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07. 25 15:25~
[불길한 예언 대신 바람을 타고 온 것은, 타이머의 소집령이었습니다. ]
: 나무는 DOT의 14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어 보았을 이름의 주인.
도밍게즈의 구원자,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오늘부터 당신의 파트너가 될 이를.
이름을 곱씹는 것만으로 미묘하게 기분이 들뜹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나무의 삶에는 이상한 일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까...
황연: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봄처럼 소리소문없이 드러난 시간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부터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12살의 생일과 달리, 시간, 운명……
혹은 이름 모를 무언가가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각인을 따라 희미한 열감이 두드러졌습니다.
나무가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유일한 구원자, 타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았죠.
어쩌면 나무는 이 일을 무척 이상하게 여겨
DOT에 먼저 연락했을 수도, 감추고자 노력하였으나 귀신같이 알아챈 DOT의 담당자가 문을 두드렸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요, 평범한 일상이 덜그럭덜그럭,
기묘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였습니다.
이유, 방식을 불문하고 당신이 DOT에 도착했을 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를 보는 양 황망하고,
황당함을 가득 담아 깜빡이던 눈꺼풀과 다물지 못하던 입술 사이로 새던 신음성…….
???: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과 흐릿한 남색 제복을 입은 사무원들 사이를
... 비집고 들어온 것은, 하인리히 장교였습니다.
익숙한 얼굴.
DOT의 장교, 실질적인 책임자로 종종 TV에도 얼굴을 비추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장교를 비롯한 그 누구도 당신의 자격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손목에 새겨진 두 자리의 숫자란 도밍게즈에서 그토록 절대적이거든요.
: 나무는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라는 명분하에 DOT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집보다 나았을 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도밍게즈는 세계 멸망의 소문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DOT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일컬어...
DOT에서의 생활은 평이했습니다.
나무의 존재는 하수에게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타이머를 혼란케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더군요.
나무는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관에서, 사무원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연구원의 신체검사 따위에 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쭉 홀로였습니다.
: 긴 밤 내내 나무가 운명의 짝, 자신의 파트너,
자신과 같은 시간의 타이머인 하수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도 그럴 게, 아주 가까이, 바로 너머에 머물고 있었는걸요.
: 기나긴 회상을 깨고, 하인리히 장교가 타이머들의 도착을 예고합니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복도를 가르고...
: 안내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안내가 문턱 너머로 들립니다.
하수가 그 복도를 건너 당신에게 오는 동안, 당신은 그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요.
세계가 예비한……운명을 마주하기 직전에.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14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섰습니다.
도밍게즈의 구원자,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어떻게 그의 얼굴을 모를 수 있겠어요?
: 그러나 나무가 그를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그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깜빡, 깜빡.
나무가 눈을 깜빡이자 하수 또한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입니다.
그래요,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에요.
낯익기 짝이 없어요.
도밍게즈의 국민으로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 얼굴이었으니까.
: TV도, 신문도, 휴대폰 속 무수히 많은 게시글마저 그를 주목했는걸요.
그러니,
하나도 특별한 것 없는 대면이건만...
: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85 |
| 판정결과: |
실패 |
: 가까이 가고 싶다는, 명백한 욕구가 고개를 쳐듭니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몇 걸음이나 걸어 나간 후였습니다.
눈앞에 훅 가까워진 얼굴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립니다.
아, 그래요.
나무는 운명이 안배한 일련의 사건을 따라 새로운 구원자가 되었고
DOT에 도착해, 기어코 눈앞의……
얼굴을 보자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어째서 ‘운명’이니 ‘파트너’라느니 거창한 칭호를 붙여댄 건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기묘한 이끌림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소리가 가볍게 새어 나옵니다.
웃음소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지나간 기억을 꿰뚫습니다.
무척 익숙한 웃음입니다.
그야, 나무를 처음 만났을 때도 하인리히 장교는 비슷하게 웃었으니까.
그가 기쁨과 더불어 어떤 기묘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답지 않은 태도예요.
: 그러거나 말거나, 나무와 하수는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고 있었을 겁니다.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혹은 이끌리거나,
밀어내거나, 도망가고 싶어지는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길 반복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타이머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수의 각인이 눈에 띕니다.
나무의 각인과 꼭 같은 곳에 있는, 똑같은 두 자리의 숫자.
그가 나무의 운명이자 단 하나뿐인 파트너라는 증명.
고작 숫자에 불과하건만……
하인리히: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은하수:... 누가요? (장교에게 머무르던 시선이 한참 뒤에야 나무에게로 돌아온다.) ... 너?
소나무:...안녕 (네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겨우 입을 열어 한마디를 흘려보낸다. 의아한 기색에 얼떨결에 제 손목의 숫자가 보이도록 네게 내밀어 보이며) 정말 똑같아?
은하수:... 그렇긴, (따라 제 손목을 내밀었다.) ... 그렇긴, 한데. ....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네 손목을 한번, 제 손목을 한번 본 뒤 다시 하인리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짝이라뇨?
하수는 기어코 되묻고 말았습니다.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 뻐꾸기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친절하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짚어줄 뿐이었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타이머의 당황한 얼굴을 한껏 즐기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라면 각인이 드러난 후, DOT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설명입니다.
하인리히: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지.
하지만 예언의 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야. 이미 세간에서는 반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건…… 아주 좋지 못한 조짐일세.
멸망이 실재한다고 해도 문제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더 문제거든.
멸망이 예정된 세계의 법과 도덕, 규칙 따위를 누가 지키겠냔 말이야.
하인리히: 그렇지 않은가? 세계는 무너질 테고, 점차 아수라장이 될 테지.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넘쳐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세계 멸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 자신의 수염을 가다듬은 하인리히 장교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 들곤,
하인리히: 결론부터 말하지.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눈앞의 이가 그 증거일세.
소나무:(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색하게 하수를 바라봄...ㅋㅋ)
은하수:(ㅋㅋ 얘 낯가리는 건가요? 귀엽다..)
하인리히: 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어.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운 데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거든.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반년 전쯤부터, 예언을 따라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정확히 열네 명, 자네들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했네.
이것은 나무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하인리히: 세계 멸망의 초읽기를 앞둔 작금의 상황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에 도취한 것인지,
예언의 탑을 한 방 먹일 즐거움에 심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리히 장교는 하나씩, 카운터의 시간과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모두 열넷이었지만, 하수는 오직 나무의 이름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인리히: 연구 결과, 카운터가 타이머와 똑같은 능력, 자질이 있으며 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됐어.
그뿐만 아니라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을 거란 가설이 등장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오늘부터 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될 거야.
수업부터 시작해서 모든 타이머의 활동과 역할을 부여받아, 자네들과 동행할 걸세.
그러니 인사들 나누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고.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가 밀려와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함께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노라고.
즉, 이것은…… 대의이자 명령.
개인의 의견은 묵살하기 딱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서관으로 데려가서, 건물 소개도 좀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해지도록 해.
다음 달쯤 건국 축제에서 정식으로 카운터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니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 마지막까지 일방적으로 명령한 장교가 절도있게,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섭니다.
회의실에는 침묵과 함께 타이머와 카운터, 두 개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고요.
......
.........
14명의 타이머 중 누구도, 시간이 데려온 운명의 상대에게 표정 관리를 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은하수:(나도 마찬가지... 눈에 띄게 미묘한 표정으로 나무를 조목조목 뜯어보고 있다.) (무례함)
소나무:(저게 무슨 표정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아 네 얼굴만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 혹시 기분 나빠?
은하수:... 뭐가? (싸가지도 없음) 그냥 좀... 놀라서. ... (잠깐 정적....) 아, 맞다. (다급하게 질문을 생각해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소나무: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짝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안 좋은가 해서. (눈을 가만히 깜빡이다가) 소나무야. (네 이름도 알고 싶은지 쭈뼛쭈뼛...) 누나는?
은하수:내 표정 원래 이래. 재수 없지. (필터링 하나도 안 한 말투...) ... 은하수. 말하는 걸 보니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 장교님이 너한테는 내 얘기를 좀 했나 보네.
소나무:(도리도리) 그냥 놀란 거잖아? 기분 나쁜 게 아니라면 난 괜찮아. (뒷목을 긁적이다) DOT에 온 지는 조금 됐으니까, 내가 온 이유 정도는 알고 있었어. 이것저것 검사하기도 했고... 누나한테는 정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너무하네, 그 장교란 아저씨.
은하수:... 이유가 있으셨겠지. (아까까진 그리 당황스러운 듯 굴어놓고 이제서야 군인다운 모습을 보였다. 흩어지는 주변의 타이머와 카운터들을 본 뒤에야 따라 걸음을 돌린다.) 내 숙소에서 같이 지내야 하는 거겠지? 이제 '내 숙소'가 아니라 '우리 숙소'인 것 같지만. 갈까?
소나무:어? (입 떠억) 우리 한 숙소에서 지내? (돌아서는 등을 보며 몇 걸음 빠르게 걸어가 네 옆에 선다.)
은하수:그러라는 것 같은데. 수업도 같이 들으라잖니. (저벅저벅... 완전 ㅇvㅇxㅍ.ㅍ 페어) 원래는 어디에서 지냈어? 짐은?
소나무:...아마 누나 앞방에서...... (머쓱함에 고개를 슬쩍 돌린다.) 장교 아저씨가 거기서 지내라고 했었어. (변명하듯 덧붙이며) 스치기는 커녕, 그림자도 못봐서 정말 앞방이 맞나 싶긴 했지만.
은하수:... 그러네. ... 전혀 몰랐어. (방에 사람이 있었군. 그냥 빈 방인 줄 알았는데. 느리게 눈을 꿈뻑이다가) 장교아저씨가 아니라 장교님이라고 불러. (선임이잖아. 덧붙이며 제 방 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앞 방을 본다.) ... 짐 가지고 나올래?
소나무:알아. 여기 온 뒤부터는 장교아...장교님이랑 연구원 누나형들 아니면 대화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방에서는 누나 생각 하거나... 잠만 잤거든. (입에 붙지 않는 호칭... 한 세 번 정도 더 불러보고는 제 방문을 열어 짐을 챙겨 나온다.)
은하수:내...~ (생각하거나 잠만 자거나... 낯간지러운 소리를 잘 하네. 문을 열고 네 짐을 함께 옮겨줬다.) DOT 안을 소개해 줄게. 옷만 정리하고 나가자. 나한테 안 걸리게 다녔으면 내부 구경도 못했을 텐데.
소나무:응. 그래서 누나를 실제로 봐서 좋아~ 이제 계속 말 걸 사람이 있잖아. 안내해줄 사람도 있고. (몇 벌 없는 옷을 개어 차곡차곡 쌓아두며) 누나는 여기가 답답하진 않아? 아니다... 다른 타이머들이 있으니까 별로 외롭지 않으려나?
은하수:너 좀... ... 강아지 같다. (차곡차곡... 야무지게 쌓는 거 보고 있음.) 어엄청 어릴 때부터 있었으니 집이나 다름없어. 나야 사람들이랑 있는 건 원래 안 좋아하기도 했고. ... 그러는 네가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떠드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고. 가족들이랑 인사는 하고 왔니?
소나무:욕은 아니지? (적당히 서랍칸에 갠 옷을 넣어두고는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모님은 내가 간다고 하니까 오히려 좋아하셨어. 정부에 도움이 되는 거라며... 말 많은 사람은 별로야? (입 꾹 닫음..)
은하수:(얌전히 네 말을 듣고만 있다가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되는... 그래도 자식인데. 괜히 찝찝한 마음에 눈을 굴리다가) ... 아니, 좋아해. 난 말주변이 없어서 많이 안 하는 편이지만... (듣는 것쯤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선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은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하수에게는 낯익은 풍경이었고, 나무, 당신에게는……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온 듯했습니다.
처음 발을 들였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기마저 친숙했어요.
DOT는 본관 / 동관 / 서관으로 나뉩니다.
대부분 흰색과 남색, 짙은 원목으로 디자인되어 있죠.
바닥은 대리석을 깔아 반지르르 윤이 나고, 천장은 남색 페인트 위로 희게 별자리를 각인한 탓에... 밤하늘 아래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까닭에 정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입구는 열어둡니다.
청동으로 빚은 단단한 문들은 활짝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상징이자 존재의 의의입니다.
은하수:(가만 DOT 지도 앞에 서있다가...) ... 어디부터 가볼래?
소나무:(본관을 가리킨다!) 나도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게 될까?
은하수:...~ 아마도. (본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왜, 별로니?
소나무:아니~ 오히려 느낌이 좋아. 온 적도 없는데 꼭 예전부터 이곳에서 지냈던 것 같은 느낌이야.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누나도 처음 왔을 때 이랬어?
은하수: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당장 작년 일도 가물가물해서. (장난스레 이야기했다.) 편하다면 쭉 지내도 괜찮겠네. (천천히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본관 내부를 안내했다.)
타이머가... 아, 이젠 카운터도 그렇겠구나. 정식 임관을 받고 다면 거처를 이리로 옮겨. 내부는 서관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교실 대신 훈련실이 많은 편이야. 이동은 엘리베이터로 할 수 있고, 식당도 있고. 정식 임관을 받기 전인 아이들은 서관에서 먹고 자는데, 임관을 받으면 이리로 와.
혹시... 여기에 오기 전에 사고 같은 거 치고 다녔니? 어른들한테 많이 혼나는 성격이었다던지. (?)
소나무:(설명을 가만히 듣고있다가) 아니? 아마 예쁨 받는 편이었을 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너를 돌아본다.) 왜? 사고뭉치들은 본관에 오면 안돼?
은하수:아니. 사고 치면 1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면담 받거든. 사고 치는 성격이면 자주 들어가게 될 것 같아서. (농담이다.) ... 훈련실 구경해볼래?
소나무:어...... (사고는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누나는 들어가 봤어? (흘끔...) 구경해볼래.
은하수:해봤지. 훈련실이니까. (쫑쫑... 안으로 들어간다. 어디에 쓰나 싶을 정도로 요상하고 커다란 훈련기구들을 담담하게 지나쳐간다.) 기구는 마음대로 써도 되고... CCTV가 있어. 훈련 영상을 기록하거든.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 ... 부수면 안 돼. 어차피 우리 능력으론 못 부수겠지만.
소나무:훈련 말고~ 면담 말이야. (네 뒤를 따라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본다... 대체 어디에 쓰는 거지?) 저런 걸 부수기도 해? (덜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훈련하지.
은하수:.... 해봤겠니. 나 사고 같은 거 안 치는 성격이거든. (날 뭘로 보냐는 얼굴) ... 부수는 애들도 있고, 뭐... ... 이리저리 써보는 편이지. 난 저런 거 부수다가 다치는 애들 치료해 주러 다니고 그랬어. (잠깐 정적...) ... 많을 땐 하루에... .... 32번은 불려갔던 것 같아. (...)
소나무:여기서 아주 오래 살았다며? 한번쯤 해봤을 수도 있지. 나도 얌전한 편이지만 혼난 적은 있는 걸... 누나는 나보다 더한 모범생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기는 정적에 네 얼굴을 슬쩍 살피곤) ......그럼 이제는 16번만 불려가면 되겠다! 반은 내가 불려갈 테니까~
은하수:눈에 띄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음, ... 피어싱 주렁주렁했다가 조금 혼난 적은 있어. (다소 이상한 사유... 중얼대다가 네 말에 작게 웃었다.) 같이 불려갈 생각은 안 하고? (장난스레 말하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다른 관도 구경하러 갈까?
소나무:(피어싱...자연스레 시선이 네 귀로 향한다.) 군부대라 그런가... 이상한 데서 빡세네.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며 고개를 기울인다.) 누나가 좋아하는 곳은?
은하수:(두 쪽 합쳐 구멍만 10개!! 유사 양아치) ... 으음, 나는 동관. 우리는 못 들어가지만. (그리로 걸음을 옮긴다.) 우리 기수는 아직 못 들어가 봤는데, 연구소라더라. 궁금해서 종종 주변에 가봤거든.
소나무:나중에는 들어가 볼 수 있는 건가? 그 정식 임관을 받으면? (졸졸 따라간다.) 누나도 못 가본 곳이 있다니... 궁금하네.
은하수:으음, ... 언젠간? 필요해지면 부르시겠지. 늘 그랬으니까.
어딘가 건물이 눈에 익지 않나요?
나무는 시간의 각인을 받아 DOT에 출석한 뒤, 잠시 이 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연구원, 직원의 동행하에 돌아다녔기 때문에 내부를 모르는 건 똑같았지만요.
소나무:어... 나 여기 들어가봤는데. (동관을 멀뚱히 올려다본다.) 여기서 신체검사도 하고...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봤었어.
은하수:... (말뚱말뚱... 눈을 깜빡이다가,) .... 여기? ... 그럼 안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해? (.... 반짝!)
소나무:...그냥 평범한 연구소? 이 안이 그렇게 궁금해?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자 볼을 긁적이곤) 몰래 들어가보면 안되나.
은하수:평범했구나. (하지만 평범한 연구소도 안 가봐서 어떤지 모른다.) ... 너 그런 소리 다른 애들한텐 하지 마라? 회의실 끌려간다.
소나무:......넵. (입을 합 다문다...) ...비밀로 해줄거지?
하는 짓 봐서... (저벅저벅 서관으로 감)
소나무:아 누나~~ (졸졸졸졸) 나 없이 32번 불려가고 싶은거야?(ㅜㅜ)
로다른 점이 있다면...
은하수:... 아, 여기 옥상은 출입 금지니까 조심해야 돼. 가끔 심심하면 도서관에서 책 좀 읽어도 되고...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와 봐.
소나무:왜 출입 금진데? (고개를 갸웃하며 부르는 대로 계단으로 향한다.)
