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18
아샤의 인터뷰를 따고 싶어 안달이 난 기자들과
주위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꼬리를 물고 불어나는 질문들도 슬슬 사그라들 무렵입니다.
날씨 좋은 어느 오전, 아샤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샤 체르니:...이미 죽은 아이에 대해 무슨 할 말이 더 있다는 거예요.
루비 라이트는 아샤의 집 근처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는 수상쩍고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르네에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니 내버려 뒀다간 무슨 사고라도 칠지 모르죠.
아샤 체르니:(무엇을 그렇게 들쑤시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장례식을 치른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그 정보라는 것을 듣는 김에, 이참에 확실히 말해둘까 싶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자꾸 팔고 다니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셔츠의 단추를 제대로 채우고 밖으로 나간다.)
루비 라이트가 말한 집 근처의 사거리로 나가면.. 작은 구형 모델 차가 불법 주차되어 있네요.
당신을 발견한 루비 라이트가 경적을 울립니다.
아샤 체르니:(차에 가까이 다가가 창을 손등으로 툭툭 친다.)
아샤 체르니:(차문을 열어 옆자리에 타며)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요.
좁은 차에 올라타면 가장 먼저 매캐한 담배 냄새가 올라옵니다.
정리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차내는 그렇지 않아도 좁은데 훨씬 더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루비 라이트:누추하지만 모쪼록 편히 있도록 해요. 우선 나와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할까? 내 신뢰도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진지해요. 신께 맹세코. (과장된 태도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가 씨익 웃어)
아샤 체르니:...어쩐지 느낌이 좀 달라지셨네요. (씨익 웃는 모습을 지켜보다) 하도 거창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좀 궁금해지네.
루비 라이트:자… 아샤 씨. 당신, 르네 보니타의 장례식에 갔나?
거기서 시체를 봤소?
극비리에 치러졌으나 본부에서 아샤에게도 장소와 시간을 공지해 주었습니다.
본부의 몇몇 사람만 참석해 극비리로 치러진 장례식은 하늘을 찌르는 세간의 관심과 달리 아주 조촐하게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은 형식적인 것이고 부검 후에 바로 화장터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당신의 말에 그는 담배를 입술 끝으로 물고, 수전증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인 뒤 말을 잇습니다.
이건 정말 어렵게 입수한 정보인데, 르네 보니타의 시신이 장례식전, 부검 중에 사라졌다는 것 같아.
그때 부검을 맡은 부검의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지 꽤 됐다는군. 어제 실종 신고가 처리됐소.
아샤 체르니:...누가 시신을 납치라도 했다는 소립니까?
루비 라이트:(고개를 끄덕이며) 실종된 건 부검의뿐만이 아니야. 그날 당직을 섰던 직원 두 명도 함께 실종상태지.
그는 품안에서 실종된 세 명의 사진을 꺼내 보여줍니다.
아샤 체르니:대체 뭘 위해서요? (세 명의 사진을 빠르게 훑어보곤) 짐작 가는 건 없어요?
루비 라이트:이상하지? 르네 보니타의 장례는 꽤나 급박하게 치러졌어.
화장을 진행했다는 화장터 쪽도 쑤셔봤는데, 그날 화장터는 극소수의 직원 외 출입 금지 상태였더라고.
연고가 없거나 유가족이 인도를 거부한 빌런의 경우 본부에서 형식상의 장례를 치러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로 꽁꽁 감추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제 아무리 화제성이 컸다고 하지만 저지른 짓만 두고 보면 대단한 빌런 축에는 못끼잖나?
아샤 체르니:...그래서, 말하고 싶은게 뭐죠?
루비 라이트:워워. 진정해. 여기서부터가 중요하거든.
...
장례식 이후 르네 보니타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나왔어.
자세히 말해줄 수 없지만 늦은 새벽 골목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해서 신고부터 했는데 쓰러진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다고 하더군.
아샤 체르니:......르네 보니타가 살아있다고요?
루비 라이트:그 사람은 구급대에 인도되었지만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아무리 봐도 르네 보니타와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관련 부처에 연락해보니 그런 신고는 들어온 적 없다고 대답했다는 거야.
어때. 들어보길 잘했다 싶지?
이거 아주 대박 건수야!
부검 중에 시체가 사라진 것도 모자라서 목격담까지 나오다니. 게다가 어쩌면 본부가 정보를 차단하고 뒤에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샤 체르니:...그 일에 대해서는 따로 알아볼게요. 당신은... (여전히 가벼워보이는 입에 한숨을 푹 쉰다...) 기사를 쓸 건가요?
루비 라이트:흠...? (씨익 웃더니만) 이정도로는 아직은 자료가 부족해. 턱도 없다고.
듣자 하니 그쪽 본부장님이 요즘 아주 바쁘시다던데...~
당신이 그쪽 좀 찔러봐줄 수 있나? 실종된 부검의와 직원 둘의 조사는 내가 맡을게.
아샤 체르니:나눠서 진행하자는 거군요. (뒷목을 매만지다) 일단 알겠어요. 뭐라도 알게 되면 연락해요.
그것도 히어로 업계에서 최정상을 찍었던 아주 유명한 히어로죠.
그런 당신이 이런 협잡꾼에게 감히 놀아날 수는 없는 일이다만....
루비 라이트의 말은 경박하기 짝이 없으나 영 아니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르네의 시체가 사라졌고 심지어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니.
어떤 마음으로든 이 이야기에 귀 기울지 않을 수 없죠.
루비 라이트의 말대로 본부는 끝까지 당신에게만큼은 감추려 할 것이고
절대 정석적인 루트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손을 내밉니다. 악수하자는 뜻으로요.
루비 라이트:좋아. 한번 잘해보자고. 내가 또 언제 히어로랑 팀업을 해보겠어?
아샤 체르니:..........................(어쩐지 탐탁치 않은 얼굴로 손을 가볍게 잡곤 떨어져) 저도 기자랑 한편 먹기는 처음이네요.
우선 본부로 가서 탐문을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탐문에 들어갈 수도, 그 전에 먼저 본부장을 찾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본부 건물 1층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입점해 있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한적한 카운터에 아르바이트생만 혼자 서 있습니다.
트레이를 받아들고 돌아서면 멀지 않은 자리에서 잡지를 읽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합니다.
예전에 당신의 선배였던 히어로, 캡틴 저스티스입니다.
그는 읽던 잡지를 내려놓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캡틴 저스티스: 이게 누구야. 아샤 아니냐. 오랜만이다.
아샤 체르니:선배. (자연스레 한 자리에 합석하며) 여긴 무슨 일이에요?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뒤에는 차분하게 말을 잇습니다.
캡틴 저스티스: 나야, 은퇴했지만 아직도 활동하고 있잖냐.
...아토믹 스톰의 일은 참 안 됐어. 철없이 까불거리긴 했어도 좋은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아샤 체르니:......좋은 아이였어요. 그래서 더 미안하고요. (그 이름에 목넘김이 꺼끌해진다.) 선배는 이번에 임무라도 맡았나봐요?
아토믹 스톰의 이야기 후에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시답잖은 화젯거리로 말을 돌립니다.
캡틴 저스티스: 하하, 임무라고 해야하나. 이번에 인터뷰를 하나 했거든.
캡틴 저스티스는 전성기 시절부터 선하고 정의로운 히어로의 표본처럼 여겨졌고
은퇴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히어로의 대명사입니다.
신문 인터뷰부터 TV쇼, 공익광고 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춥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이번에 인터뷰한 기사로 히어로 본부의 루머에 대해 유쾌하게 해명하는 내용입니다.
캡틴 저스티스: 본부 아래에 지하 시설이 숨겨져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라길래
그런 게 있겠냐고 얼마나 웃었는지. 이런 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계속 도는 모양이야.
