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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2부
아무도 너에게 세계를 구하라 시키지 않았다.
2025-03-07
KPC. 얀 마르테 · PC. 채드 클레번

그때 잠에서 깨어, 지는 해를 등에 건 탓에 온통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저무는 적도편동풍과 탄산 같은 폭발음이 세상을 수놓던 현장에서.
문장을 나누어 쓸 수밖에 없이 맹렬한 감정 속에서, 그들은 알았다.
너는 나를 완전히 죽이거나 살리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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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
 
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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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언제나 그렇듯 바다에서 시작합니다.
 
바위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려온 그가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
 
거품처럼 부드럽게 감기는 파도를 느끼며
 
고개를 젖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넘쳐 흐르는 햇빛을 마시듯
 
눈을 감은 채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립니다.
 
지는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빛줄기가 눈가 위에 고이자
 
속눈썹이 황금색으로 반짝입니다.
 
그러다가, 뜨였습니다.
 
무슨 화제인지 깨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말들을 나누다,
 
물을 튀기는 시덥지 않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지켜보기도 합니다.
 
등을 맞대고 앉으면 그 무게감마저도 낯설지 않습니다.
 
그가 습관처럼 눌러감은 눈을 뜨고,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
 
꿈에서 깹니다.
 
그리고 들렸습니다.
 
얀 마르테:안녕……, 채드.
살아 있으면… 손 들어 볼래?
 
그때 잠에서 깨어.
 
지는 해를 등에 건 탓에
 
온통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면서.
 
저무는 무역풍과 탄산 같은 폭발음이 세상을 수놓던 현장에서.
 
문장을 나누어 쓸 수밖에 없이 미묘한 감정 속에서.
 
서로 알았습니다.
 
너는 나를 완전히 죽이거나 살리게 될 거야.
 
쾅!
 
규칙 없는 난수처럼 일렁이던 에너지가
 
격자 모양을 그리다 하나의 직선으로 모아집니다.
 
곧이어 에너지 파형이 포물선을 그리며
 
위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그의 등 뒤로 메다 꽂혔습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 유량이었습니다.
 
미로를 뚫는 경로처럼
 
금백색 에너지는 곧바른 쇠뇌같이
 
사방 몇십 미터 안의 모든 것을 폭발시켰습니다.
 
채드 클레번: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기억이 산발적으로 돌아옵니다.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채드의
 
세 번째 실전 전투였습니다.
 
건물 잔해와 부서진 폐허 속에
 
처박혀 있는 자신이 눈에 띕니다.
 
분명 장박 바깥에서 크리쳐와 전투 중이었습니다.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군이 열세에 밀려 전멸 위기에 처했고,
 
그것을 막으려다 크리쳐의 공격에 휘말려 날아갔었죠.
 
그리고…….
 
그리고, 얀 마르테.
 
다시 눈을 깜빡한 것 같은 찰나에,
 
무슨 수를 쓴 건지
 
이번엔 엉망이던 주변 풍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부상자들을 의료 로봇들이 실어 가고,
 
그는 당신을 일으켜 로봇의 들것에 실어 줍니다.
 
얀 마르테:…돌아가자.
 
하지만, 어디로…….
 
다시 눈앞이 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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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투에서 채드는
 
며칠쯤 입원해 안정하고
 
내상을 점검해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정신은 오늘 아침에야 맑아졌습니다.
 
곁에 머무르는 의료 로봇이
 
멋대로 방송을 틀어 둔 것인지
 
홀로그램 패널에서 시사 프로그램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소식입니다.
 
언론은 각성자사관학교 졸업식 이후로부터
 
지난 몇 달간 지겨울 만큼
 
얀의 소식을 대서특필해대고 있었습니다.
 
타이틀은 이렇습니다.
 
‘괴뢰 정부’
 
…에 납치되었으나 모진 고문을 받고도 탈출해 돌아온,
 
국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4년의 시간을 버틴,
 
장한 청년 얀 마르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얀의 행보는 어땠나요?
 
각성자사관학교에서 발생한
 
극렬분자 폭동에 휩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사실 망명 정부에 납치되었고,
 
각종 테러 혐의에 강제로 차출되었지만
 
의지를 잃지 않아 반항한 끝에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런데도 결국에는 살아 돌아와
 
카사블랑카 장벽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습니다.
 
구조 당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던 데다
 
정상체중보다 10kg 이상 말라 있었던 모습은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합니다.
 
그 형은 공로를 인정받은 스와콥문트 거주자,
 
본인은 각성자.
 
이보다 선전하기 좋은 이야기가 없었을 겁니다.
 
그가 ‘붙잡혀 있던’ 4년 동안
 
카사블랑카 장벽 바깥,
 
그리고 카사블랑카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는
 
종종 테러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하위 정부 인사 몇몇이 실종되거나
 
도시 청사에 폭발물 따위가 설치되는 사건이
 
갈수록 잦아졌습니다.
 
규모가 점점 커지니
 
정부도 외부의 저항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괴뢰 정부’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 3년 전.
 
그런 마당에 난데없이
 
애국 프로파간다를 하기 딱 좋은 사람이 굴러들어왔으니
 
정부로서는 환호할 만한 일입니다.
 
유명 MC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바르게 앉은 얀은 그가 겪었던 망명 정부의 끔찍한 실상,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도구로 이용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을 비판하며
 
증언을 계속해 나갑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정부친화적 커뮤니티와 기사에선
 
그를 구국지사로 추앙하는 댓글들이 연이어 달렸습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채드 클레번:(대충 여론을 곁눈질로 확인하고선 하던일을 마저 한다.) 뭔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말해야 알지. 이제와서 유명인 행세를 하고 싶은건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건지. ..
(여전히 심장에 남은 마력의 흔적은 그대로고, 그것만으로 자기가 아는 무언가중에 하나는 변하지 않은게 맞으니.. 살던데로 사는중)
 
생각에 잠긴 사이
 
화면은 훈장 수여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저번 전투에서 대활약한 공로로
 
얀은 또 하나의 약장을 군복에 달게 되었습니다.
 
의례를 따라 한쪽 무릎을 굽혀 훈장을 받은 그는
 
조용히 일어서 화면 속의 또다른 화면을 응시합니다.
 
대통령 로맹 바투타의 특별 축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특진된 얀이
 
내달이면 참모총장 비서실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줄을 잇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사관학교를 수료, 졸업한 선후배들 중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가
 
이 전향을 조롱했습니다.
 
그들에게 얀은
 
개인의 영달을 좇아 정의를 저버린 배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형을 찾아 나서겠다며 사라졌던 그가
 
어째서 이렇게 나타나 지금까지 연락 한 번이 없는지,
 
당신조차 알지 못했으니 당연한 평가입니다.
 
변절자들의 시대가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그 발자취에는 사라진 사람들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며칠 뒤, 퇴원하는 날 아침.
 
당신이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작스레 스마트워치가 빠르게 진동했습니다.
 
연달아 홀로그램 패널이 출력됩니다.
 
위급 신호
 
채드 클레번: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위급 신호?
 
평소 잘 쓰지 않던 기능이,
 
누군가의 얼굴과 함께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스마트워치 옆면의 S버튼을 연달아 세 번 누르면,
 
위급상황 시 연락처에 미리 등록해 둔 비상번호 쪽으로
 
연락이 가는 시스템이 있다고…
 
분명 유리 모하에가 알려 줬었죠.
 
신호 위치는 군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곳입니다.
 
방위사령부 주소였으니까요.
 
4년 전 그 위치를 둘러싸고
 
새벽 내내 발을 굴렀던 소란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듯합니다.
 
때마침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이한영:채드? 나야. 모시러 왔다.
몸 좀 괜찮냐?
 
각성자사관학교 시절 동기이자,
 
지금은 방위사령부 정보통신단에서 근무 중인 이한영입니다.
 
채드와는 여러 가지로 뜻이 맞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죠.
 
퇴원을 한다고 하니
 
안부가 걱정되어 살피러 온 모양입니다.
 
위급 신호가 온 곳도 방위사령부,
 
얀이 근무하는 곳도 그곳,
 
한영이 근무하는 곳도 거기.
 
이 위급 신호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한영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채드 클레번:흠.
괜찮지 않을 이유도 없지.
(혼자 방위사령부로 향한다.)
(왜냐? 솔로플레이를 좋아하기 때문)
 
이한영:아니; 야 퇴원하자마자 어디가? (어이 x)
 
채드 클레번:병문안은 죽으면 와서 해.
부조하러.
 
이한영:죽고 나서 하는 건 조문이라 그런다, 병문안이 아니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냐니까? 여자라도 만나냐? (ㅋㅋ졸졸졸)
 
채드 클레번: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확인할게 있어서 그러는데.
...
돌아와서 얘기해.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감)
 
이한영:걱정되니까 그렇지 멍청아. 갑자기 뭐에 씌인 것처럼... 그래라 그럼. 상처 터져도 난 모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팔짱 끼고 바라본다.)
 
혼자 방위사령부로 향하나요?
 
채드 클레번:(네)
(인생은 혼자임)
 
그렇지만? 한영이도 방위사령부 소속이어서?
 
가다보면 길이 겹칩니다?
 
이한영:
 
채드 클레번:
 
이한영:왜 따라와?
 
채드 클레번:(쥐새끼가 하나 붙었군 이런 기분)
거슬리면 돌아서 가.
내 갈길은 여긴데.
 
이한영:네가 방위사령부에 볼 일이 뭐가 있는데?...
 
채드 클레번:확인할게 있다니까.
 
이한영:그런 거면 나한테 물어보는 게 편하지 않냐? (이상한 놈이야 정말 하는 표정) 동기 좋다는게 뭐람, 하여간 꽉 막혀서는.
 
그렇게 실랑이(?)하며 다다른 방위사령부 앞.
 
건물 바깥에는 별달리 인적이 없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CCTV며 보초병들이
 
근처를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채드 클레번:(들어가고 싶은데)
이한영.
 
이한영:어엉
 
채드 클레번:가서 저기가서 아양좀 떨고와.
난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고 싶어.
 
이한영:너 허가받고 온 것도 아니었어?
 
채드 클레번:가서 받으려고.
 
이한영:방위사령부... 방위사령부라.
설마 얀 마르테?
 
채드 클레번:그래.
내 추측일뿐이고.
그래서 확인하려는거니까 가서 아양을 떨든 폭탄을 던지던, 시선을 좀 끌어보라고.
 
이한영:추측은 또 뭐야? (답답;) 흠~ 그럼 여기 지나가게 해주면 확인하려는 게 뭔지 알려줘. 딜?
 
채드 클레번:확인하고 말하고 싶은데.
고집하고선-..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먹은거냐, 너?
워치에 찍힌 위험신호의 좌표가 여기였어.
얀 마르테가 떠올랐을 뿐이고.
 
이한영:꽉 막힌 건 네 쪽이다, 동기야... 뭔지 알아야 나도 협조를 해줄 거 아니야. 외부인이 이한영 이름으로 방위사령부에 들어갔다가 폭탄이라도 던지면 나도 머리 잘리거든? (위험신호의 얘기에 잠시 말을 멈췄다) 위험 신호?
 
채드 클레번:내 머리가 아니니까.
그땐 내가 병문안이라도 가주면 되지. (나름 농담성 발언이다.)
어. 버튼 세 번 누르면 비상 연락처로 오는거.
딱히 그 녀석 말곤 나한테 이런 신호가 오게 수작질 할 인간이 없어.
 
이한영:그거 참 고~맙네요. (조문이라니까.) 하긴, 너는 정식 페어였던 사이니까 대화 좀 하려고 할 수 있겠지.... 요즘 방위사령부 내부에서 걔 지위가 좀 이상하긴 해.
 
채드 클레번:유명인사가 다 되었던데.
윗사람들 개가 되는게 나쁘다고 생각안해. 어쩔 셈인지 확인정도나 하고싶은거야. 그리고-...
(이런 얘기까진 이 녀석한테 할 이유가 없겠지.)
뭐해. 나 갈거야.
 
이한영:그치? 분명 어디서나 그 계급 이상의 의전을 받기는 하걸랑.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걔가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단 말이지~..
 
채드 클레번:목줄 잡힌 개일수도 있겠지.
 
이한영:그래도 너무하잖아? 난 동기인데도 인사하는 것조차 제지되고, 말 섞는 것도 안 되고. 뭐, 페어인데 여즉 얼굴 못 본 네 쪽이 좀 더 억울하긴 하겠네. (빤...)
 
채드 클레번:글쎄..
그렇게 사소한걸 따질만큼 감정적이지도 않아.
뭐, 위험하다고 버튼 세 번 꽉꽉 누른건지 아니면, 심심풀이였는진 봐야알겠지.
 
이한영:그래, 그래. 마침 오늘 형이 나 보러 온다고 방문자 등록 해뒀는데, 조카가 아파서 못 온다더라.
출입증으로 들어오면 기록이 안 남아서 추적당할 일은 없을 걸. 대신 조금의... 연기력? 뻔뻔함이 필요하지. 그 정돈 할 수 있지?
 
채드 클레번:그럼.
내가 그정도의 뻔뻔함도 없어보이나.
 
이한영:뻔뻔함과 뻣뻣함은 좀 다르... 아니다, 가자. (하하)
 
채드 클레번:(형 역할이니까 무게잡고 걸어감)
(거의 아빠다 형이 아니라)
 
한영을 대동하고 뒷문으로 들어섭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병장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데,
 
의외로 출입 게이트는 별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게이트 앞에 있는 보초병들이 두 사람을 훑어보네요.
 
보초병:소속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한영:정보통신단 이한영 소위.
아, 여긴 가족. (채드를 가리키며) 오늘 방문하겠다고 등록해 놨는데.
 
채드 클레번:이한영 소위의 혈육입니다.
동생을 보러 방문했습니다만.
 
보초병:...형제...입니까? (진짜 하나도 안 닮았어)
 
채드 클레번:예.
 
채드 클레번:아버지가 달라서요.
 
보초병:예?
 
이한영:뭐?
 
채드 클레번:
위협
기준치: 45/22/9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싸가지없이 내려다본다.)
왜요.
가족도 아니다, 우리는?
 
이한영:아, 아하하~!!!! 저희 형이 좀 성깔이 드러(?)워요. 아무튼 확인하신 거죠?
 
보초병:예, 예에... (석연치 않은 얼굴로 비켜준다...)
 
채드 클레번:(잘 해결했군)
 
이한영:들어가, 들어가. (어깨 꾹꾹 민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한영은 5층을 누릅니다.
 
이한영:건물이 7층짜리인데, 이 안에 2,3성 장군님들이 즐비하신단 말이지. 그러니까 고작 방위사령부 위관급 장교가 단독 사무실을 쓸 일은 없다고 봐야 하는데~.. (재잘재잘)
 
채드 클레번:그래,
oㅇ(안내자가 있으니 편하네)
 
이한영:네 구페어는 (당연히 옛날 일이라고 생각함) 대위 계급인데도 숙직실까지 딸린 사무실을 혼자 쓰시고 있거든. 이상하지 않냐?
 
채드 클레번:흠..
이상한가?
이따 물어봐야겠군
...
난 일단 신호가 온 쪽으로 가고싶은데.
네 말은 어디 독방에라도 갇혀서 얀 마르테가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건가?
 
이한영:그 독방이 사무실이니 갇...혀있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그래. 진짜 이상한 건 층이지, 5층부터 7층까지는 거의 플라네타리움이거든? 근데 거기 얀 혼자 껴 있으니까~ 나도 궁금하다 야.
 
5층부터는 별 달린 장성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한영이 어깨를 으쓱입니다.
 
