 너와 내가 가장 바라던, 그러나 오직 너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
 
타이포
 
.
 
.
 
.
 
이미지
 
코드를 꽂아두었던 유리 티포트의 주둥이에서
 
수증기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틀어두었던 뉴스의 주제가 전환된 것은 그 때였습니다.
 
잇세이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이른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식탁에 앉은 채
 
낡은 TV속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달 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따로 다루기 위해
 
금주중 신설 편성된 채널입니다.
 
아나운서의 표정은 짐짓 심각합니다.
 
편성된 채널의 인트로격인 멘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됩니다.
 
그러고보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문득 TV의 볼륨을 낮춰두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리모컨이 어디있더라... (고개를 돌려 리모컨을 찾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정말 어디에 뒀죠?
 
이토자키 잇세이:어디있지? (당황)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침에 TV를 켜고난 뒤로부터 리모콘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어딘가 던졌거나 두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거실을 둘러보던 그때,
 
소파 팔걸이 아래 나동그라져 있는 리모콘을 발견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여기에 뒀구나...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가 리모컨 볼륨을 높입니다.)
 
리모콘의 볼륨이 올라가며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달 전 A시에서 시작된 유행성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입자가 기이하게도 단백질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DNA나 RNA등의 유전체 또한 실재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더욱 특이한 점은 환자의 체내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입자가 오존 분자와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입자를 과연 바이러스 입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울러 전염성이 강하다고는하지만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동물에게서 동물에게로,
 
곤충 내지는 공기나 물을 통해서 감염이 이루어지는 병이 아니므로
 
전염병이라 칭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일부 학자들이 지구온난화의 가속으로 인한 미지의 바이러스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한편,
 
당국을 포함한 WHO에서는 계속해서 질병의 감염 경로를 연구중에 있습니다.
 
정형화된 톤의 아나운서 멘트가 마무리 되면
 
화면이 뒤바뀌며 블러처리된 대형 병원들의 외관이 연이어 흘러나옵니다.
 
이번 전염병에 감염되면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피부가 트는 등
 
사람에 따라 각종 면역력 결핍 증상을 보이지만,
 
…이라는 기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전세계를 강타한 이번 유행성 전염병의 병명이
 
아직까지 공식 발표되지 않았음을 떠올립니다.
 
그나마 공통적인 증세라고는 고열을 앓게된다는 점 말고는 밝혀지지 않았다니까요.
 
항간에서는 유행성 독감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던데….
 
참 기묘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뉴스를 접한 잇세이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이토자키 잇세이:흠... (괜히 자기 이마 만져봄) 열은 안나지...
 
여름이라 몸이 덥기는 하지만,
 
열이 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마스크라도 써야하나.
 
사람 대 사람으로 옮는 병은 아니었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지도...
 
이토자키 잇세이:(쩝...) (당장 체감되는 일은 아니므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칩니다.)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하도록 합니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이토자키 잇세이:(j의 아침은 역시 토스트와 주스지)
(엄마 커피까지 타고 덮어둠) (뿌ㅡ듯)
 
분명 엄마가 기뻐하실 거예요.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문득 날씨를 확인하면
 
아침 기온 26 ℃에 미세 먼지 수치 11㎍/㎥입니다.
 
시간당 강수량은 0mm로 오존지수가 다른 날보다 조금 높기는 하지만
 
아주 맑고 화창한 하루가 될 거예요.
 
학교를 갈 준비를 해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어느 고딩과 다름없이 교복을 대충... 챙겨입습니다.)
.....
(넥타이만 제대로 동여맴) ...이 정도면 안걸리겠지?
 
마지막으로 신발끈을 묶고 거울을 확인하면
 
가슴팍에 간신히 달려 있는 교복 명찰에 눈이 갑니다.
 
곧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아오 안그래도 바쁜데) (대충 옷주머니에 낑겨 넣습니다.)
 
엄마의 커피를 타느라 시간이 아슬하다고요.
 
명찰을 주머니에 넣고 현관을 나섭니다.
 
잇세이는 어떤 방법으로 등교하나요?
 
물음표 살인마 같겠지만 정말 지문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J답게 자전거로 등교합니다.) 더 꾸물대다간 지각하겠네 이거...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
 
늘 다니던 길목에서 화창하고 잔잔한 풍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려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맑은 하늘에 가벼운 공기.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붕 떠있던 기분이 노골적으로 가라앉습니다.
 
왜일까요?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건반에 더 손을 댄 적은 없어도
 
곡을 듣는 것까지 거북했던 적은 없는데….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이성이 1 감소합니다.
 
...
 
이미 한 번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린 탓인지
 
청각과 마음이 전같지 않습니다.
 
방금 느꼈던 메스꺼움도
 
그만둬버린 음악에 대한 내면의 거부감일까요.
 
아니면 미련일까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시멘트 길의 인도를 따라,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등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씁쓸한 입맛을 돋굽니다.
 
여름이니까요.
 
정문 통과는 여유롭게 세이프.
 
잇세이는 2학년 A반의 학생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례 직전 출석이 막 진행되려던 참입니다.
 
선생님:빨리 빨리 앉아라.
 
C반 선생님의 불같은 호령이…
 
잠깐만, C반 선생님이요?
 
여긴 A반인데요?
 
그러고보니 자리 배치도 어제와 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이토자키 잇세이:반을 잘못 들어왔나... (두리번)
 
잇세이가 허둥대고 있으면 선생님은 도끼눈을 뜹니다.
 
분필이 날아오기 전에 얼른 비어있는 자리에 앉는 것이 이롭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어정쩡하게 앉으면서 옆자리 친구에게 귓속말로 속닥거려요.) 야, 야.. 왜 C반 쌤이 출석불러?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급한대로 빈 책상에 앉아 책가방을 내려둔 뒤
 
교실을 쭉 둘러봅니다.
 
잇세이는 한달전부터 시작된 유행성 질병으로 인해
 
텅텅 비어있던 열댓 개의 책걸상이
 
모르는 아이들의 머리통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역시 반을 잘못 들어온걸까요?
 
하지만 옆자리의 친구는 A반 학생,
 
잇세이의 반 친구가 맞습니다.
 
동급생:(펜 돌리기에 열중하다가 네쪽을 슬쩍 바라보곤) 오늘부터 C반 애들이랑 합반 수업 한댔어. 그래서 아까 아침부터 책걸상 옮기고... 아, (펜 툭 떨굼) 난리도 아니었다.
 
이토자키 잇세이:그래? 잘못들어온게 아니라면 뭐.. (펜을 주워서 손에 다시 끼워줌) 상관없으려나. 근데 담임까지 바뀔 일인가..
 
선생님:거기, 떠드는 놈 누구야?
 
이토자키 잇세이:
은밀행동
기준치: 20/10/4
굴림: 26
판정결과: 실패
얘가 떠들었어요~ (옆에 가리킴)
 
선생님:이토자키냐? 둘이 소근거리는 거 다 봤어.
조례시간부터 떠들 생각을 하다니... 너희 둘은 벌점 3점이다.
 
동급생:아;; (짜증!)
 
이토자키 잇세이:담임 왜 바꿨냐...
 
동급생:아니 요즘 유행하는 독감 있다잖아. (불퉁한 얼굴로 한번 더 선생님 눈치를 보더니) 그거에 감염되셔서 병가 내셨대. 그때까지 저 C반 호랑이가 통합 담임이야ㅡㅡ 우리 담임 보고싶다......
 
이토자키 잇세이:....망했네. (끙.... 잠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눈치를 보더니 툭, 무성의한 손길로 건드리고서) 너도 안걸리게 조심하고.
 
동급생:어엉~ 이토자키 너도. 왜 요즘 애들 전부 열난다고 병결 장난 아니잖아. (삐죽) 유독 결석생 많은 반은 오늘부터 이렇게 묶어서 수업 하나봐, 아무리 끼리끼리 감염 안되는 병이라지만 이런 상황에 학교를 나오라니... 너무하지 않냐고.
 
친구는 마저 대꾸해주면서도
 
아침부터 있었던 책상과의 씨름으로 무척 고단한 참인지 하품을 합니다.
 
쩍 벌어지는 입 너머로 피로함이 다 느껴질 정돕니다.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휙.
 
커튼 너머로 휘몰아치던 바람이
 
뺨을 긋고 지나갑니다.
 
어찌나 미지근하고 달짝지근한지 갈증이 다 날 정도네요.
 
친구와 떠들다 보면
 
모든 학생의 출석체크가 종료됩니다.
 
임시 통합 담임을 맡게된 C반의 선생님이
 
교탁 위로 출석부를 탕탕,
 
두어번 두드린 뒤 말합니다.
 
선생님:아까도 말했지만 뒤늦게 등교해 듣지 못한 사람이 있을테니 다시 한 번 공지한다.
갑작스럽겠지만 오늘부터 결석생 수가 많은 반을 임의로 묶어 합반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A반 C반은 미술, 음악중에 음악 과목을 선택한 반이지?
비슷하게, 미술을 선택한 B반은 D반과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다.
A반 선생님이 유행성 질병으로 병가를 내게 되셔서, 오늘부터 내가 A반과 C반의 통합 임시 담임을 맡게 됐고.
참고로 우리 반은 지금부터 A-1반이다.
 
선생님:이상, 조례 끝. 다들 조용히 1교시 준비하도록.
 
이토자키 잇세이:네에...~
 
성황리에 황당한 공지를 일단락한 임시 담임 선생님이
 
안내를 끝마친 직후 교실 앞문 너머로 사라집니다.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불만의 기색이 내비쳐지는 한편,
 
원래 알던 사이인지 옆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도 눈에 띕니다.
 
바뀐 임시 시간표에 따르면 1교시는 수학이라고 하네요.
 
비어있던 자리가 잇세이의 책상이었던 모양인지
 
책상 사물함에 손을 넣어보면
 
잇세이의 이름이 적힌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뒤적거리며 수학책을 꺼냅니다.)
 
선생님:자, 나와서 이 문제 풀어볼 사람?
아무도 없어?
오늘이 25일이니까...
이토자키 잇세이. (의미 없음)
 
이토자키 잇세이:(아니 나 25번 아닌데..)
 
선생님:나와서 한번 풀어봐~ (아랑곳 x)
 
이토자키 잇세이:네.... (저벅저벅 걸어나옴)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인가?) (눈싸움 함)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저런...
 
푸는 시늉만 해봅니다.
 
선생님:저번 시간에 배운거 복습 제대로 해오라고 했지~? (도끼눈...)
 
이토자키 잇세이:아 쌤~ 죄송해요... (하하 사람 좋은 표정지음)
 
선생님:(잠시 흘겨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오늘 수업은 집중해서 듣고, 그만 자리로 돌아가렴. (척척 풀이를 시작한다.)
 
이토자키 잇세이:네! (대답만 잘하고 자리가서 앉음)
 
이후 지루한 수업시간들을 착실히 견디다 보면,
 
어느덧 종이 울리네요.
 
점심시간입니다!
 
잇세이는 무엇을 먹나요?
 
이토자키 잇세이:매점갈래? (옆자리 친구 툭툭 건드려봄)
 
동급생:갈래! (벌떡) 초코소라빵 다 팔리기 전에 빨리!!
 
이토자키 잇세이:오늘도?? (진짜 안질리고 잘먹구나라는 표정) 어어...
 
노리는게 확고한 친구입니다.
 
친구와 매점으로 내려가보면...
 
오늘 유독 북적북적한게, 뚫기가 쉽지 않아보여요.
 
이토자키 잇세이: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오늘따라 재수가..)
 
사람들의 어깨에 자꾸 부딪힙니다...
 
이러다간 먹을게 남아나지 않을 거예요!
 
이토자키 잇세이:
근력
기준치: 65/32/13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잠깐 지나갈게...
 
슬쩍슬쩍 요령 좋게 사람들 사이를 벌리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힘들게 매점에 들어가서.. 무얼... 집나요?
 
이토자키 잇세이:(오늘은 편의점 도시락을... 콜라도 집음.)
 
동급생:(초코소라빵을 쟁취!)
 
어쩐지 너덜해진 채로 매점에서 나옵니다.
 
날이 좋으니 밖에서 도시락을 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을 까봅니다.
 
과연... 그 맛은?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환상적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본인도 놀란듯) 이거 진짜 맛있는데? 어디 브랜드지? (뒤적뒤적)
 
동급생:뭐?? 나도 한입만.
 
이토자키 잇세이:고개 들어봐. (함박스테이크 조금 떼줌)
 
동급생:(입 쩌억)
(우물...)
(냠냠...)
 
이토자키 잇세이:(입이 무슨 저렇게 크지...)
 
동급생:...................미쳤다.
 
매점에 이 정도 퀄리티의 도시락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다음에도 종종 사먹어야 겠어요.
 
이토자키 잇세이:(기분 조금 좋아짐) 이게 바로 운수좋은 날이구나.
 
동급생:(입에 가득 묻은 초코를 익숙하게 티슈로 슥슥 닦는다.) 좋은 점심이었어.
 
이토자키 잇세이:그래 보인다.
 
점심을 해결하고 교실로 돌아와
 
바뀐 시간표를 재차 확인하면,
 
5교시는 음악 수업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 칠판에 노란색 분필로 작성된 커다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5교시 음악이래~! 교과서 챙겨서 음악실로 이동할 것!'
 
하필이면 음악 수업이라니… 내키지 않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쨀까...)
 
그럴 순 없죠.
 
책상 사물함이든 교실 사물함이든,
 
어쨌든 교과서를 챙기기 위해 내부를 뒤적이면
 
쉽사리 음악 책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사용감이 영 낯익지 못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뭐... (책 뒤적거림) (내 책 맞지?)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교과서를 뒤집어 살핀 잇세이는
 
책 모서리에 적혀 있는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2학년 C반 츠루야 후카'라고 적혀 있네요.
 
아침부터 합반 수업을 위해 책걸상을 옮겼다더니
 
아무래도 그 소란스런 틈에 교과서가 뒤섞였나 봅니다.
 
츠루야 후카?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에요.
 
명확한 정보라고는 교과서의 주인이 C반의 학생이라는 점 뿐이고요.
 
오늘부터 전체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이 교과서의 주인도 5교시의 음악실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갖다줘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내 책은? (뒤적뒤적거려봄)
 
이상하네요.
 
사물함을 아무리 뒤져도 잇세이 본인의 음악책 행방은 영 묘연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아..... 설마 책이 바뀐건가. (내키지 않은 얼굴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시간을 확인하면 45분에서 50분 사이가 되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음악실로 이동하기로 해요.
 
2학년 A반은 3층,
 
음악실은 5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엘리베이터 고장 문제로 여지껏 수리가 미뤄지고 있으니
 
하는수 없이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도록 합시다.
 
수업 시작 종울림을 목전에 둔 시간인지라 복도는 한적하기만 합니다.
 
주욱 시원하게 뻗은 복도 창 너머로
 
초록이 우거지고 청음이 기승을 부립니다.
 
여름이 불시에 목구멍에 들이닥친 듯한 기분.
 
그 막연함을 가르고
 
어디선가 나지막한 악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끊길듯 가냘픈 소리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연주를 재개합니다.
 
연주는 마치 소동물의 숨소리처럼 미약하지만
 
이 복도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올만한 공간이라면 역시 한군데 뿐이죠.
 
아울러 더 듣고 말고 판단할 것도 없이
 
피아노가 연주되어 흘러나오는 소리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아침에 들었던 곡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속이 메스껍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과거에 당신이 꽤 좋아하던 곡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치 태엽을 감듯
 
부드럽고 유연한 악상이 여운처럼 귓전을 맴돕니다.
 
흡사 굳어버린 고목나무처럼 못 박힌 듯 서서,
 
이어지는 곡조를 관청하다 보면…
 
꼭 본능처럼 되새겨지는 감상이랄 것이 남는 법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곡의 완성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상대는 템포와 리듬감,
 
악상의 표현이나 곡의 이해...
 
그 중 어느 것도 특출나다고 할 수 없지만,
 
이 곡을 한 음 한 음을 정성껏 연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연주자는… 고등학생이 아니지 않을까요?
 
잇세이가 알기로 이 학교에 이런 연주를 하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먼저 도착한 음악 선생님일지도 몰라요.
 
이토자키 잇세이:..... ...(미묘하게 거슬리는 마음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갑니다.)
 
음악실의 문을 열까요?
 
이토자키 잇세이:(문을 열어봅니다.)
 
음악실 문을 엶과 동시에
 
점심을 해결하고 뒤늦게 몰려온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며
 
피아노 연주자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도 피아노 연주는 끊긴지 오래입니다.
 
뒤늦게 피아노 의자를 살피더라도
 
아이들의 무리에 섞인 모양인지
 
이토자키 잇세이:(어어...)
 
연주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음악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A: 근데 누가 피아노 연주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B: 그러게? 아니면 그거 아냐?
이 학교 원래 음악실에 귀신 나온대.
 
A: 뭔 소리야… 너 귀신 같은 거 믿냐?
 
B: 너야말로 못 들었어? 요즘 애들 없는 시간에 간간이 5층 음악실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 난다는 거…
왜, 나 작년에 클래식 동아리에 아는 선배 있었잖아. 그 선배가 그러는데 축제 기간에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더래.
달밤에 피아노 소리가 나서 눈 딱 감고 음악실 문을 열어봤는데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A: 야, 헛소리 그만하고 앉아. 벌건 대낮부터 웬 귀신 얘기야?
 
B: 아 진짜라니까?
 
이토자키 잇세이:귀신.... (흔해빠진 이야기에 김이 샌듯 고개를 돌립니다.)
(츠루야 후카..라는 명찰을 가진 친구가 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누가 츠루야 후카인지 알 길이 없네요.
 
때마침 수업 종이 울립니다.
 
마흔 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음악실을 서성이다
 
각자 자리를 찾아 착석합니다.
 
잇세이 또한 적당히 빈 자리에 몸을 앉히고
 
선생님을 기다리다보면…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립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뒤돌아봄)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구름으로 짠듯한 머리카락에 처음 시선이 가고,
 
맑은 샘이 고인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햇볕이 쏟아지는 등 뒤,
 
창 너머의 눈부신 여름 하늘과 어울리는 하얀 아이는
 
어딘가 투명한 유리 구슬같은 인상을 남깁니다.
 
눈이 마주치는 것은 몇 초 남짓.
 
츠루야 후카:...옆에 앉을래. (질문과는 거리가 먼 말을 하며 너를 빤히 바라본다.)
 
이토자키 잇세이:어... (방금 한말, 질문인가? 조금 얼빠진 모양새가 되었을까. 햇빛을 등진 네 모습에 괜히 눈이 부셔 살짝 눈을 찡그리며 비켜앉는다.) 앉아.
 
츠루야 후카:(질문 아닌 질문에 확인을 받으면, 의자를 끌어당겨 네 옆에 앉았다.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둔 음악책을 네 쪽으로 살짝 밀어놓으며,) 이토자키 잇세이군. (맞냐는 듯 눈을 천천히 꿈뻑여)
 
꼼꼼히 살피지 않아도 그 책이 사라졌던 음악 교과서임을 눈치챌 수 있을 거예요.
 
선이 얇은 손목의 둘레를 따라 채워진 은색 손목시계의 테가 단정하게 빛을 반사합니다.
 
시중에 저런 디자인의 시계를 팔던가?
 