은하수:... 글쎄? 여쭤본 적이 없어서... 가끔 말 안 듣고 올라가는 애들도 있긴 하더라. (2층으로 향해 교실을 보여준다. 그냥... 진짜 평범한 교실이다.)
소나무:......그런 애들은 끌려가? (교실을 한번 슥 훑어보며) 교실이네. 수업받는 곳인가?
은하수:혼나지. 물론 안 걸리면 그만이지만... (?) 응. 일반 학생들이랑 똑같은 교과목 수업을 받아. (잠깐 나무 빤히...) .... 공부는 좀 했니?
(명절 이모같은 질문이네...미안)
소나무:으음~ 혼나면서까지 올라가고 싶진 않지만, 이유는 궁금하니까 다음에 물어볼래. (교실 안으로 걸어들어가 책상에 걸터앉아보며) 공부 못해도 회의실 가? (피식 웃는다.)
은하수:(책상에 앉은 널 보곤 따라 들어가 교탁 앞에 섰다.) 그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잔소리는 듣지 않을까. (턱을 괴었다.) ... 못하면 알려줄게. 어차피 내내 붙어있어야 할 것 같은데.
소나무:거기 서 있으니까 선생님 같다~ (발을 굴리며 정면을 마주 본다.) 가르쳐주면 열심히 들어야지. 쌤~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ㅋㅋ)
은하수:너 같은 학생 둔 적 없거든. (ㅋㅋ이거 봐라?) 세상을 구하는 영웅한테 사랑놀음이라니... 회의실로 와라. (ㅋ
소나무:방금 알려준다고 했잖아! 누나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지~ (회의실로 오라는 말에 눈을 피해 칠판을 응시하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사랑도 못해? 너무 팍팍하다. 히어로 영화에서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던데. (쳇)
은하수:그냥 조금 가르쳐준다는 소리였지. 선생님은 무슨... (장난스레 이야기하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렸다.) 매일같이 인류의 희망이니 뭐니 하는 소리 들으면 그런 마음 금방 가실 거다. (창밖을 한번 내다본다.) ... 그러는 학생은 있어? 첫사랑. 유치원 선생님이나 교회 누나를 좋아했을 것 같은 인상인데. (?)
소나무:선생님이 그렇게 거창한 건가... 나를 가르쳐주면 그게 선생님이지. (네 시선이 향하는 곳을 함께 바라보더니) 땡. 유치원 선생님은 푸근한 분이셨고~ 교회는 안 다녔으니까 교회 누나도 없어. 인류의 희망이란 소리는 앞으로 질리도록 듣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각별하게 생각하면 안되는 건 아니잖아? 누나도 조금쯤은 마음을 열고 있어봐~
은하수:(네 말에 멀뚱멀뚱... 마주치고 있던 시선을 미묘하게 빗겨 보냈다.) 안되는 건 아니지만... ... 하나씩 풀어지다 보면 엉망이 될 테니 그게 문제지. 네 말대로 인류의 희망이라는 소리는 앞으로도 질리도록 들을 거야. 필요하지 않은 건... ... 안 하는 게 좋단 소리지. (교탁 위로 두 손을 올려 모은 채 잠시 손가락만 꼼질대다가, 걸음을 돌렸다.) 이만 들어가서 쉴까?
소나무:하지만 그러면 외로울 거야. (교탁으로부터 걸음을 돌리는 모습에 책상에서 가볍게 내려와) 인류의 희망도 사람이니까, 일단은~ (네 뒤를 바짝 쫓아 걸음을 옮기며) 안내해줘서 고마워, 누나.
은하수: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까, 외로울 수밖에 없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며칠이면 이해할 수 있겠지. 짧게 어깨를 으쓱이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더니, 걸음을 맞춰준다.) ... 응. 나도, 길 안 잃어버려줘서 고맙다?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
둘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흐르고, 쌓입니다.
차근차근.
: 우여곡절로 가득 찬 첫날 밤이 무사히 지났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관 2층의 교실로 들어오면 14개뿐이던 책상과 의자는 28개가 되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고요.
하수와 나무를 발견한 교사가 둘을 재촉합니다.
: 자리는 나란히, 딱 두 개가 남아있습니다.
은하수:(말뚱...) 정말 떨어트릴 생각이 없으신가 보네...
소나무:짝이라고 했잖아~ (당연하다는 듯 네 팔을 잡고 남은 자리에 가 앉는다.) 아직도 못 받아들인 거야?
은하수:그렇게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질질 끌려가듯 옆자리에 앉았다.)
: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수업이 시작됩니다.
창틀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집니다.
꽃샘추위도 누그러진 초봄은 앉아서 수업을 듣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벽한 날씨입니다.
교사는 칠판 위로 분필을 움직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튼,
책상 위의 그림자…….
옆에 앉은 사람만이 어제와 다르군요.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그러고 보니, 입학하고서도 딱히 교과서나 시간표를 안내받은 적이 없는데…
교실에도 교과서는커녕 공책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수업이 이렇담?
DOT의 자체 과목인 ‘시간’입니다.
보통 DOT에 입학하면 초반에 듣는 수업인데,
능력의 정의를 비롯한 다루는 방법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 능력을 사용해도 되는 상황과 사용해선 안 되는 상황 따위를 배웁니다.
따라서 딱히 교과서랄 것도 없습니다.
하수에게는 익숙한 상황이겠지만...
나무는 교과서도, 유인물도,
필기구도 없는 상황이 낯설지도 모릅니다.
분필이 다각다각 글씨를 새깁니다.
1.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2. 타이머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 것인가?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자.
교사: 자, 새로운 친구들이 왔으니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볼까요.
: 운을 뗀 교사는 첫 번째 문장을 읽습니다.
교사: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별 것 아닌 문제 같지만, 도밍게즈에서 타이머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죠.
교사: 카운터 또한 건국 축제를 기점으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거 테니, 중요한 문제죠.
교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은하수:........ 응.. (소곤소곤..)
적당히 대답해. 어차피 정답 없는 질문이야. (소곤소곤...)
소나무:(빳빳...) 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 (얼레벌레) 책임감... 그런거 아닌가요?
교사: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능력, 자비로운 마음씨, 단호한 결단력, 뭐...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도 다르진 않아요. 다 비슷한 얘기죠.
하지만 또 하나가 있죠.‘타이머가 아닌 나와 타이머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에요.
: 교사는 나무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교사: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이에요.
언제나 구원자, 타이머, 카운터라는 이름에 휘둘렸다간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힘들어진다면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사회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고, 개인으로서의 일은 잠시 차치해두는 거죠.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단 쉬울 겁니다.
: 가볍게 조언한 그는 이윽고 2번째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요?
소나무:타이머랑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그건 아마 세계를 지키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해요. (뻔뻔) 그게 아니라면 저도 이 세계에는 이미 없을 테니까, 결국 남은 사람들만 알게 되겠죠.
: 교사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하지만 그건... 미래에 대한 이야기죠.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이건, 도밍게즈가 생겨난 이래, 타이머와 카운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므로 명확히 기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여겨지고 있어요.
세계 멸망은 세계에 부여된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임하는 것이에요.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떠나가므로, 시간이 모두 떠난 세계란 홀연히, 어쩔 수 없이 멸망을 겪게 되는 법이죠.
교사: 시간이 끝나지 않고, 끝없이 순환하며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공간에 꽂아둘 책갈피 같은 것. 그래서 시간은 타이머를 낳았어요.
시간을 세계에 머물고, 존재하게 하는 제물.
타이머가 시간의 아래에서 태어나, 공간을 누비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세계라 불리는 공간을 구원하고, 역사라 불리는 시간을 구원한다는 거죠.
사람들은 시간이 있기에 타이머가 태어난다고 믿지만, 실상은 반대예요.
타이머가 있기에 시간이 존재하는 거죠.
교사: 인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잊지 않는 법이죠.
: 교사는 덤덤히 설명하다가 이것은 모두 가설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섭리를 인간이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하지만,
교사: 타이머가 둘이라면 시간은 더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흘러갈 거예요.
끝은 멀어질 겁니다.
영원히 미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초읽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죠.
교사: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여러분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요.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5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체불명의 소리입니다.
소나무:...무슨 소리지? (옆의 하수를 돌아본다.)
: 소리의 원인을 채 찾아내기도 전에 유인물이 배부됩니다.
회색의 종이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도밍게즈 신화입니다.
도밍게즈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소나무:(소리가 신경쓰이는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 이내 배부된 유인물을 읽어본다.)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자.
: 마지막 숙제를 제출한 교사는 유인물의 뒷장에 적어 내면 된다고 덧붙이고,
교사: 오늘은 첫 수업이니 조금 일찍 마치도록 할까요?
은하수:(가만히 옆자리에 앉아있다가... 네 유인물을 힐끔댄다.) 재미없지?
소나무:이 정도면 괜찮은 이야기지, 뭐. (유인물을 접어들고는) 다 아는 얘기지만... 이제 뭐해야 해?
교사: 친해지라는 의미로 주는 휴식이니까, 되도록 타이머와 카운터는 함께 다니세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건국 축제까지는 바깥에 나가지 않도록 하고요.
: 당부와 함께 교사가 먼저 교실을 떠납니다.
교실에는 타이머와 카운터, 그리고 유인물이……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96 |
| 판정결과: |
실패 |
은하수:(바보... 유인물 만지작...) 뒤에 한 장 더 있는데.
소나무:(...) 아직 이럴 나이가 아닌데. (붙어있는 한 장을 떼어낸다.)
1. 타이머와 카운터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상을 적어 낼 것
2. 일정 면적의 ■■■ 이후 능력이 얼마만큼 향상되었는지 보고할 것
제일 마지막 줄에는 필수 제출하라고 쓰여있습니다.
꼼짝없이 함께 붙어 있을 수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하라는 거지?
소리없이 의문을 표했을 때, 타이밍 좋게 문자가 도착합니다.
연구 보고 협조 요망 」
(ㅋ깡!)
(나무 기억 지움)
: 하수와 나무의 다음 일정은 연구 보고에 협조하기 위해, 서관의 훈련실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은하수:벌써? (아직 하루밖에 안 됐는데... 가만...) ... (급격히 서먹해짐...)
은하수:응. 훈련 시간. (팔 쭈욱... 기지개...) ... 방에서 조금 쉬다가 출발할까? 무슨 훈련을 하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거든.
소나무:(끄덕끄덕) 누나도 해본 적 없는 훈련이야? 무섭네~
은하수:매번 달라서... ... 해본 게 나올 수도 있고. 가면 천천히 안내해 주실 거야. (벌써 피곤하다는 얼굴...)
: 시간은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흐릅니다.
어쩌면, 함께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루했을 수업이 눈 깜짝할 새 끝났다면, 역시 착각일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흐를수록…… 이끌림은 짙어집니다.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페어 별로 진행할 모양입니다.
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가장 친숙하게 구는 사람은 하수가 막 입대한 12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연구원 애쉬입니다.
애쉬는 일지에 ‘제9시 페어, 타이머 하수, 카운터 나무’라고 적습니다.
: 그리고 오늘의 연구 방식에 관해 설명합니다.
애쉬: 보고서로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별로 어려운 건 아냐.
첫 만남의 소감은 되도록 진솔하게 적어주고, 지금부턴 타이머와 카운터 간의 상관관계나 영향력을 검사해볼 거거든.
몇 가지 단계에 맞춰 진행 가이드를 띄워놨으니까 보고 따라가면 되고,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 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은하수:(살짝 고개를 기울여 나무와 시선을 맞췄다.) ... 피곤하진 않지?
소나무:하나도 안 피곤해~ 수업도 생각보단 재미 있었고. (눈이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이며) 누나는?
은하수:그게 재미있었어? (장난스레 웃더니 애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게요.
: 하수와 나무가 연구에 협조하겠노라고 하면, 애쉬가 하수에게 작은 패드를 부착합니다.
나무에게도 다른 연구원이 같은 위치에 패드를 붙입니다.
뺨, 귀 뒤, 목덜미와 손목 안쪽…….
피부색과 엇비슷한 그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저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다정한 거죠?
유난히 거리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가까운 거리 아닌가요?
: 눈치를 살피던 애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입니다.
애쉬: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영향을 주지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유력해.
실제로…… 다른 페어들의 결과도 좋았고.
자리를 비켜줄 테니까, 테스트해봐.
수치는 전부 기록될 거야.
뭘 하고, 얼마큼 편차가 있었는지 보고서로 작성하면 끝.
어렵지 않지?
설명만 듣자면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세상만사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주의점이지만요.
: 애쉬와 연구원들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나무와 하수의 등을 떠밉니다.
은하수:(꿈뻑꿈뻑...) ... 뭐...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소나무:나쁜 사람들이면 안되지~! (얼떨결에 떠밀리며) 친해?
은하수:(같이 떠밀리는 중...) 뭐... 그런대로. 오래 알았으니까. 성격 좋으신 분이니까 너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소나무:...그으,래? (어딘가 심통이 난 듯 말꼬리를 늘리며 안쪽에 있다는 진행 가이드를 살펴봐) 설명은 간단해 보이던데. 이제 뭘 해야하는 거지...
: 연구 보고를 돕는 일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나무가 여태까지, 하수와 만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위해서 몇 번이고 거쳤던 과정이잖아요.
심장박동과 능력의 효율을 확인하는 패드를 부착하고,
능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한 후의 신체 변화를 검사하기도 했었죠.
건강 검진이랑 비슷해서 조금도 여상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 긴장에 주먹을 쥐었다가 편다면, 문득 소독약 냄새를 맡습니다.
짭조름하고, 화한… 약물 특유의 그 냄새.
바람도 불지 않는데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리고,
거세게 뛰지도 않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막습니다.
긴장인지 설렘인지 모를 애매한 감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각인이 위치한 곳까지 패드를 부착하면 훈련실의 문이 열립니다.
천장도 바닥도 반지르르하니 윤이 납니다.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충분히 채워주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자리를 비운 지 오래된 건지, 스크린만 바닷속 풍경을 비춥니다.
거품이 일다가 흩어지고, 다시 일다가 부서지고……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면 스크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손깍지, 포옹, 이마 맞대기, 비쥬, 입맞춤.
다시 읽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습니다.
네, 그러니까…
소나무:
교육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흔히 ‘비쥬’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인사법으로
양 뺨을 번갈아 맞대며 마치 입을 맞추듯 ‘쪽’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구 보고라는 게…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하수와 나무 사이에 침묵이 흐릅니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하수도 마찬가지겠죠.
: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심장박동이 점차 선명하게 들립니다.
쿵쾅, 쿵쾅, 쿵쾅…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애쉬: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 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그래요, 이대로 돌아나간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게, 만난 지 이제 고작 하루인걸요?
스크린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글씨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황망히 헤매던 시선이 스크린의 반대편 모서리에 닿습니다.
온통 하얘서 눈에 띄지 않았는데,
검은 점이 반질반질 빛나며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
동관의 실험실, 연구소도 비슷한 장치가 있었죠.
아무리 봐도…… CCTV입니다.
: 하수 또한 CCTV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CCTV는 DOT의 기물이기 때문에 부수면 안 된다’는 것을요!
소나무:..................................................
은하수:(제대로 이해한 건가... 스크린으로 몇 발자국 다가가 글씨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차분한 얼굴...) 해볼까?
소나무:......(멍하니 글자를 읽는다... CCTV 한번 보고 하수 한번 보고 CCTV 한번 보고 하수 한번 보고) 저, 저걸?
은하수:(뭐지?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 빤히...) ... 힘들면 안 해도 되고. 하지만, 으음... ... 손을 잡고 뽀뽀하는 것뿐이잖아. (심박수 제자리 찾는 중... 120... 110... 95... 85... 도착) 아까도 말했듯이 나쁜 분들은 아니니까... 연구엔 이유가 있을 거야.
소나무:(손을 잡고 뽀뽀하는 것 뿐?) ..............이 누나가 정말. (이쪽은 심박수 올라가는 중... 85...95...110...120...) 아무렇지도 않아?
은하수:필요한 일이라면 해야지.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야. (손 잼잼...) 으음... ... 하지만 입맞춤은 처음이라면 넘길까? 비쥬까지만 해도 괜찮아. (배려)
소나무:누나는 처음 아닌가 보네... (배려하는 듯한 말에 순간 눈을 가늘게 뜨며 너를 바라본다...) 어릴 때부터 여기 살았다며, 영웅한테 사랑놀음이라며... 입맞춤이 처음은 아닌가보네... (중얼중얼...)
은하수:아니, 나도 처... 야, 사람 말 안 들을래? (이마 꽁꽁꽁 때림) 나도 처음이야.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그런데 넌 신경 쓰는 편인 것 같아서 한 말이야. ... 아니 근데 이게... ... 중요하니?! (말하다 보니 자기 치부만 들킨 기분...) 할 거야 말 거야?!
소나무:아, 아야. (이마 꽁꽁꽁 맞음) ...중요해! 누나한테는 안 중요하겠지만. 내가 신경쓰는 건 그런게 아니라고. (흘끔... 네 대답이 거짓말은 아니라고 판단되자 한결 갠 얼굴로 네게 냉큼 손을 내민다.) 할 거거든.
은하수:... 애냐? (애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내민 손을 가만 보다가 담담하게 잡아 깍지를 낀다.) 뭔가 다른 게 느껴지면 말해. 있다가 적어야 하니까...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어쩐지 심장이 간질간질하지만, 나쁘지 않아요.
조금 더……
소나무:(음) 어쩐지 심장이 간지러운데. (손깍지 낀 손을 제 쪽으로 잡아당겨 허리를 끌어안아 보며) 누나는 멀쩡해?
은하수:하하, 나도... 좀 간질간질. (멋쩍은 듯 웃더니 얌전히 품에 안겼다. 음...) 생각보다 키가 크네... (....?)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왜 이렇게 완벽하게, 편안하지?