아샤 체르니:히어로 본부라면 대개 그런 이미지긴 하죠. (살짝 웃으며) 다른 루머는 또 뭐가 있었는데요?
캡틴 저스티스: 루머라고 해야하나... 요새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초능력이 얽힌 특수사건이 하나 있다는것 정도?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이거 위쪽 직원분께서 놓고 가신 물건 같은데 혹시 전해주실 수 있나요?”
겉을 슬쩍 훑어보니 실종 사건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실종 사건에 관한 조사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실종자 중 초능력자 역시 소수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종자에 대한 목격 제보 중에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했다는 증언이 다수 나온 점을 들어 초능력 관련 특수 사건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다행히 책임자의 이름도 쓰여 있으니 그쪽으로 전달하면 되겠죠.
아샤 체르니:(파일을 들고 휴게실도 들려본다.)
업무에 지친 사무직원들이나 본부에 들른 히어로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TV를 보고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에 가나 대개 비슷한 법이라, 선망받는 히어로들도 평범한 직장인의 얼굴로 무리에 끼어 있습니다.
대체로 뉴스가 나오곤 하는데 오늘은 나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송출하고 있네요.
화면 가득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색색의 나비들이 핀에 꽂혀 투명한 액자 속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신문을 보면...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라 그럴까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사이비 종교에 관한 특집 기사가 있네요.
아샤 체르니:......(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아샤 체르니:
듣기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1 |
| 판정결과: |
실패 |
듣기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6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이 나누는 한적한 대화 소리가 들립니다.
“요즘 브라우드 교수님이 자주 오시는 것 같던데. 어제도 봤어. 세미나라도 있나 했더니 아니었지?”
“그거 본부장님 만나러 오시는 거 아냐? 면담 건으로.”
“아닐걸. 본부장님은 면담 필요 없으시잖아. 차라리 둘이 사귀는 사이인 게 더 신빙성 있겠다.”
“본부장님이 아시면 큰일 날 소리하네. 설마 그러려고.”
이후부턴 연애 이야기로 빠지더니.. 별 소득 없는 이야기가 들리네요.
아샤 체르니:(본부장을 만나기 전에 들은 그의 트러블... 이만하면 됐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
본부장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비서실을 지나야 하죠.
몇 번 보아 얼굴이 익은 본부장의 비서가 당신을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아샤 체르니:간만에 본부장님 좀 뵈려고요. 자리에 계신가요?
“아.... 지금은 연락을 받기 어려운 곳에 계세요. 조금 있다가 돌아오실 텐데 그때 연락 드릴까요?”
비서는 연락처를 남길 수 있는 메모지를 건넵니다.
연락처를 써서 돌려주면 본부장이 돌아왔을 때 비서에게 바로 연락을 받을 수 있겠어요.
아샤 체르니:(명함을 받아두고 파일을 전달하러 간다.)
주인은 본부의 사무직원 중 한 명으로, 목에 걸린 사원증에 ‘마이클 블레이크’라는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흑발에 피곤한 인상을 가진 준수한 남성입니다.
마이클 블레이크: 잃어버린 파일이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다 뒀는지 한참 찾았는데 보이질 않아서 난감하던 차였거든요.
이 참에 그에게 실종 사건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네요.
아샤 체르니:(파일을 건네주고는) 피곤해 보이시네요. 무슨 일 있어요?
마이클 블레이크는 난감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엽니다.
마이클 블레이크: 근래 연관성 없는 실종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범인을 특정하기 쉽지 않아서요. 웬만하면 한 사건으로 묶이진 않는데 말이죠, 워낙 특이한 사건이라……
본부에선 빌런의 짓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마이클 블레이크가 보여준 것은 도시의 도면 데이터입니다.
마이클 블레이크: 이게 최근에 실종된 히어로가 가지고 있던 위치추적기를 토대로 뽑은 실종 당일 이동 경로 데이터입니다.
여기, 여기, 여기로 이동한 게 확실한데 이동 시간이 전부 3분에서 5분 내외죠.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절대 그 시간엔 갈 수 없어요. 실종된 히어로는 치료계 초능력자라 공간이동은 불가능하고,
일련의 사건에 관련이 있다면 범인은 공간이동 초능력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종 후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된 실종자들도 설명할 수 있고요.
당신이 도면을 보고 있을 때 그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곤란한 표정으로 건넵니다.
마이클 블레이크: 저,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 위치추적기를 기술과에 반납해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요.
비닐 팩에 든 위치추적기가 당신의 앞으로 왔습니다.
팩에는 기기명과 반납 날짜가 쓰인 태그가 붙어 있습니다.
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창백한 얼굴은 며칠 동안 야근에 매달린 듯 눈 밑이 퀭합니다.
이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 때문에 과중하게 시달리는 게 분명합니다.
어른이라면 자기의 일은 자기가 척척 알아서 할 줄도 알아야죠.
아샤 체르니:......네...(안쓰럽다... 위치추적기를 받아들곤 기술과로 향한다.)
아샤는 정의의 히어로니 곤란한 사람을 내버려 둘 수 없죠.
마이클 블레이크의 부탁대로 기술과로 기기를 돌려주러 가면..
책상 위에는 오늘까지 반납인 도구들이 박스에 한가득 들어있네요.
괜찮아 보이는 게 있다면 슬쩍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쓴 뒤에 적당히 가져다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쓸 만해 보이는건... 초소형 위치추적기, 연막탄, 구급키트가 있겠네요.
비서실에서 보낸 “본부장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연락이네요.
본부 내의 탐문에서는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죠.
그렇다면 직접 머리를 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겠습니다.
본부장실로 향하면 곧장 그 안으로 안내됩니다.
그런데 본부장실 안에는 본부장과 함께 메리 브라우드 교수도 있네요.
본부장:어서 오게. 아, 이쪽은 메리 브라우드 교수일세. 지금 교수와 긴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데…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지? 가능한 빨리 끝내주길 바라네.
어쩐지 그 말에서 당신의 방문을 꺼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샤 체르니:(브라우드 교수를 한번 쳐다보곤) 르네 보니타의 장례식 건입니다.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어서요. ...그의 말대로라면, 시신 없이 장례식을 했다고 하더군요.
본부장:그걸 믿나? 사실이 아니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돼.
르네 보니타의 장례식은 자네도 봤잖나. 걔는 죽었어. 확실히 숨이 끊어졌네.
아샤 체르니:...저는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례식에 시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알 수 없죠. (꺼리는 듯한 시선에 가만히 본부장을 응시한다.) 실제로 장례식 이후에 르네 보니타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왔는데, 부정만 하실 생각입니까?
본부장:개인의 착각에 불과해. 아샤 체르니,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삼가게.
바늘 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한 대화는 분위기를 점점 험악하게 만듭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서 문득 브라우드 교수가 둘 사이에 끼어듭니다.
브라이드 교수:본부장님이 우려하시는 게 뭔지 알아요. 하지만 아샤 씨의 개입은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본부장님도 아시다시피……
본부장:그만. 브라우드 교수, 거기까지 하시오.
메리 브라우드 교수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나직하게 말을 내뱉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르네의 시신이 사라진 것도, 다시 목격된 것도 전부 사실입니다.
지금 르네는 여기.... 본부 아래의 지하 시설에 연금되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아샤 씨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샤 체르니:...이 아래 말입니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뜬다.) 무슨 이유로 연금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적어도 당신이 아는 메리 브라우드 교수는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혼란한 아샤를 두고 결국, 본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와 함께 본부장은 메리 브라우드 교수를 노려본 뒤 당신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본부장:앞으로 보게 될 것은 모두 본부 내 일급 기밀일세. 자네가 무덤에 들어갈 그 순간까지도 반드시 함구해야 하네.