꼭 처음 접해 생소한 이계의 보석처럼 느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응. (문득 시계를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린건지 어설프게 웃어넘긴다.) 그렇다는건... 츠루야구나. (조금 능청스레 자신의 앞에 놓인 책을 네 쪽으로 밀어둔다. 맞췄지? 그리 말하듯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지 않았고.)
 
츠루야 후카:(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에 미묘하게 화색이 돈다. 묘하게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츠루야 후카. (짧게 통성명을 하듯 덧붙인다. 가슴팍에 붙어있는 플라스틱 명찰을 눈짓하며, 광택 없이 매끈한 명찰 위로 새겨진 이름을 네가 읽을 수 있도록 내려온 잔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넘긴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후카의 명찰을 보자,
 
문득 헛헛한 당신의 셔츠 옷감을 떠올립니다.
 
그래요.
 
당신은 오늘 아침 곧 떨어질 것처럼 달랑거리던 명찰을 발견해
 
주머니에 넣은 이래인지라,
 
하루종일 명찰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나는 C반의 학생.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아, 방금 웃었다.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자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 츠루야. 내가 잇세이라는건 어떻게 알았어? (흥미로운듯 한동안 명찰에 머물던 시선이 도로 네 눈을 향한다. )
 
츠루야 후카:...알고 있었어. 오래 전부터. (시끄러운 교실 속에서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조금 엉뚱한 대답을 한다.)
 
이토자키 잇세이:응? (잘못 들었나, 잘만 휘어있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며 튀어나온 목소리엔 당황이 서려있었다. 혹여나 소음 속에 네 목소리가 묻힐새라 고개를 숙여 거리를 좁힌다.) 나를 알고 있었다고?
 
대답을 들으려는 그 순간,
 
음악실의 출입구가 열리며 음악 선생님이 들어서고
 
후카 역시 더이상 맛을 잇지 못하고
 
턱을 괸 채 멍하니 칠판을 응시합니다.
 
의문만을 남긴채 대화는 결국 흐지부지 종결되고 맙니다.
 
선생님:자, 오늘 78p 바로크 시대 작곡가 파트 진도 나갈 차례지?
내가 알기로 A반 C반 진도가 비슷했거든? 모두 책 펼치자.
유럽 문명사에서 지칭되는 바로크 시대란 보통 17세기를 가리킨다는 거, 저번 시간에 먼저 이야기 했었지?
17세기의 예술을 가리킨다고….
 
점심시간 종료 이후,
 
선생님이 음악실에 등판함과 동시에 수업이 시작됩니다.
 
점심 식사 직후인지라 어마어마한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벌써부터 꾸벅꾸벅 조는 등 시동을 걸고 있는 아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78p를 펼치기 위해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던 잇세이는…
 
어라?
 
60p쯤에서 전에 본 적 없던 작곡가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소제목은 'A에 대하여'.
 
원래 음악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던가요?
 
A라는 작곡가가 존재했던가요?
 
과거에 나름 오래간 피아노를 전공했던 자신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이름난 작곡가를 모를리 없는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듭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이성이 1 감소합니다.
 
손 놓고 지내는 동안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린 건가?
 
교과서를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해당 부분을 자세히 읽어봅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A의 곡에 대한 기사 내용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도둑맞아? 허술하네...)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박스 하단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메모를 추가로 발견합니다.
 
실제로 <겨울이 흘린 눈물>의 원본을 보았다는 예술가의 증언에 따르면
 
악보 <겨울이 흘린 눈물>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특이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가 무척 조악했으며 세월에 바래 누렇게 떠있었다고요.
 
달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아마 작곡가 A의 자필 사인이었을 겁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침 몇년 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A에 대한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인물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악보였다는 뜬소문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그게 도둑을 맞았었나봅니다.
 
심지어 나머지 한 곡은 분실되었고요.
 
어쨌든 도둑 엔딩이라니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닙니다.
 
악보 원본이 공개된 것도 아닌 모양인데 별 게 다 교과서에 실리는군요.
 
그 두 곡을 제외하곤 여지껏 악보랄게 발견되지도 않았던 무명 작곡가가
 
어떻게 교과서까지 신출귀몰 했는지 의문입니다.
 
더 많은 정보가 궁금하다면, 핸드폰을 이용하거나 옆의 후카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역시 수업 중에 말걸긴 조금 불편하려나... 힐끔, 눈치봐요)
 
츠루야 후카:(꾸벅... 꾸벅)
 
이토자키 잇세이:(.....졸고 있네. 빤히 봄...)
 
옆의 후카는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버립니다.
 
말랑한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시선이 갔다가도 쉬이 흩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슬쩍 책을 세워 선생님께 들키지 않도록 해줍니다. 폰으로 검색이나 해볼까...)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하는 기색입니다.
 
하긴, 이렇게 조는 아이들이 많아서야...
 
깨어있는 잇세이가 더 눈에 띄는 지경이네요.
 
이토자키 잇세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3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휴대폰으로 선생님 몰래 간단한 검색을 해보면,
 
몇몇 기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둑맞은 악보를 목격했다던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알려지지 않은 환상곡 악보의 제목이 여름과 관련 있었다고 하네요.
 
이토자키 잇세이:(흠..... 무성의 하게 슥슥 스크롤 내림)
 
음악실의 에어컨이 고장난 걸까요…
 
너무나 덥습니다.
 
바깥에서는 매미가 울고
 
풀벌레가 나무를 깁니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던 나비 하나가 창틀을 타고 오르다
 
이내 나뭇잎 너머로 자취를 감춥니다.
 
영락없는 여름이네요.
 
.
 
.
 
.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염증이 날만큼 물러 터졌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착실히 흐릅니다.
 
책가방을 싸거나 집에 갈 준비를 서두르며
 
종례를 맞이하면...
 
선생님:이토자키 잇세이.
 
담임 선생님이 갑작스레 잇세이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각자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당신의 자리에 고였다가도 빠르게 흩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네?
 
선생님:아무래도 임시 출석부가 음악실에 있는 것 같은데, A, C반 반장이 모두 결석이다.
그런고로, 음악실 좀 다녀와. 출석부 좀 교무실에 가져다 놓고 하교해라.
 
이토자키 잇세이:아, 네. (몇번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익숙하게 일어난다.)
 
선생님은 잇세이의 책상 위에 음악실 열쇠를 내려두고
 
종례 선언을 끝마친 뒤 교무실로 사라집니다.
 
하는 수 없이 음악실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이토자키 잇세이:(설렁설렁... 열쇠를 챙긴 뒤 음악실로 향합니다.)
 
열쇠를 들고 5층으로 발걸음하면
 
음악실의 방음 문이
 
좁은 틈을 벌리고 열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로 오후 다섯 시의 비산하는 빛줄기가
 
묘연히 바닥을 적시고 있고요.
 
누군가 음악실에 잔류해 있는 걸까요?
 
이토자키 잇세이:....? (고개를 슬쩍 밀어넣어요)
 
마지막으로 음악실을 사용했던 다른 반의 주번이
 
잠그는 일을 깜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유추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작달만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곡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 수밖에 없는 곡입니다.
 
누구인지 모를 연주자의 손끝에 의거하여
 
피아노 독주가 막 시작되는 찰나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부유하던 먼지와 공기가
 
미세한 파동이 되어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부터였어요.
 
종례를 할 때면 계단은 한적했고
 
꽤 아득히 느껴지는 상층에서는
 
늘 정체 모를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상대는 어쩌면
 
오늘 음악 시간 시작 전에 문 너머에 있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죠.
 
늘 환청같은 피아노 곡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가던 기분이
 
좋았는지 싫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은 여전히 열려있고
 
연주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방과후에 마음대로 음악실을 사용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할테고요.
 
선생님께 하달받은 심부름도 있으니
 
잇세이는 음악실로 들어서기로 합니다.
 
...
 
문을 가르고
 
접어든 공간의 꼭 닫혀있던 커튼이 말갛게 걷힌 가운데,
 
잠시 눈 앞이 하얗게 정전했습니다.
 
산발하는 태양 빛은
 
이따금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구석이 있습니다.
 
눈부신 빛에 적응한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 그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투명한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해
 
고아한 빛을 뿜는 악기 너머
 
건반을 다루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오늘 음악 시간에 함께 수업을 듣던
 
C반의 츠루야 후카입니다.
 
막연히 들을 수 밖에 없는 연주입니다.
 
청명한 수풀이 푸르른 가운데
 
녹색으로 물든 빛이 등 뒤를 적시고 있습니다.
 
순간 넋이 나갈 뻔했습니다.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만 두어버린 피아노를,
 
정성껏 연주하는 후카를 바라보는
 
잇세이의 심정은 어떤가요?
 
이토자키 잇세이:(더는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과는 비교되는 너의 그 빛남이 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와 동시에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지난 기억들이 손끝을 스쳐 지나간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티없는 마음으로 건반 하나하나를 눌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먼지에 쌓이고 묻혀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그 순간의 기억이 되었을 뿐. 열쇠를 잡은 손이 작게 떨렸다.)
??? 판정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9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언젠가 그만두었던 피아노,
 
이번에는 반대로
 
'언젠가 시작했던 피아노'에 대해 떠올립니다.
 
새로운 시도에 기뻤거나,
 
벅찼거나,
 
혹은 자신만만했을 지도 모를 과거입니다.
 
막연한 감상은 그곳에서 흩어집니다.
 
세상에 용기만큼이나 덧없는 기개가 또 있을까요.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내키지 않습니다.
 
츠루야 후카:(건반을 누르는 끝음이 조금 떨린 채로 연주를 끝마친다. 드뷔시의 달빛, 그 제목과는 대비되는 하얀 햇볕 속에서 손을 무릎 위로 내려놓은 후카는 그 옆에 세워두었던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이내 누군가의 기척을 알아챈 듯, 어쩌면 그 기척의 상대마저 알아챈 듯 천천히 고개를 들자 문가에 서있는 네게 차분한 시선이 맞붙는다. 그 얼굴에 어린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는 얼굴은 되레 조금 들뜬 듯 상기되어, 미미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안녕.
(To GM)rolling 10+1d20
 
10+
(
11
 
)
 
 
=
21
 
이토자키 잇세이:(새하얀 손끝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이 녹음기를 스쳐지나 청명하기 짝이 없는 푸름을 가진 눈과 마주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얼굴에 가면을 한꺼풀 덧씌운다. 먼지묵은 기억들은 뒷편에 묻어두는 쪽이 좋으니.) ...음악실에는 유령이 있다더니.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서 태연히 다가간다. 조금도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 얼굴이 어쩐지 미소짓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슬쩍 마주 웃었다.) ...또 만났네 우리.
 
츠루야 후카:유령?... (그 한 단어가 마음에 드는 듯 몇 번을 곱씹어보다가 작게 중얼거린다.) ...그런걸까. (제게 다가오는 네 모습에 피아노 의자의 한 켠으로 비켜 앉고, 자리를 나누어 앉자는 듯 좁은 공간을 톡톡 두드린다.) 음악실에... 누가 올 줄 몰랐어.
 
이토자키 잇세이:이런 유령이 있을 줄 몰랐는데...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실례할게? 라는 말과 함께 한 켠에 앉는다.) 나야말로. 열쇠는 여기 있는데, 어떻게 한거야? (고개를 살짝 돌리면 햇빛을 머금은채 눈부시게 빛나는 머릿결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 왠지... ㅡ 다른 한손은 끊임없이 열쇠고리를 휘적휘적 두어번 돌리며 이 자리는 조금 덥구나. 그런 무상한 생각들을 흘려보낸다.)
 
츠루야 후카:그야... 유령이니까. (투명할 만큼 흰 손으로 의미 없이 하얀 건반을 하나 꾹 누른다.) ...농담. 그냥 열려있었어. (방과후에 이곳에 머무르는 일이 누구에게 허락을 받은 일은 아닌 듯, 입을 꾹 다물었다가 네 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인다. 눈치를 보듯 입을 달싹이다) 들었어?
 
이토자키 잇세이:유령을 마주했다는 이야기보단, 이 쪽이 더 좋지. (문득, 건반음 하나가 정적을 가로지른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자연스레 손을 뒤로 걸쳐 피아노와 조금 동떨어졌을까, 그렇게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뭐라 답하는것이 좋으려나, 여기선 솔직하게 나갈까. 은근히 제 눈치를 살피는게 느껴져 어떤 답을 내어놔야할지 다소 고민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늘 그렇듯 긴 고민은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피아노..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츠루야 후카:좋아해. 하지만... (건반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지 않는다. 이명처럼 이어지는 소리가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는 온전한 몇 초가 걸렸다. 그 시간을 잠깐 기다리다) ..이토자키 군은? (네가 이 악기와 벌린 작은 거리를 느꼈는지, 다시금 찾아온 정적 위로 꺼질 듯 자그마한 목소리가 겹친다.) 싫어해?
 
이토자키 잇세이:...하지만? (끝내 이어지지 않은 뒷 문장을 찾는듯, 나지막한 소리로 되물었다. 짧은 의문은, 맑은 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향한 질문에 어느새 가라앉고 말았지만.) 아... (역시 솔직하게 답을 내어놓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뭐 그렇게 대수로운 질문이라고, 겁쟁이. 자조적인 문장을 삼킨채 어깨를 살짝 으쓱거린다. 어려운 주제는 에둘러 넘어가자.) 글쎄? 츠루야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츠루야 후카:(때로는 단순한 질문에 단순한 대답이 오지 않는다. 질문은 아니었을 네 말에 순간을 고민하는 듯 하다가, 고개를 무겁게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나.. 알고 있어. (솔직함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나름의 솔직함을 건네기로 하자. 고개를 돌리면 쏱아지는 햇볕이 따가워서인지, 그에 허물어진 무감한 얼굴이 어딘가 간절한 구석을 내비친다.) 네 피아노 소리...
싫어하지 않지?
 
이토자키 잇세이:(거리가 이렇게 가까웠던가. 부쩍 좁아진 간격에 잠시 숨을 멈춘채 네게 시선을 빼앗긴다. ) ...그래? (알고 있다고.... 조금 전까지만해도 잘만 돌아가던 머리가 갑작스레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맑은 공기부터 따사롭게 눈 끝을 간질이던 햇살까지 모두. 문득, 다리 아래서부터 자신을 붙잡는 퀴퀴한 먼지 붙은 손길이 느껴지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귓가에 속삭인다. 너는 싫어하잖아, 피아노. 그에 홀린듯 분명 그렇게 전하려했다, 어딘가 간절한 네 표정을 눈치채기 전까진.)
....
(아주 작은 충동이었다. 새하얀 머릿결이 흐트러져 맑은 눈동자를 가릴 무렵, 손을 뻗어 귀에 걸어준 것은. ) ..싫지 않아.
(실로 오랜만에 내뱉은 진심이었다.)
 
츠루야 후카:(희끄무레한 웃음이 스며든다. 네가 단순히 소망과 다름없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준 것인지, 아니면 이 마음이 너의 진심인지... 알고 있다. 그 무렵 네 피아노 소리를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하니까. 시간과 기억에 묻히지 않는 그 날의 연주에 대해 굳이 서툴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네 피아노 소리를 기억한다고, 적어도 그 날의 연주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새겨질 만큼 그 온도가 뜨거웠다고...)
내일 조례 전, 오전 7시. (손 끝이 떨어질 때쯤. 먼지가 가라앉고 구름이 흩어져 파란 하늘이 창을 덮칠 때, 잔잔한 음의 집합이 새어나왔다.) 또 들으러 와줄래?
 
이토자키 잇세이:(잔잔한 웃음과 함께 일순간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금 흘러간다. 창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한데, 눈 앞에 너는 투명하고 창백하면서도 왜이리 더운건지. 손 끝에서 열이 피어나는 듯했다.) 이거 영광인걸.
(시선을 슬쩍 돌리며 가만히 떠올려보면, 네 소리는 싫지 않았다. 부드럽고, 진심이 느껴질만큼... 정성스러운 연주였지. 이래서는 두번 다시는 가까이 하지않겠다고 다짐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는셈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일순간 떠올렸던 부러움이, 지저분한 미련이 언저리에 남아 결국은 끄덕이고 말았다.) ....응.
 
츠루야 후카:약속이야. (짧지만 분명한 대답을 속으로 되뇌이다 더는 미련이 사라진 듯 건반의 덮개를 덮었다. 몸을 일으켜 피아노 위의 먼지를 한번 쓸고, 그 윗면에 올려진 출석부를 집어들어 네게 내밀었다. 네 손의 열쇠에 물끄러미 시선을 둔다.) ...돌려주러 가야지.
 
이토자키 잇세이:(아.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실에 잠시 실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일 아침 7시... 속으로 작게 되뇌이며 손을 뻗어 출석부를 건네 받았다.) 그렇네, 깜빡할뻔했어. (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열쇠를 허공에 던졌다가, 잡으며 잠시 손장난을 치던가 싶더니 문가로 시선을 던진다.) 가자.
 
후카와 함께 음악실의 문을 나섭니다.
 
교무실에 출석부를 돌려주고 하굣길에 오르면
 
여름의 습도에 반듯하게 다려놓았던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습니다.
 
유령에 홀린 듯한 하루가 잇세이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
 
.
 
.
 
전날 한 약속을 잊지는 않았나요?
 
오전 7시,
 
음악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위해
 
잇세이는 이른 시간 등교합니다.
 
나뭇잎 사이를 걸러 들어온 햇빛이
 
묘하게 어슴푸레하게 느껴지는 오전,
 
공기는 제법 서늘하고
 
묶어놓지 않은 커튼을 바람이 나부낍니다.
 
암막 커튼과 그 위에 이중으로 쳐놓은 쉬폰 커튼이 펄럭일 때마다
 
텅 빈 사각형의 교실 위로 유령의 몸짓같은 그림자가 일렁이길 반복합니다.
 
오늘은 내가 가장 빨리 등교한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면…
 
텅 빈 서른 대여섯 개의 책상중 유일하게 책가방이 올라와 있는 책상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츠루야? (자신도 모르게 툭, 뱉는 이름이 하나. 정신을 차리고보면 어느새 시선은 책가방을 향해 있었다.)
 
책가방을 내려 놓은 직후
 
주인이 이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갔는지
 
가방 지퍼가 살짝 열려 있습니다.
 
가볍게 살피기만 하면 눈에 띄는 것들은 죄 평범합니다.
 
네다섯권 정도의 얇은 악보집들과 필기 노트,
 
새것 같은 교과서 몇 권,
 
필통따위의 동물이 그려진 학용품들,
 
자세히 봐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이러면 안될텐데... (그러면서도 자세히 살펴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켜켜이 쌓여 있는 악보집들 사이로
 
표지가 누렇게 떠있는 악보집 하나를 발견합니다.
 
겨울이흘린눈물
 
다른 악보집들은 거진 새로 구매한듯
 
기스 하나 없는 클리어화일에 분철되어있는 반면
 
저 혼자서 세월의 흐름을 증언하듯 표지 색이 바래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감정
기준치: 5/2/1
굴림: 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말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 악보는...
 
적어도 300년은 더 되어 보이는 것 같네요.
 
악보를 펼쳐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 (미묘해진 얼굴로 악보를 펼칩니다.)
 
음표가 수놓인 모양을 미루어 생초면의 작품입니다.
 
후카는 작곡도 겸하고 있는 걸까요?
 
