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을 항상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께, 제가 작업하면서 생각했던 지점을 이야기하고 무한 칭찬을 듣는 과정……
저희 교수님도 해주지 않으셨던 그것을 매번 우쭈쭈. 해주시는 킹갓제너럴 신청자 황연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저 또 돌아왔어요 ( ㅠ ㅠ)
0. 들어가면서
코비와 베르디가 서로와 교차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을 중간에 꼭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 그러나 작업하면 작업할수록 쥐어뜯게 되는 나의 머리카락…… 이렇게 된 건 재앙이 나쁜 거야(ㅠ ㅠ) 상황이 나쁜 거야(ㅠ ㅠ) 정부가 나쁜 거야(ㅠ ㅠ)를 무한 반복하다…….
이 이야기가 코비의 시점에서 시작해서 베르디의 시점으로 마무리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코비가 느꼈던 중압감이 극대화되며 베르디가 자칫 나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주 집중하면서! 벌레는 나쁘지 않아 나쁜 건 이 세상이야! 를 생각하면서! 작업했습니다 (ㅋㅋ)
1. 제목, 모두 허물 안에서 꿈을 꾼다
이미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 요소는 ‘허물’ 그리고 ‘꿈’입니다.
허물과 꿈은 어느 한 캐릭터의 속성이 아니며 둘 모두에게 부여되도록 고려했어요. 그리고 많은 이미지를 중첩해서 촘촘하고… 장면이 많지만 그 장면마다 밀도가 높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큼직하게 가닥을 잡은 오감, 관념적 이미지는 이런 식입니다.
허물: 껍데기, 경질의, 가두는 것-그래서 찢고 나올 수 있는 것, 인간의 몸, 벌레의 외피, 연구동의 높은 담벼락
꿈: 갇힌 것, 자의식이 고도화될수록 정교해지는 것-그래서 두 캐릭터는 갖지 못한 것, 검정, 좋음과 나쁨의 구분에서 자유로움, 신의 영역(인간이 통제 불가한)
그러면서 키워드들이 자유롭게 운동하도록 두었는데, 두 키워드는 떨어질 수 없고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이를테면 코비의 마지막에서 ‘이 꿈에서 깬다’는 건 살아있다는 몸을 찢고(죽이고), 지옥에서 꾸는 꿈 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입니다.
베르디의 경우에는 ‘나선’이라는 시나리오 자체의 키워드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돌아 오르내리는 계단을 떠올렸어요. 매번 기억을 잃고, 좋은 꿈을 꾸라는 말을 들으면서, 허물(벌레의 몸) 안에 갇힌 인간의 자의식(환상, 꿈)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허물과 꿈은 한 사람에게 치중된 것처럼 보이지만(각각 코비와 베르디) 사실 둘 모두 가지고 있는 속성이며, 이것은 3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도 연결이 됩니다. 나선, 그리고 붕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둘 사이의 구분(인간-비인간)이 흐려지고 섞이면서 보여지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깨우침은 원래 코비처럼 천재적인 인물이 가져야 함이 마땅하죠. 그런데 코비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했고, 아주 잔혹하고 말도 안 되는 꼴을 보고도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끝에 몰리는 지금이 되었어요. 그는 결국 깨우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나갈 수 있는 모든 길이 막혔다면 스스로 만들어 내기로요. 이 현실이 지저분한 꿈인 것을 깨달았으니, 몸이라는 허물을 벗고 삶으로부터 도피하기로요. 이게 코비입니다. 말하자면 틈을 만드는 자예요.
베르디는 깨달음입니다. 동시에 물리적인 것(높은 담, 벌레의 외피)에 갇힌 존재여서, 좁은 틈으로 밖을 보는 자라고 상정했습니다. 베르디는 코비에게 ‘너와 같은 사람으로 크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내며 코비의 인간적인 면을 건드리는 일로 관계의 진전을 야기하고, 기억을 아무리 잃어도 연구동을 돌아다니며 결국에는 문을 열어버리는 것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돼요. 비극이 있다면 베르디의 한 걸음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전진이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그는 어떻게 해서든 완전히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로 끝이 나버렸기 때문에, 틈으로 겨우겨우 내다보는 이에게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튼 상기 이유들과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처음 장면에 본인의 흉터를 의식하는 코비와, 마지막 장면에 죽었다 살아난 흔적(메스로 그었으나 아물어 틈만 남은 흔적)을 더듬어 만져보는 베르디를 각각 삽입했습니다.
벌레 껍질 속에서 웅크리고 밖을 겨우겨우 보는 자, 이건 PC라는 위치의 제한적 정보만을 가지고 게임에 임해야 하는 상황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고요.
없는 틈을 억지로 찢어 만들며 탈출하는 이미지는 역시 코비지요….
2. 베르디에 대해서
코비와는 다르게 베르디는 일부러 잘려나간 연출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무언가 연속적이지 않고, 코비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분량에서는 파편화되어 등장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코비가 베르디의 좋았던 면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그렇겠죠? 그 또한 너무도 외로운 존재이고, 함께 있는 생명체라곤 베르디가 전부였던 데다가, 베르디의 과거 모습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베르디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코비가 계속해서 너는 악이며 있어선 안 될 존재라고 뇌까리지만… 베르디는 악하지 않아요! (ㅠ) 악하지 않습니다.