아샤 체르니: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침묵하던 본부장은 책상 아래를 더듬어 감춰진 스위치를 누릅니다.
본부 지하에 비밀 시설이 있다는 루머는 곧 사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브라우드 교수의 눈치를 보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지 조금도 놀라지 않은 기색입니다.
아샤 체르니:(뒤따라 엘레베이터에 올라탄다.)
세 사람을 태운 승강기는 아래로, 더 깊은 아래로 향합니다.
기계가 움직이는 미세한 소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득하던 침묵 속에서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립니다.
몇 겹의 보안 장치와 시설을 지키는 가드들을 지나면 여러 방과 이어진 로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로비를 가로질러 가던,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은 본부장의 등장에 고개를 숙입니다.
직감적으로, 그들이 르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향한 방, 그곳에는 취조실처럼 넓은 창이 있습니다.
분명히 죽었을 르네가 살아서 침대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창 너머의 아샤가 보이지 않을 텐데도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죽었을 거라 믿었던 그녀와 다시 대면한 아샤, 이성판정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좁지는 않은 방에 침대와 탁자, 의자 하나만 놓인 단출한 구조입니다.
힘없이 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르네의 눈빛에 무엇이 비치기는 하는 걸까요.
아샤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당신을 보고 있긴 한 걸까요.
브라우드 교수:부검 중에 르네의 시신이 사라졌어요. 부검의와 당직을 섰던 직원 두 사람도 함께요.
본부에서는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장례식이 치러진 다음 날, 르네가 발견된 거예요.
본부를 언급하면서 메리 브라우드 교수는 옆에 선 본부장의 눈치를 봅니다.
본부장은 냉철한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동일 인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차례 유전자 검사를 치렀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르네가 맞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살아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신체는 살아있는데 정신이 죽었다고 할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아요. 반응 자체가 없습니다.
메리 브라우드 교수의 말대로 창 너머로 보이는 르네는..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몸만 아니라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브라우드 교수의 그 말은 르네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브라우드 교수:저는 아샤 씨가 르네에게 감정적인 동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르네는 당신에게
아주 강렬한 집착과 감정을 품고 있어요.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효과가 있겠죠.
메리 브라우드 교수의 말인즉슨, 아샤가 르네와 직접 대화해 보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는 겁니까? 원인이라도 알 수 있다면......
브라우드 교수:초능력의 근원은 뇌, 그리고 감정이라고 지금 학계에선 그렇게 보고 있어요. 시전자의 감정 에너지가 힘의 연료가 되는 거죠.
그런데 르네는 지금 초능력은커녕 자극에 대한 반응조차 보이질 않죠. 어쩌면, 르네가 가진 감정의 근원인 아샤씨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본부장:아는 사람을 늘려서 좋을 게 없소, 브라우드 교수.
본부장은 브라우드 교수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냅니다.
본부장:나는 여전히 자네의 개입이 달갑지 않네. 이 일은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했고 자네가 르네를 만나본들 효과가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메리 브라우드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네. 물론 받아들인다면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으니 30분 이내 에 끝내야 한다는 것도.
아샤 체르니:(네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런 기대의 끝은 언제나 허무하기 마련이니, 이번만큼은 네 목숨을 포기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창 너머의 네 모습을 직접 마주하자 어쩔 수 없이 마음은 동요하고, 네가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진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역시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창 너머로 브라우드 교수와 본부장이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으리란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가네요.
살아서 움직이고 숨을 내쉬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밑의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질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르네를 둘러싼 주변만 다른 공간에서 뚝 떨어진 듯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샤 체르니:르네. (작게나마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하곤 작게 안도의 숨을 뱉는다. 네게 다다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춘다.) ...나를 알아볼 수 있겠어?
르네 보니타:(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였나. 그마저도, 아주 조금.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어려울정도로. 그렇게 네 눈동자를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긍정하는듯 느릿하게 눈을 깜빡여.)
아샤 체르니:...그래. (긍정하는듯한 신호에 옅게 웃는다.) 너는.. 오딘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지, 아마. (그대로 계속 눈을 맞춘 채로) 말은 하기 싫어?
르네 보니타:(오딘-이라는 이름의 울림에, 그제서야 천천히 시선을 옮겨 너를 찬찬히 훑어내려. 그러다 또 다시 너와 눈이 마주하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잘 모르겠다는듯, 텅 빈 눈동자로 너를 응시해.)
아샤 체르니:여전히 그 이름을 좋아하는구나.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려 살짝 눈을 내려 깐다.) 너는 살아있어. ...중요한 건 그거야, 르네.
르네 보니타:(자신을 바라보는 네가 어떤 마음인지, 무엇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한 눈은 그저 네 행동을 덤덤히 바라만 보았고. 그 안에 담긴 시선이 조금 낯설기도 했나.)
아샤 체르니: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인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어지는 침묵에도 꾸준히 물음을 던지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르네 보니타:(작은 입모양으로 아니,라고 속삭이고. 그에 맞춰 느릿하게 고개를 흔들다가, 이어지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움직임을 멈춰.)
아샤 체르니:...기억나는 게 있다면 말해줘. 너를 도울 수 있게. (고개를 흔드는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나중에라도... 그게 내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창을 한번 돌아본다.)
르네 보니타:(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네 손길에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가, 다시 침묵이 이어져.)
실패인가, 막연하게 답답함만 느껴질 때쯤....
내내 묻는 말에만 대답하던 르네가 별안간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녀는 당신의 팔을 잡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입니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그런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속삭이고 다시 뒤로 멀어집니다.
창문 너머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샤 체르니:...밖? (작지만, 분명하게 들린 한 마디에 자신도 목소리를 낮춘다.) 밖은 왜...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러나 더이상 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샤 체르니:(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전한 것일까. 시간이 다 되어감에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네가 원하는 건... 방법을 찾아볼게.
밖으로 나오면 초조한 얼굴의 메리 브라우드 교수와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 낭낭한 본부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브라우드 교수:하지만 지금까지는 대답도 하지 않았었잖아요. 이건 아주 좋은 신호예요. 이런 식으로 함께 있거나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가면……
본부장:남은 시간이 없다는 걸 당신도 알 텐데.
그보다 아샤. 마지막에 르네 보니타가 뭐라고 속삭인 것 같더군. 뭐라고 말했나?
아샤 체르니:제 이름을 불렀을 뿐입니다. 반응은 약하지만... 분명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고 있어요.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아샤 체르니:
심리학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본부장:이 일에 외부인을 끌어들인 것은 브라우드 교수, 당신의 실책이오.
르네 보니타는 예정대로 오늘 오후 다른 연구 시설로 옮기겠소. 이대로 시간을 끌 수는 없어.
이제 방 안에 남은 것은 아샤와 메리 브라우드 교수 두 사람.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이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쉽니다.
브라우드 교수:……아샤 씨.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르네와 대화해본 느낌이 어떠셨나요? 사람이라고 느껴지던가요?
아샤 체르니:...기억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러모로... 속이 비어버린 상태 같습니다. 꼭 인형 같아요.
당신의 말을 듣고 브라우드 교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갑니다.
브라우드 교수: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건 분명히 르네예요.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했고 결과도 전부 같았어요. 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가 아니죠.
저희는 저 사람을 르네의 복제 인간으로 보고 있어요. 처음 발견할 때부터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똑같은 복제 인간이 동시에 네 명이나 나타났죠.
믿기지 않으시죠? 저도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어요.
제 인간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차례로 죽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저 사람 하나밖에 없어요.
책상 위에 쌓인 파일들을 뒤지던 브라우드 교수가 아샤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밉니다.
분명히 사진 속에는 한 공간이 찍혀 있건만 그 안에 네 명의 르네가 동시에 찍혀 있습니다.