그래서인지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모퉁이마다 있는 게이트
 
그곳에 출입 카드를 몇 번이나 다시 찍어 통과해야 했습니다.
 
한영이 정보통신단 소속인 것이 다행이네요.
 
본래대로라면 이 출입 카드에는
 
한영의 사무실인 3층에 방문한 기록만 남아 있어야 했으니까.
 
채드 클레번:(흠)
oㅇ(놓고왔으면 큰일날뻔했네)
(하지만 무게감있게 걸어간다.)
(나는 ㅍㅍ니까)
 
이한영:(마지막 게이트에 카드키를 찍으며) 이 복도 끝에 방이 얀의 사무실이야.
4년만에 보는 건가? 난 이쯤에서 빠져줄 테니까~
 
한영은 채드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물러나 들어가보라는 턱짓을 합니다.
 
채드 클레번:그래.
고맙다.
(작게 피식 웃고선 사무실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리네요.
 
샤워실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린 문이 숙직실이고,
 
그 안에 또 욕실이 있는 모양입니다.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벗어 둔 옷가지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급 상황은 아닌 거겠죠?
 
채드 클레번:oㅇ(사람을 불러놓고 씻다니. )
 
무심코 방을 둘러보니,
 
테이블 위에 꺼내 놓은 상자가 하나 보입니다.
 
채드 클레번:(열어본다.)
(얀의 물건이니 주인의식 따윈 알 바 아니다)
 
짐을 정리중이었던 걸까요?
 
상자 안에는 얀의 물건으로 보이는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내달이면 자리를 옮기게 된다고 했죠.
 
한눈에 보아도 상자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빈약한 내용물입니다.
 
그 사이에서, 눈에 익은 수첩을 발견합니다.
 
채드 클레번:(냅다 열어본다.)
 
4년 전, 요한 에를리히가 당신의 앞에 떨어뜨린 그 수첩.
 
유독 많이 펼친 듯 한번에 열리는 페이지를 확인하면
 
단정한 글씨체로 익숙한 연설문이 적혀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합니다.
 
몇 장을 더 넘기면
 
보츠와나 망명정부에 대한 간소한 정보와 위치가 적혀있습니다.
 
4년 전 얀은 이를 보고 떠나기를 결심했었죠.
 
그 뒤부터는 필체가 다릅니다.
 
몇 번이고 얀과 함께 보고서를 썼던 채드라면
 
그게 얀의 필체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볼 수 있겠죠.
 
휘갈겨 쓴 글씨는
 
두서없는 생각을 적어내린 듯 정신 없습니다.
 
제 이름,
 
같은 마르테의 성씨를 가진 누군가의 이름,
 
유리 모하에와 요한 에를리히를 비롯한
 
몇몇 사관학교 동기들의 이름,
 
그 밑의 간단한 특징들.
 
채드 클레번.
 
익숙한 당신의 이름과
 
돌아가야 해.
 
간결한 문장 뒤에 찍힌 마침표.
 
그때,
 
당신의 손에 들린 수첩을 가볍게 빼가는 손이 있습니다.
 
얀 마르테:구경은 좀 재미있어?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기나 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창백한 눈동자과 눈이 마주칩니다.
 
채드 클레번:(눈이 마주치면 그대로 얀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그 모습은 4년 전과 크게 다름이 없습니다.
 
얼굴 살이 조금 빠지고,
 
머리카락이 목을 덮을 정도가 된 것 외에는요.
 
기척에 머리를 말리지 못했는지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채드 클레번:훔쳐보다니.
확인할 건 다 확인했으니까-..
이제 네 용건.
신호는 왜 보낸건데?
 
얀 마르테:무슨 확인이 그렇게 금방 끝나?
내 용건이라~.. 음.
안녕 채드, 우리 오랜만이네.
 
채드 클레번:어.
그 말 하려고 불렀어?
 
얀 마르테:응. 안돼? (실없이 웃는다.) 넌 여전하네.
 
채드 클레번:네가 오면 되잖아.
네가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없을테고.
번거롭게 출입증까지 빌려 찍게해서 말이지.
 
얀 마르테:내가 나갔으면 네가 더 번거로웠을지도 모르잖아. 이래봬도 요즘 주목받고... 감시받고 있는 몸이라. 하하. 그런 것치고 무사히 들어왔네.
 
채드 클레번:(가만히 웃는 얼굴을 응시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지금도 감시받는 중인가?
 
얀 마르테:아니, 이 안은 괜찮아. 몇 번이나 확인했거든. (목에걸린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털며) 그래서 이쪽으로 부른 거기도 하고..~
 
채드 클레번:그래. (벽쪽을 훑던 시선을 거두고선)
그래서, 감시받는 입장이라 거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건가?
아니면 위의 개가 된 상황을 즐기는 중?
 
얀 마르테:뭐, 그렇지. 그래도 요 근래 간단한 외출 정도는 가능해졌어. (뒷말에 잠시 손을 멈추더니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다.) 내일은 요한 선배한테 잠시 다녀오려고. 이걸로 대답이 됐나?
 
채드 클레번:그쪽에는 해명을 해두어야 할 것 같던데.
네게 배신감이 지대해보여서.
 
얀 마르테:너는?
4년 간 어떻게 지냈어?
 
채드 클레번:똑같이 살았어.
네가 있던 때랑 다를바 없는 일정이었고.
요약하면 그래.
온전히 같진 않았겠지.
 
얀 마르테:그런가~... 그렇겠지. 나는 꽤 달랐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그나마 붙었던 정까지 다 떨어졌는지 궁금한데.
 
채드 클레번:뭐, 네 꼴을 보면 그래 보이는데.
이르진 않지. (비죽이듯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는듯 하다 어느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얼마나 걸리는건 그다지 상관없었고-.. 나는 그냥.
(뭔가 말하려는듯 입을 달싹이다 입을 다문다.) 정이 붙고 떨어지고가 중요한가.
 
얀 마르테:이보다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변명 같겠지만.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냥 뭐? 말은 끝까지 해주는 편 아니었던가.
음... 네게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꽤 중요해.
 
채드 클레번:너 말이야. 네비게이션 혼자 뭘한다고, 그러니까. 엔진도 없이 4년동안 뺑이친거야. (손을 들어 네 등을 손바닥으로 퍽, 두드린다.)
왜 중요한데?
그나마 정이라도 붙어있어야 다시 위신 세울만큼 이용해먹을 수 있을것 같나.
 
얀 마르테:응, 그래서 혼자 별로 쉬웠던 기억은 없네. 너랑 있을 땐 별거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가볍게 엄살을 뱉더니 맞은 곳을 어색하게 문지른다.)
지각한 주제에 다짜고짜 같이 가자고 하면 안 가줄 것 같아서. 정이라도 붙어있어야 부탁해볼 수 있잖아.
 
채드 클레번:그래. 나도 4년전보다는... 많이 헤매고 산 것 같네.
고집부려서 떠난건 너야. 감당해. (가만히 생각하는듯 눈을 내리깔다가) 어딜 가자는건지는 몰라도-.. 적당히 따라가줄 정도까진 정이 남은 것 같긴하네.
 
얀 마르테:아하하. 듣던 중 기쁜 소리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어쩔 수 없지. 티끌도 안 남았다고 해도 받아들이려고 했으니까. 나, 지난 4년 간 스와콥문트 근처에 설립된 나미브 반군기지에서 장교로 있었어. 후배들 가르치면서.
 
채드 클레번:티끌이라도 남아서 다행이지.
그래서, 그 후배들은? 놓고왔나? (빤..)
 
얀 마르테:으음. 그래서, 다시 돌아가 봐야 해.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며) 정부의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이중 스파이로 왔거든. 카사블랑카에서 망명 정부를 위한 몇 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이 도시를 떠날 거야. (유독 문장 사이에 간격이 길다.) 거기까지 따라와주기엔... 남은 정으로는 아직 조금 부족한가?
 
채드 클레번:거기서 내 역할은 뭔데?
이곳에서의 내 역할은 그거였잖아. 네가 죽었다는 확증을 해줄 빗장.
그 역은 다 했어.
 
얀 마르테:뭐... 늘 그랬듯이, 엔진이지.
다른 말로는 파트너겠고.
 
채드 클레번:이젠 파트너가 필요해?
 
얀 마르테:나라고 좋아서 혼자 애쓰던 건 아니니까. ...너도 헤매는 건 싫어하잖아.
 
채드 클레번:(뭔가 생각하는듯 바닥을 응시하다 다시 눈을 마주친다.)
네가 돌아온다고 했었잖아. 4년전에.
그리고 내가 널 처음 다시 본 건 단상 위였고.
돌아온다는게 꼭 여기일거라고 생각했던게 얼마나 우습던지-... (그러고선 수첩쪽으로 턱짓한다. 내용을 봤으니까.)
카사블랑카는 어때. 이곳보다 살만해?
 
얀 마르테:하지만 그 단상 아래 있었잖아. 적어도 그날 내가 좌표를 찍은 건, '이곳'이 아니라 '네 앞'이었어. (수첩을 들고 있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
속였다고 나중에 뭐라 하면 곤란하니까 미리 말해두자면, 열악해. 자원도, 물자도 부족하고, 모래바람 때문에 숨 쉬는 것도 불편하거든.
......하지만 있어. 이곳에서 죽은 것이 그곳에는 제대로 살아있어.
 
채드 클레번:그 단상 아래에 있던건 알았나. (조금 어이가 없는지 제 뒷목을 매만지다가) 내가 어련히 불량한 사관학도기라도 했으면 어디 뒷골목으로 조용히 돌아왔을텐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거든. 너도, 혁명을 한답시고 소리지르는 녀석들도.
뭐든 안주하고 살 수 있을만큼은 돼. 그 와중에 계급까지 땅속에서 바닥까지 끌어올려준 능력도 있으니까.
자기 갈 길을 아는 녀석한테는 그게 보이는건가? 이곳에서 죽었다는거 말야.
열악한 건 상관없어. 그렇게 태어났잖아. 열악한 곳에서 구르면서-..
 
얀 마르테:너도 단상에 올라와보면 알 텐데, 어떤 느낌인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모르기 힘들거든. 4년 동안 그 연결을 의식하고 살다 보면, 그래. 모를 수가 없어. ...
네가 무딘 녀석이라는 건 알아. 혁명이니, 정의니 하는 것에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것도. (이곳에서 죽은 것, 그곳에 살아있는 것. 그것은 정의이자 신념, 용기인 동시에 분노다. 무엇도 부족했으나 지켜본 끝에 마지막을 하나를 겨우 갖추었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버렸다.)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채드. 이대로 계속 기계장치로, 부품으로 살 거라면, 나로 해. (손 끝으로 가슴팍을 가볍게 툭, 밀었다.) 보지 못하는 길을 걷는 건 별로야?
 
채드 클레번:모른척 한건가. 뭐, 말마따나 계약하나 맺었다고 얼싸안고 반길 관계도 아니었다만-. 네 말대로 무딘 인간이 맞아. 허울좋은 혁명가던, 태생부터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나으리던, 내가 할 역할은 그들 중 밥그릇 차려주는 인간한테 납작 기는거고. 그게 불합리하다는 생각 한 적도 없어. (툭 밀면 세게 밀지도 않았겠으나 미동도 없다. ) 누구와 걷던 난 그 길을 보지못해. 아는게 있어야지.
다만-.. 너도 알고 있잖아. 부품으로 제일 잘 써먹을 수 있는건 너겠지. 딱 죽지않을 만큼만 굴릴 수 있지 않겠어.
솔직히 그 끝까지 따라간다고 쳐도-.. 네가 추구하는 가치가, 나한테 와닿을진 모르겠지만-..
가볼까.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고선)
 
얀 마르테:네가 그런 걸 개의치 않는다면, 어쩌겠어. (나라도 거슬려 해야지. 한 마디를 조용히 읊조렸다.)
당연하지만, 난 모든 길이 보이는 게 아니야.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니까. 내가 보는 것은, 이 길이 아주 길고, 구불구불하고, 험난하다는 것... 정도인가.
하지만 적어도 나는 방향을 알것 같고, 그 과정에서 네가 걸려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는 신경 쓸 수 있어. 이것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부분일 걸.
같이 가, 채드 클레번. 걷다 보면 너도 보일지도 몰라. 우린 어쩌면 같은 것을 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다른 걸 느낄 수도 있고. ...그때는 뭐가 보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줘. 궁금할 것 같으니까.
 
채드 클레번:지름길은 볼 줄 모르는건가. 영 먹통이네. (바람 빠지는듯한 웃음소리를 작게 흘리고선) 그렇게까지 살필만큼 나약하지 않다니까. 진창에 굴러도 녹슬지 않을만한 부품이야. 넘어지지 않는다면 꼴사나워지지야 않겠지.
..............너 말이야, 고생 꽤나 하고 오니까 그런 말을 할 줄 알게 된건가? 처음부터 집지키는 개 따위가 아니라 그런 역을 줬으면 좋았잖아.
그런걸 바랬었나-.. 글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으면 말하지. 사람의 머릿속이라는게 뭐든 불명확해서 말이야. 깨닫기전부터 이미 걷고있었고-.. 그러다보면 지난것은 잊게 되더라고.
같은걸 봐야 잊을까, 다른걸 보아야 뇌리에 남을지는 잘 모르겠네.
떠올려볼테니 실컷 추측하라고-. 그래서, 떠날거니 짐이라도 싸두라고?
 
얀 마르테:말했잖아, 네가 신경 쓰지 않는 걸 나는 신경 쓸 거라고. 널 살피는 건 네가 나약해서, 믿지 못하겠어서 그런 게 아니라, 글쎄. ...그냥 이건 '그런 책임감'이니까. (그 날의 각인 이후로 네가 지고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무게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하하. 그 역할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그래도 네가 버텨준 덕분에 난 멀리까지 가볼 수 있었어. 아니라면 지금의 길도 볼 수 없었겠지.
그럼 생각날 때마다 말해, 나는 잊지 않으니까. (대신 저장해줄 수 있거든. 제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는) 조금씩 정리 정도만 해둬. 일단은 너도 내일 같이 요한 선배를 만나러 가자. 그간의 상황을 들어야 하고... 이 안에서 남은 임무도 있으니까.
 
채드 클레번:이능이 잘 맞아떨어졌을뿐인데 말이지. 그런 귀찮은 감정들까지 덥썩 안겨주는건가. (불평하는건 아닌듯 담담히 내뱉었다.) 뭐든 내가 직접 움직이는게 마음이 편해. 너도 비슷한 상황이면 그랬을 것 같은데.
뭐, 떠나기전에 하나씩 해결해 둬.
네 머릿속을 쓰레기통으로 쓸 생각은 없어. 정말 말하고싶다면 해두겠지만-...
그래. 내일은 네가 바쁘게 해명하는걸 보느라 정신없겠네.
 
얀 마르테:필요와 목적에 의해서만 사람과 함께할 수는 없어, 채드. 우리에게는 이런 것도 필요한 감정인 거야. (뒷목을 천천히 주무르다) 네가 그 정도로 쓸데없는 말을 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한다면 그건 오히려 좀 기억하고 싶은 걸.
그리고 요한 선배와 나는, ...음, 내일 보면 알게 되겠지. (싱글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든다.) 그럼 내일 봐, 채드. 앗, 이런 인사도 오랜만이네.
 
채드 클레번:로봇 가르치듯 말하지마-. ..그런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모르는듯?) 새삼스럽게. 내일 또 하게 될텐데. (퉁명스레 휙 나가버린다.)
 
인사를 뒤로하고 방을 나갑니다.
 