아울러 1p 상단에 뉴스 헤드라인처럼
 
자필로 작성되어 있는 곡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언어(외국어) Roll
기준치: 1/0/0
굴림: 20
판정결과: 실패
 
이토자키 잇세이:
교육
기준치: 60/30/12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 악보의 곡명은...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첫 마디만을 살펴도 꽤나 매혹적인 곡입니다.
 
불현듯 어제 5교시에 음악 교과서에서 발견했던
 
'A에 대하여' 대목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어요.
 
A는 16세기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로
 
<겨울이 흘린 눈물>과
 
알려지지 않은 의문의 계절 환상곡을 작곡했다
 
...고 했던가?
 
도둑 맞아 곡명은 미궁 속에 숨어 있다던 계절 환상곡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여름의 유령>이 정말 300년 이상 된 곡이라면
 
<겨울이 흘린 눈물>과의 작곡 시기가 얼추 맞물린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그런데, 어라?
 
이 장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데자뷰?
 
물론 데자뷰란 본디 뜬금없는 현상이긴 합니다만…
 
아,
 
교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시계를 확인하면 시침과 분침은 7을 가리키고 있고
 
초침은 막 숫자 5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약속 시간인 오전 7시입니다.
 
찜찜하다기보단 의뭉스러운 상태가 이어집니다.
 
약속을 어길 것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음악실로 올라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이상하네... (악보를 제자리에 정리해두고 음악실로 올라갑니다.)
 
.
 
.
 
.
 
마치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음악실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보지만
 
오늘은 이 너머에서 달리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군요.
 
이토자키 잇세이:(너무 빨리왔나? 조심스레 음악실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열려 있으므로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요.
 
음악실로 들어서면
 
어제와 같이 환하고 눈부신 여름의 햇살이
 
잇세이의 전신을 덮칩니다.
 
이름난 과거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음벽 어귀에 붙어 있고,
 
교탁 너머의 칠판에는
 
분필 가루가 얕게 묻어나긴 했으나
 
그 나름대로 깨끗하고 푸르기만 합니다.
 
오래된 악기만이 머금은 특유의 냄새는 익숙한 종류여서,
 
늘 이 냄새를 기억하고 있던 심장만이
 
조용히 두방망이질 칩니다.
 
창틀 너머로
 
풀잎의 싱그럽고도 비릿한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콧잔등을 건드리면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입니다.
 
그 단정하고 고요한 음악실 가운데
 
그랜드피아노 앞에는,
 
약속처럼 후카가 앉아 있습니다.
 
후카는 뚜껑이 닫힌 피아노에
 
팔꿈치를 기댄 채 눈가를 짚고 있습니다.
 
잇세이가 들어온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어딘가 몸이 좋지 않은듯 안색이 창백합니다.
 
비단 오전의 하얀 백색광선 탓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잇세이의 머리를 스칩니다.
 
츠루야 후카:
(To GM)rolling 1d100
 
(
55
 
)
 
 
=
55
 
이토자키 잇세이:(또 자고 있네, 잠이 많은 편인가? 그리 생각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뗀 것과 달리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창백한 낯에 미소가 가라앉는다.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레 손등을 이마에 가져다댄다.)
 
손등으로 이마를 가볍게 덮어봅니다.
 
후카의 체온이... 꽤 뜨겁게 느껴지네요.
 
츠루야 후카:...... (이마에 덮히는 서늘한 손의 감각에 줄곧 내리감았던 눈을 떴다. 약속처럼 제 앞에 서있는 네 모습에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피아노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한다. 언뜻 보기에 어제와 같은 평범한 몸짓에 평범한 목소리다.) 약속... 기억해줬네.
 
이토자키 잇세이:빈말은 잘 안하는 편이라서. (나른한 얼굴은 잠이 덜깨서인지, 천성인건지. 티나지 않도록 두어번 재차 안색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손을 내린다.) 열나는 것 같은데... 괜찮아? (손등으로 전해진 열이 신경쓰여, 바라보는 눈길이 조심스러워졌다.)
 
츠루야 후카:아마, 햇살이 뜨거워서... (내내 이곳에서 햇볕을 받아 열이 오른 탓이라는 듯, 더위를 탄 얼굴이 맥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뒤의 간이 책상으로 손을 뻗어 가져온 악보 여러 개를 집어들더니 네게 쑥 내밀어 보인다.) 어떤 게 좋아?
 
이토자키 잇세이:그런가? (뒷편의 커튼을 젖혀 살짝 그늘지게 만들더니 만족스레 돌아온다. 무리해서 나오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이런저런 상념이 흘러갈 무렵 불쑥 들어온 종이 뭉치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디보자. (악보를 건네 받아 하나 하나 살펴본다.)
 
츠루야 후카:(대체로 후카가 좋아하는 곡인 듯, 부드러운 분위기의 악상들이 너의 시선을 잡아끌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어제 들은 드뷔시의 달빛,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 ...베토벤의 월광 등. 네가 악보를 고르기를 기다리듯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발을 가볍게 구르며 커튼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토자키 잇세이:(익숙하게 악보를 훑고 지나가면, 짐작가는 것이 있다. 대체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장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한 곡, 한 곡 넘기다 보면 지독하리만큼 외웠던 익숙한 선율이 그려진 악보가 눈에 띈다. 월광... 앞서 봤던 곡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악보를 주시하던 시선을 살짝 옮기면 허공을 응시하는 너와 눈이 마주친다.) ...이곡은 조금 의외로운데. 좋아해? (그 말과 함께 꺼낸 악보는 월광.)
 
츠루야 후카:아직 완벽하게는 못 치지만... (눈이 마주치자 네가 내민 악보를 받아 들더니 조용히 제목을 읊는다.) ...나, 이걸 치고 싶어서 피아노를 시작했어. (담담한 추억을 이야기하듯 애정이 어린 눈으로 헤진 악보를 바라보다,) 이토자키 군은? 가장 처음 치고 싶었던 곡. (어떤 거야? 순수한 물음이 담긴 눈으로 너를 올려다본다.)
 
이토자키 잇세이:이건, ...제법 어려운 곡이니까. (문득 어린시절 동경의 눈빛을 담고 노래를 들었던 자신의 얼굴이 너와 겹쳐보인다. 곡을 처음 듣는 순간 느꼈던 말못할 전율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조금 더 빨리 만났다면, 나도 다른 모습이였을까. 아쉬움에 빈손을 꽉 주먹쥐었다.)
그래? (아... 너는 또다시 그런 눈을 하고서. 티없는 얼굴은 지켜보는 사람마저 가슴이 뛰게 만든다. 그러나 간질이는 마음아래 깔린 짙고 어두운 부러움이 괜시리 속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목이 막힌듯 말이 잘나오지 않아 한참을 뜸들이다, 입을 연다.) ...나도 비슷해.
 
츠루야 후카:그럼 이걸로 할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4번. 그 악보를 들여다보는 너의 눈빛에서, 내려다보는 얼굴에서 어떠한 그리움의 형태를 읽었다. 어딘가 안타깝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제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얼굴. 헤아리지 못한 마음 앞에서, 연주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마음을 나누기 위해. 그러니 이게 좋다.) 정말 많이 연습했으니까... (악보대 위에 악보를 올려두고, 나머지 악보는 다시 간이 책상 위에 올려두려 손을 뻗었다.)
 
덜컹!
 
일말의 소음과 함께
 
간이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악보집들이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 섞입니다.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지자
 
츠루야 후카:…아.
 
후카는 흩어진 악보집들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합니다.
 
낱장의 악보가 발치에 채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아... 도와줄게. (발치에 떨어진 악보를 줍는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내용물들을 살피니
 
후카가 보여준 악보를 제외하고 나서도 그 수가 꽤 많았네요.
 
훑어보면 후카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만
 
구매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포장조차 뜯지 않은 악보집도 더러 보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틈에 거꾸로 뒤집혀 있던 낡은 악보집 한 권입니다.
 
뒤집혀 있던 탓에 곡명을 읽지는 못했지만…
 
잇세이는 악보집의 어귀에 자리하고 있던
 
어떤 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은은하게 빛나던 모양새가 아주 특이한 문양이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사인...? 의문을 가지면서도 악보를 정리해서 건네줍니다.)
 
츠루야 후카:(어쩐지 조급한 손길로 네가 건네는 악보를 건네받더니, 차곡차곡 모서리를 정리한다. 네 시선이 향하는 악보를 의식해서인지, 고개를 돌리며 군말을 붙여) 내가 연주할 수 없는 곡이야. ..연주해서도 안 되는 곡이지만.
 
이토자키 잇세이:그런 곡도 있었나? (어쩐지 조급함이 느껴지는 말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시선이 끌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츠루야 후카:가끔, 책이나 영화에 봐서는 안 될 그림같은 이야기가 나오잖아. 그런거야.. (대답을 얼버무리며 다 정리한 악보를 피아노 의자 아래 수납공간에 집어넣는다. 그러다 제법 짐짓 진지한 눈으로 너를 돌아보며) 있지, 이토자키 군.. 그런 괴담 들어봤어?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연주되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네번 연속 들으면 죽는다는... (어깨를 살짝 떤다.)
 
이토자키 잇세이:음, 그렇구나..~ (여긴 책도, 영화도 아닌데? 기어코 올라오는 질문을 삼킨채 어깨를 으쓱인다. 이제와서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 묻어두면 되는거다. 네가 내 이야기를 캐묻지 않는듯, 나도 너를 배려하고 싶으니까.) 괴담이라... (이어지는 말에 한쪽 눈썹이 올라간다, 딱히 괴담따위를 믿진 않았으나 진짜라는듯 어깨를 떨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웃음이 진다. 조금 놀려볼까, 하는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그건 알아. 왜냐면...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숙이고 작게 손을 움크려 네 귓가에 속삭인다.) 나... 해봤거든.
 
츠루야 후카:.........................................응?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리는 얼굴에는 당황이 어려있다.) 정말? 해봤...어? (지레 겁을 집어먹은 듯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이토자키 군, ......살아... 있어? (소심하게 손 끝으로 네 팔을 콕 건드려본다.)
 
이토자키 잇세이:있지... 츠루야. 네 번 연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짐짓 웃던 미소를 지우고서 네가 물리는 만큼 가까워진다.) 잘 봐... 아직도 내가 이토자키로 보여? (웃음 꾹)
 
츠루야 후카:(안색이 하얗다 못해 새파래짐...) 거짓말! ......놀리지 마... (코앞까지 온 웃음기 없는 얼굴에 불안한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토자키 군? ...잇세이 군? (확인하듯 성과 이름을 번갈아 불러보다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아래로 주르륵...미끄러진다.)
 
이토자키 잇세이:아... (결국 참지못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웃으면서 시선을 내리면 아래로 누워있다싶이한 네가 눈에 비친다. 그제서야 놀리는데에 팔려있던 정신이 돌아온듯 불현듯 웃음소리가 끊긴다.)
농...담... 농담이야. (당황스러운듯 서둘러 몸을 바르게 뒤로 물린채 네게 손을 내민다. 누가 봤다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였을거 아냐...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시리 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츠루야 후카:(잔뜩 움츠러든 몸이 긴장이 풀리듯 느슨해지고, 내민 손을 원망스러운 듯 쳐다본다.) ......너무해. (입매가 억울한 듯 굳어진 채로 조금 열받았는지 눈에 힘을 줘 너를 노려본다.) 다..? 엘리제를 위하여... 해봤다는 것도? (농담이었냐는 듯...)
 
이토자키 잇세이:...미안. 많이 놀랐어? (안 잡을거냐는듯 내민 손을 두어번 흔들어본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줘야하나, 고민하는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아니, 그건 진짜야. 대신... 딱 세번까지만 쳤어. 아직 죽을 수는 없잖아? (다음엔 같이있을 때 쳐볼까? 실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금 웃는다.)
 
츠루야 후카:......진짜 유령인 줄 알았단 말이야. 웃지도 않고.. (오늘따라 얄미운 웃는 얼굴을 계속계속 째려보다 일어날 힘이 빠졌는지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그것도 농담...이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다 멈칫... 진심으로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눈빛이다.) 이토자키 군. ...하지 말라는 말, 보통 안 들어?
 
이토자키 잇세이:이런 유령은 세상에 없을걸. (처음보는 표정이 새로워서인지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삐죽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다보면 어느새 걱정스러운 푸른눈과 마주친다.) 농담이야. (처음 만났을 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더니.. 왠지 지금은 조금 알것 같기도 하고. 이 편이 훨씬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살짝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더니) 나 걱정해주는거야?
 
츠루야 후카:... (다소 불만이 섞인 얼굴이지만 딱히 부정은 하지 않은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정말 하면 안 돼. (불안한 듯 힘 빠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당부하듯 말하고는 정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간이 의자를 옆으로 끌어온다.) 여기 앉아..
 
이토자키 잇세이:(천성이 착한건지, 걱정이 많은건지. 몇번이고 당부하는 말에 별 수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 너무 걱정하진 말고. (어차피 두번 다시 칠 일도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다 끌려온 간이의자에 슬쩍 걸터 앉았다.) 조금 진정은 됐어?
 
츠루야 후카:틀리면... 이토자키 군 때문이야. (작게 약한 소리를 하다 피아노 의자 한켠에 앉아 예의 녹음기를 꺼내 든다. 익숙한 손길로 녹음버튼을 누르고, 악보대 옆에 올려두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미련이 남은 듯 뒤를 돌아봤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너는 피아노에 이 이상 다가서지 않는다. 자신은 이어나가지 않기로 결심했음에도 누군가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어떤 기분으로 그 연주를 듣는 걸까.) ......그래도, 내 관객이 되어줘서 고마워...
 
후카는 의자를 가볍게 끌어당겨
 
익숙한 거리감을 조절합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에 힘을 빼는 자세가 더없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연주가 시작됩니다.
 
츠루야 후카:(둥글게 말은 손 모양이 부드럽게 건반 위를 넘나든다. 아까의 짓궂은 장난 탓인지, 한껏 예민해진 감각에 심장이 뛰고, 음이 파동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일정한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추듯 이 담담한 맥박에 맞춰 전개하는 곡조에 기교는 없다. 어쩌면 듣는 사람이 재미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이고, 솔직한 소리지만... 너여서 더없이 다행이야. 말이 서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니까. 말보다 확실하지 못해도, 의미를 뚜렷하게 전하지 못한다 해도... 말보다 왜곡되기 어렵고, 위로가 되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피아노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 곡이 가지는 의미를, 짧은 시간 네가 주었던 느낌을, 너를 걱정하는 감정을...... 너라면 진지하게 들어주겠지. 마지막으로 작은 소망을 악보의 마지막 끝음까지 꿋꿋하게 눌러냈다.)
 
이토자키 잇세이:(작은 손이 건반 위를 스쳐 지나가면, 담백한 음이 음악실 안을 울린다. 천천히 눈을 감으면 귓가를 맴돌던 음표들이 모여 하나의 곡을 이뤄낸다. 남들이 섞을 법한 기교조차 없는, 어쩌면 제멋대로에 가까운 해석. 그럼에도 한 음, 한 음에 서려있는 정성이 느껴져 너는 참 자신같은 연주를 하는구나 싶었다. 또, 어째서인지 내게 전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꼭, 서투른 위로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피아노를 가까이 한 것이 얼마만이더라, 너와 내가 만난지 얼마나되었다고 걱정을 해주는걸까. 거침없이 티 없이 맑은 연주가 이어진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너를 알았다면, 우린 이 자리에서 함께 연주할 수 있었을텐데. 그럼 이 곡도 달라졌으려나? 덧없는 생각이 이어졌을 무렵 마지막 음이 울려퍼진다. )
??? 판정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렇게 눈을 뜨면 또다시 보이는 것은 변함없는 현실이다. 어째서인지 짧지만, 달콤한 꿈을 꾼 기분이 듣었다. 네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고.) ...나야말로, 관객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이였어.
 
순간 마음이 울렁였습니다.
 
한참 좋아하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지난 날을 상기해냅니다.
 
어떤 작은 오류도 실수도 없이 연주를 끝마쳤던 순간에
 
꽤 기뻐했던 것도 같은데…
 
잘 생각나지는 않네요.
 
다만 당신에게도 분명 무던히 노력하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 무언가가 내려앉은 듯,
 
거북한 마음이 들지만요.
 
츠루야 후카:
(To GM)rolling 10+1d20
 
10+
(
17
 
)
 
 
=
27
 
츠루야 후카:(전해졌을까? 연주가 끝나고 내려앉은 긴장을 풀어주듯, 말이 아닌 그 목소리가... 네가 들이는 뜸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다고 대답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기에 녹음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할까 봐 겁이 나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을 꼭꼭 친 뒤, 뒤를 돌아보는 얼굴은 그림자가 져서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조금 전보다 핏기가 가신 듯 창백한 안색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해가 지고 나서 학교의 음악실에 들어오면 안돼. 음악실의 유령이 나오니까.
 
이토자키 잇세이:(등을 돌린채, 언뜻 마주친 얼굴은 전보다 더욱 창백해보였다. 커튼에 가려져 네가 있는 곳에 그늘이 진 탓인걸까, 왠지 금방이라도 눈 앞에서 사라져버릴 것만같은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잠시 말없이 너를 바라보더니 능청스레 대꾸한다. ) 그게 츠루야 후카라는 유령이라면, 나는 상관 없을 것같은데.
 
츠루야 후카:(네 대꾸에 물끄럼 마주 바라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을 말하는 게 아니야. ...진짜 이 학교에 있는, 음악실의 유령. (어딘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말을 하며 미열이라기엔 조금 뜨겁고, 펄펄 끓는다기엔 미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손을 네게 내밀었다.) 나는 유령이 무서워서 밤에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토자키 군도... 나 아닌 유령을 찾아서 이곳에 오지 마.
 
이토자키 잇세이:음악실의 유령.... (그런 소문도 있던가, 괴담같은건 좀처럼 믿었던 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억하는 이야기도 없다. 창백한 손을 잡으면, 서늘할것 같다는 착각과 달리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아니... 정확히는 묘한 열감이 느껴지는.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령이 잡아가기라도 하나.... (내키지는 않았으나, 벌써 두번이나 강조한 말에 굳이 토를 달고싶진 않았다. 그래, 너는 유령을 무서워하는 아이니까.) 조심할게.
 
곧 있으면 오늘의 첫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에요.
 
후카가 잇세이의 손을 음악실 밖으로 잡아끕니다.
 
음악실의 문이 채 닫히기 전에,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닫히는 문틈 사이로
 
시선이 날아든 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암막커튼 바깥으로 빛이 차단되어
 
삽시간에 어두운 칠흑이 내려앉은 음악실이
 
유독 기이하게 빛났던 것도 같습니다.
 
귀신 이야기를 들은 직후여서일까요?
 
찝찝한 기분이 듭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이성이 1 감소합니다.
 
음악실의 문을 단단히 단속하고,
 
둘은 교실로 향합니다.
 
어쩐지 하루의 시작부터 길게 느껴지네요.
 
.
 
.
 
.
 
어느덧 점심 시간이 종료되고
 
또 다시 식곤증이 학생들의 수면욕을 지배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후 1시 20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은 5교시.
 
물리 시간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있고 불어오는 바람의 빛은 투명합니다.
 
미지근한 공기가 뺨을 건드릴 때마다
 
어떻게 된 게 졸음만 쏟아집니다.
 