소나무:키는 원래도 이만큼 차이 났어ㅡㅡ (생각보다 작다는 말을 하면 또 때리려나... 우물쭈물 껴안은 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내려 이마를 콩 맞댄다.) 기분은 안 나쁘지?
은하수:... 응, 별로. 그렇게 나쁘진 않네. (오히려 좀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느릿하니 눈을 감았다.) 포근하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숨결이 가까워서,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된 것 같아요.
만족스러움에 긴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은하수:(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조심스레 뜬 뒤에야 살짝 뒤꿈치를 들어 양 뺨을 번갈아 맞댔다. 어디에선가 보던 것처럼 쪽, 소리를 내며.) ... 음... (이게 맞나... 한걸음 떨어져 본다. 맞냐....?)
소나무:(슬슬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편안함과 부끄러움은 별개다.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맞을 걸. (시선을 피하려다 한 걸음 떨어지는 모습에 다시 손을 뻗어 네 손목을 조심스레 잡는다.) 나 누군가랑 이렇게 가까워져 본 건 처음이야.
은하수:(잡힌 손목이 괜히 간질거려 고개를 슬 기울였다.) ... 처음이라니 영광이네. (장난스러운 문장과 달리 어투는 건조했다. 긴장해서 그런가.) 더 로맨틱한 추억으로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69 |
| 판정결과: |
실패 |
화상을 입을 것 같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편,
누가 찌른 것처럼 애쉬와 하수의 친근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 그와도 이런 인사를 나눴을까요?
싫은 기분이 가득해지고, 가득해지고, 가득해져선...
은하수:(시선을 맞추고 한참. 침묵 끝에 다시 한걸음 다가갔다.) 눈 감아도 돼.
소나무:(좋은 동시에 미운 감정이 든다. 이렇게 나쁜 생각 하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을 네가 안다면 혼날 텐데. 이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다면, 분명...) 나는 누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붉은 눈동자가 한결 가까워지면 제 몹쓸 생각이 읽히기 전에 순순히 눈을 감았다.)
은하수:(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고마워.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쁜 애는 아니구나. 어렴풋이 생각했다. 알고 지낸 지 이제 하루 정도 된 사람을 이만큼이나 믿어주니까. 따라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숨이 모자라지 않을 정도, 딱 그만큼만.)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길고 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하수의 손목을 꾹 붙잡고 맙니다.
가지 마.
나를 떠나지 마, 이 ■■ ■■에 나만 두고 가면 안 돼…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매달리고, 매달리고, 매달리게 됩니다.
……왜 그렇게 외롭고, 두렵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무와 닿을 때마다,
하수와 닿을 때마다 빈 구석이 있었던 것처럼...
능력은 계속해서 몸집을 부풀립니다.
: 더욱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완벽해지는 과정을 스스로 느낍니다.
소나무:
초능력(치유) Roll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3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하수와 나무는 서로 똑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조금씩이나마 있었을 오차조차 사라졌습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치유를 벗어나 무엇이든 재생시키듯이.
시선을 돌리면 훈련실 밖에 놓여있던 화분마저,
채 담지 못할 만큼 큰 식물을 담고 있습니다.
아뇨.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낸 거겠죠.
입맞춤을 마치면, 훈련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립니다.
점심 식사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쉬고 오라며 상냥하게 배웅합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아마 연결된 모니터로 다 보고 있었을 테니,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었던 거겠죠.
축하해요, 새로운 구원자.
: 이로써 구원자가 되는 한 걸음을 훌륭히 내디뎠군요!
은하수:(말뚱말뚱... 눈치를 보다가 잡힌 손목을 내려다본다.) 좀 아프다.
소나무:..! 미안! (얼른 잡은 손목을 놔주고는 어색하게 제 손을 잼잼 쥐었다 펴본다.) 그냥 막연하게 치유라고 생각했는데... 생명의 힘에 가까운 건가? (식물을 한번 쳐다보곤) 엄청나다, 그치.
은하수:... 나도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네. ... 곧 연구원분들이 알려주지 않으실까? (손목을 만지작대다가... 밖에 보이는 연구원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움직였다.) 일단 나가자. 답답해 죽겠네... 이상하게 숨이 좀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나무:(덩달아 한번 고개를 숙이곤 몸을 돌려 열린 문 밖으로 나간다.)
점심 식사부터 저녁 식사까지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카운터의 적응을 위해서라는군요.
바야흐로 두 번째 밤이 찾아왔습니다!
DOT의 흰 건물 위로도 어김없이 밤을 내려앉습니다.
12개라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 선선한 봄바람이 운동장의 잔디를 부드럽게 훑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하수와 보낸 시간은 특별했나요?
잠시 회상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종소리가 들립니다.
‘저녁 식사’를 알리는 특별한 종소리입니다.
하수와 나무는 어디에 있었건, 서관의 지하로 향합니다.
사람이 끼니는 챙겨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걸요.
소나무:
운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73 |
| 판정결과: |
실패 |
: 기다리고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도통 도착하지 않습니다.
아니, 고작 28명이 다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모든 층을 거친 뒤 겨우 멈춰 섭니다.
식당은 28명, 아니, 어제까진 14명을 위한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호화롭습니다.
남색 천장, 깨끗한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액자들,
: 푹신푹신한 흰색 양탄자(식당에 배치하기엔 정말 호화스럽지 않나요?)
...와 56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길고 커다란 테이블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고,
개인의 앞접시가 있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미 도착한 몇 명은 식사 중이군요.
소나무:(식당의 분위기를 살피다 액자를 흘끔 바라봐)
: 알록달록한 하늘,
푸른 장미 아치,
검은 호수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대조적입니다.
창틀 따위에 단단히 매인 긴 줄에는 우산과 깃발,
손수건과 종이학 같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장면이에요.
은색 아치문을 따라 피어난 푸른 장미가 유난히 화려합니다.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인데,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더군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도의 연인에게는 꽤 명소입니다.
검은 호수
: 새까맣게 물든 호수에는 흰 종이꽃이 떠다닙니다.
수도의 유명한 관광지, 코마니 호수입니다.
건국 축제, 단 이틀간 호수의 수면이 검게 물드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죠.
축제 때면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이 손수 접은 종이꽃을 띄워 보내곤 합니다.
사진 속 호수를 바라보던 나무는 문득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를 생각할수록, 원인을 찾을수록 두통이 밀려옵니다.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집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은하수:... 무슨 일 있어? (느리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소나무:(물끄러미 잡힌 손을 바라보다) 그림을 보니까 머리가 좀... 그랬는데, 아니야. 괜찮아졌어. (손을 잡은 채 테이블을 둘러봐) 식당이 화려하네~ 사람도 별로 없는데. 원래 이래?
은하수:뭐... ... 그런 편이지. 전에는 훨씬 휑했는데 너희가 오니 좀 나아진 것 같아. (손 잡고 사이좋게 따라감....)
하수와 나무의 이름은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가까운 곳에 배치한 의도가 훤히 보입니다.
냅킨은 토끼 모양으로 접혀 있고,
음식 사이사이 푸른 장미가 꽂힌 화병이 있어서,
꼭 비싼 레스토랑에 데이트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네요!
소나무:(귀엽다... 토끼모양 냅킨을 괜히 건드려보다가 시선을 돌려 푸른 장미를 바라본다) 아까 사진에도 푸른 장미가 있던데. 장교님이 이런 취향인가? (...)
은하수:... 바보. 국화야. 도밍게즈는 그런 걸 홍보할 시간에 타이머 얘기나 주구장창 늘어놓으니 모를만도 하지만. (앉으라며 손을 놓아줬다.)
소나무:oO(처음 알았다!)(손을 놓고 앉아서는 음식들을 구경한다.)
: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두부 카프리제,
잘 녹은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 정식,
흰 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와 색색의 과일 스프링롤.
참치를 깍둑깍둑 썰어 채소와 상큼한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콩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 두유 스무디…
디저트로는 바싹 구운 무화과 쿠키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진실하고 진솔한지는 풍성하고, 호화로운 DOT의 식단이 증거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니, 함께 있기 싫다니
옥신각신,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식사 때가 되면 재깍재깍 테이블 앞에 앉곤 했으니 말 다 했죠.
맛있게 식사합시다.
밥을 먹는 동안은 개도, 애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므로 식사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갑니다.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72 |
| 판정결과: |
실패 |
■■■■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던데.
재수 없게 뭐람?
: 근처에 앉은 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2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11시, 예언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이름이네요.
은하수:(디저트를 먹다 말고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 무슨 얘기 중이니?
예언의 카운터랑 예언의 타이머가 같은 날, 같은 시에 서로 다른 예언을 했대.
연구원도, 사무원도, 하인리히 장교도 쉬쉬하는 것 같지만... 본인들한테 직접 들었어.
좀 이상하지 않... , ... 그쪽은... 하수네 파트너야?
소나무:(기운차게 끄덕끄덕!) 이번에 9시의 카운터로 들어왔어.
소나무:(사양하지 않고 앉는다! 하수 의자도 빼준다!)
??: 그러니까... 제 11시의 카운터는....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를 들었대.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라고 했던가,
???: ... 하지만, 제 11시의 타이머는...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댔어.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들고,
겨울이 지난 후의 봄에.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 그리고······ , 다음에는 뭐랬더라. 그러고 끝나버렸댔나.
예언의 내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의 차가 있다.
둘 중 한 명이 틀렸다.
서로 다른 경우의 수를 예언했다.
두 가지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다…….
멸망하지 않을까요?
찜찜한 의문과 함께 저녁 식사가 끝납니다.
은하수:...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남들이 들을만한 곳에선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의 옷깃을 살짝 당겼다.) ... 가자.
소나무:(이끌리듯 일어나 입모양으로 뻐끔뻐끔 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인사하고는 하수를 따라간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은하수:한쪽이 틀린 거겠지.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 네 손을 꼭 잡았다.) 도밍게즈는 멸망하지 않아. 아마 카운터가 능력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못된 예언을 한 걸 거야. ... 너희도 왔잖아. 도밍게즈가 무너질 리가 없어.
소나무:응, 그럴 거야. (너의 확신을 함께 믿는다는 듯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손을 마주 잡았다.) 세계가 무너지면 들어 올리고, 하늘이 찢어지면 붙이고, 건물이 붕괴하면 다시 세우고, 별이 떨어지면 다시 주워 달면 되지. (간단한 일이라며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한다.)
: 나무는 세계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DOT는 분명히 그리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나무가 이곳에 존재함에도 불길한 예언은 끝나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예언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 어쩐지 이전보다 더 힘이 들어간 하수의 손이,
보이지 않는 낯이 걱정스럽지만...
뭐, 어때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당신의 타이머가 말했듯이.
사건은 고장 난 폭탄처럼 순식간에 터집니다.
그래, 사건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어요.
음, 언제냐면,
하수와 나무가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평온한 시간을 맘껏 누리고,
그러니까······
카운터의 능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DOT의 지시로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탓에, 하수와 나무는 좋아도 싫어도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무를 시선으로 좇던 하수가 문득 묻습니다.
: 좇던 시선은 결국 나무의 손목 안쪽에 닿습니다.
하수의 말마따나 다소 옅어진 것 같습니다.
한 번 새겨지면 죽을 때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각인이자 낙인인 바로 그것이요.
아, 물론 착각일 수도 있어요.
잘못 본 걸지도 몰라요.
: 눈을 깜빡이면 어제와 다를 바 없었거든요.
하지만……
소나무:
초능력(치유) Roll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4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능력의 효율이, 출력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은 선명했습니다.
사람은 호흡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 마련입니다.
능력자가 능력을 다루는 꼴이 딱 그렇습니다.
시간의 선택을 받으면, 능력은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타이머와 함께합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삶에서 유일하게.
그래서 타이머는, 어떻게 여기냐와 별개로... 단 한 번도, 능력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싫건, 좋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간에…
사라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카운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은 온전히 나무의 것이었고,
나무의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능력을 사용해도, 사용하지 않아도... 카운터는 자신의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얌전하던 능력이 무언가 이상하게 새고 있습니다.
자꾸만 어디론가 뛰쳐나갑니다.
그 종착지는……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능력은 순식간에 나무의 몸을 빠져나갑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타이머 또한 그 과정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느낄 수 있었냐고요?
글쎄… 나무의 표정에 드러나서?
아니면, 능력자 대 능력자로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아뇨, 그저, 스스로가 증거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다루기 쉬운,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넘실거리는 하수의 능력은…
이례적일 정도로, 완전하게 차 있었습니다.
카운터와 함께 있으면 능력의 효율이 오를 거라고 했지.
타이머를 위한 배터리, 소모품이라고 불렀고.
그 표현이 꼭 맞아요.
그래, 이건 단순히 효율이 오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저 안에 있던 것이 내게로 넘어온 것처럼·…….
뒤섞인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모호한 경계를 긋고 있습니다.
은하수:.... /as " " 내 것이 아닌 능력이 들어차 있음을, 분명히 느낍니다.
고작 하루아침에요.
이부자리를 사이에 두고 하수와 나무는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사라진 것이 저기 있었고, 잃어버린 것이 여기 있었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오롯이 타이머와 카운터만 숨쉬는 작은 방.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던가요?
불현듯 스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듭니다.
겨울이 지난 후의 봄.
카운터를 소개할 때, 하인리히 장교는 분명히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세계 멸망과 엮인 사건인 걸까요?
어느 쪽의 예언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길하고 불길한 예언이 공평하게 저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어두운 밤, 사위가 고요하고, 창 너머의 달만 밝습니다.
: 나무가 사라진 능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세요.
그리고 반응하세요.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시간의 각인이 아직 선명하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듭니다.
일시적인, 일시적인, 일시적인 현상일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돌이키지?
분명히 DOT에선 내쫓길 겁니다.
DOT에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두고 봐야 하려나?
아냐, 아닙니다.
나무와 하수에게 이상한 짓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나무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세계를 구원할 유력한 방법인걸요.
고민에 휩쓸립니다.
절묘하게도··· 내일은 시간표상 이론 수업으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 침묵한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습니다.
건국 축제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거든요.
하인리히 장교는 카운터의 존재만이 세계 멸망을 막고,
사회의 평안을 불러올 일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건국 축제에서는 무조건 등장시키려 들 테니,
: 그날이 온다면 얄팍한 거짓말은 결국 드러나고 말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일까요?
이 상황을 묻어두고, 해결하거나,
정직하게 보고하고, 해결책을 받아 내거나.
우선 커다란 선택지는 그뿐인 것 같습니다.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9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때마침 창 너머로 하인리히 장교가, 본관에 들어가는 것이 눈에 띕니다.
하필 이럴 때 눈에 띄다니.
이마저도 퍽 교묘한 배치입니다.
보고한다고 한들, DOT는 신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뾰족한 수 따윈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타이머는 이 일로 불청객을 내쫓게 되고,
: 카운터는 억지로 끌려온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라면, 모처럼 찾아낸 파트너를 잃거나,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느 쪽이건,
스스로 선택하기에는 퍽 무거운 문제였어요.
은하수:(한참을 이어지던 침묵 끝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나무야. (시선을 맞추고, 손을 붙잡는다.) ... 네가 하자는대로 할게.
소나무:(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온 능력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의심은 왜 해보지 않았을까.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담긴 눈동자를 너와 마주 본다. 흘러넘치는 듯한 생기를 마주했다.) ...누나, (이대로 카운터 자격이 박탈 당하면 너와는 두 번 다시 이렇게 함께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 입술을 달싹이다) 시간이 선택한 우리잖아.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은 안일한 걸까?
(아무리 손을 잡고 있어도 네게 스며든 능력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심장의 간질이는 기분은 이렇게 여전한데도.) 장교님이 뭔가 아는 게 있었으면 먼저 언질을 해줬을 거야. ...근데 나는 이런거 들어본 적 없어, 누나도 없잖아. 이대로 말해버리면... 그대로 끝나면?
은하수:... DOT에 말해도 똑같이 대답할지도 몰라. 시간이 선택한 우리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뭐, 이건 긍정적인 방향일 때의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쫓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DOT는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작 며칠 알던 사이니 얼마나 더할까. 충성은 하지만 헌신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곳을 그리 믿지도 못했고. 믿는 것이 있다면... 우리였지.) ... 무서워서 그래?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전처럼 하나같은 힘을 낼 수는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 말했잖아.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무서우면 말 안 할게. 대신, 들키지 않게 더 오랜 시간 붙어있고... 더 조심해야 할 거야.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면 바로 낌새를 눈치채고 다가올 테니까. ... 할 수 있겠어?
소나무:...무서워.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게 우리의 사명인데, 고작 이 정도로 무서워하면 안 되는 건데... (힘이 들어간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충실한 군인인 네게는 미안했지만 차마 놓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카운터가 되면서 느꼈던 안정감, 유대감, 그리고 묘한 충족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까 두려웠다.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은 카운터가 되지 못하고, 결코 네 짝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테니까.) 할 수 있어. 하나도 안 불편해.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편했잖아. (그 전제가 지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의심하지 않으려고 굳게 잡은 손을 내려다본다. 사라지지 않은 같은 모양의 각인을 확인하며) 누나는 나를 포기하지 마.
은하수:(잡고 있던 손을 놓아 천천히 네 볼을 감싸 쥐었다. 온기가 더 쉽게 전해지게끔, 그러니까, 이 유대가 끊기지 않게.) ... 안 해. 내가 너를 포기하면 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처럼 움직이고 있잖아. 시간이 지나면 더 가까워질 거야. ... 그러니까 포기 안 해. (걱정하지 마, 나무야. 너를 안심시키듯 그리 중얼대곤 이마를 맞댔다.) ... 내가 여기에 있을게. ... 겁먹은 너를 혼자 두지 않아. (비단 너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세상에 혼자 남게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원자니까. 세상을 지킬.)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옆을 돌아보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타이머의 표정이,
카운터의 표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리송합니다.