4년만의 재회,
 
두 사람은 당연하게 내일을 기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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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간,
 
요한과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자취를 감춘 그의 신원에 대해
 
뜻을 같이 하는 선후배 사이에선 소문이 많았습니다.
 
가장 유력하게 점쳐지는 추측은
 
그가 도시 바깥의 망명 정부로 귀순했다는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종적을 감춘 것인지,
 
예전의 얀처럼 사망을 가장한 것도 아닌데
 
완전히 사라진 그가 학장실에 분변 테러를 하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얼빠진 동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얀은 요한이 ‘숨어 있는’ 곳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여기 카사블랑카에.
 
결벽적으로 관리되는 도시인 카사블랑카에는
 
‘뒷골목’ 따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대체 어디에 몸을 의탁하고 있단 말인가요?
 
채드와 만난 얀이 향한 곳은 성심성당입니다.
 
각성자사관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그곳.
 
가톨릭이 아직도 힘을 쓸 수 있는 데에는
 
여러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재해 이후 여러 사이비 종교가 날뛰며
 
가톨릭의 자리를 대체하려 들었지만,
 
요행히도 바티칸이 살아남은 덕분에
 
촘촘한 교구 간 연락망을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가지를 뻗어 나간 공동체들이
 
세력을 형성하면서,
 
유럽 연합은 아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죠.
 
아프리카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애당초 ‘재앙의 날’ 이후
 
사회 재건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것이 가톨릭이었으니까요.
 
건국 초반만 해도 성당을 통해 제공되는
 
교육, 의료, 구호 활동 등은
 
공화국 정부조차 대체하기 어려운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공화국 건설 자체가 가톨릭에 기댄 면이 있으니
 
정부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정부도 함부로 참소할 수 없는 성당 문을
 
얀은 거침없이 두드립니다.
 
문을 열고 나온 신부는
 
두 사람의 군복을 보고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얀이 무어라 언질하자 수긍하고는
 
안으로 안내해 줍니다.
 
성심성당에서는 얀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눈치네요.
 
신부가 1층 식당으로 두 사람을 안내하고 물러나자,
 
얀은 주방 끝쪽의 작은 창고로 들어갑니다.
 
냉장고가 줄지어 선 평범한 식자재 창고처럼 보입니다.
 
정작 얀은 바닥을 가리키지만요.
 
채드 클레번: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알빠?)
 
딱히 수상한 점을 모르겠는데요?
 
채드 클레번:(모르겠어)
 
얀 마르테:...바닥 타일을 잘 봐봐.
 
채드 클레번:(봄)
 
얀 마르테:줄눈이 살짝 뜯겨 나가 있잖아. (발끝으로 바닥을 퉁퉁 두드려본다.)
 
채드 클레번:부술까?
 
얀 마르테:아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거든.
 
그렇게 말한 얀은 쪼그려앉아 속삭입니다.
 
얀 마르테: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냥 거기 계시옵소서.
 
채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도문이네요.
 
아니, 저런 이상한 문장이 기도문이기는 한가요?
 
얀 마르테:...내가 지은 거 아니야.
 
채드 클레번:.........
...
(봄)
 
얀 마르테:진짜 아닌데?
 
채드 클레번:너, 좀 삐뚤어졌네.
반항심리로 혁명을 하는건가?
 
얀 마르테:아니, 이건 망명 정부에서 종종 쓰이는 암호거든. ...
 
이윽고 아주 작게 달칵 소리가 났습니다.
 
아무래도 이 타일 바닥 아래에 뭔가 숨겨진 것 같은데…….
 
채드 클레번: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아야!
 
온건하게 타일을 들어올리다 손끝을 찧었습니다.
 
채드 클레번:(흠..)
(조용히 찧어)
 
얀 마르테:...괜찮아?
 
채드 클레번:내가 뭐?
 
얀 마르테:방금... 아니다. (둔탱이)
 
얀이 타일을 들어올리면,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것 같이 좁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납니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계단 끝에 문이 있네요.
 
얀 마르테:제대로 찾았네. 내려가자.
 
채드 클레번:(끄덕)
(내려감)
 
얀은 이어 문을 묘한 박자에 맞추어 두드립니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
 
이건… 음성인식을 끊는 방식과 유사한데.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문이 열립니다.
 
처음 든 인상은,
 
천장에서 책더미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미친 사회학자의 방을 그리라고 하면,
 
사회학자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 것 같으니
 
방에 연구 일지와 책을 가득 채워 놓을 것입니다.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제멋대로 쌓여 있는
 
도서, 문서, 기기, 회로,
 
무얼 건드려도 쉽게 쓰러질 것 같은 기물들 사이로
 
간신히 사람 하나가 걸어갈 만한 오솔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누군가 엎어져 자고 있네요.
 
머리카락이 더 자랐고, 살이 내린 모습의…
 
4년 만의 요한 에를리히.
 
얀 마르테:...선배.
 
잠든 그를 얀이 흔들어 깨웁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는 요한의 뒤쪽으론
 
웬 콩나물이 수경재배되고 있습니다.
 
요한 에를리히:...... ...... (손길에 무력하게 흔들리다 가물거리는 눈을 힘겹게 뜬다.) 뭐야... ...
(앞이 잘 안보이는지 끔뻑...) 노란 머리?... 검은 머리?... 누구냐 니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손으로 책상을 더듬어 안경을 찾는다.)
 
채드 클레번:그 사이에 미친건가.
못알아봐?
 
얀 마르테:4년이 얼굴을 까먹을 정도의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구석에 처박힌 안경을 손에 쥐어준다.)
 
요한 에를리히:이 싸가지 없는 말투... ... 채드냐? (이런 걸로 알아본다.)
(주섬주섬 안경을 쓰더니) 맞네, 얼씨구. 거기에 그 얀 마르테까지. ......설마 망명정부에서 보내준다던 사람이 너냐?
 
얀 마르테:...하하. (멋쩍게 웃음)
오랜만이네요, 선배. 여기 들어올 때, 감시가 좀 덜해지면 선배 찾아가란 얘기를 들었어요.
이쪽은 보다시피, 이번에 새롭게 조력자로 끌어들였습니다. (채드 등을 툭 침)
 
채드 클레번:(툭쳐짐)
그렇게 됐는데.
받아들여.
 
요한 에를리히:뭐, 놀랍지도 않다만... 넌 그때도 쟤 따라서 농성했잖냐. (안경 척)
 
채드 클레번:쟤 따라서라니-...
(틀린 말은 아닌가..)
(난 쟬 어쩌다 저렇게 따라다니게 된거지)
 
요한 에를리히:아니면 말고. (싱겁다는 듯)
 
얀 마르테:그보다, 정부가 수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우리는 그 부분을 수색해서 나미브 반군기지로 돌아가려고요.
 
요한 에를리히:아... 그거. 나도 정확하게 캐낸 건 아니야. 도와줄 인물을 부른 것도, 바깥에서 활동 가능한 요인의 도움이 필요해서고.
...그게 너네인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정부가 비도덕적인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어. 네가 참모총장 비서실로 이동하게 된 건 의도적인 거지?
 
얀 마르테:네, 선배가 그 실험에 대한 정보를 참모총장이 쥐고 있다고 보고했었으니까요.
 
채드 클레번:(듣는중인 혁명시다바리)
 
요한 에를리히:그래, 참모총장이 자기 공관 서재에 그 '프로젝트' 혹은 '실험'에 대한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것 같다. (혁명 시다바리 한번 봄)
 
뭔가 물어봐도 ㄱㅊ아 혁명 시다바리야ㅠㅠ
 
채드 클레번:(그렇군)
그래서, 그걸 털자고?
 
요한 에를리히:털자니, 무슨 도둑도 아니고. 그 정보를 슬쩍 반출해오자는 거다. (고상하게 돌려 말하지만 그거나 그거나) 내가 추측하기론 그 정보가 알려지면 처지가 불리해지는 정적이 있는 모양이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간을 언젠가 제거하기 위해 정보를 쥐고 있는 것 정도야 뭐,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지.
 
채드 클레번:슬쩍 털자는거군.
 
요한 에를리히:그래, 슬쩍 털...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보안이 아주 철저해서... 공관에 침입할 방법이 필요한데.
 
채드 클레번:걸어서 들어가지?
 
요한 에를리히:그러니까, 안 들키고 걸어서 들어갈 방법 말이다.
 
채드 클레번:그거야 전문가가 있찌.
..
(지.)
 
얀 마르테:웬일로 애교?
 
채드 클레번:하.
얀 마르테. 네가 안들키게 대충 루트를 짜.
내가 굴러.
끝나는거 아닌가.
 
얀 마르테:음... 다음 주 열리는 정재계 자선 파티에 참모총장이 참석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안 그래도 호위 역으로 자리를 지킬 예정이었는데, (채드 흘긋...) 제가 참모총장을 붙잡는 동안, 채드가 공관에 침입하면 알 될 것도 없겠네요. (그러게. 너가 구르게 됐다.)
 
채드 클레번:그럼 되겠네.
 
얀 마르테:파티 장소가 공관 바로 근처기도 하고.
 
요한 에를리히:됐네 그럼, 역시 머리 하나는 빠릿하게 잘 굴러간단 말이지. (감탄하며 서랍을 뒤적인다.)
파티 땐 나도 현장을 보고 있을 거야. (두 사람에게 각각 인이어와 렌즈를 내밀고는) 렌즈 끼면 너희 시야가 나한테도 영상 전달 될 거고, 인이어는 소통용이다.
 
채드 클레번:(받아듬)
파티.. 뭐 그런 샌님들 행사자체엔 내가 안껴도 돼서 다행이네.
 
얀 마르테:너도 동반참석이야. (이미 명단 올려놨어) 중간에 슬쩍 빠져나가야 돼.
 
채드 클레번:(ㅍ.ㅍ)
(ㅍ___________ㅍ)
 
요한 에를리히:뭐, 어차피 다시 페어 활동을 시작할 생각이라면 그런 자리에 한 번쯤 얼굴 비춰야 했을 거다.
 
채드 클레번:열악하네.
 
요한 에를리히:여기 굴러가는 꼴이 그렇지 뭐. ...아무튼, 별 탈 없기를 바란다.
 
채드 클레번:(끄덕)
가야지.
(나감)
 
얀 마르테:그럼 다음에 봐요, 선배. (따라간다.)
 
요한 에를리히:(손 휘적이며 콩나물에 물이나 준다.)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얀은 두 사람이 페어로서 공식 활동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당신은 몇 가지 조사와
 
사상검증성 면접 같은 인터뷰에 응해야 했지만,
 
정식 페어라는 유용한 전력을 깨트릴 수 없으니
 
효용성 측면에서 어떻게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얀이 넘어올 때 이야기가 되었던 사안이기도 했고요.
 
돌아오는 주말,
 
언급된 행사 자리가 있습니다.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자선 파티.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누비고,
 
정중한 서버들이 샴페인 등을 가져다 줍니다.
 
두 사람은 멋지게 차려입었으나
 
사실 참모총장 호위를 담당한 상태입니다.
 
얀이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며
 
몸소 자원했다는 모양입니다.
 
요한이 준 렌즈와 인이어를 착용하고,
 
파트너로서 자선 파티에 들어섭니다.
 
빳빳한 정장은 군복과 크게 다를 바도 없습니다.
 
참모총장은 파티장 안쪽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네요.
 
멀리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고
 
손을 번쩍 들어올립니다.
 
고집스러운 얼굴의 늙은이입니다.
 
그 뒤로는, 뻔하죠?
 
회식 자리에서 상사 비위를 맞추는 것과 비슷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참모총장이 꼰대 같은 농담을 하고,
 
감수성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데에 적당히 편을 들어 주고,
 
같은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을 오가는 상관들과 인사를 하고…….
 
그러던 중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채드 클레번:(?)
 
참모총장과는 앙숙 같은 사이인 정치인이네요.
 
정치인:글쎄, 대통령 각하께서 나를 얼마나 신임하시는데!
 
그 말을 들은 참모총장이 킬킬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숫제 껄껄대며 파안대소를 터뜨립니다.
 
왜 저렇게까지 웃는 걸까요?
 
한편,
 
때맞춰 무대 쪽 스크린에 대통령의 축사가 재생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보니,
 
로맹 바투타가 저런 특별 담화 등에 단독 촬영된 것 말고,
 
사람이 많은 자리에 직접 등장한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채드 클레번: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알빠?)
 
생각해보니 없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인사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니,
 
이상하네요.
 
채드 클레번:(윤씨인가.)
 
 
대통령 담화가 지나고,
 
얀와 참모총장이 술을 한 잔씩 주거니받거니 하며
 
분위기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얀 마르테:참모총장님, 저기 서버가 테이블 게임을 나눠 주고 있습니다만. (싱글)
 
채드 클레번:(빤..)
 
얀 마르테:만칼라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제가 한 수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채드에게 눈짓한다.)
 
참모총장이 좋다고 화색을 띄네요.
 
채드 클레번:(빠져줄때가 됐나..)
 
그 틈을 타 얀은
 
채드와 인이어 너머의 요한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입니다.
 
얀 마르테:만칼라는 돌을 여러 개 가지고 하는 게임이니까, 참모총장이 돌을 쥐면 지문이 남겠지.
하나만 빼돌려서 워치로 스캔해, 요한 선배에게 보내주면 지문을 따 줄 거야.
 
채드 클레번:(끄덕)
 
얀 마르테:게임으로 시간을 끌어볼 테니, 으음... 한 시간 정도는 벌겠네. 지문 딴 거 들고 공관 침입해서 서재를 털면 돼. 할 수 있지?
 
채드 클레번:어.
그렇게 고되보이지도 않는데.
빨리 저 늙은이나 제대로 홀려놔. (고갯짓)
 
얀 마르테:그건 어감이 너무 징그러운데... 최선을 다 하지.
 
이후 얀은 서버에게서 만칼라 도구를 받아 와 테이블에 깝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한 수씩 충고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꽤나 왁자지껄해졌군요.
 
참모총장이 돌 여러 개를 쥐고 통에 넣으면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채드 클레번:게임이라면 이쪽도 흥미가 꽤 있는데. 내 파트너랑 이런 친목을 다져본적은 없어서. (아마도?)
(게임이 시작되고 판이 대충 돌아가는 사이 슬쩍 총장이 쥔 돌중에 하나를 빼내보도록 시도한다.)
(채드의 손이 움직이는게 보이지도 않음 ㄷ ㄷ)
민첩
기준치: 55/27/11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이 너무 빠릅니다
 
여유롭게 돌 하나를 낚아채,
 
스마트워치 카메라나 착용한 렌즈를 통해 돌을 스캔해
 
그 정보를 요한에게 보냅니다.
 
요한 에를리히:두 사람 다 들리나?
채드, 너한테는 공관까지의 최단경로를 보냈다.
생체반응을 스캔해서 사람이 적은 경로만 골라 보여 줄 거야.
너희가 있는 전시장 지하에 차량을 마련해 뒀다. 타고 4분 정도만 달리면 바로 공관이야.
감시가 붙지는 않겠지만, 조심해라. 지문은 지금 따는 중이니 공관 도착하기 전까지 보내 주마.
 
얀과 눈빛을 교환합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만 남았네요.
 
채드 클레번:...
(일어남)
하다보니 재미가 없어서.
가서 더 지루한 계발도서나 읽어야겠습니다. (꾸벅)
 
참모총장:아니, 채드 군 어디 가나?!
 
참모총장이 질척댑니다.
 
어떻게 할까요?
 