합성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기이한 사진입니다.
아샤 체르니:.....말도 안돼요. 그럼 원래의 르네는요?
브라우드 교수:(천천히 고개를 저어) 시신이 사라진 이후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본부장님은 마지막으로 남은 복제 인간을 다른 시설로 옮겨서 연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실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아마도..... 비인도적인 실험이겠죠.
르네는 만들어진 초능력자니까 어쩌면 이 실험으로 초능력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저도 알아요. 지금은 살아있다고 해도 저 르네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연 정당화할 수 있는 일일까요?
브라우드 교수의 옆얼굴은 씁쓸한 표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는 거겠죠.
본부장이 그토록 감추려고 했던 르네의 비밀이 이것이었겠죠.
이제 남은 선택의 기로는 르네를 밖으로 탈출시키느냐, 아니면 탈출시키지 않고 돌아서느냐로 갈리겠네요.
아샤 체르니:...르네를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이어지는 말들을 듣자 고개를 들어 브라우드 교수를 똑바로 응시한다.) 복제인간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살아있어요. 그것도 저렇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요. 본부가 무슨 권리로 손을 댄다는 겁니까?
브라우드 교수:르네를 데리고 도망치겠다고요? 너무 무모해요! 여기를 지키는 가드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고요.
하지만, 어쩌면 아샤씨라면……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듯 곰곰히 생각하다가) 방법은, 두가지가 있어요. 수송 도중 르네를 빼돌리거나, 눈에 띄지 않게 비밀출구로 데리고 나가거나.
아샤 체르니:...수송 도중 빼돌리려면 경비가 삼엄할 겁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지금, 비밀 출구를 이용하는 게 낫겠어요.
이곳은 본부가 오랜 세월 꽁꽁 감춰 온 비밀 공간이고,
그녀 있는 방 안은 CCTV가 다수 장치되어 있습니다.
브라우드 교수:제가 도와서 문을 열어드리도록 할게요. 하지만 초능력자 가드들이 바로 눈치채고 쫓아올거에요. 그때부턴... 최선을 다해 도망치시는 수밖에요.
아샤 체르니:...입장이 난처해지실 텐데도요.
브라우드 교수:당신만 하겠어요? 준비 되면 안에서 르네를 데리고 나오세요. 그때부터가 시작이에요.
아샤 체르니:사람을 구하는 건... 아무리 준비해도 모자르더라고요. (네게 고개를 한번 숙이곤, 다시 르네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르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샤 체르니:...여기서 나가자. (앉아있는 네게 손을 내민다.) 원하는 곳으로 가야지.
르네는 언뜻 미소를 지었던가요, 당신의 손을 잡습니다.
르네를 데리고 문을 나서는 순간 급박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드러나 있지 않은 열댓 명의 가드들이 총을 들고 일제히 당신의 뒤를 쫓습니다.
저기 앞에 브라우드 교수가 알려준 탈출구가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
민첩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까 몽. (GM):
민첩
| 기준치: |
30/15/6 |
| 굴림: |
49 |
| 판정결과: |
실패 |
르네 보니타:
민첩
| 기준치: |
30/15/6 |
| 굴림: |
4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르네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는지, 조금 불안하게 휘청이다가도 당신을 따라 달립니다.
아샤 체르니:
민첩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3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르네 보니타:
민첩
| 기준치: |
30/15/6 |
| 굴림: |
44 |
| 판정결과: |
실패 |
결국 르네는 달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지금부터는 아샤가 르네를 안고 달려야 하므로 이동에 관련된 판정에서 패널티 주사위 하나를 받습니다.
아샤 체르니:
민첩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51, 66, 29 |
| +2: |
어려운 성공 |
| +1: |
보통 성공 |
| 0: |
보통 성공 |
| -1: |
보통 성공 |
| -2: |
보통 성공 |
뒤에 있는 가드 중 하나가 방벽 초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아샤 체르니:
근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런데 브라우드 교수가 말해준 탈출구는 현재 굳게 잠겨 있네요.
만한 힘으로는 부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철문입니다.
문은 당신 혹은 르네를 알아본듯 스르륵 열립니다.
당장이라도 뒤를 잡을 것처럼 쫓아오던 추격자들은
아샤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채 점차 멀어져갑니다.
불이 꺼진 복도에 비상 탈출구 표시가 깜빡이는 게 보입니다.
힘겹게 오른 계단 끝은 본부에서 한 블록 떨어진 낡은 건물의 창고와 이어져 있었군요.
청소 용품이 군데군데 쌓인 창고에서 나오면 신선한 바깥 공기가 깊숙이 폐로 들어옵니다.
지하에서는 작동하지 않던 핸드폰이 물꼬가 터진 듯 울려댑니다.
당신을 격렬하게 찾고 있는 눈치지만 공개적으로 수배를 내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칫 르네의 존재마저 들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바깥을 돌아다닐 때는 조심해야겠지만…….
우선 한숨 돌렸으니 옷부터 갈아입을까요? 치료도 하고 말이에요.
아샤 체르니:(구급키트를 사용해 르네의 발목을 치료한다...)
르네 보니타:(희미하게 웃으며) ...와줄 거라고 믿었어요.
아샤 체르니:...드디어 말할 생각이 드는 거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몇 군데를 짚어보다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올려다본다.)
르네 보니타:...그곳에선, 무슨 말을 해도 녹화되고 있을테니까요. (여전히 큰 표정변화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누가보아도 이전에 비해 부드러운 모습이었으리라.)
아샤 체르니:거기서는 할 수 없었던 말이 있나보네. (얼추 응급처치가 끝나면 다시 몸을 일으킨다.) 일단 집으로 갈까, 물어볼 것도 있고.
르네 보니타:(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아샤를 빤히 보다가) ....배고파요.
아샤 체르니:나도. (네가 점점 입을 열고, 표현을 하는 모습에 희미하게 웃는다. 발길을 돌려 제 집 쪽으로 앞장서)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그렇게 불려나가서 아무것도 안 먹었네. 토스트라도 해 먹자.
르네 보니타:(앞장서는 네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뒤를 따라가) 토스트... 아샤는, 요리 잘해요?
아샤 체르니:(보폭을 맞춰 걸음을 느리게 하고는) 특별할 것도 없어서, 나름 먹을만 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이참에 네가 먹어보고 알려줘.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불을 켜곤, 들어오라는 듯 너를 돌아봐)
르네 보니타:(나란해진 보폭에 고개를 살짝 들어 너와 눈을 마주했나. 네 말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이전과는 달리 생기있는 눈으로 네 이야기를 듣는 듯 했고.) ...아샤는 잘할거 같아요. (처음 보는 집. 일전의 시설과는 다른, 사람 사는 분위기에 느릿하게 주위를 살피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들어가)
아샤 체르니:(정말로 복제인간일까. 아까와는 달리 자신을 제대로 담고 있는 듯한 눈을 바라보다) 그렇게 말하면 실망 시키기 무서운데... (가볍게 대꾸하며 등 뒤의 문을 제대로 닫는다. 이내 방 안쪽의 옷장에서 네게 최대한 맞을만한 옷을 골라 내밀며) 일단은 멋대로 널 빼돌린 거라.
르네 보니타:거기서 먹은 것보단 맛있을거 같은데...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며 네 뒤를 따라가다 제 앞에 내밀어진 옷을 받아) 고마워요. 아샤는 정말... (옷을 펴서 앞 뒤로 살펴보다가) 심플한걸 좋아하는구나.
아샤 체르니:...화려한 게 좋아? 나한테는 잘 안 어울려서.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다) 애초에 눈에 띄는 게 좋을 것도 없는 직업이니 어쩔 수 없지. (입고 나오라며 방문을 닫아준다.)