엉망진창이에요.
누구를 위한… 해결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해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단, 그런 이야기는 모두 차치해둡시다.
카운터의 존재는 세계에 공표되지 않은,
완전한 미지수입니다.
그 말인즉슨 도움을 구할 자료가 없다는 뜻입니다.
해결법을 찾긴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죠.
고작해야 반년이니 제대로 된 자료를 기대하긴 요원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게……
하인리히 장교와 교사의 이야기 중 태반은 가설에 불과했는걸요.
뭐, 자료가 있단다고 한들……
DOT의 눈을 피해 가져올 방법도 없을 거고.
: 즉, 두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험해서,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4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하수와 함께 있으면, 분명히 능력이 향상됐죠.
그렇다면…… 하수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거나,
하수와 너무 붙어 있었던 탓에 찾아온 반대급부라거나.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요?
아예 떨어져 있거나, 차라리 딱 달라붙어 있어 본다면,
뭔가 달라질지도 몰라요.
: 태평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신하게 됩니다.
상당히 극과 극인 가설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일리 있습니다.
같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능력을 넘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떨어져 있다 보면 능력이 다시금 돌아오려 할지도 모르잖아요?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건 말건, 시간은 흐릅니다.
: 내일이 오려면 아직 길고 긴 밤과 새벽이 남아있습니다.
운명을 휘두르던 세계는 잠이 들었는지 잠잠했으므로,
책임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원래 없던 능력뿐인데도…
전부가 사라진 것처럼, 휑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처럼.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능력은 딱히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 아니, 어제보다 나아졌나?
싶으면 다시 한 움큼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타이머와 가까이 있었건, 멀리 있었건 비슷했지만……
: 적어도 가까이 있는 쪽이 (기분, 마음, 상태, 무엇이든) 더 안정적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감각이었을지언정!
시간이 흐릅니다.
꺾인 손가락의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는 바닥을 천천히 기어 다녔습니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가를 문득 깨달으면,
뱀의 비늘이 스치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일상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저녁을 먹고,
시시껄렁한 시간을 죽이고,
훈련하는 평범한 하루의 반복입니다.
능력이 사라진 적 따위, 없었던 것처럼.
기다리는 것은 초조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축제를 이틀 앞둔 날,
... 손님은 그때 찾아왔습니다.
: 교실에 앉아서 교사를 기다리던 타이머와 카운터의 시선이 모두 앞문으로 쏠렸습니다.
수업을 위해 드나드는 이들은 노크하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낯선 소리가 아닐 수 없었어요.
문가에는……
: 정중한 목소리와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부관이 서 있었습니다.
타이머에게는 낯익고, 카운터에게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옅은 색깔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긴 남자는 정장 차림새로 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 뱀처럼 얇은 눈꼬리가 새로운 얼굴들을 훑곤,
리슬러: 아시겠지만, 건국 축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리슬러: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타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능력을 선보여 시간이 건재함을 알리고, 세계가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맨십이죠.
실제로 이 시기면 타이머의 얼굴을 보겠다고 수도로 향하는 관광객의 수가 대폭 늘어나곤 합니다.
보여주기식이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이벤트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카운터……
: 그는 아직 그 이름이 낯선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뱉습니다.
리슬러: ... 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니 더욱 중요하게 다뤄질 겁니다.
예년보다 화려하게, 완벽하게, 차질 없이 준비되어야겠죠.
: 리슬러 부관은 서류 봉투를 뒤적이며 물었습니다.
리슬러: 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장교님께서도 기대가 크십니다.
능력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운터…의 존재.
즉, 새로운 능력자의 등장입니다.
친밀하게, 다정하게, 모쪼록 완벽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 하시더군요.
서로 간에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리슬러: 기왕지사 능력을 ‘함께’ 선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 그는 진지한 얼굴로 ‘함께’에 악센트를 강조했습니다.
그때까진 능력이 돌아올까?
걱정하더라도 리슬러 부관은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들만의 비밀이니까요.
리슬러: 아, 그리고 축제 때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첫날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아침을 먹고 외출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고 타이머와 카운터는 동행한다는 조건입니다.
: 카운터의 존재가 발각되어선 안 된다며 DOT 지부 밖으론 한 걸음도 못 내밀게 했으면서.
상당히 파격적인 ‘허가’입니다.
축제이니만큼 어린 것들을 묶어두기가 안타까웠던 걸까요.
리슬러: 만약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이야기를 걸어도 되도록 답변하지 마십시오.
공식적인 발언은 언제나 DOT와 사전 협의 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카운터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 당부를 마친 리슬러 부관은 서류 봉투의 입구를 엽니다.
우르르, 안에서 쏟아지는 것은 팸플릿입니다.
리슬러: 저녁에는 전원 전시회에 참여할 겁니다.
건국 축제와 전시회라니,
상당히 동떨어진, 그러니까, 개연성 없는 조합입니다.
웬 전시회냐고 묻는 한 타이머에게, 리슬러 부관은 팸플릿을 나눠줍니다.
표지에는 타이머 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굿즈와 장난감,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기타 여러 창작물을 넘어서…
이젠 전시회마저 열 모양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세계의 섭리를 담았습니다.’
그럴싸한 홍보 문구는 지나치게 유치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니 세계의 섭리니 알 게 뭐람.
: 거창하게 구원자라고 부를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리슬러: 도밍게즈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타이머 전시회인 만큼 첫 번째로 관람하고, 이후 DOT로 복귀할 겁니다.
둘째 날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세팅하고, 리허설에 참여하게 될 거예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첫째 날 실컷 쉬거나, 하고 싶은 걸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 설명을 마친 리슬러 부관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리슬러: 무언가, 문제라던가, 할 이야기가 있나요?
(책상 아래로 나무의 손을 잡았다.) 없습니다. ... 없지?
: 대답을 들은 그는 의례적으로 물었다는 것처럼...
: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고 교실을 떠났습니다.
달칵, 문이 닫히고...
수업을 알리는 종이 커다랗게 울립니다.
수학 시간이에요.
수학 교사는 늘 종이 치면 움직이니까, 한 10분의 여유가 남았군요.
은하수:(잡고 있던 손을 살살 흔들었다.) ...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지 영 모르겠네. 일단... ... 문제도 있고, (소곤소곤...) ... 보여주고 싶은 능력 같은 거 있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면, 같이 하는 척 보여주면 될 거야.
소나무:(이렇게 큰 축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속여도 되는 걸까. 불안하게 눈을 굴리다가) 아무리 치유 능력이라지만 축제에서 다친 사람이 생기면 좀 그렇지? ...전에 보니까 식물도 자라고 그러던데, 그런 쪽이 낫지 않을까! 적어도 난 무지 신기했어~
은하수:작년까진 축제 도중에 다친 애들을 치료해 주곤 했어. 음, 5명 정도 한 번에 불러서...? 그런데 그러니까 다친 채로 절뚝거리면서 오는 애들이 너무 많아지더라. (....) ~ 음, ... 식물... 확실히 안 보여주던 거니까 재미있어 하긴 하겠다. (잠깐 고민...) ... 좋아하는 꽃 같은 거 있니?
소나무:(.....일부러?) 푸른 장미가 국화라고 했으니까, 그런 걸 피우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려나? 누나 머리색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난 마음에 드는데.
은하수:... 오...~ (나무 머리 슥슥슥슥 마구 쓰다듬으며...) ... 괜찮다. 주변에 이미 푸른 장미 덩굴이 많을 테니까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냥 키워내기만 하면 될 것 같기도...
소나무:(슥슥슥슥 마구 헝클어짐... 좋다고 웃다가도 이내 입꼬리가 조금 굳으며) 미안해, 누나 혼자 하게 해서... 원래 같이 해야 하는 건데.
은하수:뭐가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손을 거두었따.) 그리고 난 원래 이런 거 혼자 했어. 너무 과소평가하면 서운하다. (장난스레 말하고 다시 손을 엮어 잡았다.)
소나무:맨날 혼자 했으니까~ 이번엔 같이 하면 더 좋았을 거 아니야. (손 꾸왑...) 다음엔 같이하자, 꼭!
: 대화를 나누고 있을 즘이면,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모두 자리에 앉았나요?
: 교탁에 프린트의 모서리를 툭툭 쳐서 정리하곤 수업을 시작합니다.
점심시간 직전이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꼭,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툭,
잠깐 정신을 놓았던 찰나 연필이 떨어지고 맙니다.
두사람이 연필을 잡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손이 맞닿으면...
소나무:
초능력(치유) Roll
| 기준치: |
0/0/0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스파크가 튀더니 시간의 각인이 화끈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나무를 떠나갔던 무언가가 다시금 나무에게 돌아옵니다.
텅 비었던 어딘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낍니다.
하수 또한 같은 것을 느꼈는지 놀란 눈으로 나무를 바라봅니다.
방금, 정말로,
능력이 돌아왔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잔뜩 초조해져선 종이 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것이 맞는지, 정말 사실인지 알고 싶어,
확신 받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완전하게 충족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은 것처럼.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이 끝나면, 오늘의 일정도 함께 종료됩니다.
하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를 이끌고 밖으로 향합니다.
은하수:... 수업 시간에 능력 안 써봤지? ...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모르겠어?
소나무:(손 잼잼 쥐어보다가) 돌아온 것 같아. 아직 안 써봤지만... 느낌이 그래. 사라졌을 때랑 똑같아.
은하수:능력을 써볼 만한 곳이 필요한데...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다가 방으로 향했다.) 이래서 내 능력이 마음에 안 든다니까. 누군가 다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효력을 확인하기가 너무 힘들어.
소나무:(네 뒤를 따라 걸으며) 그럼 이제 어떻게 확인해? ...누나는 능력에는 별일 없는 거겠지?
은하수:(방 문을 열고 들어가 부엌을 뒤적였다.) 확인해 봐야지. (음... 어디 갔지... 한참을 뒤적이다 작은 과도를 꺼내들고 부엌 탁자에 앉았다.) ... 일단... ... 어떻게 능력이 돌아온 건지부터 생각해 보자. 뭘 했더라?
소나무:...누나랑 손이 닿은 것 밖에 없어. (네 손에 들린 과도를 쳐다보다가 탁자 앞에 앉는다.) 어... 아니지, 누나?
은하수:그랬나... (손을 내밀었다.) ... 그건 신경 쓰지 말고... ... 일단 잡아보자. 아까는 그냥 스친 거였지?
소나무:(끄덕끄덕) 그런데 각인이 반응했어. (네 손 위에 제 손을 얹는다.) 누나도 느꼈지?
: 손바닥이 맞닿고, 푸근한 감각이 온 몸을 감싸안고,
다시 한번 손바닥을 타고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 올라옵니다.
은하수:... 응. ... 어떤 건지 잘 알겠어. (손에 머무르던 시선이 네게로 향했다.) ... 눈 좀 감아볼래?
소나무:(네 말에 순순히 눈을 감는다.) 이렇게?
: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어둡지만, 잡은 손이 있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볼에 입술이 닿고,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면...
살을 찢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나무:
초능력(치유) Roll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6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눈을 뜨면, 테이블엔 얕은 피비린내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수의 팔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나, 과도에는 혈액이 묻어나 있고,
당신의 짝은 밝게 웃습니다.
은하수:... 다행이다.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아. 딱 나랑 비슷한 정도의 위력인 것 같기도 하고... (소매를 내렸다.) 이상한 부분은 없지? 아픈 곳은?
소나무:......없어. (걷어졌던 네 팔 부근을 응시하며) 꼭 이렇게 확인해야 해?
은하수:제일 확실하니까. 별로 안 아팠어. (담담하게 말하고 난 뒤에야 싱크대로 가 과도를 닦고 정리했다.) 혹시 모르니까 축제 전까지는 푹 쉬자. 내일 수업은 못 나간다고 말씀드릴까? 네가 아프다고 하면... 아마 같이 있으라고 하실 거야.
소나무:아팠잖아. (멀쩡한 살을 그어 놓고. 담담한 모습에 시선을 내리 깐다. 능력이 돌아온 것에 안심했고,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확인해야 하는 능력이 싫었다.)
은하수:... 화났니? (자리로 돌아와 앉곤 네 쪽으로 살짝 상체를 기울였다.) ... 정말 안 아팠어. 훈련을 하다 보면 종종 다치기도 해. 큰 상처가 생기기도, 죽을 것처럼 힘들기도 하고. 난 어려서부터 훈련받으며 자란 아이야. ...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소나무:그럼 그건 비교적 덜 아픈 거야. ...안 아픈 게 아니라 누나가 그냥 익숙해진 거라고. (아픈 것은 아프다고 말하면 좋을 텐데. 얼핏 네게 어리광을 부리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아니야, 미안. DOT에 온 이상 나도 군인이 되어야 하는 건데, 자꾸 이러네.
은하수:바로 익숙해지는 게 더 이상하지. ... 다른 애들도 똑같을걸? (잠시 고민하다 손을 뻗어 네 손가락을 꼭 잡았다.) 미안, 놀라게 해서. ...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꾸 멋대로 굴게 되네. 혼자 살아온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봐. ... 놀랄 줄 몰랐어. (잡은 손가락을 꼬물꼬물... 만지작대고만 있다가) ... 사과할게.
소나무:(제 손가락 언저리에서 꼼지락거리는 손을 덮는다.) 그냥 속상해서 그래~ 치유가 능력인데, 능력 때문에 다치게 하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괜찮다는 듯 작게 웃어 보이곤) 그래, 축제 전까지는 쉬자. 바빠지기 전에 누나랑 좀더 놀아야지~
은하수:... 응. (네 말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러면 우리 보겠다고 일부러 다쳐서 오는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지. ... 일단 조금... 쉴까? ... 이런저런 일이 확 지나가서 조금 힘들다.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작게 웃으며 네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축제에선 문제없이 실력 발휘할 수 있겠네.
소나무:(쉬자는 말에 몸을 일으켜 침대 시트 위를 툭툭 손으로 친다.) 같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년까지 안 기다려도 되니까~
은하수:(쪼르르... 침대로 가 풀썩 누웠다.
그러게. ... 뭐, 앞으로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은 네가 없어도 다음 해가 있으니까.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 웅얼댄다.)
소나무:(네 옆에 낑겨서 침대에 풀썩 누움)(꾸와아아압) 그래도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이는 것 같아서 찝찝했단 말야, 너무 스케일이 커. (피곤한 듯 웅얼거리는 소리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푹 쉬어, 누나.
: 도밍게즈의 하루는 천천히 저물며, 우리들의 멸망도 한걸음 멀어집니다.
둘이 있다면 도밍게즈는 살아남을 거예요.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겁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 영원히.
축제 전야
: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이면 도밍게즈의 건국 축제가 열립니다.
이튿날 동안 사람들은 꽃을 달고, 등을 띄우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지독하게 깨끗한 하늘 위로, 매달릴 곳을 잃은 우산이 홀로 떠다닙니다.
창 너머가 왁자지껄합니다.
: 창밖을 내다보면, 건물 사이 엮인 긴 줄마다 색색의 것들은 매달려 있습니다.
깃발, 손수건, 우산…
다 나름의 소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장막을 비유하는 깃발.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손수건.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며 활짝 펴둔 우산.
: 건국 축제가 끝날 때까지 화창하기를 비는 거예요.
정말로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날은 화창합니다.
식당으로 내려가면, 축제 때문일까요?
가벼운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치아바타와 세 종류의 치즈, 구운 햄, 부드러운 스크램블드에그.
우유와 시리얼은 상비되어 있으니 배가 고프다면 그릇에 따라 먹으면 됩니다.
: 오늘의 아침 주스는 사과와 케일, 당근을 갈아 넣은 건강 주스입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아침부터 반듯한 차림새의 리슬러 부관이 식당에 들어옵니다.
: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외출할지, 외출하지 않을지 확인하러 온 모양입니다.
하수와 나무는... 어떻게 할까요?
소나무:나갈거지? (반짝반짝한 눈으로 하수를 바라본다.)
은하수:(반짝반짝한 눈 거절 못함...) .... 시끄러울 것 같긴 한데... ... 갈까? (끄덕끄덕...)
게다가, 건국 축제는 매년 한 번밖에 돌아오지 않아요.
축제에 다녀오겠노라 대답하면 리슬러 부관은 별다른 반응 없이, 당부합니다.
리슬러 부관: 잊지 마세요. 군들은 타이머와 카운터고, 세계의 구원자지만, 동시에 개인입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이에요.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마저 ‘구원자처럼’ 굴 필요는 없습니다.
: 타이머가 어딘가를 나갈 때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따라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건지, 오히려 부담을 갖게 하려고 이러는 건지...
저의가 헷갈릴 정도로 집요한 충고였지만, 그는 올해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타이머가 본인이 개인임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사회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을요.
세계의 구원자라며 추켜 올리는 하인리히 장교의 언행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그러나 하인리히 장교도 말리는 대신...
하인리히: 그래, 그래. 내 훌륭한 부관께서 그렇다고 하시는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챘는지, 다시 묻습니다.
하인리히: 누군가 바깥에서, 군들에게 무언갈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거죠?
: 어깨를 반듯하게 편 리슬러 부관이 두 사람을 내려다 봅니다.
상당히 고지식한 얼굴입니다.
소나무:(엑..) 신경쓰지 않고 사적으로 신나게 놉니다! (?)
.... 은하수.
은하수: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 하인리히는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 우리를 위한 조언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문제가 될 상황에서 ‘그것은 타이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발을 빼기 위한 수작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렴풋이, 리슬러 부관이라면 후자를 의도했을 것 같단 의심이 들지만...
그래도 상관없죠.