채드 클레번:(쳐다봄..)
이렇게까진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얀 마르테:(너 무슨 말 하려고)
 
채드 클레번:평소 존경하던 총장님과 있는 자리를 고대해왔습니다만,
너무 고대한 나머지 긴장이 되어서.
 
얀 마르테:(끔뻑...끔뻑)
 
채드 클레번:게임같은 것 보다는 이후 제 능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에서 다시 뵐 수 있다면 좋겠군요.
(더 질척대기전에 앉아있던 의자 넣음)
 
참모총장님은 좋다고 껄껄 웃습니다.
 
보기드물게 괜찮은 청년이라며 어깨를 탕탕 두드리네요.
 
그래도 이따 술이라도 한 잔 하자며,
 
마지막까지 질척거리곤 보내줍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는
 
사람을 두엇 마주치긴 했지만,
 
행사 참여자가 건물을 돌아다니는 게
 
수상한 일은 아니니 별 일은 없습니다.
 
요한이 준비했다는 차량번호를 확인해 차에 탑승합니다.
 
홀로그램 패널이 경로를 띄워 주기 시작하네요.
 
채드 클레번:(탐)
 
공관촌까지는 경로를 따라 가니
 
요한의 공언대로 딱 3분 55초가 걸렸습니다.
 
참모총장의 사택인 만큼
 
으리으리한 저택에 가까운 집이네요!
 
대문은 지문 스캔 방식으로 열리는 듯합니다.
 
마침 요한에게서 스캔된 지문이 도착합니다.
 
채드 클레번:(받음)
 
지문을 찍을까요?
 
채드 클레번:(찍는거였군)
(스캔된 참모총장의 지문으로 찍고 들어감)
(문열어)
 
지문을 찍자 대문이 느리게 열립니다.
 
…정원이 참 기묘하네요.
 
형형색색의 선인장과 특이한 식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저건…… 저건 웰위치아 미라벨리스가 아닌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유명한 식물이에요.
 
조심스럽게 정원을 통과해 안쪽 문으로 향합시다.
 
이 문도 지문으로 열리는 식이네요.
 
무탈하게 현관으로 들어서면……
 
요한 에를리히:내부 스캔을 해야겠는데……. 보안이 상당히 강력하네.
뭐 눈에 띄는 거 없나?
 
채드 클레번:(봄)
 
현관 앞에는 신발 여러 켤레,
 
우산, 발판 깔개, 그리고 로봇 청소기가 있습니다.
 
채드 클레번:이런집에서 살다 집주인이 잡아먹히면 웃기겠는데.
(우산 봄)
뭐 이런 소지품이 별 다를바가 있나?
 
땡땡이 무늬의 우산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네요.
 
채드 클레번:......
취향하곤.
(관심을 잃고 현관 안쪽으로 들어간다.)
 
요한 에를리히:야, 내부 스캔 해야한다니까. 막 들어가지 마라, 뭐가 있을 줄 알고?
있는 거 다 불러봐.
 
채드 클레번:로봇 청소기.
발판깔개.
신발 몇 개.
뭔 역겨운 식물.
여자 취향의 우산.
 
요한 에를리히:로봇 청소기...
집 구조를 직접 스캔해서 경로를 설정하는 기기지. 데이터를 내려받는다면 내부 구조를 알 수 있을 거다. 일단 한 번 켜봐.
나머지는... 쓰레기네.
 
채드 클레번:쓰레기뿐이라니까.
(로봇청소기 켬)
 
요한 에를리히:신호 들어온다. 5초만 기다려.
......다운로드... 됐다.
여기서 어디가 서재인 거지? 아, 2층 오른쪽 두 번째 방 같은데.
 
채드 클레번:그런가본데.
가보면 알겠지.
(저벅저벅 걸어감)
 
서재로 이동합니다.
 
특별히 보안 장치는 없는 것 같네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지문 인식 방식입니다.
 
손가락이라도 잘리면 어쩌려고 지문으로 모든 걸 해결해 둔 걸까요?
 
채드 클레번:(조심성이 없군)
(스캔해둔 지문으로 찍는다.)
 
내부로 진입하자 태블릿 PC 두 대, 수기 문서, 책상 서랍, 책장이 보입니다.
 
요한 에를리히:잠깐.
책장은 조심해서 건드려. 뭔가 있는 것 같아.
특정한 책을 뽑으면 경보가 울린다거나 하는 시스템인 듯하군......
놔두고 다른 것부터 살피도록 해. 다른 쪽에는 그런 게 안 보인다.
 
채드 클레번:흠..
..
(수기문서를 살펴본다.)
경보를 울리게 하는쪽에 보통 쓸모있는 정보가 있지않나?
해체 못해?
 
요한 에를리히:알아볼 테니 다른 것부터 살피고 있어. (탁타닥 탁탁)
 
대통령 관저 스와콥문트 이관 계획의 필요성에 따라,
 
대통령 각하께서도 승인하신 바
 
청사와 관저를 스와콥문트로 이동하는 쪽이
 
보안 유지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앞뒤가 잘린 문서입니다.
 
일부러 자른 것은 아닌 것 같고,
 
앞장이 더 있는데 그건 어디론가 사라지고
 
뒷장만 남은 것 같습니다.
 
채드 클레번:(어디갔지)
(책상서랍을 열어본다.)
(넣어놨나..)
 
간식을 보관하는 곳인지 믹스커피 등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별다른 건 없네요.
 
채드 클레번:(흠)
(태블릿 PC 두대를 살펴본다.)
 
태블릿 한 대는 배경화면이 가족사진이고, 잠겨 있습니다.
 
평범한 9칸짜리 패턴이네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건지 손때도 탔고,
 
가죽 케이스 안에는
 
‘23일 9시 환경부 장관과 오찬’
 
따위의 메모도 남겨져 있습니다.
 
이 태블릿을 굳이 살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한 대는 좀 더 공적으로 사용하는 모양인지
 
국방부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채드 클레번:(이건가.)
 
채드에게도 익숙한 스티커입니다.
 
채드 클레번:(봄)
 
방위사령부에 공식적인 경로로 출입할 땐
 
카메라 렌즈에 늘 붙이는 스티커니까요.
 
이 태블릿은 지문 스캔 방식으로 잠금을 풀 수 있고,
 
바탕화면에 바로가기 문서 하나가 보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군사암호와 일반 문장이 섞여 있어
 
단번에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해독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요.
 
당장 이 자리에서 훑어보지는 못할 것 같네요.
 
채드 클레번:스캔 못해?
 
요한 에를리히:뭐라도 찾았나?
 
내용을 보고하자 요한은
 
블루투스로 파일을 채드의 스마트워치에 옮겨 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떄, 얀의 무전이 들립니다.
 
얀 마르테:…채드, 조금 곤란해졌어. 참모총장님이 널 자꾸 찾으시거든..~
왜 그렇게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해버린 거야?
 
채드 클레번:...
네가 정신을 덜 빼놓은 탓이겠지.
곧 간다고 해둬.
(파일을 워치에 옮겨놓은 후..)
더 빼올 수 있는건 없나?
 
얀 마르테:좀 취하셔서, 감당이 어려운데.
요한 선배, 미리 협의한 대로 소란을 일으켜서 주의를 좀 돌려주면 좋겠는데요.
 
협의된 소란이라 함은,
 
여기 전시된 크리쳐 로봇 중 하나를 폭주시켜서
 
작은 소란을 만드는 방안입니다.
 
요한 에를리히:뭐, 핵심 문서는 찾은 것 같고. 이제 슬슬 돌아갈 때긴 하지.
지금 터뜨릴 테니 너도 준비해라.
 
채드 클레번:(끄덕)
 
곧이어 인이어 너머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당신도 얼른 돌아가 보는 게 좋겠네요.
 
채드 클레번:(소란해진 사이 몸을 움직인다.)
돌아가야겠네.
 
속도를 높여 복귀합니다.
 
차량은 금방 건물 앞에 도착했습니다.
 
쿵, 쿵, 건물 울리는 소리,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쾅!
 
2층에서부터 하늘로,
 
직선으로 내쏘아지는 금백색 광선.
 
파티장에 들어오기 전,
 
얀은 허벅지 가터에 에너지 운용 권총을 찼었죠.
 
그렇다고 해도,
 
구현자 없는 설계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러나 다시,
 
쾅.
 
이번에는 미로 속에서 경로를 찾듯이
 
ㄷ자 형태로 꺾여 올라갔다가,
 
채찍처럼 날카롭게 바닥으로 내려쳐지는 에너지.
 
유량이 얼마나 거대하고 풍부한지
 
각성자라면 도무지 모를 수가 없을 겁니다.
 
건물 전체가 금백색 에너지에 감싸여 일렁거릴 지경입니다.
 
저 압도적이고, 무심하고, 지나친 힘을…….
 
누구도 무시하거나 모른척하지 못합니다.
 
2층 회랑 한 쪽이 무너져 있어서,
 
건물 바깥에서도 안이 잘 들여다보입니다.
 
부속지 같은 팔을 휘젓는 크리쳐 로봇에게
 
얀이 권총도 없이
 
손짓만으로 에너지를 갈겨 터뜨립니다.
 
홀로 온전한, 기적에 가까운 경로 구현.
 
그야말로 전능한 설계입니다.
 
어쨌든, 하나만은 명백하네요.
 
기자들이 사진을 뽑기엔
 
더할 나위 없이 끝내주는 구도가 되었겠군요.
 
채드 클레번:주인공이 다 됐네. (중얼..)
 
얀이 채드를 발견하더니 훌쩍 뛰어내립니다.
 
얀 마르테:잘 하고 왔어?
 
채드 클레번:시간이 넘쳐나진 않아서.
남의 집 뒤지는 일이니까, 뭐..
그보다 너. (빤..)
설계자인데 말이지.
이제 구현자같은건 필요도 없어보이네.
 
얀 마르테:하하. 구현자 없으니까 좀 빡세게 구르긴 했는데, 결과는 확실한가 보네. 네가 그런 말을 다 하고.
어때, 좀 비슷해? 널 따라해봤는데.
 
채드 클레번:보통 그런것도 할 수 있나?
내 할 일이 없잖아.
뭐, 혼자 4년 내내 오지에서 구르려면 뭐든 했어야겠지.
됐어.
 
얀 마르테:표면적으로는 호위, 다르게는 시선 끌기...... 여기까지가 오늘의 내 역할이었는 걸. (네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린다.) 너도 오늘 네 역할을 충분히 했고. 틀려?
 
채드 클레번:확실히 주목을 제대로 받은것 같기는 해.
이런 큰 행사에.. (대충 주변 둘러봄)
뭐, 필요한게 아니라면 살면서 이렇게 남의 시선 끄는걸 즐기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동안 체질이 좀 바뀌긴 했나? 아니면 피곤할 성 싶은데.
 
얀 마르테:체질은 바뀌었어도 성향은 별로 바뀌지 않아서, 역시 이런 건 좀 부담스럽네. (장난스레 웃더니 그대로 팔에 기대듯 무게를 싣는다.) 피곤하다.
 
채드 클레번:네가 전부 기억해두는거잖아. 네 말을 빌리자면 전부 죽은놈들 같다고 했나. 시체들의 동경어린 시선같은걸 하나하나. (무뚝뚝하게 대답하곤 무게가 실리는걸 가만히 두다가) 할 거 다했으면 빠져야지.
 
얀 마르테:즐기진 않지만, 그래도 썩 기분 나쁘진 않아, 언젠가 그들한테도 호흡이 돌아오는 날이 올 테니까. 이건 그걸 위한 일이기도 하고... (뒤를 슬쩍 돌아보고는) 그럴까? 요한 선배, 이쯤이면 됐죠? 수습까지 저희 몫인 건 아닐 테고.
 
요한 에를리히:...그래, 임무는 여기까지다. 두 사람 다 고생했어.
 
곧 엉망이 된 현장을 보수하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옵니다.
 
요한은 이내 무전을 끊네요.
 
앞으로 며칠 간은 ‘프로젝트 아난시’의 문서 해독건으로 바쁘겠죠.
 
그동안 우리도 우리의 할일을 하도록 합시다.
 
얀 마르테:돌아가서 밥이라도 먹을까? 저기 있는 음식은 거북해서 잘 안 들어가더라~
 
채드 클레번:가려먹기는.
가자.
뭐, 아랫놈들한테 어울리는거라도 집어먹으면 되겠지.
(저벅저벅 먼저 앞서 걸어감)
 
여전히 어깨에 팔을 얹은 채로,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린 파티장을 뒤로 합니다.
 
.
 
.
 
.
 
.
 
.
 
.
 
채드가 빼내 온 '프로젝트 아난시' 관련 문서를
 
요한이 해독하는 동안,
 
다시 일주일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얀와 채드는 각성자사관학교로부터
 
실습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전에 나선 선배 페어들은 대부분 전장에 투입되어 있으니,
 
페어를 맺고도 두 사람이 카사블랑카에 머물고 있는 틈을 타
 
학생들을 교육시키겠다는 의도겠죠.
 
별달리 연설 같은 것을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기술 시연 정도야 보여주지 못할 건 없다는 게 얀의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상부 지시를 거절할 수도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각성자사관학교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익숙한 훈련실이에요.
 
VR 가상훈련실과는 또다른 곳이었는데,
 
순수하게 이능력을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강도가 드센 재질로 만든 교실입니다.
 
3교시짜리 수업에서 교수의 한 시간 강의가 끝나고,
 
남은 두 시간이 두 사람의 몫입니다.
 
얀 마르테:…그래서, 경로 계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시야를 깨끗하게 만드는 거야.
시력이 좋고 나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목표물을 겨냥하는 마음가짐에 흔들림이 없이, 하나만을 생각해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지.
잡념이 없을 때, (손바닥 위에서 정순하여 불꽃 같은 에너지가 피어났다.) 에너지는 가장 순도 높은 열기를 가지니까.
 
채드 클레번:(말잘하는군)
 
얀 마르테:다들 아직 정식 페어가 없지만, 임시 페어와의 합을 맞추면서 요령은 어느 정도 터득했지?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줄 서봐.
저쪽 끝에서, 여기, (세워 둔 과녁에 팔을 기대며 중앙을 짚어낸다.) 여기를 가장 정중앙에 가깝게 맞추는 페어가 점수를 가져가는 걸로.
 
채드 클레번:(구경함)
 
얀 마르테:클레번 소위, 이리로. 선배로서 시범을 보여줘야지. (싱글)
 
채드 클레번:(빤..)
시범은 한 번. (후배듧 봄)
알아서 터득해.
 
얀 마르테:그래도 힘 조절 좀 해. 알지? (옆구리 툭 침)
 
채드 클레번:(눈 가늘게 뜨고 쳐다봄..)
이거, 우리도 점수 주는건가?
 
얀 마르테:원하면 내가 주고.
 
채드 클레번:네 성적은 누가 내주는데?
 
얀 마르테:네가 심심한 것 같길래. 애초에 장교가 성적이 왜 필요해? 실적도 아니고. (학생들 몰래 메롱)
 
채드 클레번:애들 앞에서 잘하는 짓이다.
꽤 무게잡는 이미지 아니였나? (빤..)
(과녁 맞은편에 서서) 뭐 해. 네 일 해야지.
 
얀 마르테:아하하. 내가? 뭐... 애들의 기대는 지켜줘야겠지.
 
멋지게 시범을 보여 봅시다.
 
얀 마르테:
항법
기준치: 85/42/17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채드 클레번:
격뢰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장난 없네
 
가오 페어;;
 
곧게 뻗은 무형의 길위로,
 
금백색 에너지가 무리 없이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습니다.
 
빠르고, 정확합니다.
 
동시에 학생들의 탄성이 터지네요.
 