토네이도나 폭풍을 보고 인간이 악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연은 감정이 없죠. 감정이 있는 건 인간이고, 하늘이 노래하듯 밝다거나 전쟁처럼 내리는 폭우 같은 건 인간이 자연에게 덧씌운 감정이니까요. 자연은 그냥 자연입니다. 인간이 아는 모든 걸 알 필요도 없어요. 다만 재난이나 재해라고 부를 수는 있겠죠. 그냥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아프게 하거나 죽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베르디는 그저 그런 상태인 것뿐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안쓰러운 것이지요…. 재난에 빗대어지지만 베르디가 살고 있는 삶은 인간의 것이니까요 (ㅠ)
결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순간에는 코비보다 인간적입니다.
코비가 계속되는 자극과 공포, 고통에 노출되면서 인간성이 마비된 상태일 때, 베르디는 그를 ‘괴물 보듯이’ 봤을 거라는 묘사가 플록 내에 있더라고요. 그때 무릎을 탁탁 치고 말았어요.
베르디를 마지막에 혼자 남겨두게 되면서 아주 쓸쓸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답니다.
또 하필이면 기억을 잃는 바람에(ㅠㅠ) 아이고 아직 아기인데… 시간이랑 별개로 저 속은 열다섯 살인데 하면서요. 베르디가 유난히 순종적이고 감정 표현이 적어서,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만든 세상이 잘못이야(ㅠ)
3. 교차하는 두 인물
앞서 허물과 꿈이라는 속성을 둘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인간성과 비인간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연출하고 싶었어요.
일차적으로는,
고기능 두뇌를 가진 불세출의 천재이지만,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진 코비↔열다섯 살이면서 노인처럼 체념하며,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베르디
의 관계가
후반부에는…
인간이지만 괴물처럼 흉폭해지는 코비↔괴물이지만 인간처럼 이해하는 베르디
로 전환되면서 교차하는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플록에서 코비가 GM 메시지로 하는 말들이 너무너무 인상 깊어서 이건 꼭 써야겠다 싶었죠….
덧붙이자면, 코비는 베르디가 비인간이라고 판단했지만 결국 인간의 삶을 벗어던지고 죽음이라는 비인간의 길로 가버린 것도 코비이지요.
베르디는 계속 인간이었으며(환각제 때문이지만….) 인간으로 글의 마지막을 맺었는데,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저(얌) 나름대로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존재라는… 뭐 그런…. (그뭔씹)
그래서 제가 이 작업물에서 상정한 꿈=발달된 인간이 꾸는 것
이라면… 마지막의 “이건 꿈인가…?”라고 말하는 베르디는……. (후략)
그런데 코비가 남긴 죽은 몸은 완벽하게 인간의 형상이었음! 도 저는 꼬옥 말해주고 싶었어요. 코비 너무 안쓰럽지요 (ㅠ ㅠ) 그래서 그의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외길이었음을 말해서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 묘사가 바로 베르디가 본 코비의 마지막입니다. 피에도 물들거나 변하지 않는 흑색 눈동자와 머리카락이요.
4. 마치며…
사실 허물의 틈은 역대급으로 자잘한 수정이 많았던 작업물이었어요. 그게 싫었다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사유는 제가 디테일을 채워 넣으면서, 신청자 분께는 허락받지 않은 설정을 교묘하게 만들고 오마카세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름대로 캐릭터의 입장에서 오래오래 생각하고 정말 ‘있음직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 창작자이기 때문인데요! 그럴 기회가 많아서 즐거웠어요.
그런데 황연 님께서 이번 글의 디테일에 대해 은근히 짚어 주셔서 무척 기뻤네요 오전부터…. 알아봐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며(ㅠㅠㅋㅋㅋㅋㅋ) 늘 제가 더 열심히 쓰는 원동력이 되시는 분임을…….
그리고 둘!! 구제 시날!!!!!!!!!!!!!!!!!
가서 너무 다행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 글을 작업하는 후반부에는 진짜 (ㄱ-) 표정으로 얘들아…. 라고 몇 번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저희 신청서 주고받을 때가 생각나네요….
수줍게 이런 페어만 있는 건 아니라고 변명하시던 황연 님의 모습….
그러나 자극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떤 커미주….
제가 어디 가서 이런 멋진 페어로 글을 써 볼까요….
그런 맥락에서 황연 님은… 한 번은 저한테 돈을 주시는 게 아니라 받아보시기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황연 님: 무슨 말이죠 이게
모쪼록 후기 글도 즐겁게 읽어 주신다면 저는 이 버거운 수요일이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매번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예약 슬롯도 있으신데…
사실 이걸 보고 “ㄴ ㅐ 페어를 이러케 극,악묻오하게 쓰다니 환불해주세욕”이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저 통과인 거죠?
그럼… 다음에도 잘부탁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