: 나가서까지 체통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보단 낫잖아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별다른 동경도, 애정도, 호의와 영광, 감사마저도 깃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좋아했고, 싫어했고, 편히 여겼고,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바라는 대답은 그것뿐입니다.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했는지, 그가 작은 종이를 내밉니다.
축제를 만끽하러 DOT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비실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DOT의 정문을 나서, 긴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수도 외곽이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까지 가려면 약 20분을 걸어야 합니다.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 화한 향기가 밀려듭니다.
때 이른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밴 탓입니다.
: 아파트 베란다며 학교의 창문마다 수놓은 새파란 장미가 시선을 훔칩니다.
누군가 장미 다발을 한 아름 안고 지나가면, 미처 챙기지 못한 눈물처럼 꽃잎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주친 몇몇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건물 사이로 엮은 긴 줄마다 색색의 깃발, 손수건,
혹은 우산 따위가 걸려 화려하게 하늘을 수 놓습니다.
도밍게즈의 국화인 새파란 장미가 창틀과 문지방마다 걸려 있고, 꽤 많은 사람이 품에 안고 있기도 합니다.
늘 이맘때쯤이면 날씨가 좋아요.
하늘은 깨끗하고, 바람은 살랑이고, 때 이른 장미 향기가 향긋합니다.
: 운이 좋다면 누군가에게 흰 리본을 묶은 새파란 장미라던가,
풍선을 선물 받을 거예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광장과 골목, 공원으로 흩어집니다.
소나무:(하수의 손을 잡고 광장 쪽으로 가본다!)
: 흰 돌이 깔린 광장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과 분수가 있습니다.
시계탑은 분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침만 존재합니다.
타이머의 존재를 기념하는 시계입니다.
정각이 될 때마다 긴 종소리가 울립니다.
분수에 새파란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며,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은 도밍게즈의 흔한 의식입니다.
광장에는 장미를 파는 사람과 가족 나들이, 데이트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은하수:축제는 처음이야? (말하고 보니 시끌시끌한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일 것 같진 않지만...)
소나무:처음은 아니지만, 누나하고는 처음이지~ (신이 난 듯 장미를 파는 사람 주변을 기웃 거린다.) 누나는? 매번 능력은 선보였을 거 아니야. 놀러나오진 않았으려나?
은하수:시끄러운 건 영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 축제 나올 시간에 공부를 했어서. (고지식;) ... 으음, 저거 해볼까? 장미 던지기...
소나무:어떤 소원을 빌 건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원들을 세어보며...) 여러 개 던져도 될까?
은하수:...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장난스레 말하더니 장미 하나를 가져와 꺾었다.) ... 으음, 내 소원은 비밀.
소나무:그중 하나는 이루어지겠지~ 싶은 거지. 바라는 게 많으면 뭐 어때서! (네 옆의 장미를 몇 개 꺾고는...ㅋㅋ) 그으래? 뭔진 몰라도 내 소원 중 하나는 누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빌어볼게.
: 대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 어찌저찌 잘 피해 장미를 던집니다.
각자의 소원이 담긴 꽃잎이 분수대 위에서 스러지면, 주변 사람들은 작게 웃습니다.
그저 타인의 소원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에요.
이 곳의 축제란, 그런 겁니다.
소나무:(장미가 분수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을 확인하곤 하수의 손을 잡아 골목으로 들어간다.)
: 수도의 골목 곳곳에는 노점상이 열렸습니다.
온갖 축제 음식은 다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소스를 바른 꼬치구이라거나, 과일을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 설탕물을 입힌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색색의 솜사탕, 캐러멜을 입혀 튀겨낸 과자들.
수도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전부 가게를 접고 노점을 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념품이나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팔기도 합니다.
: 가장 인기인 것은 이번 세대의 타이머를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이에요.
골목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은하수:(나무 인형.... 저벅저벅 걷다가 빤히 봄...) 닮았네...
소나무:닮았다니... 실물이 훨씬 낫지 않아? (멈춰선 걸음에 고개를 기울여 진지하게 인형을 들여다본다...) 귀엽긴 한데. (하수 인형 콕 찔러봄)
은하수:... 바보같이 생겨서 너랑 똑같지 않니? (........ 들어서 보여줌) (..... 살까....)
소나무:..............나 바보 같아? (..........)
... 살거지? 내가 사줄게. (인형 두개 들고 저벅저벅)
소나무:나 바보 같냐니까?? (졸졸졸졸) 나 똑똑하거든! 진짠데?! 아 누나!!! ㅡㅡ
: 하수가 계산을 위해 걸음을 옮기면, 상인들은 두 사람을 힐끔댑니다.
큰 소리를 냈으니 알아볼 만도 하죠.
어서 계산을 마치고 자리를 뜨는 게 좋겠어요.
은하수:(인형 들고 오면서 아무 입에 마시멜로(짱 큰 거) 넣어줌) 소리치지 마. 시끄럽잖아. (ㅋㅋ)
소나무:(볼 불룩해짐) 느나그 믄즈 브브긑드 흣으믄스....
은하수:바보같이 굴었잖아. (헤헤.. 머리 쓰다듬어줌.) 공원도 볼까?
소나무:내가 뭘 했는데~ 내가 바보면 누나는 바보의 짝인건데 그래도 괜찮아? (입에 남은 마시멜로를 겨우 삼키고 공원 쪽으로 걸어간다...)
은하수:... 나는 바보 잘 데리고 다니는 우등생이지. (자기만) (소매를 잡아당겨 느릿느릿 공원쪽으로 향했다.)
: 광장에서 조금 걸으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나옵니다.
꽃과 나무를 잘 가다듬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공원의 한편에 설치된, 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 모양의 터널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어요.
조건은 반드시, 손을 잡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원의 구석에는 낡은 교회가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죠.
소나무:(아치 모양의 터널을 흥미로운 듯 흘끔 쳐다본다.) 누나, 소문 들었어?
은하수:장미 터널 말하는 거지? (푸른 장미를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린다.) ... 알지. 관심은 없지만... (살짝 소매를 놓아주었다.) 너 그런 로맨틱한 얘기 좋아하는구나?
소나무:무서운 소문보다는 로맨틱한 게 좋아. 재미있잖아. (자유로워진 소매를 내려다보곤) 관심 없으면 걸어본 적도 없겠네?
은하수:밖으로 나올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말뚱말뚱.... 눈을 깜빡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 궁금하면 잡고 가볼래? 어떻게 되는지 확인도 할 수 있고.
소나무:우와, 바보랑 걸을 거야? 진짜?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으며) 누나는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은하수:놀리지 마. (따라 장난스레 웃었다.) 글쎄... 나도 궁금해서. 도밍게즈에서 바보 같은 가짜 소문이 도는지 궁금하잖아. ... 그래서, 안 잡을 거야? 그럼 그냥 지나가고. (ㅍㅍ)
소나무:나야 당연히 잡을 거지만! (손 덥석) 가짜 소문이 아닐 수도 있잖아. 믿어서 손해인 건 없으니까, 난 믿어 볼래.
: 두사람이 터널 아래를 걸으면, 장미 꽃잎이 떨어집니다.
어깨에, 머리에, 손에 닿으며 자잘하게 떨어지는 꽃잎이 아름다워요.
은하수:그래, 뭐, 그럼... (나도 믿어볼게. 그리 덧붙이곤 천천히 걸었다.) ... 교회 쪽으로 가볼까? 난 호수도 좋아. (잡은 손을 살살 흔든다.)
소나무: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뭐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한 손을 펴 꽃잎이 내려앉는 걸 바라보다) 교회부터 가보자.
은하수:로맨티스트...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다가 웃음소리를 내며 교회로 향했다.)
: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떨어지는 색색의 빛은 꽤 장관입니다.
먼지 냄새가 묻어나지만, 기도를 올리는데, 장소는 중요치 않죠.
은하수:... 올리고 싶은 기도라도 있어? 딱히 볼만한 건 없네.
은하수:(말뚱...) ... 신앙심의 차이일까. (흠. 잠시 스테인드 글라스를 빤히 본다.) 기도는 한사람에게 올리는 거잖아. 소원은 그냥... 해주세요~고.
소나무:그렇다면 소원은 누구한테 닿는 걸까.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곤) 누나는 기도해본 적 있어?
은하수:... (잠깐 조용... 입을 다물고 있다가) ... 아니. 소원도 많이 빌어본 적 없어. (어깨 으쓱...)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니.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루어주는 입장이었지. 구원자로서.
소나무:하긴, 누군가의 소원은 도밍게즈가 멸망하지 않는 거겠지? (끄덕...) 하지만 소원은 아까 분수에서 전~부 빌어버려서, 신한테 하고 싶은 말은 모르겠네! 아껴뒀다가 나중에 기도할래.
은하수:(네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닥토닥... 강아지 쓰다듬듯이...) ... 그래. 그때도 들어주시겠지. 호수나 보러 갈까? 유명하잖아.
소나무:(사람을 쓰다듬는 손길은 아니었지만... 얌전히 손길을 받으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한번 크게 둘러본 뒤 교회를 나선다.)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어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선 ■■■■ 해요……
: 어쩐지 애절한 목소리가 나무에게 속삭입니다.
허나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교회에는 당신과 하수 둘 뿐입니다.
은하수:(앞서 걷다가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 있니?
소나무:무슨 목소리가 들렸는데... 이리로 오라고 했어.
은하수:... (손을 잡아 당겼다.) 피곤해서 그런가. ... 호수만 보고 쉬러 갈까?
소나무:...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볼을 긁적이다) 괜찮아, 나 지금 완전 건강해.
은하수:... (으음. 입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프면 말하고.
소나무:(한 곳을 끈질기게 응시하다 아무런 기척도 없자 잡아당기는 손 쪽으로 순순히 따라간다.)
: 축제가 아니라도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는 코마니 호수입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호수라서 물에서 짠맛이 나고,
물살이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수의 바닥은 반짝입니다.
자갈과 모래 사이에 묻은 소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바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데, 보기보다 수심이 깊어 성인도 발을 딛지 못합니다.
: 그런 탓에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했습니다.
호수에 들어가려고 하면 보안관에게 즉시 제재당합니다.
코마니 호수가 유명한 것은 건국 축제 시즌이 되면 수면의 색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1년 365일 중 단 이틀, 호수의 물은 새까맣게 변합니다.
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색을 띠는 호수는, 무엇을 탄 것도 섞은 것도 아닌데 그저 그렇게 어둠에 물듭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여깁니다.
: 제13구역을 연상시켜서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호수에 빠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아요.
물론 보안관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축제 전야부터 호수에서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역대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손수 접은 종이꽃을 호수에 띄우는 방식입니다.
검은 죽음 위에 떠다니는 종이꽃들은 마치 등불처럼 희게 빛납니다.
: 축제가 끝나고, 호수의 색이 다시 변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종이꽃들은 모두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호수 아래로 잠깁니다.
종이꽃은 아주 얇고 부드러운, 물에 잘 녹는 재질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걸핏하면 찢어지곤 하는데, 찢어진 꽃을 띄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세대 타이머의 가족들이라면 대부분 이곳에 들렀다 갑니다.
호숫가에는 옅은 색의 잔디가 자랐습니다.
봄이 찾아오는 시기, 희고 노란 들꽃이 바람을 따라 고개를 흔드는군요.
: 호수는 온통 검고,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종이꽃이 몇 송이 떠다닙니다.
호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세워둔 울타리에는 매달리지 마세요.
삭막한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이 무렵 호수에 들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타이머의 추모’입니다.
감히 도밍게즈의 모든 국민,
... 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꽃을 띄웁니다.
: 그러나 타이머와 카운터는 추모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죽음이 아니니까요.
이것은 그저, 하수와 나무 또한 겪게 될,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입니다.
죽은 후에 기리는 일이 무에 중요할까요?
일평생 세계를 위해 살고, 사람을 구원하고,
죽은 후에도 결국 구원자로 추모받는 삶.
훌륭하다 칭송할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미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은하수:예쁘긴 하다. (예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만. 가만히 호수를 내려다보곤 고개를 돌렸다.)
소나무:밤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겠네. (일렁이는 검은 물을 한참 보다가) 그래도 나는 투명한 편이 더 좋은데.
은하수:그래? 난 어두운 것도 마음에 들더라. (빤히... 내려다본다.) 이게 더 추모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겠어. 조용한 느낌이라 좋기도 하고. 음, ... 조금 심란하지만...
소나무:(심란하다는 말에 고개를 살짝 들어 너를 바라본다. 카운터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건국축제에서 나는 코마니 호수에 종이꽃을 띄우며,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평범한 타인이었겠지.) 우리도 언젠가 많은 종이꽃을 받게 되려나?
은하수:그렇겠지. (구원자로 칭송받다가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두고, 새로운 구원자의 등장으로 이름은 잊혀지고. 매년 느끼는 감정임에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공허함에.) ...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오래, 좋은 걸 많이 보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 카운터도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면... ... 슬픈 일이겠지만.
소나무:시간이 우리를 선택했다면, 나 혼자서만 살게 할 리 없잖아. (당연하게 타이머인 자신만은 제외시키는 그 행복한 미래에, 미묘한 감정을 삼키며 최대한 가볍게 웃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는 누나가 제일 좋으니까, 같이 오래 살자. 나는 여기서 혼자 종이꽃 띄우면서 청승 떨고 싶지는 않네.
은하수:... 그런 소릴 잘도 한다. 가끔 보면 좀 능글맞은 것 같기도 하고... (괜스레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울거나, 슬퍼하거나, 가라앉을수록 좋을 게 없다는 것쯤 알고 있으니까.) ... 고마워. (그러니 당연한 소리를 하며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 둘레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종이를 파는 노인이 보입니다.
함께 종이꽃을 접는 연인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도 보아네요.
: 얇고 흰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둔 사람은 둘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노인: 어이구, 자네들도 관심 있으면 꽃이나 꽃을 접고 가게!
소나무:(기웃기웃) 종이배같은 건 띄우면 안되는 거예요?
: 배보단 꽃이 훨씬 예쁘잖아. 자, 이리로 와 봐. (옆자리 툭툭...)
소나무:...? 그런 이유였어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다가 하수를 바라본다...)
노인: 하하, 농담이네. 이유야 많지. 도밍게즈의 푸른 장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나무손에 종이 쥐여주며...)
은하수:(쪼르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일... 일단 앉긴 함 구경만 함)
손놀림
| 기준치: |
10/5/2 |
| 굴림: |
87 |
| 판정결과: |
실패 |
노인: ... 거, 반듯하게 잘 좀 접어보라고.
이런 거 안 해봤나?
: ... 마음이 약해진 노인은 하수와 나무를 앞에 두고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노인: 큼, 흠. ... 자네들, 타이머는 본 적이 있나?
내가 젊었을 적에 말이야, 그래, 딱 자네들만 했을 때.
그때 우리 마을에 큰 홍수가 났어.
나도 물을 잔뜩 먹고 판자에 매달려 정처 없이 쓸려 다니고 있었지. 딱 죽을 뻔했다니까.
제1시의 타이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꼼짝없이 죽었을 거야.
그 뒤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제마다 추모의 꽃을 띄우러 온다네.
노인: 자네들도 언젠가 그들한테 구원받을 수 있을 지 몰라.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알겠나?
소나무:네... (하수 흘끔...) 저 하나만 더 접어보면 안돼요? (구질)
노인: ... (종이 하나 더 주며...) 그래...
운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71 |
| 판정결과: |
실패 |
ㅜㅜ
(접어줘.. 하수 쪽으로 종이 밀어줌)
(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진짜 못한다 (ㅋㅋㅋㅋㅋ)
소나무:........처음 해봐서 그래! 누나도 해봐, 빨리.
은하수:(근데 나도 손재주 10임... 웃다보니 웃을일이아님)
은하수:
손놀림
| 기준치: |
10/5/2 |
| 굴림: |
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ㅋ?
(보여줌ㅋㅋ) 봤니?
소나무:...............예쁘네... (종이꽃 만지작..)
은하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표정이 왜그래? (ㅋ)
소나무:(씁쓸..............) 아냐.......... 누나라도 잘해서 다행이다... 내것도 누나가 접어주면 되지...
은하수:(ㅠㅠㅠㅠㅠㅠㅠ) 난 안 띄울 거니까 네가 그거 띄워. (쓰다듬어줌... 바보)
소나무:(종이꽃 고이 모셔가서 고이 띄움...)
둘이 과거에게 보내는 마음이 흘러요.
노인은 흐르는 꽃을 보다가 다시 제 몫을 접기 시작합니다.
미안 자리를 떠도 될 것 같네요.
소나무:(노인에게 꿋꿋히 인사를 건네곤... 종이꽃을 접는 연인에게 잠시 시선이 머무른다.)
종이꽃을 접고, 검은 호수에 띄워 보내는 동안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네요....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3 |
| 판정결과: |
실패 |
...
연인2: 우리 자기는 손재주도 좋아. 그래도 자기가 더 예뻐.
아, 그래요.
타이머의 죽음을 추모한다니 뭐니, 다 그럴싸한 명분인 거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도 꽃을 띄우며 진심으로 슬퍼하거나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나무:(그래도... 행복해 보이니까. 이 모습을 지키고자 했던 거겠지. 고개를 털어 상념을 지워내자 난간에 매달린 아이가 보여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어어~~? 거기 위험해~
: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는,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저는 괜찮아요! (위험하게 손 붕붕 흔들며~)
소나무:(불안... 불안불안불안) 거기 왜 올라가 있는 거야? 내려와서 종이꽃 접자!
아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수도에서 일하시거든요.
: 앳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는 하수와 나무에게 퍽 친밀하게 굽니다.
형아는... 아! 저 알아요.
태어나서는 안 될……
위험하다고 했잖아.