선생님:자자, 집중!
거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을 뭐라고 한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나 광원의 속도에 관계 없이 진행중인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설명 해줬었지?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어허, 왜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선생님:...잠 깨라, 이토자키.
 
이토자키 잇세이:.........ㄴ,네!
 
아니, 다른 애들도 전부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왜 나만?
 
억울함이 고개를 치켜드는 그 때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후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열은 조금 내린 걸까요?
 
얼마 있지 않아 활짝 펼쳐진 교과서 위에
 
뜯어진 메모지 조각이 올라옵니다.
 
오늘 방과후에 뭐해? -후카-
 
선생님:...적어도 강한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블랙홀은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다고 별표까지 달아줬을 거야. 교과서 확인해 봐.
다들 졸고 있는 것 같으니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볼까?
다들 어렸을 적에 시간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실제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경우 광속에 가까워질 수록 시간이 느려지니까, 빛보다 빨리 나아가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쪽지가 엉망으로 구겨져 있습니다.
 
아니면 대충 찢어낸 걸까요?
 
후카는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잇세이에게 시선을 던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딱히 하는거 없는데... 잠시 망설이다 끄적끄적 종이에 적는다.)
집.....
(......나 정말 하는게 없구나...)
 
츠루야 후카:(어쩐지 힘 없는 쪽지지만... 아래에 글씨를 끄적인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같이 갈래?
 
이토자키 잇세이:(조금 의외인데... 아래에 슥슥 이어적는다.)
음악실에만 있는건 아니었나보네, 좋아.
 
선생님: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2011년에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CERN에서 초광속입자 해프닝이 있기도 했는데, 궁금한 녀석은 학교 끝나고 찾아보도록 해라.
공부를 제대로 한 녀석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나아갈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라 허수의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즉,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위해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지.
 
츠루야 후카:(돌아온 쪽지를 다시 들여다보곤 뾰루퉁...)
유령 아니야.
 
이토자키 잇세이:(웃음 꾹... 참음)
알지, 유령이 무서운 츠루야 ^_^bb (이상한 이모티콘 그려둠)
 
선생님:우주 끈이나 웜홀을 사용한다거나. 하지만 웜홀이 그저 가상의 이론 상태일 뿐인 지금, 시간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미지의 구멍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자, 과연 미래에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할까?
혹여나 그렇게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은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나?
거기… 수업시간에 연애질이나 하고 있는 이토자키 잇세이.
 
선생님:네가 대답해봐라~
 
이토자키 잇세이:당연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딴짓 안한척 대충 들은 말 따라하기)
 
선생님:오호~ 다들 들었지? 아마 저마다 의견이 다를 거야, 그러니...
다음 시간까지 시간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 제출하도록.
누구처럼 의견만 늘어놓을게 아니라, 이유까지 상세하게 적는 게 숙제다!
 
숙제라는 소리에,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한껏 야유합니다.
 
5교시 수업은 다시 본래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
 
.
 
.
 
잇세이와 후카는 함께 하교길에 접어듭니다.
 
해 지는 속도가 느린 여름인지라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 이릇임에도
 
쨍한 햇빛이 어깨를 데웁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배경을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자리합니다.
 
츠루야 후카:있지, 아까 선생님한테 걸린 거... 나 때문이야..? (바닥을 보고 걷다가 눈치를 본다...)
 
이토자키 잇세이:신경쓰고 있었어? (더운 열기에 손을 대충 휘적거리다 시선을 힐금 던진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였는데. )
 
츠루야 후카:(끄덕...) 혼났잖아. (딱히 혼난 정도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네가 지목을 당한 일에 기가 죽은 듯) 숙제도 받고... (반 애들이 모두 받았지만)
 
이토자키 잇세이:아.... (그거 혼난거였나? 담임보다 착하던데. 내려다보면 푹 고개를 숙인 작은 뒷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선생님 원래 그래. (끙... 고민하다 네 가방을 챙겨 자신의 어깨에 걸친다.) 그렇게 신경쓰이면 이따가 아이스크림 사줘.
 
츠루야 후카:(아무래도... 존재감이 옅은 후카는 산셍님에게 지목당할 일이 거의 없다... 제 가방까지 어깨에 걸치는 모습을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다) 응. 그럼..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이토자키 군은 시내에 가면 보통 뭘 해?
 
이토자키 잇세이:(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고선 어깨를 으쓱한다. 조금 더 편하게 가방을 메고) 그냥 다른 애들이랑 비슷해. 같이놀땐 게임센터나, 가라오케... 패스트푸드점 가지. 츠루야는?
 
츠루야 후카:음... 서점이나 카페,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려나. 이토자키 군한테는 너무 시시할까? (...) 하지만 시내에 누구랑 같이 나오는 건 오랜만이야.
 
이토자키 잇세이:무난하지 않아? 집에 있는 것보단 낫지. (오랜만이라..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다 그제서야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붙는다.) 그럼 보통은 뭐했어? 귀가?
 
츠루야 후카:..가끔 산책하고... 좋아하는 장소도 들르고, 피아노 연습도 하구. (노잼인생)
 
한참을 걸은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근처에 위치한 상가 거리에 들어섭니다.
 
상가 거리는 이 근방에서 가장 훌륭한 발전이 이루어진 곳으로
 
특히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몇 달 전에 비해 돌아다니는 유동객의 수는 눈에 띌 만큼 줄었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붐비는 장소네요.
 
사거리에 접어들자 때마침 초록불이 점등합니다.
 
간만에 나온 거리의 풍경이지만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흐릿하나마 기억을 되살려
 
근처 상점가별 위치를 도식화시켜봅니다.
 
왼쪽 인도로 접어들면 뭐가 있더라….
 
잇세이와 후카는 식당, 카페, 영화관, 서점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대충 익숙한 길목을 떠올리고) 더운데... 우선 카페부터 들어갈까?
 
츠루야 후카:아이스크림? (나름 익숙한 장소인듯 당당하게 카페쪽으로 걸아감!)
 
 카페
 
코너 한구석에 외따로 세워져 있는 작은 카페.
 
건물 외벽을 장식한 벽돌 무늬와
 
입구의 난간 곁에 일렬로 도열된 동물 모양 피규어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메뉴판에는 하나같이
 
여느 카페의 메뉴판에서든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것들 뿐입니다.
 
그밖에도 계산대 아래 놓인 쇼케이스에
 
갖가지 베이커리와 케이크가 진열 되어 있습니다.
 
츠루야 후카:어떤 게 좋아? (콕콕)
 
이토자키 잇세이:(메뉴판 스캔중) 더우니까... 소다맛. 츠루야는?
 
츠루야 후카:나는... 쌀맛. (소다 아이스크림과 쌀 아이스크림을 점원에게 주문하곤) 이 근처에 영화관이 있대.. 이토자키 군, 가봤어?
 
이토자키 잇세이:(쌀맛.... 이런 메뉴도 있구나. 조금 신기하게 쳐다봄) 아... 어. 영화관은 종종 가는 편이라서.
 
츠루야 후카: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금 영화값 할인 이벤트 중이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이토자키 잇세이:아니..아니야. 그나저나 무슨 이벤트? (대충 창가에 자리 잡고 앉음)
 
츠루야 후카:자세한 건 못 들었지만... (정말 귀동냥으로만 들은 듯... 쪼르르 따라가서 네 맞은편에 앉는다.) 이토자키 군은 어떤 영화가 좋아?
 
이토자키 잇세이:딱히 가리는건 없는데.. (흠, 짧게 소리를 흘리다가) 굳이 따지면 드라마 쪽이 취향이긴 하네. 츠루야는 공포 쪽은 못보겠네. (놀리는거 아니다? 짤막하게 덧붙여)
 
츠루야 후카:공포 영화를..................왜 보는 거야? (진심으로 이해 안 가는 얼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스크림이 나옵니다!
 
츠루야 후카:먹어볼래? (쌀 아이스크림 권유...)
 
이토자키 잇세이:...츠루야 많이 먹어. (지긋...하게 보다가 고개 저음)
그...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먹더니 무언가 생각난듯 식탁을 톡톡 두드린다.) 불편하지 않으면 후카라고 불러도 돼?
 
츠루야 후카:(맛있는데... 조금 시무룩해졌다가...) 응? (뒤이은 호칭에 약간 놀란 듯 입이 합 벌어짐...) 원, 원래,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친구 없는 티 내기)
 
이토자키 잇세이:보통 그러지 않아? (18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도.) 왜, 혹시 나만 친해졌다고 느낀건가? (푸른 눈 빤히 봄...)
 
츠루야 후카: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눈빛 공격에 어버버) ..그럼 우리 친구야? ......잇세이. (힐끔)
 
이토자키 잇세이:친구가 아니면 뭔데? (반응이 재밌어서 그런지 자꾸 놀리게 된다.) 응, 후카. (만족스러운듯 슬 웃어)
 
츠루야 후카:아니야. 친구여서 기뻐... (말 하는 중간중간 멍 때리느라 아이스크림이 다 녹는다.) 저기, 잇세이는 친구.. 엄청 많지?
 
이토자키 잇세이:(또 멍때리네. 가만히 지켜보다, 아이스크림이 녹을새라 분주한 손길로 떠먹는다.) 엄청...까진 아니고. 평범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휘저어)
 
츠루야 후카:평범... (후카에게는 너무 높은 평범의 기준.. 녹은 아이스크림을 몇 번 휘젓다가) 그럴 줄 알았어. 엄청 자연스러우니까.. 나도 힘내서 친구 해볼게. (뭔가를 꿋꿋하게 다짐 중)
 
이토자키 잇세이:(보통 다 이러지 않나? 여전히 한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문점.) 친구 하는데에도 다짐이 필요한거구나.. 나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인걸. 거절당했다면 슬펐겠네. (한번도 거절당한적 없음)
 
츠루야 후카:거절할 리가 없잖아. 그럼, 친구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친구인 거지?.. 자주 못 본다고 친구가 끊어지거나... 그런 건 아니지? 싸우지 않으면 쭉 괜찮은 거지? (친구수업 받는중)
 
이토자키 잇세이:(후카는 친구가 별로 없구나.., 라는 말은 삼키고서 아무렇지 않은듯 태연하게 대꾸한다.) 서로 친구라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인 셈이지. 정 불안하면 증명서라도 만들까?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말하기.)
 
츠루야 후카:그럼 됐어. 혹시 증명서를 잃어버리면 어떡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다 먹은 컵을 정리한다.) 이제 어디로 갈까..
 
이토자키 잇세이:그 부분도 문제였구나... (생각도 못한 부분을 짚어내자 후우, 하고 한숨을 뱉는다. 다먹은 컵을 함께 정리하면서) 서점 어때? 아까 좋아한다고 했지.
 
츠루야 후카:서점에는 책이 많으니까... 마침 새로 들어온 악보집이 궁금했어. (자신 있게 앞장 서기)
 
 서점
 
자동문 너머로 들어서니
 
새 책들이 모이고 고여 있는 장소 특유의 결좋은 나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섞인 에어컨 냄새가 느껴집니다.
 
햇빛에 푹 절어 있던 몸이 조금은 되살아 나는 기분이네요.
 
후카는 무더위에 지친 기색을 하고서 서점에 들어서더니
 
악보집 코너 내지는 문제집 코너 근처를 서성입니다.
 
미리 찾아두었던 책이 있는지 검색대를 이용하는가 하면,
 
비슷한 출판사의 책 두어 권을 뽑아 펼쳐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서점이 꽤 넓은 탓에
 
잠시라도 다른 공간이나 책에 시선을 빼앗기거든,
 
잇세이는 금세 후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치 운동장처럼 펼쳐진 서점을 휘 둘러보면
 
서로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출입객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 사이엔 책 정리로 분주한 직원들 또한 섞여있고요.
 
후카가 있을만한 코너를 유추해봅니다.
 
역시 [음악 코너]? 아니면 [문제집 코너]?
 
오늘 새로 생긴 과학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 코너]에 들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끄응.....) (내키진 않지만 음악코너로 가본다.)
 
음악 코너에 들어서니 자연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과거 피아노를 연주하던 시절의 잇세이에게는
 
익숙한 장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음악코너를 살피던 당신은
 
다른 악보집이나 책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사이즈의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누군가 잘못 꽂아두었는지 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별 생각없이 삐죽 튀어나온 책을 꺼내본다.)
 
제목은 <빠르고 쉽게 이해하는 재미있는 상대성 이론!>… 이네요.
 
과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이 뜬금없이 음악 코너에?
 
펼쳐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아무리봐도 잘못 꽂아둔거 같은데.. (쫘르륵 펼처봄.)
 
이토자키 잇세이:(그래.. 난 예체능이지. 지금은 그것도 아니지만.)
 
그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여러가지 타임 패러독스에 관련된 내용들이 줄글 형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자료조사
기준치: 45/22/9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할아버지 패러독스>와 <타임 리프>에 관련된 대목을 발견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의 연장선이다. 대충 책을 넘긴다.) ...시간여행같은게 있었다면 다들 편하게 살았겠네.
 
또 어디를 가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여기에도 없으면.. (역시 문제집 코너인가? 그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새 문제집을 보러 온 학생들이
 
각 책장마다 두셋 즐비합니다.
 
과목별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어디를 살펴도 후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문제집 코너를 살피던 당신은
 
역시나 빽빽이 꽂혀있는 문제집들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게으른 누군가 구매를 재고하며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책일지도 모르죠.
 
빼내어 살필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또.. 타임리프에 대한 책은 아니겠지. (신경쓰이는듯 결국 책을 꺼내 살펴본다.)
 
제목은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음악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이 뜬금없이 문제집 코너에?
 
페이지를 넘겨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여기 서점직원은 근무태만이구나) (페이지를 넘겨본다.)
 
이토자키 잇세이:(이건 좀 흥미로운듯 유심히 읽는다.)
 
그 다음부터는 음악이 사람의 인지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소 지루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그렇구나... (지루하다..)
 
다음 코너로 가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어디있는거야, 후카...~ (과학코너로 감)
 
과학 코너에는 다른 코너에 비해 상주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습니다.
 
에어컨의 냉기가 속속이 섞여든 책장 틈을 둘러보면,
 
마찬가지로 후카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군요.
 
좀처럼 구미가 당기거나 흥미로운 책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대로 스쳐 지나가려던 잇세이는
 
부자연스럽게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또. (책을 꺼내본다.)
 
살펴보면 제목은 <전염의 역사>…
 
질병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가름끈이 끼워져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 일부를 읽을 수 있겠네요.
 
이토자키 잇세이:(최근 유행하는 전염병이랑.. 비슷한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대충 종이를 넘겨본다.)
 
전염병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 같네요.
 
음악, 문제집, 과학 코너를 모두 살핀 직후
 
누군가 잇세이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상대는 당연하게도 후카입니다.
 
책을 구매한 모양인지 악보 몇 권을 들고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아... 후카. (손에 들려있는 악보집을 슬쩍보더니) 다 샀어?
 
츠루야 후카:응. 잇세이는... 읽고싶은 거 없어? (안고 있는 각종 서적의 이름 사이에서 <의지가 꺾인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따위의 제목이 눈에 띈다...)
 
이토자키 잇세이:그게... 책은 자주 안읽거든. (저거 나보라고 산 책은 아니겠지? 애써 안본척 고개를 돌린다.) 역시 공부쪽은 아닌가봐.
 
츠루야 후카:(자기가 읽고 공부할 생각인 것 같다...) 그럼..? 좋아하는 과목같은거... 없어?
 
이토자키 잇세이:문학.....? (스스로도 자신없는듯..)
.....후카는?
 
츠루야 후카:으응... 수학은 아닌 것 같더라. (지난 수학시간을 떠올리는지 살짝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 나는... 나도 문학이려나..? (피아노 외에는 책을 주로 읽으니까..) 잇세이는 운동 잘해?
 
이토자키 잇세이:(반박할 수 없었는지 민망하게 앞머리만 매만진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 이 조그만한 머리로 별별 생각을 다한단 말이지. (농조로 말하더니 이어지는건 별로 내키지 않는 목소리다.) 운동... 전에는 했었어.
 
츠루야 후카:...상상력이 좋다는 뜻이야? (책을 바리바리 가방에 넣고 서점을 나온다.) 그럼 요즘은 안해..? 꾸준히 하면 좋은 거잖아. 운동이라곤 나도 산책밖에 안 하지만...
 
이토자키 잇세이:응. (들어줄까? 하고 손을 내민다.) 지금은 애들이 농구하자고 하면 잠깐 나가는정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심히는 안했던 것 같네.
 
츠루야 후카:무거운데... (요즘은 운동 안하는 잇세이... 줘도 괜찮을까? 망설이다.. 가방을 건네준다.) 배는 안 고파?
 
이토자키 잇세이:그 정도로 약하진 않거든? (대체 나는 무슨 이미지인거야??,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얌전히 가방 건네받음.) 조금 출출하네.
 
자연스럽게 식당 쪽으로 향하면,
 
요즘 SNS에서 핫하다는 소문의 맛집이 보입니다.
 
막 이름이 뜨기 시작한 체인점이라는데,
 
듣기로는 양식을 취급한다고 하던가요?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웨이팅이... 1시간 반이요?!
 
이토자키 잇세이:(우뚝..)
 
츠루야 후카:(우뚝...) 영화관 가서 팝콘 먹을까..?
 
이토자키 잇세이:... 영화보고 다시오면, 괜찮겠지?
 
츠루야 후카:이름 적어두고 가자... (웨이팅 리스트에 끄적끄적...)
 
이토자키 잇세이:응.... (옆에 2인이라고 적어둠. 번호까지 써둠..)
 
터덜터덜 영화관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영화관
 
영화관은 대형 상가건물 5층에 입점해 있습니다.
 
인테리어 리뉴얼이 진행되며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던 곳인데
 
때마침 저번 주에 정상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공사중이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네온 조명이 은은하게 유리바닥을 적시는 5층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달콤하고 짭쪼름한 팝콘 냄새가 풍깁니다.
 
티켓을 소지한 사람들이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영화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운터 직원에게 문의하거나
 
자동 발권 기계를 이용해 티켓을 발권할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10대답게 자동 발권 기계로 갑니다.)
 
상영표를 확인하면…
 
여름 특집 테마의 납량 괴담 공포물과 로맨스 코미디,
 
평론가의 리뷰가 후하다는 액션 영화나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SF풍 판타지 영화도 눈에 띄네요.
 
동심이 필요한 어른들을 겨냥한 3D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도 붙어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대충 훑는데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없다.) 보고싶은 영화 없어?
 
츠루야 후카:(3D 애니메이션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겨우 고개를 SF 판타지 쪽으로 돌린다.) 시간여행... 과학숙제도 있으니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이토자키 잇세이:(물끄럼...) 이거 안봐도 괜찮겠어? (3D 애니메이션 손으로 가리킴)
 
츠루야 후카:...잇세이, 애니메이션 좋아해? (외면...)
 
이토자키 잇세이:좋아하는데? (고개 돌려서 다시 후카봄)
 
츠루야 후카:정말? (어쩐지 화색이 도는 얼굴...) ...아, 아니야. 생각해보니 옛날에 봤던 것 같아. (을 애써 갈무리하며 꿋꿋하게 SF 영화를 꾹꾹 누른다.)
 
이토자키 잇세이:그래? 내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가리키고 있는 글을 읽는다. SF 판타지 영화라...) 요샌 이런 소재가 인기 많나보네.
 