르네 보니타:늘... 무채색만 입었던거 같아서, 다른 색도 잘 어울릴거 같은데... (네 모습을 보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여) 금방 나갈게요.
잠시 후 르네는 이전보다 깔끔해진 옷차림으로 나옵니다.
아샤 체르니:...? (토스트 내밀어줌... 주스도 따라줌)
르네 보니타:..잘먹을게요. (배가 고팠는지 가만히 토스트를 보다가 작게 베어 먹어.) (냠냠냠)
아샤 체르니:(네 앞에 앉아 제 몫의 토스트를 대충 우물거린다.) 그나저나... 내보내달라고 했잖아. 밖을 나와서, 어디를 가려고 한 거야?
르네 보니타:(어느정도 배가 찼을무렵, 네 질문에 멈칫하고서 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어) 거기서 나가고 싶었어요. 그땐 그 생각만 가득해서...
아샤 체르니:...나는 네가 죽은 걸로 알고 있었어. (마시던 컵을 내려놓고 턱을 괴며 너를 가만히 응시한다.) 아마 다들 그렇게 알겠지. 그건 알고 있어?
르네 보니타:(잘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사람들이 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본부장인가 싶어 확인해보면 루비 라이트의 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게 좋겠지. (쉿, 하는 제스쳐와 함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자 어디론가 뛰어가는 중인 듯 힘겨운 숨소리가 들린 뒤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루비 라이트:젠장! 지금 어디야? 내가 찾아낸 걸 알면 뒤로 넘어갈걸!
헤헤… 이제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았다고… 빌어먹을! 이거…!
뭐라고 대답할 새도 주지 않고 전화가 끊어집니다.
채 1분도 안 되는 짧은 통화였지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다시 걸어봐도 긴 연결음만 들릴 뿐 받지 않습니다.
아샤의 핸드폰으로 텍스트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선셋 신문사로 와 건물 뒤쪽 골목에 차 세워놨어」
원래도 정상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의뭉스럽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알아냈다는 말이 그토록 절박했는데 혹시나 거짓은 아니겠지요.
아샤 체르니:......가봐야 할 것 같아. (짧은 통화였지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어떠한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몸이 움직였다.) 너는 일단 여기 있어. 상황을 보고 올 테니까.
아샤 체르니:...무슨 의미야? (자신을 붙잡은 손을 내려다본다.)
아샤 체르니:...그렇다면 위험한 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야. 갈 수밖에 없잖아.
르네 보니타:(확신없는 추측이였기에, 더는 말리지 않는듯.) 그럼... 전 여기 있어요?
아샤 체르니:누가 와도 문 열어주지 마.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현관으로 나서며 너를 한번 돌아본다.) 별일 아닐 거야.
르네 보니타:(작게 웃어주며) ....응. 다녀오세요.
하지만 루비 라이트가 뭔가를 찾아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골목과 맞붙은 좁은 도로에 언젠가 본 적 있는 차가 한 대 서 있습니다.
전에 본 적 있는 루비 라이트의 낡은 차입니다.
뒷좌석 위에 반쯤 젖은 핸드폰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물에 젖은 것은 아니고, 무언가 눅진눅진한 점액질 같은 게 묻어 있네요.
하지만 핸드폰은 멀쩡하게 작동하고 카메라 앱이 실행된 채입니다.
루비 라이트의 턱이 화면 가득 찍혀 있고, 숨찬 독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입 가까이에 대고 촬영 중인지 턱과 움직이는 입만 보입니다.
달린다고 할까, 도망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루비 라이트:……근래 비슷비슷한 실종 사건이 몇십 건이나 접수됐다는 걸 확인했다.
연관을 짓기는 힘들지만 본부에서는 빌런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종된 사람들의 뒤를 쫓다가 발견했다…… 괴물을!
화면이 움직여 루비 라이트의 어깨 너머를 비춥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마구 흔들릴 뿐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루비 라이트:젠장, 이런 게 있을 수 있는 거야?
그것들은 느리게 날고 무슨 거대한 벌레처럼… 벌레가 맞긴 한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말도 안 나오는군! 하지만 분홍색이었다. 상상이 가? 분홍색이라고!
영상이 끝날 무렵 등 뒤의 골목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전직 히어로인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
비좁은 골목에 쓰레기통과 무엇이 찼는지 모를 봉투가 난잡하게 널려있고,
전구가 깨진 낮은 전등 아래 누군가 서 있습니다.
작고 왜소한 체격이 루비 라이트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루비 라이트가 으르렁거리며 아샤에게 달려듭니다.
상대가 루비 라이트이기에 방심했는지도 몰라요.
아샤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루비 라이트가 달려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칼로, 어디서 났는지 모를 그 칼로
루비 라이트의 공격을 받으며 복부에 칼을 박아 넣습니다.
그 모든 장면이 멍한 아샤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비명을 내지르며 루비 라이트가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환부에서 흐른 피가 더러운 바닥을 적시고...
르네는 바들바들 떨면서 한 걸음 물러서다, 이내 바닥으로 풀썩 쓰러집니다.
경련하던 루비 라이트의 몸은 이내 떨림이 멎어 그대로 늘어집니다.
구태여 맥박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
관찰력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7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마와 뒤통수가 살짝 꺼져 있는 것을 눈치챕니다.
머리를 만져보면 단단한 두개골이 느껴져야 할 곳이 조금 물렁물렁하게 녹아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르네의 핏기 없는 얼굴이 더욱 더 새하얗게 일그러져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라가는 밀랍 인형이라 해도 믿을 모습.
그녀는 피에 젖은 손가락으로 아샤의 옷깃을 붙잡고 조그맣게 속삭입니다.
르네 보니타:66번지의 연구소에서…… 기다리고 있어.
날 구하러 와, 나의 사랑스러운 히어로.
그 말을 끝으로 르네의 눈이 스르륵 감깁니다.
쓰러진 그녀의 시체는 금세 흰 모래알이 되어 바닥으로 바스러져 흩어집니다.
루비 라이트는 죽었고 르네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말한 66번지 연구소는 조금만 검색해봐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도시에 66번지에 위치하는 연구소는 딱 한 군데거든요.
한때 당신의 편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당신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필사적이죠.
아샤는 오로지 스스로의 발로 뛰어 스스로의 손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은 제법 넓은 부지에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로 겉으로는 평범한 연구소처럼 보입니다.
미리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 어느 회사의 소유라고는 하는데……
이곳에 진짜 르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연구소 안으로 잠입하기 위해 [은밀 행동] 판정
아샤 체르니:
은밀행동
| 기준치: |
40/20/8 |
| 굴림: |
83 |
| 판정결과: |
실패 |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칩니다.
사람은 아샤를 보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쳐 버립니다.
연구소 안에는 분명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들 중 누구도 아샤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기계적으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전체가 커다란 인형극 무대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샤 체르니:
관찰력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실패 |
관찰력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71 |
| 판정결과: |
실패 |
여기에 있는 모두의 머리가 미세하게 꺼져있는 것 같습니다.
꼭 아까의..... 루비 라이트와 비슷한건가요?
생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어쩐지 복제된 그녀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옵니다.
르네의 또 다른 복제 인간은 아샤를 데리고 앞장서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그녀는 지나치는 연구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복도 끝의 비상구 문을 엽니다.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2층 정도 내려왔을까요,
어둑어둑하게 비상등만 켜진 지하가 나타납니다.
긴 복도에 양옆으로 연구실이나 사무실 등이 있는 구조입니다.
대부분 굳게 닫혀있는데 두 곳만 문이 반쯤 열려 있습니다.
각각 [연구실], [박제실]이라는 명패가 문 위에 달려 있습니다.