어서 이리 와!
: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챙겨서 끌고 갑니다.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꾹 다물 뿐입니다.
은하수:(잡고 있던 나무의 손을 살짝 잡아 당긴다.) 애가 별 소리를 다 하네.
소나무:아이니까... (,,,태어나서는 안 될,,,) 누나를 어디선가 봤나 보다. 티비에서 봤나?
은하수:그렇겠지. 뭐... 잡지나 길거리 광고에서 봤을 수도 있고. ... 나야 어디에든 나오잖아.
: 축제 곳곳을 둘러보면, 하늘이 슬금슬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댕, 댕, 댕……
광장의 시계탑이 울어댑니다.
벌써 저녁 8시네요.
.... 어떤 시간을 보냈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 멀리 DOT의 꼭짓점이 보입니다.
: 우리가 떠나온,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은하수:그러게.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 너무 신경쓰지 말고. 남들이 하는 이야기.
소나무:남들이 하는 이야기니까 괜찮아. (네 손을 익숙하게 잡으며) 다음에 또 이렇게 놀자, 누나.
은하수:(잡은 손을 천천히 흔들었다.) ... 응. 또 같이 나오자.
: 시곗바늘이 아래로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모두 로비에 모였습니다.
눈대중으로 인원을 헤아린 리슬러 부관은 서류철에 무어라고 적었습니다.
아마 전원 출석했다거나, 문제없음, 이런 걸 쓴 거겠죠.
리슬러 부관: 타이머 展은 내일, 축제 마지막 날에 정식 개장합니다.
오늘 군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준 것은, 정식 개장 후 방문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죠.
꽤 많은 사람이 몰려오리라고 예상 중인데……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에게’ 위험하잖습니까.
무해한 국민이라도, 타이머에게 집요한 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을 놓칠 턱이 없죠. 카운터의 존재가 소개된 후에는 훨씬 더 유난스럽게 들끓을 겁니다.
공식 일정이라곤 했지만, 견학에 지나지 않으니 가볍게 다녀오면 됩니다.
: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는 시선이 뺨에 달라붙습니다.
설명을 끝낸 리슬러 부관이 자리를 비킵니다.
서관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너머에선 하인리히 장교가 몇몇 연구원이나 일반 군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앞서 걷자, 곧 어른들이 먼저 DOT를 벗어났습니다.
전시관은 DOT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립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기도 우스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 검은 철창을 넘어, 아침에 걸었던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다시 걷자면,
: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이 도화선이 되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침보다 선명한 시선이 따라옵니다.
호감, 호의, 온갖 곱고 귀한 것들을 모아 가루를 낸 것처럼 부드러운 시선들이…
??: 본 적 없는데. 다음 기수의 타이머 아냐?
?: 그럴 리가 있어? 타이머는 한 세대의 하나뿐이잖아.
: 질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잘라, 계속해서 새로운 꼬리가 돋아납니다.
타이머의 근처에서 걷는 카운터의 존재가 퍽 이질적이었던 모양이에요.
하긴,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하죠.
시선은 어느새 호기심이 점철되고,
: 소란 사이로 톡 튀어나온 것은 어린 목소리였습니다.
어딘가 낯익은 여자아이 둘이 앞을 막고 두 사람을,
아니, 정확히는 하수를 물끄러미 올려다봅니다.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상대였지만 낯이 익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푸른 머리칼과 노을빛 눈동자가,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수처럼 꾸며 달라며 부모를 신나게 닦달했겠지,
싶을 정도로 쏙 빼닮았습니다.
무려 타이머의 시선이 향하자 두 뺨을 발갛게 붉힌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장미 다발을 내밀었습니다.
꽃송이가 활짝 만개한 푸른 장미입니다.
: 하수이 근처에 섰던 나무에게도 성큼, 장미 향기가 다가옵니다.
하수와 나무에게 각각, 장미를 건넨 어린 눈동자들은 오직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간절함으로 반짝거립니다.
어떻게 할까요?
소나무:(리틀하수같다... 아이들과 하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 고마워요. 예쁜 장미네. (파란색... 아이들의 선물을 받아 든다. 개판이 될 걸 아는지 벌써 피곤한 표정으로... 나무를 본다. 안 받아? 눈빛)
소나무:누나랑 잘 어울린다. (실실 웃음을 흘리며 제 몫을 받아 든다.) 나도 주는 거야? 고마워~
누군가 총성을 울린 것처럼 하나둘 선물과 이야기를 안겨주기 시작합니다.
아직 따뜻한 애플파이, 빨간 풍선,
손수 엮은 사탕 목걸이와 흰 리본을 묶은 파란 장미 수십 송이.
구름보다 커다란 솜사탕이라거나 갓 짠 우유와 치즈까지!
누군가 나무의 목에 사탕 목걸이를 걸어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 또 다른 누군가가 하수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인산인해.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낱말과 단어로 구성된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더 평온한 내년이 찾아오기를!
: 누군가 예언의 타이머를 끈질기게 쫓아오며 소리칩니다.
무언가 신의 계시를 받지 못 했냐고?
우리는 언제나 그래.
대답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질문과
.... 호의가, 꽃가루처럼 허공을 떠다녔습니다.
그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것은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향기로웠어요.
향기로웠지만, 숨을 쉬기 어렵단 점에서도.
희고 고운 바람과 함께 쏴아아, 파도 소리 같은 것이 일렁이고
줄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꽃향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시선의 일부가 카운터를 향합니다.
??: 처음 보는데, 역시 부관을 들이기로 한 건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을까요?
아니면 주의받은 대로 입을 딱 다물었을까요?
혹은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나요?
잠깐의 틈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듭니다.
지금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 기계적으로 모든 질문에 대응한 그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눈짓했습니다.
1.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2.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3.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지금 필요한 것은 3번이겠군요.
흰 돌이 깔린 바닥을 밟습니다.
: 건물 사이사이로 난 골목과 도로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캐러멜 냄새가 설탕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시끌벅적한 인파를 물리치며 걷는 사이 점점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 하인리히 장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리가 꽤 벌어졌던 걸까요.
리슬러: 받아주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고 했잖습니까.
: 한 발 뒤에서 쫓아온 리슬러 부관이 한숨을 섞어 책망합니다.
소나무:(어떻게 말을 거는데 무시해요...하는 눈)
: 하지만 그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지 크게 탓하진 않습니다.
골목을 완전히 내려간 후에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신 옆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덧붙입니다.
리슬러: 계가 군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두 이상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깨트릴 필요가 있어요.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건 나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그저…… 필요한 일일 뿐.
.... 알겠습니까?
리슬러: 은하수, 이쪽은 알고있음에도 실수했으니 문제가 있고....
소나무, 이쪽은 알지 못하면서 행동했으니 문제가 있군요.
: 의외로 도로에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합니다.
술에 취한 이들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떠들긴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어요.
드물게 지나가는 차량의 창문이 열리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흔들곤 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본 거겠죠.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 곳곳에서 타이머를 부르고, 외치고, 눈짓하고, 손짓하며, 끌어 당깁니다.
단순히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이라기엔 지나치게 두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일련의 광경은……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와보는 곳이잖아요.
나무는 어떤 감각을 느낍니다.
기시감일 수도, 괴리감일 수도 있습니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리슬러가 딱 맞춰 도착하겠다며 앞서 걷습니다.
하늘에 뜬 달이 너무 밝아서, 전시관이 아니라 달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검은 하늘에는 소원 대신 별이 떠서, 흰 별이 촘촘하게 달려 있었고요.
그 밤, 걷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가요.
감상과 달리, 실제로는 도로를 따라 오 분 정도 걸었을 뿐입니다.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간결한 설명과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옆에 섰습니다.
본관의, 아니, 전시관의 문을 넘기 위해 얕은 계단을 오르려던 하인리히 장교가 문득 멈춰섭니다.
하인리히 장교: 이런, 주인공들이 먼저 들어가도록 양보를 해야겠군.
: 그가 옆으로 비켜서자, 아까 나섰던 문과 꼭 닮은 문이 보입니다.
좌우로 나뉜 문은 청동으로 빚고 남색으로 덧칠했는데, 무척 크고 두꺼웠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자네들이 열어보는 게 좋지 않겠나.
소나무:(하수의 손을 겹쳐 잡아 문에 손을 대본다.)
은하수:(영 꺼림칙한 얼굴로 얌전히 문을 열었다.)
누구도 문을 여느라 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어요.
부드러이 열린 문은 다시 닫힐 일이 없을 겁니다.
모두가 이 곳을 드나들 수 있게.
DOT의 모든 건물은 현관을 닫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통이니까요.
공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전시관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게 베껴다 둔 것 같군요.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서면 마찬가지로 익숙한 로비가 펼쳐집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처럼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합니다.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다른 점이라면…… 안내 데스크에 아무도 없단 걸까요.
그야, 전시관의 근무시간은 DOT보다 훨씬 짧고, 일찍 끝날 테고.
뒤에서 어른들이 느긋하게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담당자: 장교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저희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렇게 걷자니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걸었던 복도, 괜스레 뛰던 심장,
수런거리던 목소리, 그리고…….
문 너머의 상대.
그러나 이곳은 DOT가 아니고, 두 사람은 이미 만났습니다.
: 벽 좌우에는 섬세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와 달이 뜬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
희고 고운 모래사막, 얼어붙은 땅과 바람이 머무는 들판.
곳곳마다 열네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신의 손가락이건, 최초의 시곗바늘이건, 혹은 그 둘 다일 기둥들이.
기둥 아래에 진 그림자가 유난히 캄캄합니다.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을 보아도 그림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해가 떴는가, 달이 떴는가의 차이입니다.
왼쪽 복도는 아침을 맞은 세계였고 오른쪽 복도는 저녁을 맞은 세계였거든요.
하인리히 장교: 이 그림은 세계를 상징하기에 앞서 하루를 상징한다네.
아침과 저녁, 하루는 둘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 뒤따라오던 하인리히 장교가 아는 체를 합니다.
열네 개의 구역을 따라 그린, (정확히 말하자면 구역의 최초, 첫 모습을 그렸을,)
벽화가 끝나자 전시관의 입구가 펼쳐졌습니다.
문은 세 개입니다.
원하는 곳부터 둘러보면 됩니다.
소나무:음... 생각보다 자유롭네. 아까 혼나서 엄청 가시방석일 줄 알았는데. (중얼거리며) 1관부터 가볼까?
은하수: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교관님들이 가장 잘 아시니까. (소곤소곤...) ... 그래.
: 천장과 벽을 모두 남색으로 칠한 곳에는 흰 석고로 빚은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조각상의 수는 스물두 개입니다.
두 명의 사람이 한 쌍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한 것으로 유려한 곡선이 진짜 사람 같습니다.
감정
| 기준치: |
5/2/1 |
| 굴림: |
63 |
| 판정결과: |
실패 |
네.... 뭐...
.... 정말 진짜 같다. 정도의 감상입니다.
그리고 어떤 위화감을 느낍니다.
흰 결이 조금은 낯설어요.
대리석은 아닌 것 같은데... 자세히 봐도 모르겠습니다.
: 전시관 곳곳에 배치된 구조로 시곗바늘의 방향을 따라 걸으면 차례대로 살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중앙에는 높은 탑이 서 있습니다.
: 하나의 거대한 석고를 깎아 만든 탑으로 그저 새하얗습니다.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입니다.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탑의 정체가 ‘오벨리스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바닥으로 드리우면, 꼭 시침 같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조각상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리구슬이 쏟아진 바다에 선 조각상.
제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불붙지 않은 성화에 화살을 겨눈 조각상.
제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세계수라 부를 법한 커다란 고목 아래 선 조각상.
: 제4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번개를 쥐고 휘두르는 조각상.
제5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얼음처럼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조각상.
제6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온갖 동물을 거느린 조각상.
제7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일하게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리는 조각상.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꿈을 꾸듯 눈을 감은 조각상도 있었으며,
제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해골을 쌓은 조각상.
: 제10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각각 허공과 구덩이 안에 서 있는 조각상.
제1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조각상,
제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차마 잊지 못한 무언가를 돌아보는 조각상……
정확히 열두 개.
시작과 끝이 없는 불완전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석고로 빚었다지만 온전히 하얀 것을 제외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하수와도, 나무와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계가 바라고, 열망하는,
가장 완벽한 구원자의 모습이 그곳에 서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 조각상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음 관으로 떠나기 위해 걸음을 떼는데,
무언가 앞을 막아섭니다.
소나무:
운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어찌나 반짝거리게 닦아뒀는지...
제0시와 제1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분명합니다.
0과 13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수.
그럴싸한 연출이네요.
여기도 예술이나 감정 판정 가능한데... .... 해보실?
감정
| 기준치: |
5/2/1 |
| 굴림: |
94 |
| 판정결과: |
실패 |
..
소나무:..사람들이 부딪히면 어떡하려고... (궁시렁궁시렁)
은하수:부딪힐 뻔했구나. (키득키득... 작게 웃는다.) 더 볼만한 건 없는 것 같지?
소나무:음. (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한번 더 돌아본다.) 좀 좋은 걸로 상징해주지... 해골이 뭐야. (2관으로 간다!)
은하수:... 왜. 제일 눈에 띄고 좋지 않니? (좀 강해보이기도 하고... 별 생각 없다는 듯 느릿느릿 걷는다.)
: 전시관Ⅱ의 내부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암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흘러 내렸습니다.
때마침 스크린에는 어떤 영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타이머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따위를 볼 수 있죠.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생략할 겁니다.
원한다면 수업 시간 중 여유가 있을 때 틀어달라고 요청해두죠.
: 얼핏 스쳐본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무언가 이상합니다.
뉴스, 애니메이션 따위라고 했는데, 저건 진짜 우리잖아?
때마침 영상 속 둘이 입을 엽니다.
하인리히: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하수와 나무가 처음 만났을 때예요.
언제 촬영한 거야?!
나무의 타이머는 생각보다 화면발을 잘 받는 모양입니다.
별 건 없습니다.
DOT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타이머와 카운터의 첫 만남을 담은 영상도 회의실의 CCTV가 담은 것입니다.
소나무:.........................?
이걸 왜 여기에.......?
하인리히 장교: 타이머와 카운터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을 끌지.
문제가 없는 수위로 편집해서 내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단 식입니다.
은하수:(ㅋ문제 있는 수위의 행위 같은 거 한 적 없다고 코롸~)
하인리히 장교: 자, 더 볼 게 아니라면 자리를 옮길까? (하하~)
: 턱없는 문을 넘어서자 전시관Ⅲ의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복도가 없고, 벽도 없는 전시관Ⅲ은 한눈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천장이 무척 높아서 고개를 다 들어도 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이라면…
전면의 액자들일까요.
흰 액자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입니다.
: 어찌나 개수가 많은지 한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세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였어요.
수백, 수천 개는 되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액자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역대 타이머.
: 여태까지 우리가 나고 자라며, 혹은 책과 영상을 통해 보았던 그들의 사진이 액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 얼굴도,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얼굴도 있습니다.
장교를 비롯한 어른들은 짧게 묵념합니다.
하인리히 장교: 이곳에는 타이머의 사진이 걸릴 예정일세.
죽은 이들을 잊지 않도록.
1대, 2대쯤 되는 이들의 얼굴은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사진 속에 갇힌 얼굴들은 하나 같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서로 간에 닮아서가 아니라 모두 타이머라서.
사진이란 피사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담는 법이니까.
……조각상과 마찬가지예요.
아마 저 중에는 우리의 액자가 될 것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니 쉽게 걸음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평균 연령이 반백 살이라지만, 어디까지나 통계입니다.
사진 속에는 상당히 앳된…
또래의 얼굴도 여럿 보였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건 결국…
당장 내일,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치워질지도 모르는 운명인 거였죠.
사진 속에 죽은 이들에게 묵념했을까.
혹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 고개를 돌리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미 자리를 비켰습니다.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안내 데스크 옆에 딸린 문은 특이하게도 아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철제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장미가 덮여 있습니다.
장미 향기가 전시관의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죽음을 추모하는 것처럼.
지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 숙소건, 집이건, 어디든 좋으니 이곳을 나가고 싶어요.
그러나 어른들은 이미 보여주기식의 묵념을 마치고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미래를 목격한 아이들뿐입니다.
돌아가겠다고 고집부린다 한들 통하지 않을 겁니다.
목적을 빨리 해치우는 것이야말로 휴식으로의 지름길이겠죠.
얼른 보고, 돌아가자.
: 체념과 비슷한 생각에 이끌려 아치문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장미는 활짝 만개한 탓에 내일이면 시들기 시작할 것 같았습니다.
밤 내내 화려하게 피어있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꽃잎을 떨구겠죠.
지금, 우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아치문 아래에 섰을 때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자네들, 거기서 뭐 하는 건가?
목소리는 분명히,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 그 외 일행들은 입구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그곳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이쪽은 보지 않는 건가?
뭣들 하나.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돌아가야...
흰 벽이 시야를 가립니다.
새파란 장미도, 은색 아치도 없는 평범한 흰 벽.
이상한 일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싶지만,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도 모두 이 광경을 목격한 거예요.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바깥에선 어른들이 “빨리 나오라”며 우리를 재촉합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 관람은 끝났고, 조각에 불과한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이별을 고할 때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돌아갈 시간입니다.
은하수:(돌아 나가며 작게 목소리를 낮췄다.) ... 너도 봤지?
소나무:...나만 본 거 아니지? 그 문...
은하수:.... 응. 뭔가 장치를 해둔 건 아닌 것 같은데...
: 걸음을 옮기는 내내, 잊을 수 없는 장미 향기가 발목을 붙잡습니다.
타이머의 상징은 그저 시간일 텐데,
이곳의 시간은 멈춘 듯했고 오히려 때 이른 장미만 만개했습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름도 뭣도 아닌 계절에 핀 장미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기적의 상징이었어요.