그때 불쑥,
 
티켓 발권을 돕던 직원이 나타납니다.
 
점원:고등학생 커플이신가요? (귀여워라~.. 훈훈한 눈빛을 보내며)
저희 SR시네마에서는 리뉴얼 개관을 기념하며 학생 커플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할인율을 듣자하니 무려... 63%라는군요!
 
이토자키 잇세이:(63%.... 심장이 떨린다.)
 
츠루야 후카:(정직하게 아니라고 말하려다... 어쩐지 눈이 빛나는 것 같은 잇세이를 바라본다..) ...?
 
이토자키 잇세이:그렇게 티 났어요? (후카를 보고 웃더니 슬쩍가서 붙음) 사귄지는.. 얼마 안 돼서. (부끄러운듯 짐짓 뒷목을 매만진다.)
 
츠루야 후카:....응? ............응??? (고장난 듯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옆을 올려다봄... 친구가 된지 얼마 안된거잖아? 하는 눈빛)
 
이토자키 잇세이:응?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대꾸하더니 슬쩍 네 귀에 속삭인다.) 여자친구도 친구야.
아..~ 그 후카가 부끄럼이 좀 많아요.
 
츠루야 후카:그런.. 그런가...? (설득당하는 중...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잖아!) ...... (차마 미안해서 점원을 못 쳐다보고 잇세이의 소매를 꾹 잡는다...)
 
점원:아하, 그렇군요! (그 모습을 보고 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할인 진행해드릴게요~ (쇽 영화티켓 뽑아주고 감)
즐거운 영화관람 되세요~~
 
이토자키 잇세이:감사합니다. (뿌듯하게 영화티켓 받고 고개를 돌리면 푹 숙인채 바닥만 보는 네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런건 싫어? (별로였나, 고민과 함께 허리를 살짝 숙여 다시금 눈을 마주한다.)
 
츠루야 후카:안 싫어... 나 대신 잇세이가 거짓말 해준 거잖아. 내가 잘 못하니까.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어올리곤) 그치만, 혹시... 없지?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진짜 여자친구.
 
이토자키 잇세이:(빨개졌네.. 괜히 손 뻗어서 볼 쿡 찔러봄. 이내 허리를 쭉 피고 손가락 사이에 낀 티켓을 이리저리 흔든다.) 없-어. 아무리 할인받는게 좋아도 그런건 안하거든. 뭐...친구라면 있지만.
(이리저리 둘러보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춘다.) 팝콘 먹을래? 사줄게.
 
츠루야 후카:다행이야. 분명 있을 거라고... (없다는 것은 의외지만 내심 안도한 듯 길게 숨을 내쉰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잡은 채로 팝콘 기계를 향해 간다.) 출출하다 그랬지 참.
 
이토자키 잇세이:엑... 그래보여?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가 네 손에 이끌려 팝콘 기계가 있는 매점쪽으로 향한다.) 팝콘은 오리지널 맛으로 하고.. 음료는 어느쪽?
 
츠루야 후카:나쁜 의미.. 아니야, 잇세이는 인기 많을 테니까. 있어도 이상할 거 없잖아.. (곰곰 생각하다) ...음료는 레몬에이드로.
 
팝콘까지 사고 나면 대략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영화관 게임 코너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스티커 사진 기계를 발견합니다.
 
기계에 천 원 짜리 세 장을 투입하면 사진 세 장이 찍히는 시스템이네요.
 
이토자키 잇세이:(할거 없나... 하고 둘러보면 익숙한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손을 뻗어 기계를 가리킨다.) 후카, 저거 해봤어?
 
츠루야 후카:나 알아, 사진 찍고 그 위에 이상한 낙서를 잔뜩 하는 곳이지? (해봤다는 말은 안 함...)
 
이토자키 잇세이:(안해봤구나..) 해볼래? 알려줄게.
 
츠루야 후카:어떻게 하는 건데..? (일단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
 
한 번 촬영할 때마다 <행운&외모>판정을 통해 사진의 결과물을(?) 판가름 할 수 있겠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사진은 세 장면 묶음으로 딱 한 장만 출력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한장.... (후카 줘야지)
 
스티커사진 기계에 들어가 화면을 터치하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진 촬영이 시작됩니다.
 
시간이 없어요! 어떤 포즈를 하죠?
 
이토자키 잇세이:(슬쩍 후카한테 기대서 브이V 함)
 
츠루야 후카:(어정쩡하게 브이...!)
 
3
 
2
 
1
 
이토자키 잇세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츠루야 후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츠루야 후카:
기준치: 40/20/8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잇세이... 눈 감은 것 같아. (당황)
 
이토자키 잇세이:.........그러네.
 
츠루야 후카:다시 못 찍는 거야..?
 
이토자키 잇세이:응...
이번엔 제대로 눈 떠볼게.
 
지나간 사진은 놓아줍시다.
 
다음 포즈를 취해주세요!
 
이토자키 잇세이:(후카 머리에 뿔만들어줘요.)
 
츠루야 후카:나.. 나는? (손 높이 올려서 어떻게든 잇세이한테 뿔 만들려고 끙끙)
 
3
 
2
 
1
 
이토자키 잇세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츠루야 후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츠루야 후카:
기준치: 40/20/8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처참하게.. 흔들린 것 같네요.
 
이토자키 잇세이:아... (안흔들렸어도 잘나왔을 것 같은데...)
 
츠루야 후카:원래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토자키 잇세이:어...어...... (말못해... 그냥 우리가 못찍는거라고는...)
 
츠루야 후카:그렇구나!
 
이토자키 잇세이:마지막이니 힘내보자..!
 
그래요! 마지막 사진이 남아있죠!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해봅시다
 
이토자키 잇세이:(모르겠다.. .그냥 환하게 웃음)
 
츠루야 후카:(어딜 봐야하지?? 방황하다가 잇세이 볼 쿡)
 
3
 
2
 
1
 
이토자키 잇세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츠루야 후카: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츠루야 후카:
기준치: 40/20/8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드디어!!!!!!
 
잘 나온 사진이 나왔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이건 잘나왔는데? (마침내...)
 
위에 두 컷은... 조금 눈물이 나지만 괜찮아요!
 
스티커 사진을 꾸며주도록 할까요?
 
이토자키 잇세이:한번 해봐. (후카 앞에 세워줌)
 
츠루야 후카:(구름을 열심히 그린다... 유령도 그린다... 리본을 잇세이 머리 위에 올려둠)
 
이토자키 잇세이:(옆에서 후카 머리에 토끼귀 그려주고 있음)
 
츠루야 후카:(질세라 고양이 귀 그리기)
 
이토자키 잇세이:(예체능의 혼을 담아서 후카를 꾸밈. 후.꾸중)
 
그러니까.. 음악 전공이 아니라 미술 전공이었나요?
 
혼신의 스티커사진 꾸미기를 하고
 
완성된 사진이 인쇄됩니다
 
츠루야 후카:(폴라로이드처럼 들고 팔락대기)
 
이토자키 잇세이:어때? 마음에 들어?
 
츠루야 후카:위에 두 사진도 나름 웃긴 것 같아. (만족...)
 
이토자키 잇세이:계속 보다보면.. 나름 괜찮을거야. (아마)
 
사진은 잇세이가 생각한 대로 후카가 소중하게 챙깁니다.
 
슬슬 영화시간이 다 되었네요.
 
상영관으로 들어갑시다!
 
츠루야 후카:(팝콘 주섬주섬.. 음료수 주섬주섬)
 
이토자키 잇세이:그건 내가 할게. (받아챙기고서 티켓을 손에 쥐어준다.) 자리 알려주라.
 
츠루야 후카:H열 14, 15번인가봐. (사람들을 피해 쇽쇽 들어간다.)
 
이후의 영화는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어느새 어두웠던 화면이 밝아지면,
 
두 사람은 상영관에서 나옵니다.
 
후카도 재미있게 관람한 기색으로,
 
영화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네요.
 
이토자키 잇세이:(열심히 이야기 들어줌) 재밌었나보네.
 
츠루야 후카:선생님이 설명할 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 같았는데... 영화로 보니까 재미있었어. (가는 길에 포스터도 하나 챙기며) 잇세이도 주인공처럼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어?
 
이토자키 잇세이:이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 같더라. .... (짧게 고민하더니 입을 연다.) 돌아가는 것 정도라면, 응. 누구든 그런 기억 하나 정도는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츠루야 후카:..그러고 보니 잇세이는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이 과거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잠시 입을 닫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 그때로 돌아가서.. 뭔가 바꾸고 싶은 일이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그때가 너무 좋았던 걸까.
 
이토자키 잇세이:아... 그렇게 말했었지. (까먹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목소리가 어지간히도 시큰둥하다.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허황된 판타지일 뿐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딱히.. 돌아간다해도 바꾸고 싶진 않아.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것 같거든. 하지만 잠깐이나마 과거를 경험하는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츠루야 후카:돌아가도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거라면... 적어도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는 뜻이구나. (담담한 목소리에도 이어지는 생각이 있다. 만약 정말 간절한 것이 있다면, ...그게 아무리 허황된 판타지라도 붙잡고 싶을 거야. 꿈을 꾸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돌아가고 싶다는 건, 그곳에 미련은 남은 거야...
 
이토자키 잇세이:응. (네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적어도 내가 남길 후회는 없다. 남은건 미련과, 떠올리지 못할 과거의 파편일 분.)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후카는 없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라던가.
 
츠루야 후카:돌아가고 싶은 순간... 없는 것 같아, 응. (이제 없어. 그리웠던 기억이야 많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 한다면 흔쾌히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은 한심할 정도로 겁이 많아서, 고작 하나의 행동을 위해 갖은 생각을 하고야 마니까.) ...지금쯤이면 식당에 자리가 났을 거야.
 
이토자키 잇세이:그렇다는건, 후카는 매 순간에 미련없는 선택을 했던걸까...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고 고민하는 너라면 분명 가장 이상적인 선택을 내렸을테니까. 이어지는 짧은 침묵에 더는 묻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서,) 아까같은 줄은 없겠지? 가보자.
 
식당으로 돌아가보면
 
아까 적어두었던 웨이팅 리스트 덕에 무사히 입장이 가능합니다.
 
음식점은 패밀리 레스토랑 풍으로
 
잔잔한 클래식이 연주되어 흘러나오고 있으며
 
깔끔한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구성입니다.
 
직원은 두 사람을 창가쪽 자리로 안내한 뒤
 
메뉴판을 건네주고 사라집니다.
 
츠루야 후카:(어쩐지 비싸보인다... 주변을 낯선 듯 연신 둘러보다 어색하게 메뉴판을 펼쳐든다.) 어떤 게 좋아..?
 
이토자키 잇세이:일단 한번 볼까.. (메뉴판 펼쳐봄)
 
메뉴판을 슥 훑어봅니다.
 
한우 비프 샐러드
 
크림소스 스파게티
 
셰프의 추천 수프
 
토마토를 넣은 해산물 리조또
 
화이트 앤초비와 판체타를 곁들인 카프레제
 
지중해식 올리브 오일 소스와 신선한 토마토를 곁들인 농어 요리
 
호주산 양갈비 구이
 
라이브 랍스터
 
그릴감자와 올리브를 곁들인 피문어 구이
 
새우살을 곁들인 시져 샐러드…
 
이토자키 잇세이:....
........
(가격을 봄)
 
츠루야 후카:.....................
 
이토자키 잇세이:
재력
기준치: 40/20/8
굴림: 50
판정결과: 실패
재력
기준치: 40/20/8
굴림: 2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몇몇 메뉴들은 조금 가격대가 있긴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도 먹을 수 있을만한 메뉴도 분명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이런 것들은 괜찮아보이는데... 어때? (적당한 가격대로 골라봄)
 
츠루야 후카:(눈 데굴...) 샐러드 가격은 왜 이런거야? (소곤..)
 
이토자키 잇세이:......그러게. (부모님이랑 왔을 때나 먹어봤지...)
 
츠루야 후카:다음에는 저기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기죽음)
 
점원:주문하시겠어요? (환하게 웃으며 다가옴..)
 
이토자키 잇세이:응.... (식당은 선택 미스다.)
아 여기, 크림소스 스파게티랑 해산물 리조또, 시져 샐러드 하나씩 주세요. 음료는... 후카, 뭐 마실래?
 
츠루야 후카:음료는 아까도 마셨으니까, 그냥 물 마실래... (절대 음료 가격에 기죽은 게 아니다 절대 절대...)
 
이토자키 잇세이:그럼 이렇게만요. (하하... 어색하게 웃음. 그냥 시켜도 괜찮은데..) (생각보다 지갑사정이 괜찮았다.)
 
츠루야 후카:(이쪽은 용돈을 탈탈 털었다)
 
점원:네~ 그럼 크림소스 스파게티 하나, 해산물 리조또 하나, 시져 샐러드 하나 준비해드릴게요. 식전에는 스프와 빵이 기본으로 제공된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네. 감사합니다...^^
 
비싸지만...
 
비싸지만 인기 많은 곳은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후 연이어 나오는 음식들은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이토자키 잇세이:
기준치: 55/27/11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맛은 괜찮습니다.
 
괜찮은데...
 
왜 어제의 편의점 도시락이 자꾸... 아른거리는 걸까요.
 
이토자키 잇세이:(하지만... 편의점에 데려갈 수도 없잖아)
 
츠루야 후카:(냠냠 나름 맛있게 먹고 있다.) 왜 그래..?
 
이토자키 잇세이:어? 별거아냐. (머리속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털어버린다.) 맛은 어때?
 
츠루야 후카:맛있어. (우물우물... 절대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 아까우니까!) 잇세이는... 표정이 미묘하네.
 
이토자키 잇세이:그래보여? (조금 머쓱하게 웃다가 네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준다.) 그래도 후카가 맛있게 먹으면 된거지. 이거도 먹어.
 
츠루야 후카:(별로인 걸까..?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다 제 접시에 올라온 음식을 다시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잇세이는 무슨 음식이 좋아?.. 다음에는 그걸 먹으러 가자.
 
이토자키 잇세이:(잘먹네 더 줄까... 조금 더 네 그릇에 덜어주더니 자신의 몫을 먹는다. 이어지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고.) (당장 떠오르는게... 편의점 도시락, 편의점 도시락, 그리고 편의점 도시락이라고는 말 못하지...) 라멘... 어때. 이건 너무 평범하나?
 
츠루야 후카:(절찬리 살 오르는 중...) 나도 라멘 좋아. 특히 미소라멘... 아, 소바도 맛있겠다. 겨울 되면 나베도 따뜻해서 좋고. (종알종알.. 보기보다 음식을 좋아하는 듯... 제 몫의 접시를 깨끗히 비우고 포크를 내려놓는다.) 잘 먹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미소라멘 좋지. (고개를 끄덕이며 네가 나열하는 음식들을 귀담아 듣는다.) 다 잘먹나보네.. 그럼 가리는건 따로 없어? (이쪽은 의외로 입맛이 짧은듯... 음식이 약간 남은 상태에서 식기를 내려둔다.) 잘 먹었습니다.
 
츠루야 후카:가리는 거...? (끙..) 매운 건 별로 안 좋아해. 혀 아프고, 속 쓰리고... 음식을 먹는게 아니라 꼭 불 구덩이를 삼키는 것 같은 걸. (네가 다 먹은 걸 확인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있지, 아직 시간 돼?
 
이토자키 잇세이:아... (매운거 잘먹음) 보통 다들 그런 맛은 잘 못먹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평범하게 놀기만했네. (자리에 일어나며 시간을 확인하더니, 가볍게 끄덕인다.) 여유있어.
 
시계를 살피면 대략 7~8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여름이 농익어가며
 
하늘에 해가 떠있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교연한 노을이 상공과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츠루야 후카:꼭 들러야 할 곳이 있어.
 
후카는 잇세이와 함께
 
어느 외진 골목길에 접어듭니다.
 
주변을 살피면
 
양옆으로 붉은 벽돌이 고루 쌓여 있고
 
그 표면을 담쟁이 넝쿨과 장미꽃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요 근처에 이런 길이 있었는지…
 
금시초문입니다.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바삐 변화하는 도시입니다.
 
도로 위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차량이
 
오늘의 배기음을 터뜨리며 지나다니고,
 
몇 달 새에 하늘을 찌를듯
 
드높게 건축된 신설 빌딩이 세워지는 것이 예사인 곳.
 
으레 생기는 변화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야만
 
내일에 적응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니까요.
 
번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 하나가
 
고스란히 남겨진 듯한 풍경은
 
꽤 낯설지도 모릅니다.
 
츠루야 후카:내가 산책하는 길이야. 이 길의 끝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거든... (앞장 서서 길을 밟으며 뒤를 돌아본다.) 특별히 너한테만 알려줄게.
 
이토자키 잇세이:(붉은 노을을 등진 네가 유달리 빛나보인다. 무엇도 물들지 않은 네 머리색은 어떤 하늘 아래에 있어도 잘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치 않은 광경. 그 중에서도 유달리 이질적인 너라는 존재. 말없이 지켜보다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음악실 같은 곳이려나.
 
츠루야 후카:역시 감이 좋네.. (평소의 차분함을 잃은 목소리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가벼운 발걸음은 저녁의 서늘함을 머금은 돌길과 풀잎을 밟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잇세이도 그곳을..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어.
 
점점 더 좁아지는 골목을 나아가다 보면
 
머지 않아 그 끝에 당도합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귀퉁이에 세워진 다 낡은 악기상 앞에 머무릅니다.
 
쿰쿰한 나무썩은내,
 
비릿한 풀냄새와
 
한층 짙어진 여름의 오존 냄새가 머리맡을 맴돕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흰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악기상,
 
기스 투성이 전면유리창 너머로
 
갖가지 악기들이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잇세이가 무어라고 입을 열 새도 없이
 
후카는 악기상의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딸랑.
 
계절의 구색을 맞추듯
 
청명한 현관벨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츠루야 후카:어때? (마치 제 집에 들어온 것 마냥 편안한 얼굴이다. 익숙하게 악기상에 들어서선 열린 문을 붙잡고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토자키 잇세이:정말....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곳이네. (그러면서도 시선이 자연스레 악기로 향하는 것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오랜 낡은습관이다.) 후카라면 이런 곳 좋아할 것 같았거든. (우두커니 서있다, 문득 자신을 기다리는 너를 발견한다. 그제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선다.)
 
빛이 바랜 카운터 좌석에 앉아 있던 악기상의 주인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흘끗 확인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교복 차림새의 학생 두 명이 무언가를 살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나봐요.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흐릿하나마 찝찔한 먼지 냄새가 납니다.
 
살피기에는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이 인상적이고,
 
악기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갖가지 악기들
 
진열대 위에 놓여 있거나, 벽에 걸려있거나 합니다.
 
악기만큼은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하나같이 먼지가 쌓이지 않은데다 광택이 돕니다.
 
후카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눈치입니다.
 
악기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뭐 찾아? (의식적으로 악기로 향하는 시선을 떼어낸 채 네게 말을 건다.)
 
츠루야 후카:찾는 악기가 있는데... (의아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아무래도 지금은 없나 봐..팔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
 
이토자키 잇세이:한번 여쭤볼까? (카운터쪽을 힐끔 살핀다.)
 
팔꿈치를 올린채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악기상 주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츠루야 후카:혹시... 저기 한 켠에 있던 피아노는 어디에 있어요?
 