명패에 연구실이라고 쓰여 있지만 정작 책상이나 연구에 필요한 물품들은
전부 치워져 천을 씌워두었고 그 자리에 커다란 화로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화로 안은 자주 치우는 모양인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네요.
주변에는 갖가지 물건으로 가득한 [플라스틱 박스]가 쌓여 있습니다.
안에는 다양한 사이즈와 스타일의 옷가지와 신발,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 기기, 당장이라도 매고 나가도 될 듯한 가방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아샤 체르니:
관찰력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67 |
| 판정결과: |
실패 |
관찰력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4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사원증의 이름에는 “폴라 드윈”이라고 쓰여 있는데...
잡동사니가 든 박스 외에도 종이 파일이 가득 담긴 박스도 있습니다.
파일을 다급히 넘겨보면 “양성 판정 조건”이라는 항목 아래 다양한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조건들이 길게 이어집니다.
르네 보니타:초능력 이식 실험은 까다로운 검사를 받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어요.
파일을 읽고 있으면 곁에 선 르네가 조용히 말합니다.
르네 보니타:그중에서도 초능력을 얻은 사람은 극소수였고, 살아남은 건 더 적었어요.
그래서 희귀한 거예요.
음성 판정을 받았거나 실험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에겐 쓸모가 없었고요. 작은 날벌레처럼…….
박제실이라는 명패가 붙은 문 안으로 들어섭니다.
한 걸음 들이자마자 지독하게 알싸한 약품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박제실 안에는 좁은 침대가 서로 간격을 벌려 방 안 가득 놓여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미동도 없이 누워 있습니다.
감촉은 사람이 아니라 미라를 만지는 듯 연약하고 딱딱합니다.
오래 있고 싶지 않은, 토악질이 쏟아질 것 같은 공간입니다.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4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하지만 아샤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짤막하게 쓰여 있어 도저히 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르네의 시신을 부검했다는 부검의가 아니였을까, 싶네요.
르네 보니타:레지 브룩스예요. 옆에 쓰인 건 ‘양성’이고요.
르네 보니타: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열댓 명의 얼굴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문득 본부에서 찾은 파일의 실종자 명단이 떠오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그 명단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이들을 납치하고 이런 몰골로 만들어놓은 건, 대체 누가…….
그렇게 또 비상등만 점멸할 것처럼 불안하게 깜빡이는 어두운 복도를 둘이서 걸어갑니다.
당신에게 문을 열라는 듯이 그녀는 물러섭니다.
그 안에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르네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습니다.
르네가 복제 인간이라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3/31/12 |
| 굴림: |
95 |
| 판정결과: |
실패 |
그제야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유리창이 보입니다.
본부의 지하에서 보았던 취조실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팔과 다리를 완전히 구속하는 구속복을 입은 르네가 있습니다.
입에는 재갈을 물고 딱딱한 의자에 앉혀진 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창에 그림자가 어리는 듯 모습을 드러낸 당신을 발견하자 고개를 들고 미소 짓습니다.
감정이 흘러넘치는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갈 문은 없으므로 유리를 깨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아샤 체르니:(유리를 깨고 안으로 진입한다.)
금이 그려지며 부서지는 유리 파편들을 넘어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그 안이 드디어 눈에 보입니다.
르네가 앉은 의자 뒤로 사람의 뇌를 통에 담아 모아둔 찬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그리고... 르네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우선 무척 지쳤고, 그녀를 복제한 인간들만큼이나 파랗게 질렸으며
산 사람처럼 보이는 곳은 오로지 빛나는 두 눈뿐입니다.
그녀의 복제 인간들과는 달리 드러난 살결에 푸른 멍 자국과 상처가 가득합니다.
눈 밑은 검고 까슬한 입술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습니다.
그 얼굴에 당신을 재회한 환희와도 같은 기쁨이 얼룩져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 (그 기이하고 끔찍한 공간 가운데, 홀로 창백하게 살아있는 네게 다가간다. 입에 물려진 재갈을 벗기면서도, 시선을 내리면 보이는 멍 자국들이, 입술에 말라붙은 피가 아파보여 눈을 찡그린다.) ......미안해, 늦어서. (겨우 한 마디를 뱉으며 네 눈을 바라보면 느껴지는 생기에 너의 죽음에 대한 한 줌 의심마저도 모두 흩어졌다.) 잘 버텼네.
르네 보니타:(벗겨진 재갈에 그제서야 편히 숨을 들이마쉬고서. 언제나 그랬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어) 하하. 안 놀랐어요? 나는 내가 죽은 줄 알았는데…… 눈 떠보니까 이런 꼴인거 있죠. 죽은 사람 살리는 건 일도 아닌 놈들인가봐.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찡그리는 네 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찮아요. 그래서 내가 불렀잖아요. 당신을.
아샤 체르니:충분히 놀랐어. 나는 네 장례식도 갔으니까.. (재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남은 네 구속구를 풀기 시작한다.) 누가 너를 많이도 원하나 봐, 이렇게까지 만들어낸 걸 보면. (깨진 창 너머의 복제인간들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본다.) 너 제대로 살아있어, 르네 보니타. ...그래, 네 말대로... 내가 구해줄거고.
르네 보니타:(살풋 휘어진 눈으로 너를 바라보다, 네 이야기에 시선은 자연스레 창 너머의 것들에게로 향했나.) ... 날 복제해서 강력한 초능력자를 더 많이 만들려고 했겠죠. 바보같은 것들.
초능력의 근원이 뇌와 감정에 있다는 거 기억해요? 그러니 감정 없는 내 복제들은 초능력을 쓸 수도 없었죠. 나는 이렇게 강한데.
당신을 향한 사랑이 나를 강하게 하는데……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와 다르게 휘어진 진한 눈동자는 오직 너 하나만을 담았고.) 역시 나의 히어로다워요.
아샤 체르니:...루비 라이트라고 알아? 최근 실종된 사람들의 뒤를 캐다가, 그가 남긴 기록이 하나 있어. (구속구를 마저 풀어내며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그의 죽음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괴물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분홍색 벌레에게 쫓기는 것 같았지. ...그것도 이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
르네 보니타:아... 제 옆에 붙어있던 파리요? 바보같이 이번엔 구멍을 잘못파서 죽기라도 했나봐요. (그의 행적으로 보아, 네가 무슨 말을 담지 못했는지는 안봐도 선했다. 입가의 상처가 아려왔지만, 개의치않고 작게 미소를 머금은채)
이 실험의 뒷배는... 우리 같은 초능력자나 돈 많은 또라이 같은 게 아니에요. 괴물이거든요.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괴물.
아샤 체르니:...그렇게 말하지 마. 선의는 아니었어도... 너를 찾은 것에 그의 지분이 없는 건 아니야. (말릴 새도 없었던 그 순간이 떠오르는지 눈가를 꾹꾹 누르다,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그런 괴물이 초능력이라도 필요로 했다는 거야? 뭘 위해서.
르네 보니타:하지만 그자 때문에 당신은 죽을뻔했어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자유로워진 몸을 체감하는 듯, 가만히 제 주먹을 쥐락펴락해.) 내가 당신을 구했고. 뭐... 정확히는 내 복제인간이지만.
이유가 필요하겠나요. (제가 겪은 일을 떠올리듯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차가운 조소가 되었고.) 예쁜 나비를 보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러니까, 만들어내는거에요. 더 크고 아름다운 나비를. 계속해서.
아샤 체르니: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였어. 나를 알고도 덤빌 만큼 객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니, 그건 이제 됐어. (산 사람을 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죽은 사람은 잠시 뒤로 하기로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일이야, 르네. 차라리 화를 내. (태연하게 자신을 나비에 비유하는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는) 여전히 너를 아끼는 게 부족해.
르네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와줘서 고마워, 같은 특별할 것 없는 어조로.