학생 A:와…!
 
학생 B:봤어, 방금? 난 제대로 못 봤어.
 
학생 A:아니, 무슨 총알처럼 그냥 뚫던데…….
 
당연히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얀와 채드의 협력에 경탄합니다.
 
애당초 얀이 꽤 유명인사이기도 했고,
 
이 깔끔한 설계와 우아한 구현은
 
각성자라면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는 방식으로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여기 모인 학생들은 1학년이어서,
 
학교를 일찍 떠난 얀은 물론이거니와
 
채드와도 재학 기간이 겹치지 않아 아는 얼굴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고,
 
앉아 있는 후배들은 모두 둘을 알고 있습니다.
 
4년 전 학내 시위 이후 두 분파로 갈라진 세력은
 
저마다 겉으로 보기엔 별문제가 없는 동아리를 형성해
 
각자의 세력을 내세웠습니다.
 
정부를 위시하는 축이 교지편집부,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을 그대로 계승한 축이 전통음악 동아리입니다.
 
자기 자리 옆에 작은 젬베를 내려 둔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 불쑥 말합니다.
 
마르보:마르테 선배님께선, 외람되지만, 4년 전 학내 시위 중 끌려가신 후 계속 '괴뢰 정부'(라고 발음할 때 학생은 굉장히 냉소적인 어조를 사용했다…)에 붙잡혀 계셨던 걸로 아는데요.
이능력을 어떻게 그렇게 다듬으셨습니까?
 
짧은 침묵.
 
그 가운데에서 건너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대들듯이 반박합니다.
 
학생 A:재능의 영역이라는 것도 있잖아!
넌 맨날 실습 점수 하위권이니까 질투 나냐, 마르보?
 
마르보:(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여) 나는, ...나는 정보의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야!
'충성하는' 자들에게 좀 더 능력을 개화하기 쉬운 법을 알려줘서 자기 사람으로 키운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까, 마르보는 돌아 돌아
 
결국 얀이 정부에 충성하는 것을 비꼬고 싶었던 듯하네요.
 
채드 클레번:(봄)
뭐든 능력이 있어야 말이라도 할 수 있는거겠지.
학생들 실습 시간 아니었나?
나라면 장교 능력이 요행인지 확인해보기 전에 하나라도 더 뜯어내려고 할 것 같은데.
충성하지 않아도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는 선배 녀석이라. (얀 고갯짓함)
 
마르보:... (입 꾹)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채드 클레번:(혼낸거 아닌데)
사과 하라는게 아냐.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는거지.
 
얀 마르테:으음~ 뭐, 됐어. 하지만 그 말대로 지금은 실습 시간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면 수업이 끝나고 해도 될 거 같은데.
 
저 페어부터 실습을 시켜볼까요?ㅋㅋ
 
채드 클레번:(그럽시다)
자. 아까 목소리 큰 녀석.
나와.
 
마르보:저.. 저요?
(엉거주춤 나온다.)
 
채드 클레번:(쳐다봄)
태도가 영 군인답지 않은데.
허리 펴. (등을 한대 팍 친다.)
 
마르보: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렇게 의문을 재기했던 학생부터 실습을 시작합니다.
 
마르보:
설계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래도 잘하네요.
 
얀 마르테:잘 하는데? 목표물과의 거리감만 더 신경써서 재봐.
 
채드 클레번:그럭저럭 하는데.
 
그렇게 두 시간이 흐릅니다.
 
학생들은 두 사람이 얼마나 이능력을 잘 운용하던지
 
페어에 대한 선망을 가득 지고
 
저마다 감탄하며 재잘재잘 강의실을 나섭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쪽도 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얀은 1학년 때 지도교수님이 잠시 보자고 하셨다며
 
잠깐 자리를 비웁니다.
 
1층 로비에서 잠깐 기다리라면서요.
 
채드 클레번:(기다림)
 
그가 로비에 앉아 있을 때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기척이 들립니다.
 
키가 작은 단발 여학생이네요.
 
명찰에 ‘릴리안 웨즐리’ 라고 쓰여 있습니다.
 
릴리안 웨즐리:저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까 강의 들었던, 릴리안 웨즐리라고 합니다...
 
채드 클레번:아. (강의실에 앉아있던 학생들 대충 떠올려봄)
뒷줄에 있었나. (흐릿..하게 생각남)
용건은?
 
릴리안 웨즐리:저, 저, 저, 저,
사인해주시면 안 될까요?!?!?!?!?! (대뜸 태블릿 패드를 내민다!)
 
채드 클레번:.....
내 서명을 어디에 쓰려고?
용도를 말해.
 
릴리안 웨즐리:그, 그러니까... 펜이어서요...............! 제가! 선배님하고, 얀 선배님하고... .... (횡설수설...) 네에..?... 그, 소장용으로... ㅇ///ㅇ
...옆에 잠깐 앉아도 될까요?
 
채드 클레번:마음대로 해.
(패드에 대충 서류에 하던 그대로 정갈하게 사인 해두고선) 얀 마르테의 걸 더 가지고 싶을텐데.
 
릴리안 웨즐리:아, 아니에요! 전 두 분다... 저 실은, (옆에 조심스럽게 끼어 앉아 목소리를 낮춘다.) ...인자미나 아시죠? 선배님들이 1학년이실 때 꽤 유명하셨어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자, 잘 모르는 사이에 겨우 사진 몇 개만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습겠지만요, 굉장히 동경했거든요...
 
채드 클레번:그런 이유로. .. (꿈뻑)
그게 뭐 별거였나?
얀 마르테의 행보를 보고 쫓아온 줄 알았지.
 
그러게 말이에요.
 
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채드는 딱히 유명인도 아닌데 동경할 이유가 있을까요?
 
대단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릴리안 웨즐리:그게, 지금까지 임시 페어를 몇 번이고 거쳐 보았는데, 저는 동조율이 하나같이 몹시 낮아서......
선배님들께선 오랜 기간 떨어져 계셨는데도, 각자 능력을 열심히 갈고 닦으신 것 같고... 그래서 오늘 수업을 듣고 더 감탄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시간이 없으신 게 아니라면... 몇 가지 더 여쭤 봐도 될까요?
 
채드 클레번:oㅇ(그냥 운의 문제 아닌가.)
뭔데.
 
릴리안이 그렇게 입을 떼던 순간에,
 
난데없이 복도 저쪽 끝이 소란스러워집니다.
 
학생 A:아, 또 연구동아리 미친 애들 짓이야?!
 
학생 B:꺅! 악! 으악! 난 귀신은 괜찮아도 벌레는 질색이란 말이야!
 
…….
 
복도에서,
 
로비로,
 
거대하고 꿈틀거리는 다리와 더듬이,
 
역겹게 번쩍거리는 갑주를 갖춘…
 
어디로 보나 보편타당하고
 
완전한 바퀴벌레가 기어 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의 크기가 4m쯤 되었다는 것이겠죠…….
 
조금 이성을 갖춘 학생들은
 
그 안에서 키잉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었으므로,
 
이것이 연습용 크리쳐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본능적인 혐오감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실험으로 학내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곤 하는 연구부가
 
또 폭주 로봇을 만들어냈으리라는 추측,
 
그 폭주 로봇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은
 
모든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채드 클레번:(징그럽군)
 
얀 마르테:채드,
…와…… 저게 뭐람.
 
채드 클레번:큰 벌레네.
 
계단을 내려오던 얀이 손을 들어올린 순간에,
 
바퀴벌레가 돌아봅니다.
 
눈이 달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크리쳐 로봇이니 감지 센서가 있는 건 당연하겠죠.
 
폭주 직전이었던 바퀴벌레는 놀랍…게도
 
갑작스레 입을 쩍 벌리고
 
몸을 구부려 뒤로 돌아 얀에게 달려듭니다.
 
채드 클레번:........야!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얀이 활약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아 온
 
후배들이 대다수였으니까요.
 
한두 사람 나와 있었던 교수들이 달려오기는 했지만,
 
얀이 손을 들어올렸으므로
 
그를 믿고 기다리는 기색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금백색 에너지가 넘실거리지도,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설계가
 
손 안에서 피어나지도 않습니다.
 
얀은 그 자리에 굳어 있고,
 
크리쳐 로봇이 그에게 달려듭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네요.
 
그냥 보고만 있을 건가요?
 
채드 클레번:뭐하는거야? (일단 몸부터 움직인다.)
(애초에 얀 없이도 지냈던 4년이었고.. 급한대로 설계없이 격뢰를 얀에게 향하는 크리쳐에게 내리꽂는다.)
격뢰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채드가 조치를 취한 것과 더불어,
 
뒤에서 어쩔 줄을 모르던 릴리안이
 
기지를 발휘해 던진 사과에 맞은 바퀴벌레는
 
뒤로 벌러덩 나자빠져 꿈틀거립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만든 형상이었지만,
 
그런 재현에 감탄할 때가 아니죠.
 
얀은 여전히 굳은 듯 자리에 서있습니다.
 
얀 마르테:... ...안돼.
이능력이 안 나와.
 
채드 클레번:뭐?
나오게 해.
 
얀 마르테:... (창백한 얼굴로 손을 몇 번 쥐었다 핀다.)
 
이때, 릴리안이 달려옵니다.
 
릴리안 웨즐리:선배님! 괜찮으세요?
 
채드 클레번:어.
사과 좀 던지던데. (바퀴벌레 쳐다봄)
(이능력에 대해 묻고싶긴 한데.. 외부인 앞에선 할말이 아닌 것 같아 일단 입다뭄)
 
릴리안 웨즐리:앗, 제가 또 사격에는 조금 재능이.. 에헤헤, 이게 아니고...!
섬배님 얼, 얼굴이 많이 안 좋으신데... ... (머뭇) 제가 보건위원인데, 지금 의무실이 잠깐 잠겨 있을 거거든요.
열어드릴 테니 잠깐 쉬시겠어요?
 
채드 클레번:그래야겠네.
열어줘.
잠깐 할 말도 있을 것 같고.
 
릴리안 웨즐리:네, 넵! 그럼 이쪽으로..! (공손하게 모신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제2의무실입니다.
 
두 사람이 언약을 했던 그 장소.
 
얀을 보건실 침대에 앉힙니다. 여전히 어딘가 멍한 기색이네요.
 
릴리안 웨즐리:자, 자리를 피해드리는 게 좋겠죠...? (슬금슬금 눈치 보다 문턱을 넘는다.) 편히 쉬세요...!!
 
채드 클레번:(릴리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오지랖 넓은 녀석이네.
(얀의 어깨를 꽈악 잡고 상태를 대충 살핀다.) 정신차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그래?
불려가서 해코지라도 당했나?
 
얀 마르테:(어깨가 잡히자 생각하는 것이 끊기듯 시선을 들어 너를 바라본다.) 능력 자체가 사라진 기분은... 아니야. 에너지 흐름도 평범하게 느낄 수 있어.
그런데 그냥 안됐어. 누가 호흡을 차단한 것처럼...
 
채드 클레번:다시 해봐.
계속 그래?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닌지 확인은 해야지.
 
얀 마르테:(설계를 그리듯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안돼.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닌데, ...
 
채드 클레번:짚이는게 뭔데?
 
얀 마르테:얼마 전 자선파티에서 꽤 화려하게 했으니까.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뒤로 몸을 눕힌다.) 아직 너한테는 말하지 못했는데, 연습만으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내 능력.
 
채드 클레번:뭐?
도핑같은건가.
가서 무슨 짓을 하고 온건데, 너?
 
얀 마르테:가서 라기보다는... ...
...너, 노노이 라가힛 기억해?
 
채드 클레번:어.
터져 죽은 녀석.
 
얀 마르테:......말은 좀 예쁘게 해주지.
 
채드 클레번:(사실이잖아? 라는 얼굴로 봄)
 
얀 마르테:그래, 아무튼 걔가 죽던 날... 나와 요한 선배가 피를 엄청나게 뒤집어 썼잖아. 그때부터 에너지 유량이 이상할 정도로 요동쳤어.
라가힛이 이상한 실험 대상이었다는 건... 너도 나랑 같이 들었잖아. 그거 때문이 아니려나.
 
채드 클레번:감염성인가?
 
얀 마르테:그럴지도. ...지난 4년 간, 늘어난 에너지를 쉽게 컨트롤 할 수가 없어서 애를 좀 먹었지. 여러 번 위험했고.
그동안 연습한 건 그런 거야.
 
채드 클레번:그래서, 그때 덮어쓴 피로 득만 본게 아닌가보네.
이번엔 또 나오지도 않는걸 보면.
늘어난게 아니라, 당겨썼다던가 그런 원리인가?
흐름은 그대로라며. 뭐가 문제같은데?
 
얀 마르테:글쎄... 에너지가 안정된 건 사실 최근의 일이고, 그래서 널 찾아올 때가 됐다고 생각한 거였는데.
이렇게 큰 힘을 써본 건 파티에서가 처음이었어. 그 반작용일 거라고 생각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아까 수업 때 시연한 이능력은 굉장히 작은 힘이었지만, 말하자면 배터리가 2% 정도밖에 남지 않은 스마트워치였는데 2%마저 시연하면서 다 써버린 게 아닐까.
 
채드 클레번:안정되기전에 찾아와야 도움이라도 요청할 수 있는거 아닌가?
뭐, 그건 됐어. 지난 일이니까.
영구적인 문제일 것 같아?
 
얀 마르테: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지니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돌아오지 않으려나. 자연스럽게 충전되는 거지.
...조금 더 앞당기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를 응시한다.) 너도 알고 있는 방법이야.
 
채드 클레번:(가만히 마주보고선)
이전에 했던것처럼?
 
얀 마르테:응. 이전에 했던 것처럼.
손 정도는 빌려줄 수 있지 않아?
 
채드 클레번:뭐 어려운 일이라고.
(물끄러미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가 슥 내밀고선)
나는 네 부품이잖아. 엔진 나간 기계 돌리는건 일도 아니지.
 
얀 마르테:...그거 든든하네. (누운 채로 너를 올려보다 팔을 뻗어 내민 손을 단단히 맞잡는다.) 조금만 나눠줘, 다행히 아직 전원은 켜져 있으니까.
 
채드 클레번:(잡은 손에 힘을 싣는다.) 사양하기는.
다 가져가.
 
얀 마르테:아하하. 그럼 너는 어쩌고.
 
채드 클레번:나야 뭐.
너처럼 나약하지 않지. (내려다보다가 에너지를 흘려보내며)
 
얀 마르테:그러네. 언젠가 너도 필요할 날이 올까?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네 에너지가 파고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몸속이 얼음장 같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드 클레번:없어, 그런 날.
종잇장 같은 녀석을 페어로 뒀는데 뭘 믿고 나까지? (무심히 대답하고선 대강 상태를 확인하며 계속 에너지를 흘린다.)
오지랖 부리니까 안어울리게 성가신 몸뚱이가 됐잖아. (노노이때의 일을 이야기하는듯)
 
얀 마르테:어떻게 확신해? 그런 날이 오면 솔직하게 말해.
너는 제일 중요한 부품이니까, 대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하거든. ...
 
채드 클레번:내가 그렇게 행동할거니까.
........
그래. 네 말대로 주요 부품이 맞아. 그러니까 녹슬지 않을거라고. (피식 웃고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얀은 돌아온 날부터 반 년 내내 그렇게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 몇 주간,
 
정확히는 다시 만난 날부터 조금씩 회복되었죠.
 
과연 이건 우연일까요?
 
얀은 곧 풀어진 얼굴로 잠에 듭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차에,
 
조심스럽게 보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릴리안 웨즐리가 고개를 빼꼼 들이미네요.
 