이토자키 잇세이:(옆에 서있음)
 
점원:아, 그거... 시에서 대여해갔다. 어디에 쓰려고 대여 해갔는지는 몰라도... (졸린 듯 손을 휘적인다...)
 
대답은 해줍니다만 그리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카운터 위에는 낡아빠진 아날로그 시계
 
라디오가 올라와 있고,
 
그 옆에 읽다만 신문이 놓여 있네요.
 
이토자키 잇세이:(낡은 시계를 흘깃 본다.)
 
골동품 가게에서 주워올 법한 연식의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
 
시계약은 꼬박꼬박 잘 갈아주고 있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은 별 무리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낡은 시계를 잘만 쓰네..) (시선을 내려, 신문을 본다.)
 
잘 알려진 신문사의 주간 신문입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호가 아니라 몇 주 전에 발행된 신문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읽어보자)
 
이토자키 잇세이:별로 좋은 뉴스는 아니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기사 날짜를 재차 살피니
 
이 신문은 3주 전에 인쇄된 호입니다.
 
'지난주'가 덧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 유추하건대
 
그 매혹적이라는 B씨의 연주는
 
대략 한 달 전에 콘서트로 진행되었던 모양이에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혹은 위화감이거나
 
어떤 감이 작용하며 드는 느낌일 지도 모르고요.
 
한 달 전이라면…
 
지금 유행 중인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최초로 전파되었던 시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흠....) (라디오에 귀 기울인다.)
 
척 보기에도 만들어진지 기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라디오.
 
노이즈 낀 저음질의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지금은 없는 것 같은데... (후카 봄)
 
츠루야 후카:그 악기를 소개시켜 주러 온거였는데... (아쉬운 얼굴로 책장으로 가 악보집들을 살펴보기 시작해)
 
이토자키 잇세이:피아노를? (특별한 의미라도 있었나... 생각해보다, 옆면의 책장으로 눈을 돌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어깨과 어깨를 맞댄 채 꽂혀 있습니다.
 
어느 한 권 빠짐 없이 세월의 흔적이 누렇게 껴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가 얕게 쌓여 있기도 하고,
 
모서리가 찢어진 악보집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종이는 관리하기 힘드니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예전엔 이런 곳도 자주 갔었지...) (괜히 먼지가 쌓인 책장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듯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악기를 구경한다.)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타현악기인 피아노까지.
 
이 허름한 악기상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반짝이는 악기들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리합니다.
 
창측 한켠에는 들여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진열된 다른 악기들보다도 아름답고 깨끗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새로 들어온 피아노인가? 별 생각없이 가까이 다가간다.)
 
지금 눈 앞에 있는 피아노도 제법 훌륭해보이는데,
 
후카는 무엇을 찾는 걸까요?
 
츠루야 후카:(책장의 악보들을 모두 구경했는지, 먼지가 묻어 조금 꼬질꼬질 해진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다가온다.)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잇세이에게 이곳을 보여준 걸로 만족할래.
 
이토자키 잇세이:(익숙한 발소리에 언제 피아노를 봤냐는듯 고개를 돌린다. 곁눈으로 대충 살피더니 손수건을 집어 미처 덜 닦인 부분을 닦아준다.) 자주 오는 곳이야?
 
츠루야 후카:알게 된 후부터는... (네 시선의 끝을 따라가다, 말을 흐린다.) 여기 악기들이랑, 악보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까. ...잇세이는? 이곳이 어땠어.
 
이토자키 잇세이:후카랑 잘 어울려. (곤란한듯 눈웃음을 짓더니, 네게 되묻는다.) 듣고 싶은 답이라도 있는거야?
 
츠루야 후카:...우연이네. 나는 잇세이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 (살짝 미소를 짓는다.) ......있지, 별로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아도 괜찮아.
 
이토자키 잇세이:....들켰네. (어색하게 웃다 또 웃었네, 라는 말과 함께 제 얼굴을 손으로 덮고 길게 숨을 내쉰다.) 이건.. 습관이라서. 웃지 않으면 어떤 표정으로 봐야할지 모르겠거든.
난... 피아노를 관뒀어, 후카.
 
츠루야 후카:나는 그냥... 어쩔 줄 모르는 표정, 그대로면 된다고 생각해. (이제야 겨우 말해주는구나. 지금껏 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지금은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곡으로 피아노를 시작했고, 어떤 곡을 가장 좋아했는지 물었고, 너는 대답해주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듣지 못했다. 알고 있어도 내색하지 않은 이유는 네게 직접 이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작이 있어야 끝을 맺을 수 있듯, 끝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기에.) ...어째서?
 
이토자키 잇세이:좋아보이진 않을텐데. (너는 참 이상한 아이다. 웃는 것을 관두자, 드러나는 것은 허물없는 얼굴. 더는 잡을 것이 사라져 남은 것은 미련뿐인 바보같은 모습이다. 누구에게도 꺼낸 적 없는 진실을 토해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대로 저 아랫편에 잠겨있으면 좋았을 기억을 드러내야할테니까. 그럼에도 티 없이 맑은 눈동자가 눈 앞에서 진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을, 피아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걸까. 끊임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마침내 그냥 뱉어버리기로 한다.) 그냥... 피아노를 치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져서. 맥빠지는 이유지?
 
츠루야 후카:(네 장난기 있는 웃음은 상대를 안심시키는 면이 있다. 그 가벼운 웃음이 제게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분명한 일이고, 그 덕에 이렇게 네 옆에 서있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웃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제 마음 하나 편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게 겁이 났어? (길었을 고민, 끈질겼을 괴로움... 모진 불안을 뱉어낸 축약한 한 문장은 충분하지 않았다.) ...부족해. 잇세이가 생각하는 피아노를 알려줘.
 
짙은 땅거미가 아스팔트와 돌바닥을 기기 시작한 저녁과 밤,
 
그 사이의 애매한 시간입니다.
 
소등되어 있던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점등하며
 
온전히 어두워지진 않은 길을 비춥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이후
 
도시는 저녁시간대 특유의 활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후카는 궁금한 것도 많네. (웃음도 슬픔도 걸려있지 않은 본연의 얼굴은 다소 공허하다. 더는 채울 무언가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뜸을 들이다, 발치에 걸린 작은 돌멩이를 툭 걷어찬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하늘에 작은 달이 걸리겠지. 그렇게 튀어나온 말은 조금 뜬금없다.) 월광은 좋은 노래야. 그렇지?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휘몰아치는 것이 가슴을 뛰게 만들어. 하지만.. 실제로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때의 상황은 아주 우울했대. 청각 장애를 겪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기도 힘들어서.
...비슷한 상황의 친구가 하나 있었어. 그 친구는 후카처럼, 정말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어쩌면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치고 싶다고 생각했었을지도 몰라.
 
츠루야 후카:잇세이의 이야기니까. (웃음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남은 것을 찾으면, 무감함만이 찌꺼기처럼, 웃음의 잔재처럼, 그곳에 있다. 저물어가는 날처럼 그늘이 몸을 부풀려서 너를 집어삼킨다. 그 그늘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뎌 네 옆에 섰다. 곧 모습을 드러낼 달이 우리를 찾아주길 바라듯, 하늘을 바라보면서.) ...... (꼭 다문 입에서는 어떤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다만 굳이 손을 뻗지 않아도 끝이 뜨거운 손이 스치고, 중간중간 대답을 하듯 고개가 살짝씩 궤도를 달리한다.)
 
이토자키 잇세이:사실 나는 그 친구만큼 음악이 간절하지 않았어. 늘 적당히 해도 평균이상은 해냈으니까. (작은 발소리가 옆에서 울린다. 미처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들어 저물어가는 하늘을 공허한 두 눈 속에 담는다.)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 불필요한 친절을 건넸지. 함께 연습했던 곡으로 입상을 한다면, 친구가 좋아할 줄 알았거든. 설령 그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그 다음은 예상이 가?
(눈을 감으면, 그 날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건 괴로움에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장애보다 눈 앞의 나라고 소리쳤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무엇도 알려고 하지 않은...) 나는 당연히 상을 타냈어. 그 날을 마지막으로 그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야.
 
츠루야 후카:...아니야. (마음과 마음을 저울질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신이 존재한다 해도 덜한 마음과, 더한 마음을 가릴 수는 없다. 그날의 너는 분명 피아노를 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난 뒤에는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나의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수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세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긴장을 이겨내고 끝내 박수를 받을 수 있었겠지. 누군가의 기억에 남은, 가장 눈부신 월광으로. 그 마음의 방향이 누군가를 향해 있을 순 있었겠지만, 노력 하나는 오직 피아노를 향해 있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건 네가 아니야. 아무도 너를 몰라주는데, 네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데. 네 피아노가 전하는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으면서... 왜 네가 누군가를 알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상처 받아야 해.. (아직까지 아물지 못한 네 모습에 되레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억울함이 차올라서, 목이 먹먹해지고 속이 갑갑해져서, 너의 속죄에 공감해주지 못하겠다.) 미안해, 잇세이. 나...... 그 친구가 미워.
 
이토자키 잇세이:(속죄라는 말로 잘만 포장했지만, 사실은 죄책감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순 없었겠지만, 있던 죄가 없어지는 것 또한 아닐테니까. 그 뒤로는 줄곧 피아노를 치는 일이.. 두려웠다.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야하는 걸까. 어떤 생각을 하며 건반을 눌러야하는거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무엇이였고? 더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도망쳤다. 마지막까지 겁쟁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찬찬히 이어지던 상념을 끊은 것은 가날픈 목소리였다.)
(드문드문 끊기는 소리에 먹먹함이 가득했으니까. 그제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내리면 감정이 투명하게 비치는 그 얼굴이 잔뜩 속상해져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았다. 제 일이 아닐텐데도 제 아픔처럼 공감해주는 아이. 만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러는 걸까. 아니, 처음부터 네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툰 연주를 선물했던 너는, 다시금 서툰 위로를 건넨다.)
아무도 몰라주는건 아닌 것 같네. 적어도... 지금은 후카, 네가 있잖아.
(그 투박함이 좋았다. 충동적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사이로 드러난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여전히 뜨끈한 열감이 느껴지는 온도. 느릿하니 눈을 깜빡이면 어느새 작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상하지, 꾸며낸 것이 아닌데도 네 앞에선 그냥 웃음이 나와서.) ...세상에 내 편이 있다면 꼭 이런 기분일까?
 
츠루야 후카:(몸을 식혀주는 온도. 여름의 어스레한 늦저녁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물기 어린 눈이 시렸다. 너무 속상한데, 속상해서 할 수만 있다면 소리를 내어 울고 싶은데... 제 앞에서 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네 얼굴이 이전과는 달리 어딘가 가볍고, 개운해 보여서... 그 얼굴을 망가뜨릴까 봐 그냥 울 것 같은 얼굴로도 웃어버렸다. 네게 공감을 해주는 것은 이미 실패했고, 말주변이 없으니 한마디 말로 위로하기는 어렵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는 연주할 피아노조차 없으니까... 그대로 네 허리를 두 팔로 꾹 끌어안았다.) ...나, 그 친구를 이겨볼게.
잇세이는 내가 못하는 걸 대신 해줬으니까, 내가 잇세이가 못하는 걸 해줄게. 네 마음에서 그 친구를 넘어서면, 너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면...... 그 친구의 말 같은 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네가 피아노를 두려워 한다면 그 마음이 희석될 때까지 피아노를 치겠다 다짐한다. 피아노 앞에 가져올 마음이 없다면... 연주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커다란 마음을 만들어주겠다. 전달할 말이 없다면 답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연주를 들려주면 된다.)
 
이토자키 잇세이:(붉은 석양이 저물고, 저 편으로 달이 떠오를 무렵 작고 따스한 온기가 다가와 안긴다. 어째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기어코 웃고있는 네 모습이 왜 이리도 눈이 부신지. 저 작은 머리 속에서 또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아픔에 무뎌진 나와 다르게 너는 작은 상처에도 허물없이 속상함을 내비쳤으니.) ... ....기대해도 돼?
지금 당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오랫동안 포기만 해왔으니... 이번 한번쯤은 기대해도 괜찮잖아. (허락을 구하는 대상은 없다. 그저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섞여들었을 뿐이다. 만약 네가 이 앞까지 다가온다면, 그렇다면 그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두려움에.)
(그러니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오랜 시간 짓물린 상처가 하루아침에 나을리 없으니. 그저 그 순간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던 나의 몫을 네가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네가 그 아이를 닮았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취소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바보같을만큼 정성스럽고,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다. 문득, 이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들었던건 어째서였을까.) 가장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네, ...고마워.
 
츠루야 후카:...절대 지지 않을게.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형편 없을 정도로 미약하지만, 속에 담긴 다짐만큼은 단단했다. 우리 사이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우리의 앞에 기약 없는 시간을 잡아 끌어다 메꾸고, 대화가 부족하다면 음악으로 채우면 될 테니까.)
있지, 잇세이. 까마득한 곳에 멈춰 있는 사람을 따라잡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해. 그냥 그곳으로, 그곳만 보고 뛰어가면 되거든... (숨이 차면 쉬어가되 지치지 말자. 발을 늦춰 느리게 걷되 멈춰서지 말자. 앞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지 않을 때까지... 온전히 우리의 발자국을 새길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이렇게만 내 옆에 있어줘. 그거면 돼..
 
두 사람은 걸어온 길을 돌아갑니다.
 
가벼운 돌이 발 끝에 채여서 굴러가고,
 
풀벌레 우는 소리에 바람 소리가 묻힙니다.
 
후카와 잇세이는
 
귀갓길에 광장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후카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피아노를 향해 다가섭니다.
 
낡디 낡아 의자에 앉는 사람도,
 
건반에 손을 대는 사람도,
 
하다못해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이
 
분수대 맞은 편에
 
그저 장식물처럼 배치되어 있는 나무 피아노입니다.
 
후카는 손끝으로 건반을 쓸어내립니다.
 
그 손길엔 어딘가 그리움이 묻어나서,
 
말을 하지 않아도 이 피아노가 후카가 찾던 악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원인 모를 친근감이 듭니다.
 
츠루야 후카:잇세이. ...연주, 들어줄래?
 
이토자키 잇세이:(이런 피아노를 본적이 있던가? 미묘한 위화감에 설핏 인상을 찌푸리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무슨 곡을 들려줄지 궁금한걸.
 
츠루야 후카:(어둑해진 하늘을 말없이 올려다본다.) 오늘은 달빛이 아름다울 것 같아. 그거 알아? 드뷔시의 달빛은 프랑스 시인의 시에 영감을 받아서 지어진 곡이래. (허름한 피아노의 의자에 앉아, 이제는 익숙할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의기양양한 사랑과 때를 맞은 인생을 단조로 노래하면서도, 그들은 저들 행복을 믿지 않는 것 같고, 노래는 달빛에 섞이네.
 
후카가 연주를 시작하자
 
잰걸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광장의 피아노와 후카에게 집중됩니다.
 
휴대폰을 들어 후카가 연주하는 것을 촬영하거나
 
동영상으로 남기는 행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런 후카의 연주를 바라보는 잇세이의 심정은 어떤가요?
 
잇세이도 언젠가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을 터입니다.
 
해가 온전히 졌는데도
 
목구멍은 뜨겁고
 
살갗은 익어버릴듯 따갑습니다.
 
가로등의 적적한 불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광장을 밝힙니다.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허름하고 볼품 없던
 
낡아 빠진 피아노일지라도
 
그 정도의 연약한 빛을 반사할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츠루야 후카:
(To GM)rolling 10+1d20
 
10+
(
16
 
)
 
 
=
26
 
이토자키 잇세이:(한 걸음 물러나 연주를 관람하는 자신은 길거리의 행인들과 다름이 없었다. 한 때 너무나 당연했던 자신의 자리에 앉은 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
조금 쓰네...
??? 판정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9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불현듯, 어릴 적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뛰어난 기교도, 음악적 센스도 부족하지만 정성스럽게 건반 하나를 눌렀던 그 시절. 언뜻 그 둘이 겹쳐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네가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할 수 있기를. )
 
어쩐지 아릿합니다.
 
줄곧 느껴왔기에 금세 깨달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세상에 축적된 많은 문장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전조도 없이 가슴이 뛰었습니다.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는 것이 아직은 두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츠루야 후카:(건반 위의 손이 자유롭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연주를 스쳐갔지만 후카에게 있어 관객은 그 음악실에서나 이곳에서나 단 한 명 뿐인 것처럼... 한 명에게 자그마하게 이야기하듯 연주를 끝마친다.)
...왜 그럴까? (피아노 내려앉은 먼지를 안타까운 듯 손가락으로 훑으며 중얼거린다. 자꾸 이런 낡은 피아노에 마음이 가고,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살아온 흔적을 마주하면, ...그게 내가 걸어온 시간이 아닌데도...... 어쩐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져. (마지막으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피아노의 소리를 확인하고, 뚜껑을 덮고 뒤를 돌았다.) 그래서 고생이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어...
 
이토자키 잇세이:(새하얀 손끝이 건반에서 떨어지면 그제서야 정신이 든다. 꼭 스쳐가는 바람처럼 네 목소리가 귓가에 흩어진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달빛은 조용히, 새들을 나무에서 꿈꾸게 하고, 대리석상 한가운데의 늘씬한 분수는, 높다랗게 물 뿜으며 황홀함에 흐느끼네.
오래된 물건에는 저마다 품고온 추억들이 있어서... 오늘 네가 알려준 악기점도 꼭 그랬지. (그렇다면, 나는 네게 말해주면 되는건가? 하고 작게 웃었다. 느릿하게 손을 뻗어 새하얀 머릿결을 쓰담아내린다. )
 
츠루야 후카:(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물었다. 웃긴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나 위로가 되다니...... ㅡ약해지지 마. 그런 생각이 들면 감쳐물었던 입술을 놓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늘같은 추억? (작게 웃으며 녹음기를 집어들어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시간이 많이 늦었어. 이 시간까지 잡아둘 생각은 없었는데... 이만 집에 갈까..
 
이토자키 잇세이:(어느새 완전히 해는 저물어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고 있었다. 더 없이도 완벽한 달빛의 연주ㅡ, 짤막한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그러게... 더 늦었다가는 큰일나겠지? 슬슬 돌아가자.
 
각자의 책가방을 어깨에 매고,
 
달빛 아래 늦은 귀가를 합니다.
 
헤어질 무렵,
 
후카는 손을 작게 흔들다 골목 끝에서 사라지네요.
 
달빛을 받아 그런지,
 
유독 그 모습이 하얗게 보이는 밤입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하루였나요?
 
이토자키 잇세이:(처음으로 털어놨었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개운했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다. 다만, 짊어진 먼지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네가 나눠 들어줬기 때문이겠지.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질듯한 서늘한 인상 아래, 선명했던 열기를 가진 이상한 소녀. 하지만 그조차...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밤은 고요하기를ㅡ, 자잘한 생각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
 
숨통을 불사르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면
 
휴대폰에 맞춰두었던 알람이 잇세이를 보채고 있습니다.
 
정신사나운 벨소리는 한참이고 이어집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머리가 띵한 것이…
 
밤새 열대야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등교 준비를 해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멍하니 앉아있다가 두번째 벨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피곤..)
 
샤워로 머리를 식히고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은 뒤
 
교복을 챙겨입습니다.
 