달에서 멀어지는 동안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이 정각을 알리며 울어댔습니다.
밤이 깊어 하늘은 어두컴컴합니다.
우연일까?
혹은 이 또한 어떤 운명인가?
그런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은……
: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따위 알지 못했습니다.
내일의 그 일이 훗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었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결단코 그 문을 열어젖혔을 테니까.
거리는 떠들썩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은 구름과 흰 새, 손수건과 종이 가루 따위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타이머의 교복, 제복과 비슷한 흰옷을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희고 고운 색으로 점철된 세계란 어찌나 완벽한지.
땅거미가 건물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하늘은 딱 좋은 색으로 물듭니다.
: 오렌지 마멀레이드처럼 윤기가 도는 주황색이었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은 어렴풋하게 사라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래,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꼭 그랬어요.
수도의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가 설치됐습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설치하고 철거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 오르내리는 흰 차양이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립니다.
가장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을 기다리며.
이제 10시잖아.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어느 곳이랄 것 없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무대 뒤편에 서 있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귀에도
그들의 소리가 확연히 들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이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타이머의 존재를 드러내고, 카운터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사이좋은 파트너’의 모습을 연출하라고 내내 요구받은, 그 순간이에요.
인이어를 귀에 걸고,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살핀 스태프 하나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소나무:(정말 유명인이 된 것 같네... 조금 긴장한 얼굴로 옆의 하수를 돌아본다...) ...네........(아마...)
은하수:(말끔. 그 어느 때보다 총명해 보임 완전 멀쩡 얼굴) 네.
소나무:누나..........................
소나무:살려줘....................(울렁)
(ㅋ미치겠음ㅠㅠ 손 꼭 잡고 있음) 나가서 토하면 안 된다.
소나무:그것만은 열심히 참을게. (꾸와압...)
: 준비되지 않았다고 한들 물릴 수도 없었지만.
스태프: 신호하면 제0시부터 순서대로 나오면 돼요.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하고, 되도록 친한 티가 나게.
친밀하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이분들처럼 손이라도 잡으면 더 좋아요.
카메라는 정중앙의 2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회자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하세요.
: 우리에게 한참 무언가를 떠들던 그는 곧...
: 호출이 떨어졌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 사라졌습니다.
무대 뒤편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이 화려한 쇼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이곳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위한 자리인데, 우스울 뿐입니다.
하나, 둘, 셋…….
공연 시작인 10시까지는 채 3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대로 올라가는 문을 통해 환한 조명이 떨어집니다.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옆에 선 사람의 존재감만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 들뜨기 시작한, 혹은 긴장하기 시작한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었을 때,
스태프: 자, 이제 시작합니다.제0시 페어부터 올라오세요.
제0시부터 순서대로 타이머와 카운터의 소개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익숙하게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팔려나간다면,
이 순간 또한 온갖 곳에서 부티나게 팔리리라고.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하수와 나무의 순서입니다.
은하수:(손을 살짝 끌어당긴다.) 정신 좀 차렸어?
숨 막힐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발아래에 선 사람들의 수는 도저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너무 많았고, 골목에서 겪었던 인산인해는
...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준이었습니다.
환호성이 터지고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수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그중에는 종종 나무를 향한 시선이 섞여 있기도 했습니다.
타이머를 위한 자리에 등장한 새로운 사람이라니!
이상히 여길 만도 하죠.
타이머가 부관을 들였다더라.
: 그런 입소문이 돈 탓인지 그다지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80 |
| 판정결과: |
실패 |
모든 것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시선과 관심에 압도당할 지경입니다.
당장 이대로 뒤돌아서, 무대를 뛰쳐나가고 싶단 충동이 입니다.
그때, 하수가 나무의 손을 끌어당깁니다.
잡은 손은 조명 탓인지 홧홧했습니다.
: 손을 맞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완벽한 중앙에 섰을 때,
하수가 조심히 입을 엽니다.
인이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오직 그의 목소리 뿐이었어요.
은하수:앞으로 손을 뻗고, 하나 둘 셋... 하면 장미를 피우는 거야. 할 수 있지?
소나무:...누나랑 앞으로도 짝 하려면 잘 해야지. (심호흡을 한번 하곤) 할거야. 하자.
: 둘은 손을 뻗고, 장미에게 생기를 부여합니다.
덩쿨 사이사이 시들어가던 장미들은 고개를 들고,
푸른 장미는 이슬을 머금은 듯 예쁘게 만짝입니다.
그런 장미가 무대와 사람들을 감싸안고,
불이 번지듯 화하게 오르는 표정의 관중들은 둘을 올려다 봅니다.
시간의 현신.
타이머와 카운터.
그 이름을 증명하는 능력의 존재에,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하수와 나무가 모든 것을 끝낸 후에도 잠시간 침묵이 맴돌았습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무대 한 편에 비켜 서 있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자: 도밍게즈가 가장 사랑하는 타이머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군요.
오, 그리고 가장 사랑하게 될 타이머도요.
하수씨, 우리에게 직접 소개해주겠어요?
: 매해, 이 쇼맨십의 사회를 맡은 여자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하수와 인사를 나누곤 나무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은하수:... 카운터라는 명칭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름은 소나무예요. 저와 파트너가 된... 같은 치유의 타이머, 아. ... 카운터입니다.
사회자: 이 자리에서 소개될, 타이머의 새로운 파트너를 오매불망 기다렸어요.
: 사회자는 그들이 카운터이며, 타이머의 곁에서 세상을 함께 구원할 자라는, DOT의 진부한 대본을 아주 그럴싸하게 연기합니다.
새로운 구원자.
타이머의 파트너.
시간이 선택한…… 또 다른 증명.
나무의 능력을 두 눈으로 보고,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객석이 술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자라는 말에 눈을 홉뜨고, 숨을 들이켜기도 했어요.
세계 멸망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으며… 빼내기엔 너무 두려운.
그런 세계 멸망의 징조를, 정확하게 깨부수는 존재의 등장인 걸요.
하수를 연호하던 외침 사이에 나무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었습니다.
: 태초부터 두 사람이 짝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누구도 그 존재에 의문을 표하거나 반감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도 잠시,
사회자는 익숙하게 다음의 순서를 진행합니다.
사회자: DOT의 말로는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 선택받은 운명이라던데, 나무씨는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나요?
소나무:(빳...빳) 그냥 좋았어요. ...뻔하지만 특별해요. 처음이 편하고 좋기는 어려우니까.
그럼, 으음...
파트너로서 하수는 몇 점인가요? 이 질문은 쉽죠?
소나무:(어디가 쉬운데요? 하수 눈치 슬금슬금) 90...점?
소나무:비밀이에요. (ㅋㅋ) 누나한테도 곤란한거 물어봐줘요~~
사회자: 에이~ 오늘은 나무를 위한 무대인 걸요? 흠, 그러면!
애인으로서 하수는 몇 점일 것 같아요?
이유는? (열받네?)
다른 질문 하죠?
사회자: 아하하, 네. 나무! DOT의 생활은 어떤가요? (ㅋㅋㅋ)
소나무:(재미없게...) 장교아저씨...아니, 장교님이 무섭지만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어요. 누나도 많이 도와주고!
사회자: 아하하, 그래 보이네요. 둘이 사이도 좋아 보이고...
: 몇 가지 짓궂은 질문이 섞여 있지만 대체로 상냥한 편입니다.
탈탈 소리가 날 정도로 털리고 난 후 무대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면,
그건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겠죠.
은하수:100점짜리 타이머 찾으러 가지 그러니? (ㅋㅋ)
소나무:(ㅋㅋ) 10점을 채워보려는 노력은?!
무대 뒤편에 내려오자 스태프가 의자와 마실 것을 갖다 줍니다.
행사는 무탈하게 흘러갑니다.
누군가 내려오면 누군가 올라가고, 능력이 무대 위를 환하게 장식하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연신 쏟아지는 익숙한 이름들을 듣다가,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와 QNA가 이어지는 식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차례입니다.
: 제13시, 어둠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순서예요.
두 사람은 오래 기다린 것이 지루했는지, 금세 계단을 오릅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대의 조명이 먹히고, 어둠이 가득해집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제0시 페어가 띄운 빛이 희미하게 별처럼 반짝입니다.
밤보다 안온하고, 검정보다 진한 어둠이 완벽히 무대에 내려앉았을 때,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대 뒤편의 조명이 꺼집니다.
정전이라도 온 것처럼, 혹은 능력에 잡아 먹힌 것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하수와 나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가까이 있던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놀랐는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무슨 일이야?
소나무:
듣기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묻는 목소리도, 대답하는 목소리도 모두 우리, 타이머와 카운터의 것이라고.
스태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쏟아지던 환호도, 놀란 관객의 수군거림도, 사회자의 양해 멘트도!
모두 들리지 않아요.
똑딱똑딱, 끊임없이 흘러가던 시계 소리도 멈춰버렸어요.
: 제13시 페어가 어둠을 거두자, 인공적인 태양도 조명도 없는 온전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희미하게 보라색이 섞인 하늘에는 불온한 별들이 총총 떠 있습니다.
붉은색 별이에요.
달도 어쩐지 붉은 듯했어요.
그리고 달빛 아래 드러난 광경은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산 사람도, 죽은 것들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 모든 것들마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구름도 흘러가지 않았고, 달도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꽁꽁 얼어버린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12시를 알려야 하는 광장의 시계탑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세계의 종말이라기에도, 축제의 마무리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었습니다.
: 이 순간이 소설이라면, 아마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4월 20일, 도밍게즈의 건국을 축하하는 마지막 날.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계가 멸망했다.
……라고!
수도만 그런 걸까요?
TV를 켜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봐도
통신 불가 지역이라는 안내 문구만 확인됩니다.
직감처럼 깨닫습니다.
수도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곳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타이머와 카운터 뿐입니다.
밤은 더 깊어지지 않고, 새벽이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시곗바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마치, 조각상처럼.
: 억지로 움직이려 해봐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단단해졌네요.
이거, 정말 세계 멸망인가요?
시간이 어째서 멈춘 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누구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합니다.
그저,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만난 후부터...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사실만 알아챕니다.
세계는 타이머와 카운터를 구원자라고 부르지만…
멸망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오늘, 애석하게도 하수와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하수:.... 꿈은 아닌 것 같고, 이런 대형 장난을 칠만한 프로그램에 우리를 몰래 출연시키지도 않을 거고. (차분하게 입을 뗀다.) ... 언질 받은 거 없었지? 나무야.
소나무:없었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연신 주변을 경계하듯 둘러본다. 멸망이라기엔 너무도 고요한 이 세계를.) ......이런 게 멸망이야?
은하수:멸망이라니. ... 그런 게 올 리가 없잖아. (마른 세수를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뜨기를 여러 번. 아무리 해도 움직일 생각이 없자 한숨을 내쉬었다.) ... 뒤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쉬었다가 움직여도 좋아. 이대로라면 아침은 안 올 것 같지만. ... 많이 지쳐서 뭘 해보려 해도 아무것도 안 될지도 모르고. ... 아니면, 조금 더 찾아보고.
소나무:...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잖아. 뭐라도 해야, (시선을 굴리면 멈춰있는 눈동자들과 눈이 마주친다. 이곳을 보고 있음에도 보고 있지 않은, 텅 빈 눈동자들을 들여다보다, 겨우 고개를 돌려 너와 눈을 맞추었다.) 뭐라도 해야... ...
은하수:... 나무야. (손을 잡아 살짝 당겼다.) ... 정신 차려. 네 말대로 우리뿐이니까, ... 정신 차려야 돼. (구원자. 그 이름이 어울리게도 냉정하고 차분한 낯이었다. 이내 고개를 돌린다.) 알았어. 몸이 힘들면 꼭 말하고. 조금만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자.
소나무:(구원자.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함이 싫어 입술을 물었다. 차라리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갈라진다면 끌어올리고, 붙잡는 거라도 할 수 있었을까. 밀려오는 무력감에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타이머와 카운터는 괜찮은 거지?
은하수:응. 괜찮을 거야. 우리는. (카운터든, 타이머든.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야지. 그리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아는 얼굴을 찾아보고, 걸어온 길을 돌아가도,
우리들 외 '숨을 쉬는' 생명 따위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파트너는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로 찾아온 것 같아요.
멸망이.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 달과 별은 그 자리에 풀칠한 것처럼 불온한 색으로 빛날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멈춰 서 있어요.
웃고 떠들던 그대로, 손을 잡고 걷던 그대로,
돌아서던 그대로, 박수갈채를 보내던 그대로.
무구하고 기쁨에 찬 얼굴이 생생합니다.
자신의 시간이 멈췄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화산재 대신 부서진 빛만 떠다닌단 걸까요.
문득, 전시관에서 보았던 조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퍽 닮았거든요.
사람이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혹은 생생하게 움직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확신하는 건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우리는…… 고민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왜 멈췄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지.
: 구원자로서 우리가 처음 가진 사명이니까요.
시간은 왜 멈췄을까?
답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맞이했고, 답을 내놓고, 정답인지 오답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 이상했던 징조를 돌이켜 볼까요.
: 세계 멸망의 예언과 전 세대 예언의 타이머가 내놓았던 해결 방법.
갑자기 나타난 카운터와 홀연히 사라진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불가능과 기적이 순서대로 교차하는 배치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떠들던, 일어날 리 없다고 부정한 세계 멸망.
시시각각 다가오던 세계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낸, 한 줄의 예언.
타이머는 오직 하나뿐이라던, 세계의 섭리를 깬 카운터의 등장과, 기적을 상징하는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 데칼코마니처럼 좌우의 아귀가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이 만약, 정말로 예정된 멸망이라면…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건 아닐까요.
그래서 예언의 타이머는, 카운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멸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걸지도 몰라요.
물론 모두 추측입니다.
세계는 고요합니다.
새파란 장미는 무르익었지만, 꽃잎을 떨구지 않아요.
문득,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72 |
| 판정결과: |
실패 |
생각이라기보단 직감 같은 것입니다.
홀연히 나타났던 아치문이 수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언가의 징조였다면?
나무와 비슷하게, 하수도 아치문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도 그런 눈치입니다.
: 다른 타이머, 카운터와 합류하여 이야기를 나누어도 같습니다.
모두 아치문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나요?
이미 사라졌던, 전시관의 그곳에?
아니라면, 흡사한 공원의 장미 터널로?
아뇨, 전혀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나무:
지능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5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 그러고 보니, 전시관은 본관을 본떠지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오히려, 전시관이 아니라……
소나무:...본관으로 가자. 그 문이 전시관에 나타났다면... 본관에도 나타날 수도 있잖아.
1시의 타이머: ... 마, 만약에 갔는데 없으면요?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나요?
: 모든 타이머가 당신의 파트너처럼 의연하지는 않습니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일렁입니다.
당신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네요.
소나무:없으면... 돌아오는 걸로 하자. 흩어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알릴 방법이 없잖아.
: 타이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이들도 동의합니다.
이곳에서는 구원자가 DOT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걸음을 옮깁니다.
DOT 본관은 언제나처럼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지금도 그렇습니다.
청동으로 빚은, 남색으로 덧칠한 문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한.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도,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도 모두 멈춰선 상태입니다.
전시관을 모두 돌고난 후, 안내 데스크의 옆에 세워졌었지.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돈 시선이 비로소 장미 아치가 있던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 있던 것은,
멈춘 시간을 깨트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립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였습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선 채,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열린 문이 어쩐지 우리를 기다리는 괴물의 입속인 양 께름칙합니다.
우연인가?
새파란 장미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의 문설주는 둥글긴커녕 각지고 네모나지만…
위치는 분명히 같았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시간이 멈췄다면 엘리베이터 또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것만은 움직이는 건가요?
그러나 장미 아치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 들어오라는 것처럼, 문을 닫지 않고 내내 그렇게 서 있을 뿐입니다.
은하수:(나무의 손을 꾹 잡고 가만히 서있었다.) ... 가야겠지.
소나무:(서있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은 채로 눈을 깜빡이다) 많이 위험할까?
은하수:느낌이 안 좋아서. ... 방법은 이것 뿐인 것 같지만. (네 손을 꾹 쥐었다 힘을 푼다.) ... 가자.
: ... 그러나 타이머와 카운터가 모두 탄 후에도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몇 층으로 갈지, 버튼을 눌러주어야 움직일 모양입니다.
지하 1층부터 4층, 그리고 옥상까지.
총 6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몇 층으로 가야 하지?
고민하던 찰나, 한 카운터가 버튼을 누릅니다.
분명히 버튼을 제대로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움직일 기미 없이 잠잠합니다.
몇 층을 눌러도 똑같습니다.
소나무:
초능력(치유) Roll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잠잠하던 그것들이 요동칩니다.
그러나 이유도, 종착지도 알 수 없는 파도일 뿐입니다.
제 8시 타이머: 이거… 비상 호출 버튼이 아닌 것 같아.
: 제8시의 타이머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모두 깨닫습니다.
버튼에, 환각이 걸려 있노라고.
마치 비상 호출 버튼인 것처럼.
원래 지하 2층으로 향하는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상당히 정교한 방식의 환각입니다.
만져본다고 해도 손끝에 걸리는 홈 따윈 없습니다.
: 8시 타이머가 그 버튼을 누르면, 파란 LED 램프가 점등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판에는 정확히 B2, 지하 2층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공간입니다.
소나무:
운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2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천천히,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도르래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평소보단 훨씬 깊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하 2층이라니.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구태여 존재 자체를 숨긴 것은 무엇을 위함이란 말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탓일까.
옆에 선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위가 어두웠습니다.
제13시 페어가 내린 어둠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독약 냄새가 싸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내키지 않는 냄새입니다.