르네 보니타:난 지금 매우 기뻐요. 당신이라면 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내가 죽는다면 당신의 손에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하지만, 나를 살려두면 괴물들의 연구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죽는다고 완전히 멈출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엿 먹일 순 있을걸요. 그런데 그냥은 안 돼요.
날 죽이고 시신조차 남기지 말고 흔적 없이 태워버려요. 괴물들이 다시는 살릴 수 없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에 든 끔찍한 의미가 퇴색할 리 없습니다.
아샤 체르니, 당신의 손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
이 무대에 끌려온 것은 결코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역이용해 끝내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당신과 자신의 영화는 당신이 나를 죽이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아샤 체르니:...전에도 말했지, 너는 잔인하다고. (그건 비단 타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성정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너는 스스로의 목숨을 가볍게 보는 것으로 아샤 체르니에게도, 르네 보니타에게도 잔인해진다.) 언제나 희생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려고 하지... (상처로 물든 네 뺨에 손등을 갖다 댄다. 이정도 아팠으면 그만두고 싶을 만도 하다. 포기하고 싶을 만도 하고, 복수하고 싶을 만도 하다. 자신은 그 시간을 겪지 않았으니 네 생각을 다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르네. ) ......왜 지켜달라는 말은 안해.
르네 보니타:(당연히 화를 낼것이라 생각했던 모습과 달리, 부드러이 제 뺨에 닿아오는 것이 조금 눈이 커졌나.) 잔인한건가요? 그저, 내게 당신이 언제나 1순위인것 뿐인데. 나의 히어로, 아샤 체르니. ...그리고 오딘.
(이곳에 끌려오고서는 말그대로 죽지만 않았을 뿐, 아프고 또 아팠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중요치않아. 그보다 지독하게 화가났던것은 바로..,) 만약 내게 죽음이 있다면 그 끝은 오직 당신이여야만 해요. 당신이 나를 살렸으니까, 나의 마지막에도 당신이 있어야지.
(언젠가 네게 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때도 분명 자신은 이렇게 말했지.) 지켜달라 할 수 없어요. 난, 수 많은 사람 중 하나로 남고 싶지 않아. 당신이 태양이면 나는 달이 될것이고, 하늘이면 땅이 될거야. 그렇게서라도 당신을 빛낼거에요.
아샤 체르니:(목숨은 온전히 한 사람의 것이다. 감히 개입해 그 목숨을 구했다 한들 자신은 네 삶을 흔들 자격이 없고, 너의 목숨은 나에게 귀속된 것이 아니다. 너는 그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봐, 너는 늘 죽는 순간만을 생각해. 아직 이렇게 살아있는데.
지켜 달라고 해. 다시 이런 순간이 오면, 구해달라고 소리쳐. (너의 뺨을 만지고 있으면, 아직 차가워지지 않은 살갗과, 배어나오는 피가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그대로 손을 떨어뜨려 자유로워진 네 손을 겹쳐 너의 가슴께에 얹었다. 스스로 느껴보라는 듯이.)
...네게 나는 죽는 이유보다 사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거야? (내가 태양이라면 너는 내가 비추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야지. 빛이라면 어둠속에서라도 존재해야지. ...그렇게라도 살아야 되는 거잖아.)
르네 보니타:...그야, 내 삶에 있어 가장 가깝게 지켜본 건 언제나 죽음뿐이었으니까요. (덤덤하게 꺼내는 이야기는 얼마나 자신이 무뎌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포기에 가까웠지만.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을 삼키며 손가락을 접었어.) 첫번째는 우리가족. 두번째는 내가 죽인 사람들. 세번째는 나. 내게 있어 생명이란... 오직 아샤, 당신을 의미해요.
그런데도. ....지켜달라 하면, 구해달라하면 온몸을 옭아메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나요? (손끝에서 느껴지는 작은 울림이 있었다. 쿵 쿵.. 그건은 자신의 심장이요, 지금 이자리에서 너를 제 눈에 담을 수 있게 만들어준 호흡이리라. 하지만, 나는.) 내 삶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당신이 눈을 떼면, 어디선가 또다른 죽음이 나를 덮쳐 올거에요. 단 한순간도 삶의 이유가 없었던 '나'는 자연스레 죽음으로써 내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 할거고요.
나는... 검은 튤립이고 박제된 나비. 썩은 물처럼 시간이 지난 그 자리에 아직도 고여있어요. 말해봐요, 아샤.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그 모든걸 감수하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아샤 체르니:그렇게 말한다면, 내 삶에 있어서도 가장 가까운 건 죽음이네. (네 말을 들으며 입 새로 엷은 웃음을 흘린다. 눈을 반쯤 감고, 네가 하듯 제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첫번째는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 두번째는 내가 앞으로 구하지 못할 목숨들. 세번째는... 역시 언젠가의 내가 되려나. 너와 달리 나는 놓칠수록 깨닫게 되는 거야.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진귀함을.
네가 말하는 구원이 그 모든 죽음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면... 알잖아, 나는 언제나 그걸 위해 싸워왔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제 시야에 너를 담았다. 네가 언젠가 다른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때가 오게 만드는 것.) 말했잖아, 내가 주고 싶었던 건... 그런 기회였다고.
검은 튤립, 밤의 여왕... 르네 보니타. 너는 내가 한번 구한 목숨이야. 내가 너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치를 매길 수 없으니까.
...내 바람은 네가 죽음으로부터 아주 멀리 날아가기를 바래.
르네 보니타:(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우면서, 누구보다 생명과 가까운자. 그 갈림길에서 나는 기꺼이 죽음을 택했고, 당신은 생명을 선택했을 테지. 그게 우리의 차이였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히어로가 될 수 밖에 없는거야.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 아샤, 체르니니까.)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내가 아는 히어로는. 아샤 체르니 당신은 결국 나에게 손을 내밀것이라고. 언제나 이상해요, 당신은. 다친것도, 죽고자 하는건 난데 당신은 늘 내몫을 대신해서 아파해. (결국 내가 당신을 동경하는 이유는, 당신이 한없이 따스하기 때문이다. 결코 내가 손에 넣을 수 없음을 아니까 그토록 아름다워 보일수밖에.)
기회.... 한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나는 결국 진심으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거에요. 그런다 한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그럼에도 나의 히어로가 바란다면.... ( 착각임이 분명함에도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따사로운 태양은 싫지만 다정한 바람은 좋아. 내게 있어 당신을 선명히 새겨주니까. ) 내기할까요. 그 바람이 나를 어디까지 보내줄지.
아샤 체르니:(갈림길에서 너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했다. 나비는 날아갈 방향을 잘못 잡았고, 이미 멀리까지 온 길을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바람은 너의 방향을 돌려주고자 할 것이다. 끊임없이 너의 등을 밀어줄 것이다. 덮쳐오는 죽음에 휩쓸리지 않고, 마침내 삶으로 향할 수 있도록.)
...알고 있으면서, 왜 언제나 그렇게 불안해 해. (네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설령 네게 죽음이 오더라도, 그 끝에 내가 있더라도... 그건 내가 너를 놓는 순간이 아니라, 잡으려고 하는 순간일 텐데.)
삶을 선택하는 순간, 너는 나의 일부를 이해하는 거야. 그거면 충분해, 르네 나는... (언젠가의 허물어진 건물 속에서, 울고 있던 너를 발견했을 때처럼 손을 내밀었다. 너는 끝내 알 수 있을까. 그때의 너는, 아샤 체르니가 절망 속에서 발견한 유일한 희망이었고,)
어디까지 가고 싶어?
(나는 네가 너무 기꺼워서, 눈물을 겨우 참았던 걸.)
르네 보니타:나는, 나비라고 했죠. 그렇다면.....