등교 준비를 끝마치고
 
집 바깥으로 나서기 직전
 
잇세이는 끄지 않은 채로 잊고 있었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를 듣습니다.
 
퍽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네요.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다루기 위해
 
신설 편성되었다던 그 코너임이 분명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전염성 열병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전세계 인구의 25%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달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전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인 기현상이 발생, 목격되고 있습니다.
 
증언은 일체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는데요,
 
환자들은 하나같이 여름철의 짙은 오존 냄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밤 하늘에 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있는 것이 기이하다.'
 
...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 대학병원 의료진은 질병 감염에 따른 환각 증세의 가능성을…
 
다음 속보입니다….
 
TV를 끄고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여느 때와 같은 길로 학교로 향하면
 
늘 들려오던 클래식 음악이 오늘도 들려옵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면
 
후카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등교하려나?
 
안일하게 앉아있어보지만…
 
조례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나요?
 
묘연해진 후카의 행방은
 
친구들에게 묻거나 선생님께 여쭤볼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내내 텅빈 자리가 신경쓰이더니, 결국 조례가 끝나기 무섭게 교탁쪽으로 향한다.) 선생님... 오늘 츠루야 후카 안오나요?
 
선생님:츠루야? (출석부를 정리하다가 네 쪽을 바라보며) 아~ 츠루야 후카는 오늘 결석이다.
 
이토자키 잇세이:왜요...? (빈 자리를 힐끔거리다가) 아프대요?
 
선생님:어어. 최근에 유행하는 전염성 열병 때문에... 걔 말고도 서넛은 더 병결 처리 됐어. 너도 몸 조심해라.
 
이토자키 잇세이:아... (조금 당황스러운듯 눈만 깜빡이다) .....네, 선생님도요.
 
메꿔두었던 책상은
 
다시금 주인을 잃고 방치되길 반복합니다.
 
선생님께 후카의 병결 이유를 듣게된 잇세이는 어떤가요?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조일듯 답답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 며칠간 당신과 후카는
 
질릴만치 붙어 다니며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일지도 몰라요.
 
.
 
.
 
.
 
하교를 알리는 묵직한 종례음과 함께,
 
번쩍!
 
마치 스위치를 올리듯
 
분산되어 있던 정신이 한 자리에서 맞붙었습니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면
 
책가방을 싼 아이들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어느틈에 종례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요.
 
학교가 파했으니 집으로 귀가해야겠죠.
 
늑장을 부리고 있노라면,
 
동급생:빨리 나가, 문 잠글 거야!
 
오늘의 주번인 동급생이 톡 쏘아붙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어어... 수고해. (말과는 다르게 느릿느릿 짐을 챙긴다.)
 
자리에서 일어선 잇세이는
 
교실 바깥으로 나가기 직전,
 
어쩐지 모를 기묘한 이끌림에 힘입어
 
후카의 책상 쪽으로 시선을 기울입니다.
 
때마침 덜 닫힌 창문 가장자리에 불어온
 
오후의 설익은 바람에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은 건조한 1인용의 책걸상.
 
비어 있는 가방 걸이,
 
사물함 아래 가지런히 모여있는 교과서…
 
가장자리에 [C반, 츠루야 후카]라고 적혀있는 코팅된 시간표까지.
 
기스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책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전에 없던 기이한 감각마저 솟아나는 것입니다.
 
어제는 분명 이 자리에 책상 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어 있었습니다.
 
그 덧없는 사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던 그 때.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널빤지처럼 납작하고 어두운 책상 사물함 속,
 
켜켜이 정돈된 교과서 흐트러진 노트가 거슬립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슬쩍..~ 별다른 생각없이 노트를 꺼내봅니다.)
 
펼쳐보면 찢어진 작은 종잇조각을 입수합니다.
 
잘 닦인 도자기처럼 맨질거리는 종이를 손에 쥔 잇세이는
 
전에 없던 확신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이 종이는 마치 단서처럼,
 
단조롭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교실의 풍경 속
 
우뚝 솟아난 돌부리처럼
 
당신의 눈에 걸리고 말았으니까.
 
마치 결국에는 이 쪽지를 발견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기꺼이 걸려 넘어져버리고 말았으니까.
 
펼쳐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 (펼쳐봅니다.)
 
어떤 위치를 가리키는 주소입니다.
 
혹은 약도거나.
 
눈에 익은 글씨체만으로도
 
머리통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장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며칠 전 후카와 함께 방문했던 그 악기상이 틀림 없습니다.
 
쪽지 귀퉁이를 살펴보면
 
쪽지의 귀퉁이에는 추가적인 글귀가 보입니다.
 
P.S
 
이토자키 잇세이:책에 나오는 구절인가..? (쪽지를 들어 팔랑팔랑 흔든다.)
 
시간은 학교가 끝난 오후 남짓.
 
잇세이는 어디로 가나요?
 
이토자키 잇세이:이럴 줄 알았으면 번호교환도 미리 해둘걸...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건드리더니 악기상으로 향한다.)
 
끊임없이 기억을 더듬거나 헤매다보면
 
잇세이는 일전에 함께 방문했던 악기상 앞에 도달합니다.
 
악기상 출입구에는 희끄무레하게 바래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임시 휴업'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잇세이는 새파란 싹이 이름 모를 들꽃이나 잡초들과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 근처를 서성입니다.
 
여전히 후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미련을 떨치지 못한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악기상 바깥쪽의 자그맣게 무너진 울타리입니다.
 
그 사이로 어떤 계절의 매미 우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좁다란 공간은 마치,
 
언젠가의 비밀스러운 길이 닦였다가
 
무산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후... (듬성듬성 놓인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간다.)
 
어쨌든 몸을 구겨본다면
 
간신히 이동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이네요.
 
비밀의 장소로 인도하는양 샛길을 타고,
 
악기상 건물 외벽의 바깥 쪽을 타고 둘러 이동하다 보면,
 
잇세이는 나무가 부자연스럽게 우거진 공터를 발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풀벌레 우는 소리만 선명합니다.
 
이곳에 사람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메마른 흙바닥의 정가운데
 
구멍의 가장자리는 마치 녹은 것처럼 보이며,
 
비정상적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웜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발치 아래 투영된 듯 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이 1 감소합니다.
 
38도를 웃도는 축축한 여름임에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잇세이는 유사 이전의 세상에 인간이 최초로 빚어졌을 당시
 
하나의 재료처럼 장기 곳곳에 새겨져 있었던 본능으로 말미암아
 
어떤 메시지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결국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모르는 사이 오래도록 방황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구덩이를 살피면
 
마치 하늘을 반사한 물이라도 투영하듯
 
희미한 빛이 텅 빈 공간을 떠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방에선 강렬한 여름의 오존 냄새가 풍깁니다.
 
비릿하기도 하면서 싱그럽기도 한 특유의….
 
이토자키 잇세이:이게 무슨...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어쩐지 꿈만 같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발걸음을 재촉하는 자신이 있다. 이 한걸음이, 네게로 향하는 길목을 알려줄 것이라고.)
....
(두눈을 질끈 감은채 발을 내딛는다.)
 
문득 후카가 남겨둔 쪽지가 생각납니다.
 
그 쪽지가 책의 한 구절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이곳에 뛰어드나요?
 
이토자키 잇세이:(당장 손에 잡히는건 가방 한구석에 박혀있던 mp3)
 
언젠가의 과거에서 후카가 그러했듯,
 
모든 준비를 끝마친 잇세이가 구멍 속으로 몸을 내던집니다.
 
찰나에 당신은 온 몸을 거스를듯 피부를 긁어대는
 
어떤 비인간적인 손길을 느낍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외계의 에너지가
 
강압적으로 몸을 잡아 당기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
 
.
 
.
 
.
 
.
 
.
 
소용돌이치는 왜곡 속을
 
맨발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맞게 도착한 걸까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당신은 꽤 깊은 구덩이 안에 있습니다.
 
깊은 구멍 안에 머물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꼭 천장같은 푸른 색의 하늘이
 
원형으로 오려져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눈만 멀뚱거림)
 
구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이토자키 잇세이:
오르기
기준치: 20/10/4
굴림: 2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잇세이는 사방이 꽉 막혀있던 구멍 아래에서
 
위로 기어 빠져나오는데 성공합니다.
 
근처를 살피면
 
구덩이에 뛰어들기 전에 보았던 그 공터입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이리저리 우거져있던 나무가 바싹 말라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바닥을 장악하고 있고,
 
맞은 편에 보이는 악기상의 벽면은
 
부식되어 이질적인 감상을 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군요.
 
공터에서 빠져나오면 악기상 입구에 다다릅니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보아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마치 노이즈낀 흑백 필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길로,
 
어떤 장소로 향하든
 
일말의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전깃줄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나
 
나무에 달라붙어 노래하는 매미의 우짖음만이
 
공허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악기상을 들어가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여기, 이렇게 인적이 드물었던가... (그나마 익숙한 악기상으로 들어간다.)
 
악기상의 녹슨 초인종이 달린 문은
 
걸쇠가 고장나 살짝 열려 있습니다.
 
직전에 보았던 '임시 휴업'팻말은 문간에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임시', '휴업', 하고 반으로 쪼개져 덜렁거리는 탓에
 
다소 음산한 기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닦지 않아 희뿌연 통유리 너머로
 
진열된 악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 낡아가는 피아노한 대만이 전시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휘날리는 먼지에 작게 기침이 나온다. 슬쩍 인상을 찌푸리다 손을 휘적거리며 피아노쪽으로 향한다.)
 
이토자키 잇세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눈에 익은 피아노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아' 싶은 구석이 있는 모양새인 겁니다.
 
이 피아노는…
 
며칠 전 후카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았던 예의 그 피아노입니다.
 
다 낡아 볼품 없어진 악기에,
 
싸구려 페인트 칠을 해
 
디스플레이용 구색만을 갖추고 있었던 그 피아노.
 
악기상을 한번 훑어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카운터입니다.
 
좌석에 앉아 악기상을 지키고 있던 가게 주인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텁텁하고 간지러운 먼지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서도 악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은 그대로네요.
 
이토자키 잇세이:분명 같은 악기상인데.. (그 사이에 이렇게나 변했다고? 의구심을 품은채 카운터를 살핍니다.)
 
쓸쓸한 카운터 위에는
 
다소 눈에 익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라디오에 먼지가 그득 쌓여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아날로그 시계를 봅니다.)
 
먼지 쌓인 아날로그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약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그러모아
 
간신히 뜀박질 하고 있습니다.
 
하나 부자연스러운 점은
 
바늘들이 하나같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 공전해야 할 궤도를 떠나지 못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련의 반복된 패턴에 기이한 느낌이 드는 잇세이,
 
이토자키 잇세이:고장났네 이거...
SAN Roll
기준치: 46/23/9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이성이 1 감소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먼지를 툭툭 털고 라디오를 눌러봅니다.)
 
완전히 고장나버렸는지
 
탁한 백색소음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주파를 맞춰보고 툭툭 두드려도 보지만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라디오에서 눈을 돌리면
 
그제야 희미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기계수리
기준치: 10/5/2
굴림: 29
판정결과: 실패
 
이토자키 잇세이:
손놀림
기준치: 55/27/11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칙, 치지직…
 
괴 전염병으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한 인구가 전체 인류의 70%에 육박했습니다.
 
사회는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치직, …그 누구도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인류는 역사에서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오컬트 학자들이 내놓은 새로운 가설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어떤 경로로 감염되어 인체에 해를 끼치는지,
 
보편적이지 않은 경로로 추적을 이어오던 그들은 ..치직,...
 
전 지구를 장악한 미지의 전염병이 사실은 어떤 저주이며,
 
감염 경로가 특이하게도 '음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저주받은 곡으로 인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다면,
 
이 광기어린 저주를 세상에 퍼뜨린 원인이 되는 곡의 악보를 태우는 방법만이
 
존속과 멸망을 결정지을 유일한 수단이라고… 치직…
 
이토자키 잇세이:(믿겠냐고) (이쪽도 안믿음)
 
다음은 어디를 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책장으로 향합니다.)
 
도둑 맞았는지 듬성듬성 비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는 더욱 무거워졌고,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절반쯤 튀어나와 있는 책자도 여럿 보입니다.
 
불현듯 떠올립니다.
 
피아노를 그만둔 뒤 악보를 어떻게 관리해왔더라, 하고.
 
그래서 더 살필 만한 건 없나?
 
책장 모서리에 전에 보지 못했던 달력하나가
 
박힌 못 위로 장식물처럼 걸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달력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달력은 6월에 펼쳐져 있습니다.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몸통만한 달력을 쳐다보던 당신은
 
달력 어귀에 적혀있던 올해의 년도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큼지막한 네 개의 숫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025년.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세상의 오류를 알리듯
 
거꾸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와,
 
당신이 살던 현재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세월의 흐름을 가리키는 달력.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오가지 않고
 
시야는 마치 흑백필름을 끼워 넣은 것처럼 생기 없었습니다.
 
미지의 구멍,
 
그곳에 마치 운명같은 이끌림을 얻어
 
겁없이 뛰어든 당신.
 
눈치챕니다.
 
잇세이는 가까운 미래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2025년,
 
인구의 70%가 잠들어버린 뒤
 
고요한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3년 후의 미래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잇세이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이성이 1 감소합니다.
 
이성 -1d3
 
이토자키 잇세이:1
달력이 잘못된거 아닌가.. (포기하지 않은듯 가방을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냅니다.)
 
핸드폰을 꺼내보면,
 
전원이 다 되었는지 화면이 까맣습니다.
 
이곳에 더 볼 건 없는 것 같네요.
 
이토자키 잇세이:아니... (몇번 더 버튼을 눌러보다 대충 가방속으로 던진다. 말도 안돼. 어떻게 된거야? 무작정 바깥으로 나간다.)
 
악기상을 열고 나오면,
 
끝없는 열기에 데워진
 
아스팔트가 일렁이는 건너편 골목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실루엣을 바라보고 있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잇세이를 반깁니다.
 
츠루야 후카:한참 찾았어.
몸은..? 괜찮아?
 
츠루야 후카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후카.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후카는 살짝 미소짓습니다.
 
츠루야 후카:나, 과거로 가서 잇세이를 만나고 올게.
…생각해봤는데, 문제 없을 것 같아.
잇세이가 정말 피아노 치는 것을 싫어했더라면 이 악기상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혼잣말을 덧붙입니다.
 
후카의 품에는 악보가 들려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교실,
 
책상 위에 올라와있던 후카의 가방 사이에서 보았던
 
그 악보집이 틀림 없습니다.
 
악보집을 들고 있는 후카의 손목 둘레로 익숙한 손목시계가 보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과거...? 무슨 소리야...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품에 들린 악보와, 너를 번갈아본다.)
 
후카는 대답없이 당신을 바라보다
 
마치 모든 결정과 준비를 끝마친 사람처럼,
 
잇세이를 한번 꾹 끌어안고는
 
미련 없이 당신을 지나쳐
 
악보를 들고 깊고 커다란 구멍에 뛰어듭니다.
 
오로지 이 순간.
 
잇세이는 구멍으로 향하는 후카에게 딱 한 마디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과거의 당신을 찾기 위해
 
과거로의 리프를 앞둔 후카에게,
 
실제 '과거'의 잇세이가 되는 당신은 어떤 말을 던질 건가요?
 
건넬 말이 없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테니, 천천히 와.
...어디가서 넘어지지말고.
 
.
 
.
 
.
 
팟.
 
잇세이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
 
2025년에 묶여있던 몸은
 
다시금 2022년의 악기상 앞에 서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후카는 보이지 않고,
 
한가로운 골목길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주머니에서 다시금 MP3꺼내보면
 
화면에 금이 가있습니다.
 
악기상 유리창 너머의 아날로그 시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돌아갑니다.
 
휴대폰 캘린더를 펼쳐 살펴도
 
달력은 올바른 날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꺼진게 아니었던 걸까요.
 
꿈이라도 꾼 걸까요?
 
단지 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에
 
보고 듣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잇세이의 발은 이제 어디로 향하나요?
 
이토자키 잇세이:... (혼란스러운듯 음악실로 향합니다)
 
어느덧 저녁이 쏟아지고
 
밤으로 물들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내내
 
무거운 습기가 발목을 잡는듯 합니다.
 
한밤중의 여름은 습하니까요.
 
매년 이맘때쯤 장마전선이 북상하고는 했으니,
 
시간이 부지런히 흐른다면
 
며칠 안 있어 많은 비가 쏟아질 터입니다.
 
잇세이는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몇가지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전봇대를 붙잡은채 119에 고열의 두통을 호소하다
 
잠들듯 바닥에 쓰러진 환자를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이 일으켜 세우는 한편,
 
급히 출동하던 앰뷸런스가
 
어느 사거리에서 승용차와 부딪히는 등의 사고가 잇따라 발생합니다.
 
불가해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소름끼칠만큼 많은 별의 형상이 아른거립니다.
 
.
 
.
 
.
 
학교에 도착해 음악실로 향하면
 
정해져 있는 수순처럼 열려 있는 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닫히지 않은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의 유영에
 
빼곡히 덮인 커튼이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하늘댑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나요?
 
이토자키 잇세이:분명 이 쯤에... (간이 책상을 뒤져봅니다.)
 
기억을 더듬어 간이책상을 헤집습니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몇몇 프린트,
 
잃어버린 지우개,
 
그런 것들은 있지만...
 
잇세이가 찾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분명 이 간이 책상 위에 악보들이 널려있었죠.
 
후카가 그것을 밀어 바닥으로 악보가 떨어졌고...
 
정리를 도와준 당신이 후카에게 다시 넘겨주었을때,
 
그녀는 그것을 어디에 넣었나요?
 
이토자키 잇세이:...아. (피아노 의자를 열어 수납공간을 찾는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놓여있는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면
 
수납서랍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낡은 악보집 하나가 눈에 띕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언어(외국어) Roll
기준치: 1/0/0
굴림: 5
판정결과: 실패
 
이토자키 잇세이:
교육
기준치: 60/30/12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제목을 읽은 순 없지만,
 
악보집을 습득함과 동시에
 
잇세이는 낡아빠진 악보집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징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그래요,
 
그 때,
 
후카가 쏟았던 악보집들 사이에
 
미운오리새끼처럼 섞여있던 그 악보집에도
 
이런 그림이 박혀 있었습니다.
 
조악하게 본떠 넣은 듯 형편 없는 문양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이는 문양은
 
꼭 도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기이한 홀로그램같은 형상에
 
어쩐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4/22/8
굴림: 54
판정결과: 실패
 
이성 -1D3
 
이토자키 잇세이:3
 
이성이 3 감소합니다.
 
이 악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토자키 잇세이:
교육
기준치: 60/30/12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 악보의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교과서에서 본 적 있었죠.
 
분명...
 
...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악기상에서 읽은 신문기사에서는
 
유명 피아니스트 B씨가 분명 <겨울이 흘린 눈물>을 연주하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했습니다.
 
만약 어떤 저주받은 곡으로 인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다면,
 
이 악보야말로 저주의 원흉이 아닐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악보를 챙겨 소각장으로 향한다.)
 
악보를 태우기 위해 음악실을 벗어나려던 잇세이는
 
눈 앞이 하얗게 아른대는 듯한 잔상을 보았습니다.
 
과연 잔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물에서 올라오는 듯한 인광의 기둥은
 
평범한 사람의 의식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영상도 초월하는 재앙과
 
비정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지 빛은 이제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의 형체 없는 흐름은
 
구덩이에서 곧장 천장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듯합니다.
 