릴리안 웨즐리:저, 선배님... 아, 방해하려는 건 아니고요.....! 혹시 회복제가 필요하실까 해서요.
 
릴리안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농담 삼아 포션이라고들 부르는,
 
각성자들이 자주 마시는 체력 회복제입니다.
 
릴리안 웨즐리:앗...! 선배님 주무시네요. (슬금슬금 다가와서 슬쩍 본다.)
 
채드 클레번:(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얀 마르테의 팬이라고 했었나-..
귀한거 보네. (뭐.. 틈날때마다 눈감고 있으니 그렇지도 않은가?)
줘. 이따 먹이던가 하게.
 
릴리안 웨즐리:앗, 네엡...! (네게 두손으로 포션을 내민다.) 그, 그런 마음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요...~~ 정말 순수한 동경심으로! ... ... 그, 선배님 주무시는데 방해될까봐 죄송하지만, 혹시 잠깐 시간 되실까요?
 
채드 클레번:왜?
말해.
 
릴리안 웨즐리:아까 하던 이야기가 저한테는 되게 중요해서요. 선배님께 조언을 듣고 싶어서... ... (눈치를 보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눈을 질끈 감고는)
저, 사실 동조 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어요...!
 
동조 장애
 
채드 클레번:그래?
내가 해줄 조언이 있나. 난 운이 좋아서 동조율이 높은 페어를 구한거라.
 
릴리안 웨즐리:저보다 경험이 풍부하실 것 같아서...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시기만 해도 좋아요. 저는, 저는 꼭 멋진 각성자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어, 조금 tmi인데요.. (아직까지 살아남은 표현) 저희 부모님은 각인하신 각성자 부부였다고 하시는데, 스와콥문트 시민이시거든요. 저와 오빠가 아주 어릴 때 떠나 버리셨어요.
그 뒤론 연락도 끊어버리시고...... 그래서 저랑 오빠는 오랫동안 부모님이 저희를 버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직접 만나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우연찮게 저도 각성자로 태어났으니까, 제가 공적을 세워서 시민권을 따려면 멋진 행보를 보여 주어야 가능성이 생길 테고.. ...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니까요. (침울해진다.) 혼자서 전투할 수 있는 노하우를 익혀야 해서...... 그래서 선배님께 여쭤보는 거예요.
두 분의 동조율이 높은 것은 우연일 수 있겠지만, 선배님께서 페어가 사라진 상황에도 이능력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고 임관하신건 선배님의 노력 때문이잖아요?
 
채드 클레번:네가 능력을 사용하는걸 봐야할 것 같은데.
어쩔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
저녀석이 멋대로 사라졌는데.
 
릴리안 웨즐리:헙, 여기서는 조금 그렇고오...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본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그 외에도 혼자 싸우셨을 때의 마음가짐이라거나... 팁이라거나, 아무거나 좋아요.
 
채드 클레번:뭐, 그래.
(대충 워치로 연락처 넘겨주며)
할 수 있는건 해줘도 좋겠지.
(일정 대강 생각해보다가) 되도록 신속하게.
조만간 바빠질지도 몰라서. 이제 학생도 아니잖아.
 
릴리안 웨즐리:...가, 감사합니다...! 연락처까지 받을 수 있을 줄 몰랐어요...
 
그러고서 릴리안은 고개를 번쩍 들어올립니다.
 
눈 안에서 신뢰가, 동경이, 반짝거리는 경탄이 빛나고 있습니다.
 
릴리안 웨즐리:저는 강해지고도 싶지만… 이 능력으로 사람들을 도와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도 싶어요.
뭐, 딱히 누가 뭐… 세상을 구해라! 하고 예수님처럼 시킨 건 아니지만요, ……오빠도 각성자인데 질 수 없어서요!
저는 선배님 덕분에 용기를 많이 얻었거든요.
 
우스운 일이네요.
 
동경할 거라면 얀를 좇아가지,
 
채드에게 이럴 이유가 있을까요?
 
당신이 얀 마르테 없이 졸업한 게 딱히 본인의 선택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한 일도 아니거니와
 
학내 시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릴리안은 거기서 느낀 게 있는 모양이죠.
 
일방적인 동경일 뿐입니다.
 
채드 클레번:(그니까)
 
릴리안 웨즐리: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횡설수설 했죠. 일단 선배님께서 설계/구현 없이도 이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훈련을 하셨는지 궁금하고... 음, 그리고 두 분은 시위에 나갔을 때와, 지금 마음가짐이 여전히 같으신지 궁금했어요. 뒤에 건 그냥... 개인적인 질문이에요!
 
채드 클레번:네가 구현자였나?
 
릴리안 웨즐리:넵..!
 
채드 클레번:나의 경우에는 딱히 별거 없어. 이능력외에도 체력 훈련, 이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전투 훈련을 제대로.
타고난 걸 믿는다고 그런걸 게을리하면 애먼데에서 끽 하고 죽기 마련이라.
마음가짐같은건 글쎄.
저녀석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그렇게 영향을 주었을지는.
네 목표가 네 부모를 다시 만나는거라고 했지. 나는 그 반대야.
들어봤자 꿈많은 녀석한테 해줄말도 없겠군. (턱짓으로 얀 가리키며) 내 페어가 깨면 물어보던가.
 
릴리안 웨즐리:그렇군요. .......역시 전 엄마,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정의로운 선택을 하고 싶어요. (머쓱하게 웃으며) 제가 뭐 대단한 걸 할 수 있겠냐 싶긴 하지만요. 원래 영웅은 그런 데에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선배님 말씀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읏차, 시간을 너무 오래 뺏어서 죄송해요. (자리에서 일어난다. 태블릿 패드를 품에 소중히 안은 채로) 그, 제가 두 분 오래 팬이었으니까... 그냥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있는데요.
팬이 연예인한테 말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시더라도, 저처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볼을 붉히며 웃는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들이 선배님들 동경하고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건강하셔야 해요!
 
그런 후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도망치듯 사라집니다.
 
부끄러웠던 모양이네요.
 
얀 마르테:흐음... 귀엽네. 꽤 열렬한 걸? (눈을 슬쩍 뜬다.)
 
채드 클레번:안자고 있었어? (내려다봄)
너한테 할 말 많아 보이던데.
 
얀 마르테:자고 있었어. 중간쯤부터 깼지만~..
 
채드 클레번:어린애 앞에서 자는척이나 하고, 약았네.
 
얀 마르테:채드 선배님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서 그만. 하하.
뭐.. 보아하니 필요한 얘기를 해준 것 같네. 나라고 해서 대단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야.
 
채드 클레번:널 응원한다는데 일어나서 손이라도 흔들어야지.
(임마-라고 덧붙이며 주먹을 꽈악 쥔 후 네 이마를 두드렸다.)
 
얀 마르테:네가 대신 흔들어줬으니까 됐잖아? '우리'를 응원한다고 했으니까. 아아아, 나 환자야. (엄살)
 
채드 클레번:난 손 흔든적 없거든.
뭐, 영웅의 마음가짐을 가진 녀석이네. (후배 떠올림)
 
얀 마르테:끝까지 얘기 들어줬잖아? 그 정도면 흔든 것보다 더한 팬서비스지.
응, 그렇네. ...이미 충분히 멋있는 것 같은데. (기억을 저장하듯 눈을 잠시 감았다.)
 
채드 클레번:이번건 좀 볼만했나봐.
저런 인간이 영웅이 되겠지.
내 이야기정도는 뭐, 잠깐 본인의 상황을 대입할 구실같은거고.
 
얀 마르테:영웅이 될 재목에게 어떤 동기가 되어줬다면, 그 정도도 나쁘지 않은 역할이라고 보는데.
오늘 아침 요한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 곧 떠나게 될 거야. 마지막으로 임무 하나만 하고.
 
채드 클레번:임무라면 무슨 임무?
 
얀 마르테:전에 참모총장 공관에서 가져온 '프로젝트 아난시' 문서를 절반 정도 해독했다고 해. 뒷부분은 아예 문서가 파쇄돼서 읽을 수 없었고... 방위사령부 지하에서 뭔가 부적절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야.
우리 학생 때 소문 돌았던 아놀드 박사 기억해?
 
채드 클레번:아놀드?
(기억이 가물가물)
어.
그래서, 사령부 지하에서 지난번에 말했던 인체실험 같은걸 하는 것 같다고?
그게 아놀드랑 관련이 있고?
 
얀 마르테:그 실험 총책임자였대. 뭔가 반발을 했다가 숙청당했다고 하던데... 이후에 프로젝트는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는 자동화 프로토콜에 돌입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어. 사람은 없겠지만 로봇은 조심해야겠지. ...
이번에는 거기를 털어야 해. 실험에 대해 알아내고, 증거물을 챙길 수 있다면 챙긴 뒤 도시를 빠져나올 거야.
 
채드 클레번:(끄덕)
이번엔 너도 가나?
 
얀 마르테:응.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으니까..~
 
채드 클레번:그래.
준비해둬야겠네.
쉬어둬. 오늘처럼 적앞에서 넋 놓지말고.
 
얀 마르테:설마 로봇에게 질까 싶지만..~ 할 말이 없네. 그래. 네가 에너지도 나눠줬으니, 조금 쉬면 결행일까지는 힘이 돌아오겠지. (고개를 끄덕인다.)
 
결행일까지 앞으로 조금.
 
이제 정말 카사블랑카를 떠날 준비를 합시다.
 
.
 
.
 
.
 
.
 
.
 
.
 
얼마 뒤, 결행일이 되었습니다.
 
그간 두 사람은 현금을 조금씩 바꾸거나 짐을 싸는 등
 
티나지 않게 준비를 마치고
 
중간중간 임무에도 얼굴을 비추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행 시각은 새벽 1시.
 
보초를 서던 헌병대도 꾸벅꾸벅 졸 시간입니다.
 
방위사령부 앞에서 얀이 채드를 맞이합니다.
 
지하실 앞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뭔가를 지키고 있다는 티를 내면 지하실 존재가 들통나니
 
아예 입구 안쪽에서 로봇들로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는 게
 
얀와 요한의 분석이었죠.
 
소통용 인이어를 통해 요한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요한 에를리히:들리나?
입구에 경비 로봇이 있을 텐데, 그 로봇들 상대만 조용히 좀 해 주면 걔네들 통해서 내부 설계도를 다운로드해 보겠어. 부탁한다.
 
두 사람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합니다.
 
평상시에 이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죠.
 
인이어 너머에서 바쁘게 무엇을 조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히 문이 열립니다.
 
지하 출입 권한이 있는 참모총장의 지문을 인식시킨 모양이네요.
 
실험실로 향하는 주요 입구에는
 
푸르고 조도 낮은 조명이 밝혀져 있습니다.
 
다중 보안 시스템이 설치된 것이 감각만으로도 느껴져요.
 
홍채 인식 장치는 요한이 무효화했고,
 
남은 것은 발 앞의 각성자 에너지 감지 장치겠네요.
 
이 레이저 선을 넘었을 때
 
등록되지 않은 각성자의 출입이 느껴지면
 
보안 로봇이 튀어나오는 구조라고 요한이 설명합니다.
 
요한 에를리히:여긴 정면돌파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로봇이 튀어나오자마자 조용히 처리하는 방법뿐인 것 같다.
단, 설계도를 다운로드할 시간이 필요하니 14초 정도 시간을 끌어야 해.
얀이 설계를 열면서 동시에 발을 내딛어라. 그리고 채드가 위에 에너지 구현을 얹어.
로봇은 부숴도 괜찮지만, 시간만 좀 끌어 줘.
 
채드 클레번:어.
 
채드 클레번:상태는 멀쩡하고?
격뢰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얀 마르테:나쁘지 않네, 누구 덕분에.
항법
기준치: 85/42/17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 사람의 설계와 구현은 정확히 맞아들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로봇을 경계합니다.
 
얀이 한 발짝 내딛은 순간
 
굉장히 귀엽게 생긴,
 
고전 애니메이션 월-E에 나오는
 
흰색 로봇 같은 비주얼의 보안 로봇이 튀어나와
 
전자기 파동을 퍼뜨립니다.
 
미리 설계된 경로를 따라 구현자의 구현이 쏘아지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로봇은 얼마간 팔을 떨다
 
액정을 깜빡거리며 이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한 에를리히:…보안이 상당한데.
일부 구역은 아예 폐쇄되어 기록에 남질 않았어.
 
채드 클레번:폐쇄된 쪽은 직접 스캔할수는 없나?
 
요한 에를리히:일단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설계도가 이 정도였다.
참고해서 진입해.
 
한편 쓰러진 경비 로봇이 웅얼거립니다.
 
경비 로봇:……저는 제 할일을 다 했어요! 공격하지 마세요!
 
기술이 발전되면 인간과 닮은 로봇이
 
시장을 지배하리라는 과거의 예측과 달리,
 
로봇들은 귀엽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점점 일원화되었습니다.
 
인간과 닮은 로봇을 개발하는 것은
 
여러 윤리적 관념상 굉장히 심한 규제를 받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경비 로봇은 액정에 T_T 표정을 띄웠다가,
 
경비 로봇:등록되지 않은 각성자예요! 어떤 목적으로 방문, …….
 
하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치지직 소리를 내며 꺼져버립니다.
 
채드 클레번:일단 데이터 분석실로.
시계방향으로 돌자. (얀 봄)
 
얀 마르테:마음대로.
 
수집된 모든 실험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대형 서버 룸과 여러 개의 분석 스테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보이네요.
 
로봇이 즐비해야 할 것 같은데,
 
캐비넷 하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로봇이 케이스에 담겨 잠들어 있습니다.
 
에너지 변환기, 고성능 PC가 늘어서 있네요.
 
뭔가 복잡한 스트림이 화면에 표시되고,
 
중앙 실험실을 도식화해둔 듯한
 
원형 챔버가 모니터에 보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메인 PC입니다.
 
채드 클레번:이쪽은 보안이 영.
(메인 PC에 다가간다.)
(켜지나?)
 
메인 PC는 잠겨 있습니다.
 
채드 클레번:(저번에 따놨던 총사령관 지문으로 되나?)
(해봄)
 
ㅋㅋ스르륵 풀립니다
 
마법의 지문~
 
인공지능 제어 시스템인지 화면에는 대화 창이 떠 있습니다.
 
이전 대화 내역은 없네요.
 
아무래도 주변을 둘러 보며 단서를 획득한 후에
 
물어볼 내용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드 클레번:(흠)
(에너지 변환기를 살펴봄)
 
도통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채드 클레번:(그렇군)
(제어실 A로 향한다.)
확인해보고 돌아오지.
 
제어실A
 
실험실의 모든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곳처럼 보입니다.
 
문은 딱 로봇이 드나들 만큼만 열려 있어요.
 
채드 클레번:
크기
기준치: 65/32/13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응..?
 
이렇게까지 실패한다고
 
꼈...다
 
얀 마르테:...
못 나와?
 
채드 클레번:..........................
...
......
 
얀 마르테: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채드 클레번:(아)
 
얀 마르테:(하 끌어당겨서 뺌)
 
채드 클레번:(하..)
 
얀 마르테:설마 이런 난관에 봉착할 줄은. (이마 닦음)
 
채드 클레번:넌 왜 안 낀거지.
이 계급사회에서 최고의 불공평함을 느꼈어.
 
얀 마르테:나야 매 끼니마다 너보다 밥을 두 그릇은 덜 먹으니까.
 
채드 클레번:그방법으로 혼자 쪽을 피했다고.
 