병원이라기엔 지독하게만 느껴집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일까요?
자동으로 한 발 내디디는 순간 불이 켜집니다.
센서가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주변이 환해집니다.
: 불이 켜지고, 지하 2층의 모든 곳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4개의 원형 유리관과, 멈춘 PC와, 연구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원통이 놓여 있습니다.
안쪽에는 철제문이 딸려 있습니다.
여러 대의 CCTV가 모서리에 매달려 있었지만, 모두 멈췄는지 움직이거나, 액정을 빛내진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 DOT 본관 지하에, 이런 것들이 왜 필요로 한단 말인가요?
제4시 페어가 고치려고 해봐도, 고장난 것이 아니라 멈춘 것이기 때문에 소용없습니다.
소나무:......(원형 유리관을 들여다본다..)
: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선 원형 유리관에는 모두 정체불명의 액체가 꽉 차 있습니다.
투명한 파란색으로 물든 그것은 꼭 장미의 색을 훔친 것처럼 흐릿합니다.
각 유리관에는 숫자와 간단한 낱말이 적힌 네임택이 붙어 있습니다.
〈제0시, 빛〉, 〈제1시, 물〉, 〈제2시, 불〉, 〈제3시, 식물〉, 〈제4시, 전기〉, 〈제5시, 얼음〉
구태여 더 읽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전부 시간이 부여한 숫자와 능력을 적어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타이머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입니다.
카운터인 나무도, 연구를 도왔지만 이런 곳의 존재는 알지 못했어요.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85 |
| 판정결과: |
실패 |
: 네임택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주인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2051. 10. 08〉
〈2052. 02. 27〉
〈2052. 01. 01〉
〈2051. 12. 17〉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날짜들은,
: 대략 반년 전부터 일주일 사이의 어느 날들이었습니다.
이날이, 무슨 날이었더라.
... 고민은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카운터들이 곧 익숙한 날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들이 DOT에 처음 발견되었던, 혹은 스스로 발을 들였던…
그 날짜였습니다.
: 불길하게도 유리관은, 딱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연구 보고를 설명하고 지시한 애쉬입니다.
그 또한 커다란 책을 든 채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멈춰버렸습니다.
목에는 사원증 이 걸려 있고, 주머니에는... 담배 한 갑, 라이터가 있습니다.
요즘 책도 이런 가죽 표지를 쓰던가요?
소나무:
근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쩐지 가죽은 서늘하고, 끈적거리며, 희미하게 사향 냄새가 납니다.
... 불길한 감촉입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69 |
| 판정결과: |
실패 |
: 아무리 봐도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읽을 법한 책은 아닙니다.
책 표지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씨로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 애쉬의 사원증이네요. 챙겨갈 수 있습니다.
소나무:(챙기고.. 마지막으로 커다란 원통을 확인한다.)
높이 30cm 정도에 지름은 그보다 약간 작고,
볼록한 앞부분에 신기한 소켓 세 개가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생김새인데,
유리창도 없어서 내용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무척 무겁고, 움직이면 내용물이 출렁거립니다.
라벨에 낯선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원통 뒤에는 렌즈와 진공관, 금속 원반을 연결한 작은 상자라던가,
그 외에는 통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매달린 기다린 기계가 서 있습니다.
도저히 도밍게즈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물건들입니다.
... 라고 쓰여있네요.
은하수:애쉬가 들고 있던 그 서적을 말하는 걸까요?
소나무:
자료조사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뇌를 보관하는 것인 듯 합니다.
안에 든 것이 라벨에 적힌 이름의 뇌인 것 같군요.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3/31/12 |
| 굴림: |
86 |
| 판정결과: |
실패 |
1
: 어느정도 이해한 방법으로 뇌 보관통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성 손실 없음.)
: 렌즈를 통해 벽면에 어떤 장면이 투영되고,
단조로운 나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흑백 영화처럼 모두 회색인 데다 상당히 화질이 좋지 못해서,
더더욱 도밍게즈의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TV도, 녹화한 영상도 아니므로 장면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운 좋게 흘러나오는 것들을 훔쳐보고 주워들을 뿐입니다.
눈을 감았다 뜨는 것처럼 시야가 재조명되더니,
낯익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예언의 타이머입니다.
시간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다 닳아가기 때문이니, 이제 타이머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 주변에는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을 비롯해 몇몇 연구원이 보입니다.
모두 DOT의 직원입니다.
새로운······
: 뒷말은 들리지 않았으나, 나무는 이미 다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내키지 않아요.
: 기억의 주체인 연구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내키지 않는다거나, 두려워한다기엔 지나치게 삭막한 나레이션입니다.
시야의 맞은편에 선 것은 마찬가지로, 전 세대의 타이머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팔을 내밀었고,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누군가는 또 다른 신체 일부분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타이머: 세계를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이 방법뿐이니까.
시체 안치실입니다.
냉동 보관되어있는 것들은 전부… 익숙한 시체들입니다.
전전 세대, 혹은 전전전 세대…….
죽어서도 시체조차 묻히지 못한 그것들은 서랍에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문가에서 지시합니다.
조심히 다뤄.
아시잖아요!
: 누군가 밋밋하게 소리를 지르자, 하인리히 장교가 단언합니다.
하인리히 장교: 그걸 해내기 위해 자네를 고용한 거야.
하인리히 장교: 자네가 가부를 판단할 일이 아닐세.
: 영상 속 하인리히 장교의 입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인리히 장교: 그렇다면 기적이라도 만들어 내.
흐물거리고,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흰 대리석 바닥은 그것이 흘린 진액으로 끈적끈적해졌습니다.
화질이 나쁘고, 음질이 더러운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누군가 한숨을 쉬고, 가운의 소매를 걷어 올립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 여전히 억양과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뛸 듯이 기뻐합니다.
두 눈은 똑똑히, 원형 유리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그 물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들어있습니다.
네, 당신입니다.
은하수의 파트너, 시간이 만든 구원자.
: 자신의 얼굴을 목격하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말합니다.
예언의 타이머: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아르고.
뇌의 주인을 부르며 곁에 앉은 그는 커피잔을 들고 있습니다.
내키지 않아요.
: 아르고가 한참 고민하다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예언의 타이머: 나는, 분명히 세계 멸망을 봤어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뿐이에요.
: 단호한 대답이 돌아오지만, 연구원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입니다.
아르고, 당신은 양심으로 인해 사는 내내 시달릴 것입니다.
양심을 죽인즉 당신이 살고, 양심을 살린즉 당신이 죽습니다.
세계의 모든 구조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훼방을 놓았다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양심을 따라 행동하고자 한다면……
: 예언의 타이머는 조금 망설이다가, 마저 예언합니다.
예언의 타이머: 당신의 ■■,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겁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2/31/12 |
| 굴림: |
52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
천장도, 바닥도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건조한 공기에는 날 리가 없는 소독약 냄새가 빽빽하게 차 있었고,
문득, 하인리히 장교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도밍게즈는 2053년의 새 계절을 맞을 거야.
: 그 목소리는 예언의 타이머가 들었던 예언과 똑같았고,
나무는 다음에 올 문장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 그가 그때, 나무의 어깨를 잡아, 한 발 앞으로 끌어냈었죠.
단순히 표면적인 행동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물밖으로…….
불쾌한 이야기니 여기까지 할까요.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점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단 거야.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란 건 이런 식이었던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겁다는 것은 도덕과 정의의 죽음을 의미했던가.
전 세대 타이머는 어떤 심정으로 그 명령에 순응했는가.
자의였는가, 타의였는가.
진정으로 그들은 구원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산재하고,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신은 인간의 탄생을 확신합니다.
스스로 빚어낼 것이기에.
그렇다면 하인리히 장교가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스스로, 카운터의 창조주를 자처했으므로.
깨끗한 대리석 벽면에 얼핏 인영이 비칩니다.
: 서 있는 것은 스물여덟 명이었는데, 비치는 것은 열네 명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비치지 않는 쪽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가지고 있던 기억들은 무엇인가.
왜 축제에는 아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는가.
어째서 DOT에 도착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족이나 지인의 연락을 받지 못했던가.
그 모든 것의 답을 깨닫는 순간,
그래,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었던 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위해 예비된 운명이었던 거지.
목전의 상황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내내 멈춰있었던 것이지만, 귀가 먹먹해서 유난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카드를 태그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멋대로 흘러 들어오는 말들이 그대로 흘러 나간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끝을 맺자, 너를 바라보지 못한 채 시선을 아래에 두었다. 만들어진 운명이다. 시간이 선택한 적이 없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기가 두려워 말없이 카드를 꺼내어 빛에 대었다.)
: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독약 냄새가 무척 짙고 온도가 서늘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위가 뼈를 파고들 정도입니다.
이상한 약품과 수술대,
생체 바이오리듬을 확인하는 기계같이 수술실에서나 쓸 법한 장비들로 가득하고…
캐비넷 위에는 이상한 것들이 담긴 병이 줄 서 있습니다.
: 커다란 정사각형 칸이 여럿 나열된 캐비넷.
벽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 내부에는,
전 세대 타이머의 시체가 들어있습니다.
영상에서 보았던 대로 신체 일부가 없습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1/30/12 |
| 굴림: |
87 |
| 판정결과: |
실패 |
눈, 손가락 같은 것들은 상당히 눈에 띄는 결여점이니까요.
소나무:(세계의 구원자라는 사람들이, 빛 한 줌 들지 않는 캐비넷에 구겨넣어져 있는 모습에 헛구역질이 나오는 입을 틀어 막았다. 자신은 무엇이 좋다고 보고 있던 걸까. 구원자가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문을 닫고 위의 병을 확인한다.)
: 선반에 세워진 유리병에는 끈적한 투명 액과 함께 이상한 것들,
눈동자라던가 내장의 어딘가, 혹은 뼈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람의 것이겠죠.
주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병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거든요.
이름 따윈 없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습니다.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참담함에 시선을 들자,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흰 천장에는 검붉은 것들로 모독적인 무언가가 쓰여 있습니다.
읽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글자와 무늬입니다.
어떤 주문처럼, 주술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소나무:
SAN Roll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할 말을 찾기 어려워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소독약 냄새 대신 새파란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들었습니다.
질식할 것처럼 짙은 향기는 엊그제 맡았던 그것과 똑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다시금 새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문이 서 있습니다.
멀찍이 서 있는 이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장미 향기가 짙어지고,
: 바람도 불지 않는데 너울, 너울 꽃송이가 흔들립니다.
이번엔 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요?
소나무:(살아있는 것의 냄새가 훅 끼쳐온다. 그럼에도 그 문에 다가설 수 없는 것은, 잠시나마 눈에 익은 풍경이 너무 참담해서일 것이다. 쉽게 떼어지지 않는 걸음에 캐비넷을 등지고, 옆에 있는 네 손끝을 확인하듯 잡아보았다.) ...나, 구원자를 하기에는 각오가 부족한지도 몰라. (멈춘 세계가 더는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을 텐데. 나는 처음부터 세계를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을 텐데도.) 좀 무섭다. ......누나는?
은하수:(구원자라는 이름 아래 강인해야 했다. 때문에 담담하게, 동요하지 않고, 완벽하게. ... 행동해야 하는데.) ... 너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네게 묻는 것 같기도 내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손끝만 닿아있던 네 손을 잡았다. 단단하게.) 나무야. ... 모든 게 끝난 뒤에 네가 내 옆에 없으면 나는 못 견딜 것 같아. ... 무서워서. 둘은 하나와 같다고 했잖아. ... 그런 일이 생기진 않겠지. (그렇다고 말해줘. 부러 절실한 눈빛이었다.)
소나무:(손바닥이 단단하게 마주 닿으면 익숙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괜찮냐는 물음을 들으면 당연히 괜찮지 않았고, 자신은 바보같이 솔직한 편이니 얼굴에서부터 티가 나겠지만... 그래도 작게 웃었다. 앞에 보이는 네 얼굴도 안 괜찮아 보였고,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원자가 되기엔 미숙한 소나무와 더불어, 구원자에 적합한 은하수도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면... 이 두려움은 아마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혼자 청승떠는 건 싫어. 그러니까 누나를 혼자 청승 떨게 두지도 않을 거야. 모든 게 끝난 뒤에도 우리는 끝나지 않을 거야.
봐, 시간이 멈췄어. 세계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듣지 못해. ...그러니까 나도 하나 물을게. (어떤 대답을 하든, 이건 멈춘 시간 속에서 우리만의 비밀로 남을거야. 영원히.) 누나는... 도밍게즈가 소중해?
(안쓰러울 정도로 강인한 너의 책임감의 일면에는 죽음에 대한 각오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겸허함도 있지만... 정작 스스로의 의지를 들은 적은 없어서, 그것이 내내 궁금했다.)
은하수:(일렁이던 눈동자가 네 목소리와 함께 멎었다. 천천히, 부드럽게. 마음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호흡을 되찾는다. 만들어진 운명이라 한들 운명이다. 둘이서 하나, 호흡마저 같을 수 있는 운명. 잡은 손의 떨림 또한 멎었다. 구원자라는 이름에 가장 적합한, 군인이라는 직책에 가장 온전한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니 끝이 다가와도, 끝 이후에도.) ... 소중해.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니까. (도밍게즈에는 내가 있어야 하고, 그러니 내게는 도밍게즈가 있어야 한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나,)
... 하지만 그보다 소중한 게 생겼어. (그리 말하곤 이마를 맞댔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는 이전과 같았다.) 너야. ... 좋아, 알겠어. ... 난 무엇도 포기하지 않아. 나무야. (네 숨도, 도밍게즈의 존속도.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도밍게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눈앞에 있는 이는 사랑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 ... 사랑해. (그리 말하며 웃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 했던 아치는 꼭 이 문과 닮아 있었던가.)
소나무:(각별한 사람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날이 온다면. 네가 로맨티스트라고 지칭하는 소나무는, 그런 낭만적인 것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네 운명이 짝이 되었다는 각인이 손목에 새겨졌을 때는 내심 기꺼웠고, 다가온 책임이 버거울지라도 밀어내지 않았으며, 기꺼이 세계의 구원자라는 자리에 앉았다. 오로지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네가 세계를 소중히 여겨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에게 도밍게즈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은 신물이 나고,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세계를 구하고 싶은 명목이 생겼으니까.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주제에, 꼭 눈 앞의 타이머 한 명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 한 마디에, 단숨에.)
...고마워. 무섭지 않아졌어. (무엇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존재가 기적인 타이머고, 기적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기적적인 일이니까.) ...마찬가지야, 누나. (부정한 적 없었다.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묵직하게 내려앉은 이 감정을.) 사랑해.
둘이 함께하는 이상이요.
기적과 같은 존재가 기적 아래를 건넙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아치문을 넘어서면 그곳은…
코마니 호수였습니다.
검게 물들어 있던 호수가 달빛을 받아 순간 반짝이고,
축제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은 물러가고
희고 투명한 물결이 찰랑거립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에요.
분명히, 수면의 색이 밝아옵니다.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원을 그리며 물결이 칩니다.
: 호수 바닥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종이꽃이 소금기에 녹아 물속으로 스며들고……
하수와 나무는 호수 아래에서, 어떤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수도입니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며 웃고 떠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상태로’ 멈춰있습니다.
호수에 비춰야 할 것은 밤하늘이어야 하는데,
: 믿을 수 없게도 그곳에는 어젯밤 무대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소나무:
관찰력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무대 뒤에, 원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어요.
광장에 서 있는 그 시계탑입니다.
나무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호수 속의 시곗바늘은 보란 듯이 움직입니다.
결국, 닿은 곳은 정확하게 12시 정각입니다.
그 순간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듭니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위를 향했습니다.
광장의 시계탑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늘은 11시와 12시 사이에 애매하게 멈춰있습니다.
호수 아래의 세계는 여전히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화려하게 춤을 춥니다.
자정을 기점으로 풀리는 마법이라니.
시계의 바늘을 움직이면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시선이 바삐 오갑니다.
물론 세계를 구하고 싶은가, 아닌가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은하수:.... 나는 할 거야. ... 너랑 같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 ... 너는?
소나무:...남은 시간 전부를 누나와 함께할게. 주어진 시간을 살려면, 돌려받아야 해.
: 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습니다.
은하수:... 그래. (부드럽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시계 앞에 서면, 멈춘 시간이 우리들을 맞이합니다.
은하수:(시침 위로 손을 올렸다.) 후회하면 안 돼. 나랑 남은 시간을 함께 하는 거.
소나무:이상한 걱정이야. 할 수 있다면 지난 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데. (네 손 위를 덮었다.)
손을 겹쳐 시간을 되돌리자, 그제야 시계가 정각을 알리며 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세계가 순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두웠던 밤하늘은 급격하게 색을 바꾸어
청명한 새벽이 되었다가 새파란 아침이 되고, 자줏빛 노을을 지납니다.
재빠르게 회전한 도밍게즈가, 다시금 어두운 밤하늘을 드리웠을 때,
: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크기의 달과 다른 위치의 별이 머리 위에 찾아옵니다.
눈을 깜빡이면, 다시 무대입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향한 환호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옵니다.
무대 위건 뒤편이건,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시간이 멈추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합니다.
누군가 놓친 풍선이 저 멀리,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익숙한 밤하늘을 가르는 풍선은 붉은색.
너머에 뜬 별은 마냥 희고 곱습니다.
세계를 구원한 것을 후회하진 않나요?
현실은 이토록 당신에게 다정해요.
구원받은 것들은 구원자를 잊었지만,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하수를, 나무를, 타이머와 카운터를 사랑합니다.
눈 아래 사람이 가득한 탓에 광장의 시계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 선 바늘의 끝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을 거예요.
: 둘은 현실로 돌아오고, 도밍게즈는 구원 받았습니다.
만들어낸 운명에게.