순수한 색채의 형태로 나타난 이계의 지성체,
 
세상에 알려진 어떤 스펙트럼과도 닮지 않은
 
희미한 색을 내는 비실체.
 
이토자키 잇세이:
SAN Roll
기준치: 41/20/8
굴림: 2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아른거리던 색채는
 
곧 작은 개미지옥을 만들어낼듯
 
당신의 육신을 에워쌉니다.
 
순간,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듯한
 
역겨운 오존 냄새를 맡았습니다.
 
올 여름 내내 맡아왔던 비리고도 싱그러운 냄새입니다.
 
우주에서 온 색채는 가까이에 있는 지성체의 마음을 약화시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우주의 색채: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끈적하고 불쾌한 비실체가 몸 곳곳에 들러붙는 감각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습니다.
 
음악실 바깥으로 대피하거나
 
음악실의 전등을 켜서 색채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뭐, 뭐야. (다급하게 벽을 더듬어 전등을 킵니다.)
 
한순간에 어두웠던 교실이 환해지자
 
우주의 색채는 빚에 먹혀 점차 희미해지다가
 
이내 사그라듭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후... (이상한 형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서두르듯 소각장으로 향한다.)
 
음악실 바깥으로 나오려고 문을 열자마자,
 
강한 힘이 잇세이의 팔을 끌어당겨 음악실 바깥으로 끌어냅니다.
 
츠루야 후카:내가 밤에는 음악실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얼굴을 확인하면 아니나다를까
 
결석했던 후카입니다.
 
답지 않게 매서운 목소리입니다만,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붙잡힌 통에 팔 전체에 전해지는 체온이
 
36.5 ℃를 훌쩍 넘어 섰음을
 
...눈치 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후카의 몸은 불 위에 올려둔 물처럼 펄펄 끓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쭉 당신을 찾아 헤매고 있던 걸까요?
 
이토자키 잇세이:너..... (답지 않은 모습에 멈칫하기도 잠시, 붙잡힌 팔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급히 다른 손을 뻗어 네 이마에 가져다댄다.)
내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츠루야 후카:나는... (시원하게 느껴지는 손이 이마를 감싸자, 힘이 들어갔던 눈매가 잠시나마 느슨하게 풀어졌다. 하지만 그뿐. 식은땀으로 축축한 손을 떼어내곤, 시선을 내려 네 손 안의 악보를 응시한다.) 잇세이, ...그 악보를 어쩔 생각이야?
 
이토자키 잇세이:(그 작은 손길에 이마에 닿았던 손은 쉽사리 떨어지고 만다. 문득 네 시선이 자신이 아닌, 악보를 향해있음을 알아차린다.) ... 태울거야. 지금 이상으로 심각해지지 않도록.
 
츠루야 후카:... (불이 켜진 음악실 안을 곁눈질 한다. 색채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다소 안심한 듯이 크게 숨을 삼켰다.) ...밤의 음악실에는 유령이 나온다고 했잖아. 봐, 정말이지..? (어둑한 복도. 한 줌 달빛만이 비춰주는 길을 뒤돌아 한 걸음 앞장 섰다.) 잇세이는 정말 하지말라고 하는 일을 꼭 한다니까...
 
이토자키 잇세이:정말 유령이였어...? (단 한순간도 믿은 적 없던 비현실적인 일들이 자꾸만 연속해서 일어난다. 제가 본 것이 꿈이 아님을 깨닫자, 어쩐지 으스스해진 기분이 들었다. 감상도 잠시, 네가 앞장서기 시작하자 잰걸음으로 다가가 옆에 선다. 괜찮다는듯 두 손을 들어보이면서) 말했지? 엘리제를 위하여도 세번까지 쳤다고.
...후카, 많이 아파?
 
츠루야 후카:...아니야. 그냥 조금 덥고, 졸려...... (멀쩡하다며 두 손을 들어보이는 모습에 힘없이 눈꼬리를 휘었다.) 잇세이가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어서 다 찾아봤는데... 아무데도 없길래 혹시, 하고 온 거야. 별 일 없어서 다행이야.
소각장까지... 같이 갈래.
 
이토자키 잇세이:이래보여도, 혼자서 잘해. (괜히 원망스러운 눈길이 악보에 꽂힌다. 정말 괜찮은걸까, 바람은 서늘하고 공기는 잔잔한데 머리는 그렇지 못했다. 눈에 띄게 힘없어진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 하나 물어봐도 돼?
 
츠루야 후카:..응? (계단으로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네 얼굴을 가만 응시한다.) 어떤 걸..
 
이토자키 잇세이:(잠시 뜸을 들이며 고민하더니 엉뚱한 말을 뱉는다.) 내가 아는 후카 맞지? 미래에서 왔다거나 그런게 아니고.... ...그냥 헛소리야.
 
츠루야 후카:...... (네 물음에 말을 잃은 듯 한참을 망설이다,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 의미가 물음에 대한 답인지, 질문에 대한 거부인지... 너는 알 수 없게끔. 약간 빨개진 눈가를 하고, 네 손을 작은 힘을 주어 잡은 채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선생님이 내주셨던 과학 숙제 말이야. ...선생님은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이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잖아.
...정말은 어떻게 생각해?
 
이토자키 잇세이:(말없이 제 손을 잡는 작은 손길에, 애써 웃고있던 입가의 미소가 사그라든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치부해버리면 될 것을. 너는 답을 피했다. 이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해도 되는걸까. 일순의 정적 끝에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
....하지만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만큼 간절했다면 그 정도는 들어줘야하지 않을까.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학교의 구석에 자리한 소각장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나요?
 
결심한 것을 이행할 때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악보를 물끄러미 보다 입을 연다.) 내가 본 것은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세상. 그 속에 우리가 있었어. 어쩌면 이걸로 우리의 이야기도 달라지게 되겠지.
(천천히 한 장, 한장을 불더미 속에 떨어트린다. 마지막 페이지가 한 줌의 잿더미가 되었을 무렵 몸을 돌려 너를 보고 웃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아. 네가 지지 않겠다고 했으니.
 
타닥타닥
 
불꽃이 튀는 소리를 내며
 
오랜 세월을 머금은 악보가 천천히 타들어가고,
 
후카는 잇세이의 곁에서,
 
줄곧 손을 놓지 않은 채
 
악보가 재가 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 손은 마치 눈앞의 불이 옮겨 붙은 듯 뜨겁기만 합니다.
 
츠루야 후카:잇세이, 난...... (악보가 마지막 한 줌도 남지 않은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뜨거운 머리를 네 어깨에 툭, 기대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은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하니까.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과거에 마음을 써도.. 설령 그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 한들, 한번 미래를 망친 사람에게는 그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거야.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어.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확신에 차있다. 꼭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처럼...)
그래도 두렵지 않아. 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토자키 잇세이. 아무리 허무맹랑하고, 허황된... 덧없는 일이라도. 나와 함께 해줄래?
 
이토자키 잇세이:언제는 마음을 멋대로 재단하지 말라더니, (선명한 열감이 어깨 너머로 전해진다. 이름 모를 전염병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고 했던가, 금방이라도 네가 쓰러질까, 불안했다. 맞잡은 속이 축축한 것은 뜨거운 네 열기 때문인지, 나의 두려움 때문인지. 그럼에도 너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뜻 그 안에서 간절함을 읽은 것 같다.) 누구 마음대로 자격을 빼앗는거야?
필요하다면, 내 것까지 줄게. 그러니까...
...츠루야 후카, 너는 앞을 보고 걸어. 그 옆에서 손을 잡는건, 나의 몫이야.
 
츠루야 후카:(그 말을 지켜주듯, 놓지 않은 손을 소중한 것을 마주하듯 내려다보았다. 곧 맞잡은 네 손등에 작은 방울이 툭, 떨어진다. 열감이 없는 네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미지근하고, 금방 흩어지는.)
(내가 바꾸고 싶은 건 단지 허물어진 세계가 아니었어. 오랫동안 방치해서, 곪고 진물이 배다 못해 너를 좀먹는 상처는... 조금 더 일찍 눈치챘더라면 손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 좀만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네가 좋아하는 일을 이어나갈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 작고 초라한 마음이, 정말 무언가를 바꿀 힘이 있다면.)
있잖아, ..나는... 네게, 힘이 되었어..? 그게 꼭 세상의 운명이나, 대단한 미래가 아니어도... 조금은 바꿨을까?..
(나는 그 피아노 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었어.)
 
이토자키 잇세이:(다소 익숙한 손길로 흐트러진 너의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투명한 여름이 맺힌.., 말없이 물기 어린 눈가를 두어번 닦아내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울보네, 후카는.
(네가 어떤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지 어렴풋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아니야, 후카. 비록 곪고 짓물러 오랜 상처로 남았을지 모르더라도 이건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지, 넘어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일어나는 법을 모른다고. 그로인해 음악을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만났다. 이전엔 들리지 않았을, 투박하고 서투른 위로를 들었다.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를, 너로 인해 배웠다.)
아직도 모르겠어? 세상의 운명이나, 대단한 미래 같은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네 앞의 겁쟁이 하나는 확실히 건져냈잖아.
(나아가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제발로 피아노 의자에 앉을 수는 있어도 건반 위에 손을 올리진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분명히 변화는 존재한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싹을 틔우고 있다.)
 
츠루야 후카:(눈물을 닦아주는 네 노력이 무색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유는 모른다. 한여름의 음악실에서 마주한 너는 이 혹독한 계절과는 다르게 먹먹할 정도로 다정해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열을 껴안고도 줄곧 네 옆에서 미약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고마워, 잇세이.
(이것은 하나의 겁쟁이가 멋대로 열병의 여름에 뛰어들어 또 다른 겁쟁이를 만나는 이야기.)
형체도 질량도 없는... 음악실의 유령을 알아채줘서. 내 소리를 들어줘서..
(그 끝자락에서 너를 모질게 이야기의 최종장으로 떠미는 일련의 결의, 그럼에도...)
...나,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
 
츠루야 후카:(이 이야기의 다음을 바라는 유령의 간절한 소망이다.)
 
후카는 잇세이에게 악보집 하나를 건네줍니다.
 
낡고,
 
오래 되었고,
 
허름하며,
 
손때 묻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건네받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후카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안색을 하고서
 
눈물을 닦고,
 
끊길 것 같은 목소리를 쥐어 짜내 한 가지 부탁을 남깁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한계에 다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츠루야 후카: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오후 6시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광장에서 그 악보를 연주해 줘.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죽어가는 존재라지만
 
츠루야 후카:꼭 그 광장이어야 해.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한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 무사히 만날 수 있었을 리 없어.
 
츠루야 후카:사람이 많은 곳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을 시간에,
 
눈 앞에 놓인 골목의 폭이 서로 다를 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지 않을까.
 
츠루야 후카:반드시 이 곡을 연주 해줘.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좌절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선택을 번복하고 버텨내는 거야.
 
츠루야 후카:꼭이야..
 
몇 달 몇 년을 웅크리고서 오래도록.
 
그 말을 남긴 후카는 등을 돌려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후카를 잡아 세울 수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비유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무지개를 손으로 잡을 수 없고
 
햇빛의 뜨거움을 유리병 속에 담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
 
혹여나 잇세이가 그런 말을 하거든
 
후카는 이 한마디를 겨우내 덧붙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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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퍼부을듯
 
빽빽한 수증기가 마른 길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날씨 탓일까요?
 
오늘의 해는 일찍이 시들 요량인가봅니다.
 
하늘을 켜켜이 감싼 먹구름이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보다 적은 수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광장은
 
요 근방에서 유동객이 많은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중앙에 마련된 분수대 앞에 놓여 있는
 
낡아빠진 피아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페인트 칠을 해두었지만
 
좀처럼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는
 
낡고 오래된 악기가 꼭 고물처럼 보입니다.
 
점점 더 무채색해지며,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모순적인 세계에 도태되어 있습니다.
 
그 허름한 피아노에 다가서는 것은 오로지
 
이토자키 잇세이,
 
당신 뿐이겠죠.
 
잇세이가 연주를 감행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피아노 의자에 앉을 차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후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은 점점 6시에 가까워지는 이릇입니다.
 
이토자키 잇세이:후카...
(한참을 둘러봐도 익숙한 인영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처음 피아노를 쳤을 때도 분명, 이런 떨림이었겠죠.
 
시간은 어느덧 6시를 가리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당신은 후카의 부탁을 들어주나요?
 
이토자키 잇세이:(뚜껑을 올리면, 익숙하고도 낯선 건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홀로 앉는 것이 얼마만인지. 눈을 감으면, 다시금 그 날의 일들이 재생된다. 퀴퀴한 먼지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팔과 다리를 붙잡고.., ㅡ안돼, 나는 역시...)
뚝ㅡ
(순간이었다.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눅눅한 하늘에서 물 한방울이 떨어진 것은. 문득, 어제의 네가 떠오른다. ...또 있을까? 이렇게나 간절하게 나의 노래를 바라는 관객이.)
아마도 없겠지. (쓴 웃음과 함께 손을 뻗어 건반 하나를 누르자 단조로운 음색이 울려퍼진다. 소리가 끊어질 즈음, 허름한 낡은 악보를 세우고 자리에 앉아 자세를 잡는다.)
..보이진 않아도, 들릴 수 있기를. 그렇게 해서라도 너에게 닿는다면.
후카. ...연주, 들어줄래?
 
당신은 시간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악보대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나이를 먹고 자란 곡을 올려둡니다.
 
음표를 빼곡히 채워 넣은 악보는
 
종이가 어찌나 얇고 덧없는지
 
바람 한 점에도 부서질 것처럼 가녀립니다.
 
이 악보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나 특별한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후카는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했었죠.
 
언젠가 당신이 최초로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처럼
 
어깨 끝을 살짝 떨면서.
 
.
 
.
 
.
 
차가운 공기 한 품 찾아볼 수 없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정가운데서,
 
마침내 건반에 손을 올려둡니다.
 
잊고 살던 서늘한 냉기가
 
백건과 흑건 위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깨를 익힐듯 강렬하던 더위가 한풀 꺾입니다.
 
추억으로 남길 뻔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남을 느낀 것은 그 때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번 연주를 그만 두었던 당신이
 
과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모든 의지를 잃고
 
주저앉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도망치듯 반대로 뛰어
 
가능한 먼 곳으로 숨었던 당신은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만한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한다면
 
한 번 좌절했던 당신이
 
이렇게 무사히 피아노 앞에 앉게 될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눈 앞에 놓인 골목의 폭이 서로 다를 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좌절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선택을 번복하고 버텨내는 겁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이토자키 잇세이:
예술/공예(피아노) Roll
기준치: 104/52/20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떨리는 손 끝,
 
떨리는 첫 음.
 
연주가 시작되면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고,
 
때로는 흐릿한 풍경에서 벗어날듯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광장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기이하게 물들었던 별빛 하늘이
 
풍향을 따라 꽃가루처럼 걷히고
 
가슴 위에 얹힌 듯
 
반죽되어 있던 아픔과 좌절이
 
단 하나의 점이 되어 흔적을 달리합니다.
 
곡이 끝맺음과 동시에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날립니다.
 
뉘엿뉘엿 져가던 하늘에 수놓였던 수억 개의 별들이,
 
세계를 숙주삼아 성장하던 색채의 무리가
 
모두 걷혔음을 깨닫습니다.
 
모든 인파가 흩어지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어느 구석에서도 후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후카의 전학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돌아온 월요일의 아침에서였습니다.
 
잇세이는 어쩌면 묘연히 사라져버린 후카를 수소문 했을 수도 있고,
 
후카를 만나기 전의 평범했던 하루처럼
 
모든 사건을 잊은 채
 
나날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고열의 전염병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고,
 
혼란했던 세계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고열에 시달려 병결했던 아이들도
 
모두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울다 지친 매미가
 
늦여름의 끝에서
 
기나긴 생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계절이 순환합니다.
 
10대의 끝,
 
졸업식을 하루 앞둔 당신은
 
책상 사물함 깊숙한 곳에서
 
반과 반으로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눈에 익은 글씨를 확인하면
 
틀림 없이 후카의 글씨체입니다.
 
접힌 자국만이 선명하고 흐릿하게 번진 연필 자국은….
 
 2025년 여름의 악기상에서 다시 만나자.
 
반짝,
 
하고.
 
마치 빛을 받은 유령의 신호처럼.
 
END1. 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를 살아가던 잇세이의 개입과 선택으로 인해 모든 미래가 바뀌었습니다.
 
후카와의 두번째 첫만남이 2025년에 이루어집니다.
 
손실되었던 모든 이성치와 체력을 회복합니다.
 
이미지
 
에필로그
 
.
 
.
 
.
 
장마전선 소식이 들려오던 여느 2025년의 여름.
 
세간에 알려진 '정체불명의 전염병'사태가 종식된 날로부터
 
약 3년이 흘렀습니다.
 
좁디 좁은 골목을 돌아
 
울타리 어귀에 멈춰선 당신은,
 
영업 종료 팻말이 걸려 있는 악기상 건물을 바라봅니다.
 
관리 되지 않아 썩어가는 나무벽은
 
꼭 악기상이 아닌,
 
잊혀진 어딘가의 골동품 가게를 연상케 합니다.
 
그나마 빨갛게 돋아난 덩쿨장미가 건물 외벽을 타고 자라난 풍경만이
 
음산함을 닦아낼 뿐입니다.
 
잇세이는 걸쇠가 앞길을 가로막은 악기상 처마 아래서
 
낡아빠진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낯설지 않은 풍경, 언젠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지.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3년 전의 그 피아노임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간 이미 여러 차례 이 악기상을 방문했던 잇세이라면,
 
전에는 이 피아노가 이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았음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했던 피아노의 재등장입니다.
 
피아노를 살펴볼까요?
 
이토자키 잇세이:(허리를 숙여 살펴본다.)
 
악보대 위에는 반듯하게 펼쳐진 악보 하나와
 
더불어 사용감이 남아 있는 녹음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녹음기는 피아노만큼이나 눈에 익는 종류입니다.
 
3년 전의 후카가 늘 가지고 다니던 그 녹음기니까요.
 
이토자키 잇세이:익숙한 물건이네.. (녹음기를 집어든다.)
 
녹음기 전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들어옵니다.
 
텅 비어있는 폴더 속에서 음성메시지 한 건과
 
피아노 연주 녹음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토자키 잇세이:(음성 메시지를 재생한다.)
 
음성메시지를 재생하면
 
3년 전에 녹음된 파일로,
 
다소 음질이 좋지 않습니다.
 
노이즈낀 음질 틈을 파고든 후카의 목소리가
 
새파란 여름의 골목길에 흩뿌려집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음성 메세지가 종료됩니다.
 
이토자키 잇세이:...... (이어서 악보를 살펴본다.)
 
악보를 확인하면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月光)이 담겨 있습니다.
 
...
 
악보를 내려놓는 그때,
 
어디선가 비릿하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불어옵니다.
 
멍하니 녹음기를 든 채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당신의 어깨를
 
톡톡,
 
누군가 두드리겠죠.
 
불현듯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이 여름 하늘을 닮은 아이를 다시금 마주할 것입니다.
 
알고 있나요?
 
두 사람은 괴멸해가던 일전의 미래에서도
 
2025년에 이 피아노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어떤 악보와 함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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