얀 마르테:그 덕분에 널 빼줄 수 있었던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채드 클레번:................
잊어버려.
제어실을 빨리 확인해야겠어.
우리한텐 임무가 있잖아.
(휙휙 걸어감)
 
얀 마르테:평생 기억해야지...
 
채드 클레번:(휙 돌아봄)
왜?
 
얀 마르테:재미있잖아. (으쓱)
 
채드 클레번:난 재미가 없는데?
 
얀 마르테:내 기억인데 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채드 클레번:그 기억의 주인공이 나잖아.
 
얀 마르테:그렇지?
채드... 나 어차피 못 잊어.
 
채드 클레번:모르는 일이지, 그건.
네 뇌세포도 몇 대 두들겨 맞으면 구멍날거야.
 
얀 마르테:...그래서 때리겠다고? 뇌세포에 구멍나면 네 파트너 죽는데?
 
채드 클레번:아까 나 당기는거 보니 힘 좋더만.
뇌세포 몇 개 구멍내는걸로 넌 죽지 않아.
 
얀 마르테:일단 사람이니까 죽어.
뭐.. 너무 걱정하진 마.
저장해놓고 가끔만 꺼내볼게, 가끔만~ (총총)
 
채드 클레번:(죽일듯이 쳐다봄)
 
웃음?도 잠시,
 
채드 클레번:(제어실을 살펴봐야함)
 
두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방 전체에 낭랑한 울림이 퍼집니다.
 
이후로도 음성은 두 사람의 신체 정보를 몇 가지 더 읊고
 
풀썩 꺼집니다.
 
요한 에를리히:방금 뭐야?
 
그때, 구석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안내 로봇 하나가 팔을 흔듭니다.
 
안내 로봇:이리 오세요! 두 분의 신체 상태를 점검해 드릴게요, 각성자님!
 
요한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요한은 두 사람의 스마트워치 카메라로 비치는 내부를 파악하며 바쁜 판단을 내립니다.
 
요한 에를리히:위해를 끼치는 종류는 아닌 것 같군. 단순히 신체상태를 점검할 뿐인 것 같아.
하게 내버려둬. 그게 쟤 일인가보지.
 
채드 클레번:내버려둬도 된다고?
(의심스럽게 쳐다봄)
 
그러는 사이에 로봇은 얀에게 달라붙어 팔 길이를 재고,
 
손을 내 보라고 하며 에너지 상태를 점검하는 등 소란스레 굽니다.
 
안내 로봇:오래 떨어져 계셨군요! 두 분은 정식 페어이신데도!
이러면 안 돼요. 동조율이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페어 간 의존도가 강해진다구요.
지금까지 두 분이 페어인 데도 떨어져 있으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얀 님의 에너지 유량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최근에 에너지 파동이 갑자기 일치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재회한지 얼마 되지 않으셨군요?
 
채드 클레번:(어떻게 알았지)
 
안내 로봇:얀 님의 에너지 파동과 유량은 지금 굉장히 불안정해요.
안정시키려면 채드 님이 반드시 필요해요! 떨어지지 마세요!
 
채드 클레번:(뭔 집나간 개 쳐다보는거 보는것처럼 얀 쳐다봄)
그렇단다.
 
얀 마르테:...무슨 눈빛이야 그거?
 
채드 클레번:평범하게 파트너를 보는 눈빛.
 
얀 마르테:......뭐 늘 그런 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수긍한다.)
 
안내 로봇이 떠들어대는 동안
 
당신은 내부를 조금 더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잠든 로봇이 여러 개체 있네요.
 
깨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자동화되었다는 연구 프로토콜 탓인지
 
연구 일지라든지, 사람이 쓰던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채드 클레번:(잠든 로봇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주먹으로 잠듯로봇을 퍽 친다.)
일어나.
 
얀 마르테:...누가 로봇을 그렇게 깨워? 전원 버튼을 켜야지.
 
채드 클레번:놀라서 깰수도 있지?
 
얀 마르테:고장난 기계도 아니고. (몸통에 있는 전원을 킨다.)
 
로봇 중 하나를 켜 보면 자연스레 액정에 불이 들어옵니다.
 
눈을 깜빡거리는 이모지를 화면에 내세우더니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게 퍽 '인간다운' 행동이에요.
 
AECE:연구원 님! AECE 기상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채드 클레번:지금까지 했던 실험을 보고해봐.
최근에 했던 생체 실험 데이터라던가.
 
AECE:(삐빅) '프로젝트 아난시'의 개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 아난시'는 옥수수 한 알로 백 명의 사람을 먹여살렸다는 신 아난시에게서 이름을 부여받은 프로젝트예요!
한 명의 각성자로 'X각성자' 80명을 만들 수 있지요. 중앙 실험실에서 자세한 내용을 열람하시겠어요?
 
채드 클레번:그래.
브리핑해.
 
두 사람은 중앙 실험실로 이동합니다.
 
이동하면서 복도 너머로
 
실험실처럼 보이는 공간 몇 군데를 지나치는데,
 
대부분 결벽적일 정도로 완벽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잠든 로봇들이 몇 개체 보이고요.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여러 개의 에너지 챔버와
 
복잡한 기계 장치가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실험실 가운데에는 원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에너지 코어가 존재합니다.
 
녹색으로 빛나는 유리관 안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액체가 가득 차 있네요.
 
주변을 둘러 보면,
 
벽감을 따라 비슷한 유리관이 늘어서 있습니다.
 
같은 용액이 들어찬 내부엔…
 
마치 태아를 닮은 모양으로 배태되고 있는 어떤 존재들이 수십 개 있습니다.
 
가운데의 에너지 코어를 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채드 클레번:(에너지 코어에 다가가본다.)
 
생명을 배아해 내는 빛깔, 녹색, 용액 안에 푸르게 잠들어 있는 심장.
 
검붉게 바랜 색상 위로 밝고 인공적인 초록빛이 감돕니다.
 
심장은 아주 느린 박동을 지닌 채 떨듯이 뛰고 있었지만,
 
맥박을 전달해야 할 혈관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동맥에는 실험 장치의 일부 같은 관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탯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래에 네임 태그가 있습니다.
 
채드 클레번:(네임 태그의 이름을 확인해 본다.)
 
AECE:‘프로젝트 아난시’ 의 핵심 에너지원을 보셨군요!
강력한 각성자였던 구현자 ‘유리 모하에’ 의 심장이랍니다.
 
채드 클레번:실종된 유리가 여기 있었군.
(요한과의 연결을 잠시 의식한다.)
 
AECE:이 심장에서 발산되는 혈액과 약품을 섞어 일반인에게 주사하면 거기서 파생된 ‘X각성자’가 탄생하지요.
여기 대동맥에 연결된 것은 엄빌리컬 케이블이에요.
지금까지 실험 성공률은 43%로 목표 수치인 55%까지 순조롭게 도달해 나가고 있어요!
이 케이블을 통해 전기 신호를 공급하면 뇌 없이도 심장이 혈액을 생성해 내는데, 신진대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프로젝트 아난시’ 초반의 가장 힘든 지점이었답니다.
아놀드 박사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신 거예요.
 
채드 클레번:그래?
아놀드는 아직도 이 실험에 함께 하고 있나?
 
AECE: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 께서 이번에도 옳으셨던 거죠!
아놀드 박사님은 더이상 실험에 참여하지 않으십니다!
 
채드 클레번:어떠한 이유때문에 그만두었던 것 같은데.
 
알아갔던 시간은 고작해야 두어 달,
 
그러나 유리 모하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구심점이 되어
 
저 홀로 머나먼 곳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기일마다 열리는 추모제에서 학생들은
 
사상과 정치 신념을 떠나 적어도 교내에서
 
더는 이러한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 뜻을 모아 왔습니다.
 
누구도 그의 심장이,
 
이런 모독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텐데.
 
요한 에를리히:......로봇이 뭐라고 말하던데, 잘 안 들렸어. 뭐가 있는데?
 
채드 클레번:못 들었어?
아니면 못 들은 척 하는거야?
 
요한 에를리히:...정말 못 들었다. 왜 그래? 심각한 거야?
 
채드 클레번:(요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로봇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유리 모하에의 심장이 아직까지 이곳에서 각성자를 창조하고 있는것과,
아놀드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게 된 이유가 관련이 있나?
윤리적인 판단?
 
AECE:그건 제 권한이 아니에요!
메인 PC의 아난시 시스템 전체 관리자에게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요한 에를리히:...채드, 내 말이 안 들리나?
그곳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어.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채드 클레번:그래.
그 아버지의 역할은 뭐지?
(로봇에게 물으며 요한이 볼 수 있도록 네임태그 쪽으로 다가간다.)
유리 모하에의 심장이 여기에서 각성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어.
숨기는 것 보다는 당신도 제대로 아는편이 낫겠다고 판단했고.
 
그는 통신이 끊겼는가 의심될 정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떨리는 숨소리만이 간신히 들려오네요.
 
그 올곧은 여자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에 눈감고만 있었으면
 
이 풍족한 도시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갔을,
 
지금의 우리보다도 어렸던 청년.
 
아무도 그에게 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 홀로 분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여러 비밀을 일러 주고,
 
불길처럼 삶을 태우며
 
지금 여기 차가운 용액에 갇혀 비참한 꼴로 떠 있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모든 것이 헛된 것만 같고.
 
죽어가던 순간에 유리 모하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AECE에게선 같은 대답이 반복해서 돌아옵니다.
 
오래도록 감정을 정돈하지 못하던 요한은
 
겨우 말 한 마디를 뱉어 냅니다.
 
요한 에를리히:......유리가,
유리의 심장이 그 실험의 핵심 재료라면,
...전략적으로 당연히 파괴... 파괴해야 한다.
그래도 경보 시스템 같은 것에 걸리지 않겠다고 판단되면......
 
그건 두 사람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태여 지시하는 행위는
 
오히려 요한 자신에게 상황을 들려 주고
 
납득시키기 위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파손 없이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법은 없을까요?
 
채드 클레번:(내려다보다가) 일단 중앙실험실로 옮기지.
시간이 없으니 그동안 방법을 모색해보고.
정 대안이 없으면 파괴할게.
 
요한 에를리히:...그래, .......그렇게 하자.
 
채드 클레번:(중앙 실험실로 걸어감)
 
여기가 중앙 실험실입니다.
 
데이터 분석실로 돌아갈까요?
 
채드 클레번:(맞다)
(돌아감)
 
데이터 분석실 메인 PC의 대화창에 여러 질문을 입력하여
 
답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채드 클레번:(질문을 입력해본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름은?)
 
정말로 시작부터 그걸 물어볼 건가요?
 
채드 클레번:(궁금한디)
 
정말로?
 
채드 클레번:(흠)
(안된다는 키퍼의 지문같은데)
(물어봐야지)
 
메인 PC에 빛이 들어오더니
 
답변이 입력됩니다.
 
문장이 완성됨과 동시에
 
에너지 코어가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채드 클레번:사고쳤군.
 
발딛고 선 땅이 지진처럼 뒤흔들리고,
 
사방에서 방화문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내려가
 
퇴로를 차단합니다.
 
시야가 새하얘지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두 사람을 내던지는 느낌이 듭니다…….
 
채드 클레번:(일단 얀 팔을 잡음) 떨어지지마.
혹시 흩어지면 모르는 일이야.
 
우리는 곧 휩쓸려,
 
시야가 점멸합니다.
 
.
 
.
 
.
 
.
 
.
 
.
 
요한 에를리히:…드! 채드 클레번! 정신 차려!
 
인이어 너머에서 외치는 요한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뜹니다.
 
온몸이 얼얼하고 시야가 이상해요.
 
정신을 차리니 당신은,
 
무너진 캐비넷 옆에 처박혀 쓰러져 있었습니다.
 
요한 에를리히:들리나? 들리면 대답해!
 
채드 클레번:.......헉. (숨을 내뱉고 벌떡 일어난다.)
얀 마르테는?
 
얀 마르테:...여기 있어. (곧 통신에 끼어들며) 있다고 하기엔... 방화문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지만.
 
두 사람은 방화문에 의해 격리된 상태고,
 
실험실 내부 경비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출구가 봉쇄된 모양이라는 것이 요한의 설명입니다.
 
중앙 컨트롤 시스템이
 
전체 실험실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즉각 차단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한
 
내부 보안 프로토콜을 활성화한 모양입니다.
 
정보가 더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겠죠.
 
요한 에를리히:경비 시스템을 해결할 수 있을지 살펴볼 테니, 너희도 탈출 경로를 모색해 봐!
 
상황이 다급한 탓일까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요한이 이를 악문 채 내뱉습니다.
 
채드 클레번:그래.
(주변을 살펴보며) 위로 솟구치기라도 해서 나가야하나?
 
주변을 둘러봅시다.
 
모든 전력이 비상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는지 온통 캄캄하여,
 
비상등이나 일부 용도를 알 수 없는 버튼에만
 
옅은 불빛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때 묘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네요.
 
동시에 당황한 요한이 외칩니다.
 
요한 에를리히:추가 보안 시스템이 가동된 것 같아.
뭔가 달라진 것 있나?
 
무색무취였지만,
 
분명 바람 같은 게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얀 마르테:...능력 사용이 안 되네요.
 
채드 클레번:(나돈가?)
 
얀 마르테:이능력을 차단하는 가스 같은데.
 
채드 클레번:엎친데 덮친격이네.
격뢰 Roll
기준치: 0/0/0
굴림: 38
판정결과: 실패
 
능력도 사용되지 않고,
 
사방은 방화문이나 기물로 고립되어 있는데
 
전력마저 끊겨 버립니다.
 
두 사람이 탈출하려면 봉쇄된 출입로를 열 만한
 
전력 또는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요…
 
채드 클레번:
근접전(격투)
기준치: 65/32/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잘못 눌렀다)
 
뭐랑 싸우려고
 
채드 클레번:(일단 벽을 한 번 친다)
 
 
채드 클레번:
근접전(격투)
기준치: 65/32/13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힘은 여전.. 아니 뭐랑 싸우려고
 
채드 클레번:주먹으로 부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아)
 
진짜 코미디다
 
채드 클레번:(내가 가진건 힘뿐이군..)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
 
벽을 손으로 더듬어 배전함을 찾아봅시다.
 
채드 클레번:(더듬음)
 
돋을새김으로 ‘비상 공급장치’ 라고 쓰여 있네요...
 
얀 쪽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았다는 연락이 옵니다.
 
아무래도 배전함을 열어
 
스마트워치로 요한에게 내부 구조를 전송해 주어야겠죠.
 
채드 클레번:(배전함 열어 요한에게 전송해준다. 뭔가 비상 공급장치 이런걸 만지는거니까 평소에 기계만지던 짬을 발휘한다.)
기계수리
기준치: 40/20/8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요한 에를리히:... (배전함의 내부 구조를 전송받더니 잠시 침묵한다.) 그 장치는...... 아래쪽에 긴 플러그가 있을 거다. 끝이 날카롭고, 굉장히 긴 모양의. 맞나?
 
확인해 보니 요한의 말이 맞습니다.
 
채드 클레번:그러네.
 
내용을 전달하자 요한은 더욱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합니다.
 
요한 에를리히:……그건, …….
 
얀 마르테:...뭔데 그래요? 선배.
 
채드 클레번:머뭇거리지 말고 말해.
플러그가 피라도 먹나?
 