(잔뜩 흐려진 시야 앞에 오직 너만이 선명했다. 그날도 꼭 그랬는데. 구덩이 속에 쳐박아버린 기억 중 선명하게 새겨졌던 하나. 내 손을 잡아 날 이끌어준 너는. 또다시 내게 손을 내민다.)
하늘 높이 날아갈래요.
나를 쫓는 죽음이고, 어둠이고 그 어떤것도 잡을 수 없을만큼. 높이 더 높이.
(너를 향해 내뻗는 손이 어느 순간보다도 가벼웠다. 그렇게서라도 나의 유일한 빛을 거머쥐겠다고.)
그녀가 빌런이더라도, 살려두는 것이 인류에 더 큰 재앙이 될지라도……
르네는 조금 놀란 표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상했다는 듯 웃습니다.
주변으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을 넘어 잇따라 들어오는 기계 같은 인간들과 괴물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들.
그것은 당신이 사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분홍색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2/31/12 |
| 굴림: |
4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던 아샤에게도 그녀의 죽음은 손에 꼽힐 만큼 빠르고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아샤 체르니:
SAN Roll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8 |
| 판정결과: |
실패 |
격렬한 파괴의 충동이 당신을 휘어 감으면 다른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지금부터 아샤의 초능력 기능 수치가 2배로 조정되고 판정 없이 전성기 시절 200%의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당신이라면 눈 앞에 있는 괴물들을 단숨에 물리칠 수 있겠지요.
아샤 체르니:
초능력 Roll
| 기준치: |
130/65/26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주변 공기가 위태위태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바닥을 휩쓸던 작은 바람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그 크기를 불려 나갑니다.
멈출 줄 모르는 바람의 위력은 점차 거세지기만 합니다.
바람에 휩쓸린 물건들이 예리한 칼날에 잘린 것처럼- 제 형체를 건사하지도 못합니다.
마침내 바람이 천장까지 맞닿을 만큼 커진, 지금.
당신의 능력으로 눈 앞의 미고를 처리합시다!!
이만한 위력의 초능력자가 나타나리라 예상하지 못한걸까요?
거대한 형체를 이룬 바람 앞에 당황감을 숨기지 못한 미고는 그 자리에서 주춤하더니,
자리를 떠나기도 전에 바람에 휩쓸리고 맙니다.
외마디의 비명도 잠시, 미고는 이내 바람 속에서 형체도 없이 스러지고 맙니다.
천장에 금이 간 듯 후두둑 떨어지는 콘크리트 가루들 아래,
점액질을 흩뿌리며 죽은 괴물들과 머리가 푹 꺼진 시체들이 겨우 눈에 들어옵니다.
광기가 지나간 자리는 폭풍에 쓸려간 듯하고 온몸으로 오한과도 같은 소름이 돋습니다.
승리의 환희는 온데 간데 없고 어두운 감정들이 거센 파도가 되어 몰아칩니다.
정의의 수호자였으며 최강의 히어로였던 자의 빈 껍데기만 겨우 지탱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샤 체르니:(세상에 허무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간혹 어떤 죽음은, 마지막 말조차 남길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죽음은 잡히지 않는 바람을 빗겨가고 나비만을 낚아 채, 너는 구해달라는 외침 한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허물어진 풍경이 그때와 같다. 너는 기어이 나의 첫번째가 되어, 미처 잡지 못한 목숨으로 남았나.)
작은 소리조차 놓치지 않고 귀에 꽂혀 선명하게 들려올 때가.
스치는 오한 속에서 등 뒤로 옅은 기침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몸을 돌리면 쓰러진 그녀가 격하게 숨을 토해내며 몸을 움찔거리는 게 보입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가물가물한 눈을 뜨고 천천히 정신을 차립니다.
하지만 곧 건물이 무너지려는 불길한 징조가 소리를 타고 내려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대로 그녀와 함께 압사당할지도 몰라요.
어느새 복도 곳곳에 쓰러진 연구원들을 헤치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겨우 밖으로 나와 뒤를 돌아보면 건물이 온전히 무너지진 않았지만 불길하게 쿠궁거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립니다.
이젠 무너지지 않겠다... 싶은 장소에 다다랐을무렵.
밖으로 나가기전 우리는 정해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샤 체르니:...봐, 르네. 넌 지금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을 타고 있어. (제 품에 안긴 너를 내려다본다.) 아까 말했던 내기... 생각보다 금방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면 내가 이기는 건가?
르네 보니타:(아직은 조금 버거운듯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희미하게 웃었나) ....바보. 난 내 히어로가 지는 꼴 못봐요.
이기면 뭐... 소원이라도 하나 들어줄까요?
아샤 체르니:좋네. 모든 내기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잖아. (질 내기를 청한 것은 너니까, 어떠한 형태든 책임을 져야지. 네 등을 받쳐 들고,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우린 가장 높은 하늘에 있겠지.)
...내 소원은, 네가 이 풍경을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르네 보니타:...아샤는 어른같다가도, 이럴땐 애같아요. (작게 숨을 내쉰채 느릿하게 눈을 감았을까. 이윽고 서늘한 바람에 찬찬히 눈을 떠보면, 푸른 광경이 펼쳐진다. 드넓게 펼쳐진, 결코 빛을 잃지 않는 당신 같아.)
...역시 나비로 태어날걸. 그렇다면 매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샤 체르니:매일 보면 아름다운지도 몰라. 나비도 땅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꽃에 내려앉는 걸 거야. (하늘에서 보니까 땅도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잖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어. 르네 보니타.
르네 보니타:....혹시 몰라요, 나는 변덕스럽고 작은 물살에도 쉽게 쓸려가는 사람이라. 어찌될지. 다만.... 이 공기가, 바람이, 하늘이 좋아요. (천천히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한층 선명해짐을 알수 있었고.)
시원한게, 아샤를 닮았어요.
...만약 내가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일거에요.
아샤 체르니:......나는 좀처럼 마음이 바뀌는 일이 없어서, 사랑을 거두는 일은 없어. 여전히 험난하고, 잔인한 면이 있는 세상이지만, 이 위에서 보는 풍경만큼 나는 저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좋아해.
걱정마. 네가 무사히 이곳을 사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나는 세계를 저버리지 않아.
르네 보니타:(천천히 손을 뻗어 네 뺨에 마른 손이 닿았을까. 너무나도 눈부신 사람. 무너진 잔해 속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사람. 그래. 어쩌면 나는 그날 눈이 멀어버린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있어요, 나의 히어로.
오딘이 아니라 아샤 체르니, 당신을요.
아샤 체르니:(그 말을 들으면, 그저 여느 때처럼 웃어 보인다. 다만 쓴 기색 하나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닮은 얼굴로.)
축하해.
...벌써 세상의 일부를 사랑하게 됐네.
르네는 이미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의 복제 인간이 아닌 진짜가 살아있다는 것을 본부에서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죽인 그 괴물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끝을 모른 채 이어집니다.
하지만 당장 안전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겠죠.
당신은 그녀를 데리고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치기로 합니다.
살던 집은 처분했고 본부와의 연락도 끊어버린 채 작은 도시로 떠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제멋대로 은폐하기로 결정했나 봅니다.
66번지의 연구소는 관리 미흡과 실수로 인해 폭발하였고
일련의 실종 사건들은 빌런의 행각이었으며 본부에서 즉각 대응하여 범인을 검거했다네요.
있지도 않은 빌런을 잡느라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아샤가 한 일은 무너진 연구소와 함께 묻혀버렸습니다.
아주 사소한 행복을 느끼며 도피 생활을 만끽하는 데에는 달가운 일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당신은 자신의 초능력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적어도 눈앞에 괴물이 나타나거나 르네가 픽 쓰러져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당신과 함께 초능력을 잃고 이전보다 좀 더 옅어진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