요한 에를리히:...그 플러그는 엄빌리컬 케이블의 일부야.
비상 에너지 공급장치인데, 동력원이 각성자의 에너지다.
지금 너희 두 사람은 가스 때문에 이능력을 사용할 수 없고, 그 실험실 전체의 봉쇄를 풀 정도로 큰 전력을 일으키려면 아까, 유리처럼……. 플러그에 직접적으로 각성자의 에너지원을 접촉시켜야 하는 것 같다.
그래. …혈액이나, 심장을……. …각성자가 침입했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둔 것처럼 보이는군.
봉쇄 때문에 1차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하고, 탈출하기 위해 전력을 공급하려면 동료나 자기자신을 다치게끔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나가려면 누군가는 심장이든 어디든
 
날카로운 플러그 끄트머리를 찔러 넣어
 
배전함에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는 소리인가요?
 
요한이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냉정한 목소리를 냅니다.
 
채드 클레번:그렇군.
 
요한 에를리히:결과만 놓고 말하겠다.
두 사람의 에너지 유량으로 계산했을 때… 한 사람분의 에너지로는 실험실 봉쇄를 해제하는 정도가 가능하고,
두 사람 분의 에너지가 공급된다면 실험실 자체를 무너뜨리거나 코어를 손상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이 실험은 완전히 중단될 테고, 저 심장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일도 더는 없겠지.
만일 지하가 무너진다면 방위사령부에서 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니 파급력도 클 거다.
각성자는 일반인보다 회복력이 강하니 치명상을 입어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
 
요한 에를리히:…하지만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분명 크게 다치게 될 테고, 그것보다 더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들려준 것뿐이지 너희들이 이런 선택을 하길 결코 바라지 않는다.
내가… 내가 최대한, 다른 방법을 찾아 보겠어.
 
채드 클레번:유리 모하에의 심장으로는 불가한가?
사람 수가 부족할 것 같아서.
거리가 있어서 어려운가.
 
얀 마르테:일단 저쪽이랑은 막힌 상태니까. 우리.
 
채드 클레번:얀 마르테.
어떻게 하고 싶어?
일단 실험실 봉쇄는 내가 풀거야.
그 후로 어떻게 되던 상관없어.
일단 이 상황의 주도권은 네게 주어져 있으니까.
코어를 손상시키는 것 까지는 네 피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얀 마르테:...상관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채드 클레번:난 여기서 너랑 내가 나가는게 목적이야.
이 실험이 비윤리적이건 말건은 별로 관심없어. 네가 뒤바꾸고 싶다고 하니 어울리는거지.
내 피 하나로 이곳까지 폐쇄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된다고 하잖아.
내가 봉쇄를 풀테니까, 이후는 네가 결정해.
풀리면 그대로 나가도 좋고. 코어를 파괴해도 상관없어.
 
얀 마르테:그 역할을 왜 당연하게 네가 감수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고개를 돌려 방화벽 너머를 바라본다.)
널 이곳에 끌어들인 건 나야. 왜 나한테 시키지 않아?
 
채드 클레번:넌 이거 좀 찌르면 죽을 것 같은데 나는 죽지 않거든.
(플러그를 집어들고선) 이건 반드시 심장에 찔러넣어야 하는건가, 요한? 아니면 복부나 다른 부위여도 상관없어?
 
얀 마르테:...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건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야. 너는 굳이 그 위험부담을 지겠다는 거고.
요한 선배의 예측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그대로 끝인 거야, 채드 클레번. 생각해본 적 있어?
 
채드 클레번:지면 안돼?
군인이라는게 일하다 어느 순간 죽을수도 있으니 그에 합당한 급여를 받고 사는거지.
물론 자처해서 죽을 생각은 없어.
어느정도의 위험부담은 나쁘지 않아.
(상의 대충 걷어올리고선) 이후는 네가 생각해.
 
얀 마르테:네가 부품 역할을 한다고 해서, 정말 부품처럼 쓸 생각은 없어. 이건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
 
채드 클레번:뭐, 알아.
 
얀 마르테:...모르겠다. 채드, 나는 그냥... 네가 유리 선배처럼, 저런 꼴을 자처한다는 게... (방화벽으로 가려진 지금의 상황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그에 모든 위험부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공교롭게도 저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은 걸지도 몰라. (생각. 그래. 생각은 언제나 나의 몫임이 분명함에도.)
실험실 폐쇄, 내가 해결할게. 그렇게 하고 싶어. (플러그를 쥐었다.)
한번쯤은 네가 선택해. 어떤 길이 펼쳐지든.
 
채드 클레번:나한테 선택권을 준다고.
(벽에 머리를 턱 기대고선) 부품을 시켜준다고 했으면서 생각을 하라니.
책임감 없네.
 
얀 마르테:...너를 잡은 패로 사용하고 싶지 않아. 너라면 그렇게 무거워할 것 같지도 않은데.
 
채드 클레번:무겁게 생각하지 않아, 실제로.
같이 가자며?
네가 하고 싶은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잡은 패로 이용해.
쉽게 녹슬지 않는다니까.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게 정말 선택일까요?
 
상황에 내몰려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이런 날들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
 
어떻게 선택지일 수 있나요?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뒤꿈치를 잘라 놓고 떠나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진실을 알고자 한 발짝 나아가는 게 다 무슨 의미일까요.
 
릴리안 웨즐리:저도 부끄럽지 않도록…….
기왕 가지고 태어난 힘을 더 나은 곳에 쓸 수 있게 최선을 다 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해요.
 
라고 릴리안 웨즐리는 말했습니다.
 
우스운 일이에요.
 
누가 동경 같은 걸 하라고 영웅 행세라도 했나요?
 
유리 모하에:바보 같은 일일 수도 있지.
내가 이런 소리 했답시고 네가 당장 어디 날 고발할 수도 있고.
하지만 채드,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반동분자 같은’ 말 몇 마디 지껄였다고 학교에서 사라지는 것은 옳은 일이냐?
 
유리 모하에가 말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은 어떻게 되었나요?
 
포르말린에 담긴 실험 표본 같은 꼴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체제가, 사상이, 신념이 돈이라도 주던가요?
 
얀이라고 해서 대단한 혁명 투사가 되려고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그는 그저 사라진 가족을 찾고 싶었고,
 
그것을 추적하다 망명 정부에 투신했을 뿐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세계를 구하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어떤 언어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요…….
 
얀 마르테:... ...응.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이거야. (방화벽에 등을 기댄다. 이내 한 번 숨을 크게 쉬었다. 걷어올린 팔뚝에 케이블을 찔러 넣었다.) 네가 녹슬지 않듯이, 이 길도 그렇게 쉽게 끊기지는 않을 거야. 채드.
 
채드 클레번:그래. 나약한 길잡이가 아니라니 다행이네. (쉽게 끊기지 않는 길을 끝까지 걷는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태껏의 삶 역시 그렇게 어둑어둑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턴 쭉 운이 좋았지. 적당히 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능력을 얻어서, 적당히 비위 맞추다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법한-.. 유리 모하에의 결과를 보고서도, 얀이 떠난 날의 소란에도, 여전히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선택이라는걸 해본적이 있었나-...)
(지금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해서 옳지 못한가? 오히려 본인과 같았던 어느 한곳의 천민에게는 각성자가 될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지. 어떤 연구원은 축배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비록 누군가의 심장이 희생되었다고는 하지만-.......... 겨우 한명이잖아? ) 여전히 나에게는 어떤 신념도, 방향도 없어. 얀 마르테. 그저 살아갈 뿐이야. 아직도 그것에 불만은 없어.
다만 나는 -... (플러그의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일전, 사관학교에 오기 전 옆구리에 생긴 흉터위로 플러그를 찔러넣는다.) 널 따라가면 뭘 볼지 궁금해졌어.
그러니까 일단은 네 편을 들어볼게. (작게 고통을 참는듯 눈썹이 찌푸려지는듯 했지만 목소리로 부러 티를 내진 않았다.) ..그거면 됐나?
 
얀 마르테:(살갗을 찢고 들어오는 직관적인 감각. 끔찍한 통증이다. 혈액 속 에너지를 죄 흡입하려는 것처럼 케이블이 꿀럭이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생소한 와중에, 네 목소리를 듣고는 조금 웃었다.) 하하... 잘 알고 있네. 그게 네가 인간이라는 증거야, 채드 클레번. 전원을 켜야만 작동하는 기계 따위가 아니라. 입력된 값을 출력하는 인공지능같은 것과는 다르지, 너는...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기엔 너무 예측하기가 어렵거든.
네가 원하는 게 이거라면 이대로 걸어보지, 뭐. (눈을 감았다.) 이 방향이면, 위험부담은 같이...인가. 그래. 나쁘지 않아.
 
플러그를 꽂아넣자,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눈 앞이 흐리고,
 
세상은 붉게 소용돌이칩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선뜩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불로 빚은 여름처럼 아름다웠던 계절,
 
흐드러지는 그믐꽃이 발끝을 적시던 날들.
 
믿지 않는 하느님,
 
우리 시간은 왜 그날 그때로 고정되지 않았을까요.
 
얀 마르테는 왜 떠날 수밖에 없었고,
 
채드 클레번은 왜 남았어야만 했던가요.
 
서로 온전히 이해할 수도 함께할 수도 없고,
 
하나가 될 수도 없다면
 
우리 사이에 머무는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러나 분명 무언가 넘실거립니다.
 
치열하지 않게,
 
세차지 않게,
 
거센 소리가 나지 않게.
 
번지는 온도가 있습니다.
 
처음엔 달군 찻잔처럼 가볍게 따스하다가,
 
급기야 끓는 불꽃이 되어
 
심장을 가르고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눈을 뜹니다.
 
사방이 밝아요.
 
실험실에 전력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심장에 꽂힌 엄빌리컬 케이블에서부터
 
가장 뜨거운 불꽃이 금백색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체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힘이 빠졌던 손끝에 감각이 돌아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지독하게 느리거나,
 
작거나,
 
너무나 연약합니다.
 
불현듯 강제로 고개가 돌아갑니다.
 
무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손에 잡히는 것은 치우면서,
 
콘크리트와 강철을 넘어,
 
죄와 같은 형상을 띤 케이블도 보석 같은 피도
 
전부 흩어진 채로.
 
다가오는 것은 당신.
 
저것은 ‘나’ 아닌 다른 어떤 자아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하나 같을 수가 있나요?
 
이렇게나 동질감이 느껴지는데,
 
이렇게나 한 사람 것처럼 똑같은데.
 
어떤 증명도 판정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알 수 있습니다.
 
달이 지구를 벗어날 수 없듯이 가까워집니다.
 
그가 여기 있고, 당신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섞이고 있어.
 
지금까지의 삶은 어딘가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비어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어떤 충족감이 듭니다.
 
피가 멎고 상처가 회복됩니다.
 
심장이, 맥박이, 작게 쿵쿵거립니다.
 
방화문이 쿵, 쿵, 소리를 내며 올라가고,
 
봉쇄된 통로가 다시 열립니다.
 
얀 마르테:이런 건 내 설계에도 없었는데. (손을 쥐락펴락하다 너를 돌아본다.)
 
채드 클레번:별거 없네. (물끄러미)
 
얀 마르테:엄청 별거 같은데. 느낌이 이상하거든, 지금...
설마 그 정도로 둔한 거야?
 
채드 클레번:무슨 기분인데?
죽을것처럼 굴더니만.
살아있잖아.
 
얀 마르테:음... (고민하다) 네가 느끼는 거랑 같은 기분.
달리 설명할 수가 없네.
 
채드 클레번:봐.
둔한건 똑같네.
 
얀 마르테:이걸 '별거 없다'고 말하는 쪽이 이상한 거야. (팔을 쭉 늘려 기지개를 핀다.)
오랜만에 컨디션 괜찮은데?
 
채드 클레번:아까 로봇이 신체검사 해줬잖아.
의사 선생 말을 잘 들어야지.
너..
그런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런적이 있었나.
 
채드 클레번:이제 임무를 마무리 해야지. 코어도 파괴하고, 유리의 심장은 챙겨올 수 있나? 전력이 몇번은 오락가락 했는데.
 
얀 마르테:아하하. 너는 늘 그랬던 것도 같은데.
지금 이 상태면 거뜬하지 않으려나?
왠지 그런 생각이 드네.
 
채드 클레번:늘 거뜬했지.
너만 잘하면 돼.
(저벅저벅)
(어깨 손바닥으로 한 번 팍 때림)
 
얀 마르테:아까 끼었던 주제에... (중얼)
유리 선배나 데리러 가자.
 
베인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습니다.
 
마지막 틈새에서 금백색 에너지가
 
잉걸불처럼 뚝 떨어져
 
바닥을 구르다 잦아들었습니다.
 
채드 클레번:그걸 아직도 기억한다고?
 
유리의 심장을 챙기러 중앙실험실로 가면,
 
심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얀 마르테:내가 뭐 잊는 거 봤어? 아까 그걸 뇌에 찔러도 안 잊을 걸.
이건... 케이블을 끊어야겠네.
깔끔하게 끊을 수 있지?
 
채드 클레번:
격뢰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남김없이 잘 지져준다.)
 
이어진 각종 선을 자로 그은듯 정확히 잘라냅니다.
 
유리의 심장을 챙길까요?
 
채드 클레번:(챙깁니다.)
 
지하를 실컷 헤집던 그때,
 
쇳소리가 공간을 가르고,
 
붉게 빛나는 센서가 두 사람을 스캔합니다.
 
경비 로봇입니다.
 
채드 클레번:
격뢰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얀 마르테:
항법
기준치: 99/49/19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로봇이 공격을 피하려고 몸을 움직입니다.
 
경비 로봇:
회피
기준치: 35/17/7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회피
기준치: 35/17/7
굴림: 36
판정결과: 실패
 
번쩍임과 함께 전격이 로봇의 몸체에 내리꽂힙니다.
 
이음매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터져버리네요.
 
시시합니다.
 
지하에서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런 로봇들이 몇 체나 더 등장하지만
 
모두 의미 없는 일입니다.
 
하나같이 센서가 미친 듯이 깜빡이고
 
내부에서 고주파 소음과 함께 무더기로 스파크가 튀더니,
 
몸체 일부가 산산조각나며 부서져내립니다.
 
내달려서, 지하를 벗어납니다.
 
박명이 떠오르고 있어요.
 
이슬이 반짝이는 그믐꽃은
 
은가루를 뿌려 녹인 보석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얀 마르테:갈까? 카사블랑카 너머로.
 
채드 클레번:그래.
많이 멀어?
 
얀 마르테:추적을 피해야 하니까, 조금 더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스와콥문트보다는 가까워. 하하.
 
채드 클레번:뭐, 돌아돌아 가자고.
 
얀 마르테:남는 게 에너지니까, 그래.
 
방위사령부를 이렇게나 헤집고 나타났으니
 
당연히 위협사격과 추적이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
 
시민들이 겁에 질려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 외곽으로 이동합니다.
 
저 바깥이 기다리고 있겠죠.
 
가자, 세상의 끝으로.
 
낙진처럼 쏟아지는 저 비를 뚫고 가자.
 
이보다 더한 암실로,
 
서글픈 화재 속으로,
 
마찰 없는 진공으로 뛰어들자.
 
끝내는 타오르자.
 
이토록 너를 정전시킨 세계에 파도 같은 등불을 켜자.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이 도로 눈을 뜨는 순간이 오면,
 
파사삭 파사삭,
 
낙엽처럼,
 
이 끔찍한 나라가, 이기로 감전될 거야.
 
거기엔 계급도, 사회도, 이데올로기도 없을 거야.
 
우리가 머나먼 자오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후의 우주 같은 건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살아지자, 살아가자.
 
조명은 없어도 좋아,
 
네 목소리 하나하나가 그늘에도 얼비칠 것이 분명하니까.
 
또다른 사라예보처럼
 
카사블랑카가 불안하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핸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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